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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족 통합의 새 시대가 열리다
2. 자주와 주체를 지향한 통일국가 3. 관료사회로 가는 길 4. 중앙집권을 지향한 통치조직 5. 땅을 어떻게 나누었을까 6. 혁명적인 노비안검법 7. 문벌귀족과 관료세력 8. 서민들의 생활은 나아졌을까 9. 부처를 믿고, 무당을 따르고 10. 서희는 거란의 침략을 입으로 막았다 11. 거란의 2차 침입 12. 거란의 3차 침입과 강한찬의 승리 13. 송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다 14. 세계로 퍼진 꼬레아의 명성 15. 사농공상 모두가 나라의 근본 16. 길은 물화 유통의 동맥 17. 절과 중은 대토지 소유자 18. 유학은 지배 이데올로기인가 19. 유교제도를 따라간 생활 규범 20. 남녀 평등의 사회였을까 21. 나라에서 베푼 복지 혜택 22. 맹아기에 일어난 문학운동 |
Lee E-Hwa,李離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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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청전쟁 이후 청나라와의 갈등과 이본과의 선린우호 관계 속에서 존명배청 사상이 등장하고 북벌론이 대두하였는데, 결국 이것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으나 정치적 책략으로 이용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당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주자학의 교조성이 강화되었음을 추적하였다.
극대화한 모순을 청산하려고 지배세력과 관인사회, 그리고 재야의 지식인들이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추진한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 곧 영조와 정조의 개혁정치와 이를 뒷받침한 벼슬아치들과 실학파로 일컬어지는 재야파에 의해 사회개조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족의 독점현상을 타파하고 양반을 없애야 하다는 등의 내정개혁만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주자학이 아닌 서학(西學) 등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수용하고 역사적으로는 '조선의 것'을 추구한 민족주체의 확립 등을 부각시켰다. 사회경제사적으로도 커다란 변화를 보였다는 점이다. 화폐를 전면적으로 통용하고 이에 따라 초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전개되었다. 국가통제를 벗어나 상업이 발달하면서 상업자본을 축적한 상인세력이 정치적 힘을 얻었다. 또 농법의 개량, 농기구의 개발을 통해 농업생산력이 증대되고 토지의 독점현상이 가속화되어 새로운 경제질서로 재편되었다. 국가정책도 이에 발맞추어 개선을 도모하였다. 민중의 움직임이 활발하였다. 중인, 서자, 노비 등 소외되거나 학대받던 세력들은 자신들에게 씌어진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민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처지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물리적으로 저항을 기도하였다. 그리하여 영조와 정조는 이들의 고통을 들어 그 개선을 도모하였다. 서민문화가 활발하게 싹트기 시작하였다. 문학에서는 중인들이 벌인 여항문학과 서민들이 벌인 춘향전, 심청전 등 국문소설이 유행을 타고 독자를 확보하였으며, 음악에서는 직업적 가객이 등장하고 판소리가 최초로 생성하였고, 그림에서는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등장하였다. 이러한 서민문화를 유교 교양을 중심으로 이룩된 고답적인 귀족문화와 쌍벽을 이루었다. 놀이와 풍속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전통적 생활습관에서 차츰 다양한 놀이문화를 전개시켰다. 트레머리 등 사치를 금지하는 영조와 정조의 검소·절약정책에 힘입어 서민들의 세시풍속이 절제되어 나타났다. 통과의례도 간소화를 표방하였으며, 세시풍속도 농경문화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오늘날 전통적 풍속과 놀이는 이 무렵 정리되어 계승되거나 재현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