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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1' 최창조
'발문 2' 정기호 '발문 3' 김교빈 1. 감룡경·의룡경 해제 감룡경 해제 의룡경 해제 2. 감룡경 교감 및 역주 ·제1편 통론(統論) ·제2편 원국(垣局) ·제3편 탐랑(貪狼) ·제4편 거문(巨門) ·제5편 녹존(祿存) ·제6편 문곡(文曲) ·제7편 염정(廉貞) ·제8편 무곡(武曲) ·제9편 파군(破軍) ·제10편 좌보(左輔) ·제11편 우필(右弼) ·제12편 변혈편(變穴篇) ·제13편 구성길흉(九星吉凶) ·제14편 자웅시편(雌雄詩斷) ·제15편 정혈좌선칠성경(定穴左仙七星經) 3. 의룡경 교감 및 역주 ·제1편 상편(上篇) ·제2편 중편(中篇) ·제3편 하편(下篇) ·제4편 의룡십문(疑龍十問) ·제5편 위룡편(衛龍篇) ·제6편 변성편(變星篇) ·제7편 단제수언(斷制粹言) ·제8편 형혈속성상(形穴屬星象) 4. 용어설명 감룡경·의룡경 후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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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균송의「감룡경 · 의룡경」은?
「감룡경」과「의룡경」은 조선시대 과거시험 잡과(雜科) 가운데 지리학의 교재였다. 잡과는 中人들이 보는 시험이었지만 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나라의 도읍지 선정이나 궁궐, 사당을 비롯하여 왕릉의 부지를 선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부분의 풍수서가 묘 자리를 보는 음택 풍수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감룡경」과「의룡경」은 도읍지나 거점 도시의 입지 선정 같은 양택 풍수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 나라의 자연관이나 국토관은 그 나라의 지형지세라는 물리학적 특성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선의 국토관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끼친 것은 다름 아닌 풍수지리였다. 크게는 도읍지 선정에서 작게는 무덤 선정까지 관상감(서운관) 소속의 지관들의 땅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고려의 국토관과 조선의 국토관이 다르고, 조선의 국토관과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의 국토관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한 차이의 1차적 원인은 각 왕조가 채택하였던 地官선발고시과목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조선조 지관선발고시과목으로 채택된「장서」,「청오경」,「명산론」,「지리신법」 등이 대부분 묘지풍수서임에 반해 양균송의「감룡경」,「의룡경」은 국토 전반을 논한 풍수서였기 때문에 조선조 국토관과 자연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문제는 이 책들이 중국의 풍수서적으로 중국 전체의 국토를 논한 책인데, 조선조에 들어와서 지관선발 고시에 필수과목이 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대지를 설명하던 풍수이론으로 한반도의 대지를 재단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풍수이론과 땅과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일정 부분 공허하거나 추상적이기도 하고, 또는 이현령비현령의 공설(公說)이 되게 된 것이 조선조 풍수학의 특징이다. 국토관이 달라지면 그 땅위에 사는 사람들의 실천양식도 달라진다. 중국 풍수이론의 무비판적 수용은 조선인의 자기 땅에 대한 자기의식의 부재를 결과했다. 그 결과는 한반도 고유의 국토관(자연관)의 부재로 나타난다.‘한반도 운하 건설’, 4대강 살리기, 국토의 난개발 등에 대해‘자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원론밖에 내놓지 못한 이유도 이러한 국토관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이 책은 역주자 김두규 교수가 5년에 걸쳐 11종의 판본을 취합하여 교감작업을 거친 후 역주 작업을 거친 것으로, 조선조 지관선발고시과목 가운데 가장 난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자연관과 국토관이 진정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