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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본 성적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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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금지 위반 육체 정열 주관성 신비교 여성 에로스와 타나코스 성스러움 역주 참고 문헌 색인 역자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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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음란의 관계는 단순히 욕망에 대한 폴린적 접근 방식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 방법은 비록 현실상 위험이 불가피함에도불구하고 구조주의적인 만큼 헛되고 무용하며 기대하지 않은 형국을 낳는다. 음란이라는 양적인 문제라고 치부하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과연 사치는 음란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감히 공언할 수 있는가? 이제 이교도들의 어휘에서 향락이란 '풍성함' 때로는 처녀림이나 아름다운 식물, 또는 머리채의 풍성함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보아야 할 터이다. 따라서 음란은 넉넉하고 넘쳐나는 상태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성서>>의 언어는 그것을 영혼에 알맞은 훈련에는 적합치 않은 부정적인 용어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에, 랭보는 전체성으로서 그것을 추어올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마술적, 음란'이라고 적고 있다. 사치는 거리두기의 미덕이라는 면에서는 음란과 대치된다. 반면 음란은 너무도 명확하게 융합이나 난잡성, 외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음란함을 방탕함이나 부도덕함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단어가 경멸의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한 또다른 동의어가 있다. <신약 성서>에 등장하는 그리스어인 '사랑' 아가페가 그것이다. 아가페는 상징적으로 극도의 강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 최초의 제자들과 나누던 성체 의식을 의미한다. 그 다음으로 식사 자체의 형제애를, 마지막으로 연회의 넘쳐나는 풍성함을 지칭한다. 각 단계로 넘어가면서 아가페는 원래 소유하고 있던 위력의 한 부분씩을 잃어버렸다. 오늘날 식사를 하는 모든 속세의 사람들은 앞에 잘 차려진 식탁이 있는 한, 아가페라는 용어의 옛적 어원을 찾으려는 아무런 노력 없이 그가 참여하는 아가페들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미덕은 육체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사치와 음란 - 뿐만 아니라 음란과 성적인 감각 - 은 항상 같은 짝을 이룬다. 그러나 다시 한번 식탁의 은유를 끌어들임으로써 우리는 사치를 고도의 미식과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반면 음란은 보다 저속한 것으로, 특히 캄캄한 저녁의 분위기, 포장마차나 알코올 음료, 섹스 등에 관련되어 있다. --- pp133~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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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욕망에 대하여
머리카락 나자마자 우리는 욕망이라는 것에 둘러싸여서 산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서 모든 인문학과 과학을 뒷받침하는 힘은 결국 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인간의 성적인 욕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양한 각도에서 살펴본 성적 욕망 이 책은 욕망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각도에서 조명하려 한다. 결핍, 금지, 위반, 육체, 정열, 여성…… 등등, 특히 욕망을 삶의 긍정적인 원동력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면모를 보여 준다. 도덕과 종교가 억압하는 우리의 리비도를 생산적으로 해방시키자는 전언이라고나 할까. 파괴가 아닌 생산 쪽으로 잘 제어되고 조절된 욕망의 해방. 제어되고 조절된 욕망을 해방된 욕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욕망은 자연과 문화, 그리고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자유로 이루어진 복잡한 장 속에 위치한다. 그것은 타자를 가로지르는 자기 성취인 것이다. 욕망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결국 타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를 통해 자기를 말한다는 것은 사회화 과정, 문화적 관계 수립, 그리고 서로 공유하도록 운명지워진 과정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