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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_ 1966년 5월
2_ 매축지 단상(埋築地 斷想) 셋_ 지구본(地球本) 4_ 작은 방의 젊은 그들 다섯_ 볶음밥, 도시락 그리고 개미 6_ 결혼 이야기 일곱_ 부둣길과 U.S.A. 8_ 변소야담(便所野談) 아홉_ 잘살아 보세 10_ 목욕 이발기(沐浴 理髮記) 열하나_ 우리의 명랑 문화생활 12_ 배반의 세월 열셋_ 춥고도 따뜻했던 겨울 14_ 하일소화(夏日笑話) 열다섯_ 졸업 16_ 광녀약전(狂女略傳) 열일곱_ 엄마의 기도 열여덟_ 노을 속으로 뒷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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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방의 북쪽 벽에는 남향으로 감실龕室이 만들어졌다. 두껍지 않은 송판으로 너비 50센티미터 길이 60~70센티미터 정도의 직육면체 상자를 하얀 창호지로 발라서 벽에 걸고 아버지의 신주神主를 모셨다. 촛대 두 개를 신위神位 양쪽에 두고 앞에는 작은 향로를 놓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밥을 지어 자식들이 두 번 절하고 제를 올렸다. 집안의 대소사를 절하며 고하고, 특히 형들이나 누나가 중·고등학교 입시에 합격하거나 학교에서 상을 받은 날에는 따로 절을 올리며 그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렸다.
그렇게 아버지의 삼년상三年喪이 매축지 조막만 한 집의 방 한쪽 귀퉁이에서 치러졌는데, 그것은 엄마가 흰 상복을 입고 허위허위 세상을 헤쳐 나가야 했던 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의례였던 것이다. --- p.19, 「하나. 1966년 5월」 중에서 그러나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소고깃국 뚝배기에 하얀 쌀밥을 말아 넣고 입천장이 데는지 콧물이 흐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국밥을 떠먹고 불고기를 집어 먹었다. 짭짜름하고 달콤한 불고기도 입에 들어가면 녹는 듯 없어져 버렸지만 국밥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향기와 맛이 났는데,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본 바로는 그것은 후추의 향이었다. 거기에는 매운 듯도 하고 달콤한 듯도 하며, 뜨거우면서도 서늘한 향기가 황홀하게 뒤섞여 있었다. 엄마에게서 그것이 후추의 향과 맛이라는 말을 듣고 ‘엄마, 우리도 담부터는 밥에 후추 뿌리 묵자’고 나는 엄마에게 말하였는데, 엄마는 슬며시 웃었다. --- p.49, 「셋. 지구본(地球本) 동네 아주머니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화투판을 벌이고 육백을 쳤는데 그 자리에서는 앞집 부엌 찬장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부터 뒷집 아저씨 사타구니의 종기에는 누가 어떻게 ‘이명래 고약’을 붙였는지까지 있는 말 없는 이야기들이 모두 오가서 서로 숨기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쌀집 막내딸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대놓고 물어보거나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남의 말 옮기기 좋아하는 몇몇 아주머니들 간에 따로 소곤소곤 귀엣말로 추측되고 전해졌던 것인데 그중 두 가지 설이 유력하게 경합하였다. --- p.84, 「6. 결혼 이야기」 중에서 국방색 깡통들에 든 소고기 죽이나 돼지고기 햄은 조금 닝닝했지만 먹을 만은 했고 비닐 봉지에 싸인 크래커도 짭짜름하니 맛있었지만 당최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작은 은박종이 포장에 들어있는 커피라는 물건이었다. 물에 타서 먹어도 쓰고 그냥 찍어 먹으면 더 써서 나는 두어 번 혀끝에 대어보다가 사람 먹을 음식이 아니라고 결론 짓고 누가 그걸 먹는지 아니면 어디 갖다 버리는지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다. --- p.140, 「아홉. 잘살아 보세」 중에서 ‘영안실’이라고 적힌 팻말이 붙은 방의 문 앞에서 그녀는 다시 한번 다리에 힘을 잃고 쓰러졌다. 아들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보고 싶다던 어머니의 모습을 대하고도 눈을 감고만 있는 아들의 시신을 마주한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도 생각할 수도 없어서 오랫동안 아들의 차가운 얼굴에 볼을 비비며 울부짖었다. 나중에 누구는 그 아들이 믿던 종교의 ‘폭력을 행사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인 군대를 가서도 안 되며, 남을 해치기 위해 만들어진 총도 잡으면 안 된다’는 엄격한 교리 때문에 군대 생활에 적응을 못 했던 건지, 학생 운동했다고 부대에서 특별 관리를 받다가 맞아 죽은 것인지 누가 알 것이냐고 술자리에서 말했지만, 사건 조사는 이미 훈련 중 안전사고로 처리 종료되었고 억겁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을 것처럼 길고도 깊은 어머니의 통곡 속에 아들은 화장되었다. --- p.182, 「12. 배반의 세월」 중에서 반장의 일이란 역시 생각했던 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반장이 다 그랬는지 나는 평생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알 수 없었지만, 반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인지 의심스러운 일들도 있었는데, 말하자면 전반적인 선생님의 행정 보조 역할이 그것이었다. 베이지색 비닐 커버가 입혀진 커다란 교무일지는 각 과목의 학습 일정과 교무회의 자료 등이 정리되는 부분들도 있었고 반 아이들 전원의 출결 상황, 월례고사 과목별 시험 성적에다 하다못해 개인별 지능지수까지 총망라된 종합 교육현황 일지였는데, 선생님은 그 정리를 내게 맡겼다. --- p.226, 「열다섯. 졸업」 중에서 엄마는 자식들을 키우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훗날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그 산속의 작은 기도처를 찾아서 혼자 울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자식들을 키우던 그때가 힘들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행복했었다고 말하였다. --- p.264, 「열일곱. 엄마의 기도」 중에서 여러 개의 하얀 목화 그림이 주황색 바탕에 그려진 분갑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 엄마가 그 분을 바르지는 않았는데, 엄마는 꼭 그것이 불란서제 고급 화장품이어서 아끼느라 쓰지 않는 것은 아닌 듯하였다. 오래된 향수 냄새가 은은히 배어있는 연한 미색의 비단에 예쁜 꽃과 나비를 수놓은 접부채도 엄마는 장롱 속 깊이 넣어두기만 했지 쓰는 법이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경주 안압지와 첨성대 앞에서 고운 봄 한복을 입은 채 밝은색의 양복에 넥타이를 맨 키 큰 아버지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 속의 엄마는 까만 핸드백을 들고 있었는데, 작은 구슬 장식이 반짝이는 그 핸드백도 장롱 속에 고이 간직된 엄마의 몇 가지 쓰지 않는 물건 중의 하나였다. 엄마는 필시 아버지가 선물했을 그 ‘코티’ 분과 비단 접부채와 까만 구슬 핸드백을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추억으로서 간직하는 것 같았다. --- p.270, 「열여덟. 노을 속으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