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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진화론의 시대
진화론적 세계관 - 진화론이라는 만능산 다 어디로 갔지? - 모두 차가운 땅 속에 멸종의 관점에서 - 패자의 생명사 용어에 관한 주의 사항 1. 멸종 시나리오 멸종률 99.9퍼센트 유전자인가 운인가 멸종 유형학 어이없는 멸종의 중요성 2. 적자생존이란 오해를 이해하자 주술적 언어로서의 진화론 다윈혁명이란 무엇인가 3. 왜 다위니즘이라 부를까 일반인의 오해에서 과학자의 논쟁으로 도킨스의 반론 - '바로 그 이야기'야말로 꼭 필요하다 데닛의 추격 - 그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논쟁의 판정 결론. 어이없는 상황을 대하는 태도 굴드의 지옥 순례 역사의 독립선언 설명과 이해 어이없는 현상을 대하는 태도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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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성공스토리에서 잠시 눈을 돌려 멸종이라는 관점, 이른바 패자 측에서 생명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다. 1장에서는 실로 99.9퍼센트에 달하는 생물종이 멸종했다는 사실, 그것도 대부분은 능력이 없기(유전자가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공교롭게 맞닥뜨린 시대와 장소가 나빴기(운이 나빴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단순히 운이 나빴기 때문은 아니다. 멸종생물은 능력(유전자)을 다투는 서바이벌 게임의 규칙이 운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조리극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를 고생물학자인 데이빗 라우프는 ‘어이없는 멸종’이라 불렀다. 생물은 이처럼 유전자로도 운으로도 환원할 수 없는 어이없는 게임 속에서 멸종하거나 또는 살아남아 진화해 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날의 생물세계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 사고, 요행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2장에서는 진화론의 근본 아이디어인 자연도태설을 테마로 삼았다. 모범답안은 살아남는 것은 어디까지나 적자(적응한 자)이며 반드시 강자(강한 자)이거나 승자(승리한 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적자가 왜 적자인가는 생존 자체로 정의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도태설은 일종의 동어반복성을 지니지만 이는 진화론의 결점은 아니다. 진화론은 생존을 적자의 기준으로 삼아 경험 과학의 유효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일상세계에서는 똑같은 자연도태설이 알맹이가 쏙 빠진 ‘주술적 언어’를 낳는다. 우리는 자연도태설이 지닌 독특한 성질에 이끌려 적자에 기준을 부여하는 동어반복을 일종의 자연법칙으로 간주해 이런저런 현상에 덧씌우는 일이 가능한 주술적 언어로 이용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진화론을 둘러싼 일반인과 과학자, 전문지식과 일반상식, 과학이론과 세계관의 분업 체계 또는 해리적 공존이라 부를만한 구도를 발견할 수 있다.진화론의 하드 코어는 자연도태와 생명의 나무라는 두 가지 가설이다. 둘 다 다윈 이전부터 존재한 아이디어이지만 다윈의 독창성과 혁신성은 이 두 가지를 결합하고 적용한 데에 있다 . 역사적 상황 하에서 자연도태가 작동하고 자연도태의 조형력으로 역사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형태로 각각은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서로 연관되어 있다.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일과 생명의 역사를 이해하는 일, 즉 자연에 대한 ‘설명’과 역사의 ‘이해’ 두 가지 모두 본질적 요건으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형태로 유지되는 것이 바로 다위니즘이 다위니즘인 이유다. 진화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시공을 뛰어넘는 수량적인 일반 법칙을 다루는 여러 과학 분야’와 ‘역사의 특수성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는 과학’ 사이, 또는 ‘추상적 일반성’과 ‘일반적인 것으로는 환원할 수 없는 잡다한 특수성’ 사이, 즉 ‘자연의 설명’과 ‘역사의 이해’ 사이의 딱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굴드는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 (중략) 이렇듯 진화론의 특이한 매력은 중간적 성격에 있다. 어중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시공을 뛰어넘는 수량적인 일반 법칙을 다루는 여러 과학 분야’와 ‘역사의 특수성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는 과학’ 사이의 광대한 영역을 오갈 수 있다는 의미다. 굴드는 이 점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 (중략) 굴드의 관심은 진화론의 중간적 성격을 어떻게 지켜 낼 것인가에 있었다. 진화론의 두 가지 축 -진화의 메커니즘(자연도태)과 생명의 역사(생명의 나무)-의 논리적 독립성과 평등한 관계는 진화론(다위니즘)을 진화론이게 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굴드는 그 조건을 원리적으로 확보하려 시도했으며 적응주의 비판의 의의도 여기에 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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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어디로 갔지? 생물종의 99.9%는 멸종했다!
지금까지 ‘진화’라는 무대 위의 주인공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온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무대 뒤에 존재하는, 생존하고 적응한 것들보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사라져 간 자’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패자의 관점에서 본 실패의 역사, ‘생존’이 아닌 ‘멸종’의 관점에서 생물의 진화를 다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생물은 대부분 불량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운이 나빴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멸종은 유전자를 다투는 게임의 장이 운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생물학자 데이빗 라우프는 이를 ‘어이없는 멸종’이라 불렀다. 생물의 생존과 멸망이 유전자로도 운으로도 환원하기 어렵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유전자와 운의 ‘어이없는’ 다양한 교착방식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우리가 아는 진화론은 진화론이 아니다? 우리는 ‘진화’, ‘적응’, ‘유전자’, ‘DNA’ 같은 단어를 일상 대화 속에서 밥 먹듯 사용한다. 하지만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말하는 것일까? 저자는 진화론은 생물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과학이론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되었다고 말한다. 진화론에 대한 우리의 오해의 중심에는 자연도태설이 있다. 자연도태설 아이디어가 가리키는 적자(適者, 적응한 자)는 강자와 승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적자생존은 약육강식도 우승열패도 아니다. 인간이 그런 식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저자는 자연도태설에 대한 오해를 이해하는 작업을 통해 진화론의 근본 아이디어에 다가간다. 진화론이 오해받는 이유는 진화론이 ‘주술적 언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세계관이 된 진화론은 ‘정통이라 인정받은 가치체계’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고, 사람들은 진화론의 언어를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신이 하는 일에 ‘덧씌우고’ 있다. 진화론은 심장부에 매혹과 혼란이 일체가 된 지뢰를 품은 학문 3장에서는 과학자들의 세계로 넘어와 ‘적응주의 논쟁’으로 불리는, 격렬했던 과학자들 간의 논쟁을 다루면서 진화론의 매력과 유효성에 다가간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적응주의를 어떻게 비판했는지, 이에 대해 주류파의 대표 리처드 도킨스는 어떻게 반격했는지, 대니얼 데닛은 어떻게 도킨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옹호했는지 등,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자연도태설을 중심축으로 하는 현대진화론(네오다위니즘)이 얼마나 훌륭한 과학적 방법론인지, 굴드가 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밝힌다.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끝까지 다윈에게 찬사를 보내면서도 다위니즘의 적응주의적 측면을 비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굴드의 무모한 도전에 의문을 갖는다. 저자는 굴드가 진화론이 지닌 매혹과 혼란의 원천, 진화의 ‘어이없는’ 측면을 똑바로 직시했기 때문에 미궁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서 굴드가 천착했던 ‘역사’에 대해 숙고한다. 굴드의 패배는 진화론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와 과학자들 간의 분쟁이 자연에 대한 ‘설명’과 역사의 ‘이해’ 그 한 가운데에 위치하는 진화론의 독특한 중간적 성격에서 기인하며, 이때 ‘어이없는 진화’, 즉 역사의 우연성에 대한 인간적, 형이상학적 감각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진화론에 대한 이해를 이해한다 《어이없는 진화》는 진화론 전문가가 진화론을 해설하거나 평가하는 책이 아니다. 진화론과 관련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과학자들의 이름은 물론 가다머와 비트겐슈타인 같은 유명 철학자들의 이름도 줄줄이 등장하지만, 전문서라기보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인문서에 가깝다. 이 책은 일반 독자가 진화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어떻게 진화론의 고갱이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요하게 다가갔는지, 그 궤적을 한눈에 좇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도달했던 방대한 지식의 분량에 놀라게 된다. 무엇보다 저자가 소화한 막대한 양의 정보가 아주 쉽고 명쾌하게 정리되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진화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큰 무리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다. 진화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저자가 각주를 통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다양한 진화론 관련 참고문헌에 관한 코멘트가 아주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어이없는 진화》일본 매체 추천평 “진화론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왜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극단적인 논쟁이 일어날까.이 책은 진화론의 매력을 빼어나게 설명해 냈다. … 이렇게 뛰어난 사상사는 실로 오랜만에 접했다.” - 요로 다케시(도쿄대 명예교수) [마이니치신문] “진화론 논쟁에서 패배한 굴드를 등장시켜 패배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떠안은 문제를 비추는 거울로 사용했다. 진화론, 그리고 다른 여타 학문의 기반까지 파고들어 가는 역작이다.” - 야마가타 히로오(평론가) [cakes] “언뜻 난해해 보이는 인문계와 자연계 사이의 경계 영역을 쉽게 넘나들며 놀이하듯 즐기는 지적인 필자가 나타났다. … 넓은 의미의 ‘진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성숙한 감성이 여기에 있다.” - 가토 노리히로(문예평론가, 와세다대 명예교수) [교도통신] “박학하고 다재하며 재기 넘치는 문장에 자꾸 웃음이 나온다. 사물의 본질을 꽉 움켜쥐고는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펼쳐 내는 데에 놀랐다.” - 이케자와 나츠키(소설가, 시인) [슈칸분슌] “철학적, 추상적 일탈도 서슴지 않으며 어이없는 현상을 진지하게 마주한 저자는 우리에게 명쾌한 무상관(無常?)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 시마다 마사히코(소설가, 호세대 교수) [아사히신문] “지난해 읽은 책 중 베스트 5에 들어간다. 과학서가 아니라 ‘진화론’이라는 고목을 방편 삼아 사색의 길을 유람하는 세련된 철학서다.” - 이케가야 유지(도쿄대 약학부 교수) [요미우리신문] “온갖 자료를 섭렵한 저자의 박학함은 논쟁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헤쳐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저자의 태도 또한 진지해 호감이 간다. … 실로 오랜만에 지적 자극을 받게 해 준 좋은 책이다.” - 가네코 고토무(과학사가, 오사카 부립대학 명예교수) [도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