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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엮으며
part 1. 프로 스님들의 이야기 1_ 혜초 스님과 『왕오천축국전』 2_ 천재 번역가, 구마라집 법사 3_ 인도의 허준, 지와카 코마라밧차 4_ 인도의 황진이, 암바팔리 5_ 동양의 콘스탄틴 대제, 아쇼카 대왕 part 2. 붓다의 가계와 혈족 1_ 붓다 암살 작전 2_ 아버지 정반왕의 장례식 3_ 아내 야소다라의 한 맺힌 사부곡 4_ 동생 아난의 여난과 여성 출가 5_ 석가국의 성립 유래와 멸망 part 3. 유명한 스님들 1_ 원효 대사 2_ 나옹 선사의 이중 법맥 3_ 마하 가섭존자, 제2대 불조 4_ 유마 거사의 절대 침묵 5_ 달마 대사, 면벽 9년 6_ 임제 나룻터의 풍광승 7_ 6조 혜능의 전등 비사 part 4. 불교 설화의 교훈 1_ 안수정등 우화 2_ 광덕 스님과 『원왕생가』 3_ 가난한 여인 난타와 모니 공주 4_ 빼어난 외모를 가진 비구니 미묘의 기막힌 인생 5_ 앙굴리마라, 희대의 살인마 part 5. 불교 역사 속의 기이한 일들 1_ 붓다의 쌍신변 이적 2_ 이차돈의 순교 3_ 진묵 대사의 효행 part 6. 불교 이야기 1_ 중국 불교 수난사 2_ 스님에서 황제로 환생한 순치 황제 3_ 빔비사라왕, 불교 제1 공덕주 4_ 붓다의 서른두 가지 모습 글을 마무리하며 |
許相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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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크 영웅전』 「알렉산더 대왕」 편에 보면 기원전 4세기경 대왕이 인도 서북부(간다라 지방 일대)를 침공했을 때, 인도의 젊은 장교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마가다국 공격을 건의하는 장면이 있다. 이 젊은 반역 장교가 후일 조국 마가다국의 난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기원전 315년에 마우리아 왕조를 일으킨 찬드라 굽타이다.
왕으로 등극한 굽타는 인더스강 근방의 그리스 세력을 일소하고, 시리아의 맹주가 된 알렉산더의 후계자 셀레우코스 리카르도와 자웅을 겨룰 만큼 세력이 강대해졌다. 그는 후일 셀레우코스의 왕녀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정략혼인으로 셀레우코스와 강화를 맺기까지 한다. 마침내 찬드라굽타는 북으로 히말라야산맥, 남으로 빈디아산맥 너머의 여러 지방, 동으로 벵골만, 서로는 아라비아해에 걸친 통일 제국을 건국해 수도를 파탈리푸트라(화씨성)로 삼아 마우리아 왕조(마우리아는 공작을 뜻함으로 공작 왕조라 한다)를 열었다. 24년간 왕위에 있었으며 철저한 자이나교 신봉자로서 종교적 고행의 삶을 살았다. ---「아소카 대왕, 동양의 콘스탄틴 대제」중에서 16왕국의 병렬 시대 초기는 쿠루국(kulu)과 판찰라국(Pancala)이 영화를 누렸으나 점차 권력의 이동이 북동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북동부 지역 국가 중 바이살리를 수도로 하는 밧지(Vajii, 왓지)는 절대왕정이 아닌 공화정 형태의 도시국가였는데 브라만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공화정 형태로 유명한 국가가 밧지 이외에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카필라성)의 샤카(shakya, 석가족)가 있었다. ---「석가국의 성립 유래와 멸망」중에서 지공은 본래 인도 마가다 국왕의 셋째 왕자였다. 나란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인도 전역을 순례한 후 중국 원나라로 건너와 대중을 교화하여 천자의 총애까지 받은 고승이었다. 1326년 충숙왕 때 금강산 법기 보살에게 향 공양을 올리기 위해 고려에 들어와 1328년까지 금강산·개경·인천·양산 등을 방문하였다. 나옹은 지공 문하에서 3년간 일심으로 정진하였고 나중 항주 휴휴암과 정자사에서 수행 후 임제종 18대 선맥을 이은 평산 처림을 찾아가 법을 받았다. 그 뒤 다시 지공을 찾아가 세 번째 뵙고 법맥을 이어받았다. ---「나옹 선사의 이중 법맥」중에서 인터넷 쇼핑과 신문광고, 인사동 거리 유명 관광 쇼핑가 등에서 우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달마 그림을 많이 접한다. 불법을 전하기 위해 모진 풍랑을 겪으며 천축에서 동방으로 온 달마대사를 화폭에 담아 수맥 차단의 도구나 벽사 부적으로 전락시켜 상품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화가의 마음이 그에게 얼마나 다가갔는지가 문제이지 달마도는 누구나 그리거나 조각해서 판매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무소유행을 실천한 대사의 삶을 부정하여 사고 파는 행위는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비난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교외별전敎外別傳 경전 이외에 별도로 전하는 가르침은 불립문자不立文字 말과 글로는 세울 수 없고 직지인심直指人心 마음을 곧바로 보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 본성을 보면 부처가 된다. 이것은 유명한 달마의 사구게四句偈로 달마가 불교의 본질을 읊은 것이다. ---「달마 대사의 면벽 9년」중에서 종교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가 페르시아·이집트·로마의 여러 토속종교와 대립하며 교세를 넓혀 나갈 즈음, 온갖 박해를 받고도 이를 극복해 나가는 지혜로운 사례를 우리는 기독교 수난사에서 많이 보아 왔다. 불교도 예외 없이 토속종교들과 대립하며 때로는 엄청난 박해와 훼불 등의 법난 과정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중국불교 수난사」중에서 1657년 순치제는 북경에 있는 남해자(지금의 남원南苑)를 순행하다가 임제종 고승 감박 성총?璞性聰 선사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해 점차 참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순치제는 감박 성총 선사를 왕사로 책봉하여 황궁 출입을 자유롭게 하고 그와 깊은 인연을 맺어 불도에 심취하게 된다. 아마도 그는 평소에 숭앙해 마지않던 승려 황제 명 태조 주원장처럼 황제보다는 승려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스님에서 황제로 환생한 순치 황제」중에서 기원전 5세기경 붓다가 살던 인도에서 제1 종교는 브라만교였다. 당시 인도에서는 브라만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는 했지만 브라만 신상을 만드는 관습은 없었다. 지배 세력의 종교인 브라만교와 공존하며 생존하여야 했던 불교는 브라만의 관습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초기 불교 교리 자체가 예배의 대상을 두지 않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으므로 붓다의 모습 없이 경배드리는 “무 불상” 세월이 500여 년이나 되었다. ---「붓다의 서른두 가지 모습」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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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MZ세대에게 우리 정신문화의 DNA가 깊이 녹아 있는 불교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는 것이 불교 전법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어려운 불교의 열반으로 가는 3가지 수행인 계율·선정·지혜의 철학적 이치보다는 젊은 그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불교에 쉽게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붓을 들었다.”고 한다.
『인생 백년 절집 반나절 쉼만 못하다』를 읽다 보면 쉽지만, 저자의 문화를 관통하는 힘,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능숙함이 책 곳곳에 묻어 있다. 그래서 더 이 책을 쓴 저자가 궁금해진다. 허상녕 선생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하였으며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조정위원, 금융발전 심의위원, 세제발전 심의위원,한일중소기업협력 위원장 등을 거친 경제계 인사이다. 이렇듯 불교와 무관한 듯한 그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한국 고대사와 동양 미술사를 부전공하며 미술사학자 황수영 교수님과 감포 앞 동해에 있는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를 현지의 보재기(잠수부)들과 같이 답사하고, 황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불교의 교리와 문화, 사상과 철학 등 불교적 소양을 쌓은 덕분이라고 회고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생각이 연상될 때가 많다. 그러나 찰나에 그 생각들은 금방 날아가 버린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적 이야기들을 메모하다 보면 불교의 시작인 인도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불교, 문화, 역사가 한눈에 보일 것이다. 저자 허상녕 선생이 말하고자 하는 결국 종교는 인간의 스토리텔링 결과물이고, 불경은 역사적 보물창고라는 말이 느껴질 듯하다. “우리 젊은이의 혈맥에는 불교적 DNA가 알알이 박혀 있다. 이제 2,000여 년을 답습해 온 중국불교에서 벗어나 ‘새로운 K불교문화’를 구축하여, K불교문화를 배우고 익히려 세계인이 구름처럼 몰려들게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천년 후의 우리 후손들이 불교 철학과 문화, 사상에 의지하여 사는 국민이 되도록 하는 구상과 실행을 이끌어 낼 기회다.” -마무리 말 중에서- 위 저자의 마무리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 우리 안에 내재된 불교적 DNA가 새롭게 솟아나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꿈꾸던 바람이 이뤄질 것이다. 문화는 한 나라의 정체성이다. 문화가 발전하면 그 나라의 위상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문화강국 도약을 위해 K불교문화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으랴. MZ세대에게 한국불교를 알려주는 것은 한국불교 발전을 넘어서 K불교문화를 통한 세계적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