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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과거 칠불 1. 비바시불 2. 시기불 3. 비사부불 4. 구류손불 5. 구나함모니불 6. 가섭불 7. 석가모니불 인도의 조사 8. 가섭 존자 9. 아난 존자 10. 상나화수 존자 11. 우바국다 존자 12. 제다가 존자 13. 미차가 존자 14. 바수밀 존자 15. 불타난제 존자 16. 복태밀다 존자 17. 협 존자 18. 부나야사 존자 19. 가비마라 존자 20. 용수 존자 21. 가나제바 존자 22. 라후다라 존자 23. 승가난제 존자 24. 가야사다 존자 25. 구마라다 존자 26. 사야다 존자 27. 바수반두 존자 28. 마나라 존자 29. 학륵나 존자 30. 바사사다 존자 31. 불여밀다 존자 32. 반야다라 존자 33. 보리달마 대사 34. 혜가 대사 35. 바라제 존자 36. 반야다라 존자 37. 승찬 대사 38. 도신 · 홍인 대사 39. 혜능 대사 40. 남악회양 선사 41. 영가현각 선사 42. 남양혜충 선사 43. 하택신회 선사 44. 장폐왕 · 금강제 보살 45. 마조도일 선사 46. 백장회해 선사 47. 황벽회운 선사 48. 남전보원 선사 49. 반산보적 선사 50. 귀종지장 선사 51. 대매법상 선사 52. 대주혜헤 선사 53. 분주무업 선사 54. 귀종지장 선사 55. 서산양주 선사 56. 오설영묵 선사 57. 석공혜장 선사 58. 약산유엄 선사 59. 위산영우 선사 60. 조주종심 선사 61. 남양혜충 선사 62. 흥선유관 선사 63. 염관제안 선사 64. 형악혜사 선사 65. 조과도림 선사 66. 대위해수 선사 67. 나안원지 선사 68. 양산연관 선사 69. 무업 국사 중국의 선사 70. 태원부 좌주 71. 섭현귀성 선사 72. 양수 좌주 73. 현자 화상 74. 무주 화상 75. 월산 화상 76. 장사경잠 선사 77. 혜안 국사 78. 아호대위 화상 79. 대주혜해 선사 80. 불감혜근 화상 81. 나산도한 화상 82. 보은현칙 화상 83. 양기방회 선사 84. 용담숭신 화상 85. 관계지한 선사 86. 위산영우 선사 87. 남대수안 화상 88. 현사사비 선사 89. 법안문익 선사 90. 용제소수 선사 91. 승 자방 92. 소수산주 93. 용아거둔 선사 94. 분양무덕 화상 95. 동사여회 화상 96. 원오극근 선사 97. 천태덕소 국사 98. 설봉의존 선사 99. 장로응부 화상 100. 대수법진 선사 101. 지통 선사 102. 현정 선사 103. 보수 화상 104. 신안흥성 국사 105. 영운지근 선사 106. 앙산혜적 선사 107. 경조미호 화상 108. 경산도흠 선사 109. 덕산선감 선사 110. 동산양개 선사 111. 청평영준 선사 112. 고정간 선사 113. 운암담성 선사 114. 운거도응 선사 115. 천복승고 선사 116. 운거 선사 117. 조산본적 선사 118. 경청도부 선사 119. 녹문처진 선사 120. 신라 대령 선사 121. 지장계침 선사 122. 혜구적조 선사 123. 파릉호감 선사 124. 동산수초 선사 125. 천복승고 선사 126. 청활 선사 127. 현각 선사 128. 천태덕소 선사 129. 목암법충 선사 130. 낭야혜각 선사 131. 우적 상공 132. 수산성념 선사 133. 신조본여 선사 134. 서천 칠현녀 135. 광효 안 선사 136. 화엄온광 좌주 137. 덕산연밀 선사 138. 규봉종밀 선사 139. 장졸 상공 140. 운문문언 선사 141. 향엄지한 선사 142. 도오 선사 143. 백운수단 화상 144. 원오극근 화상 145. 응암담화 화상 146. 고령신찬 선사 147. 학림현소 화상 148. 대전보통 화상 149. 조산탐장 선사 150. 몽산덕이 화상 151. 낙보원안 화상 152. 등등 화상 153. 지공 화상 154. 미증유경 155. 능엄경 156. 대승기신론 157. 동산양개 화상 사친서 158. 규봉종밀 선사 송 159. 용아거둔 화상 송 160. 대법안 선사 인승 간경송 161. 고덕의 게송 162. 천복승고 선사 면학 163. 백운 화상의 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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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거품이나 바람처럼 생겼다가 없어지는 환술처럼 보이나 실은 이 모두가 연기적 이법에 따라 변화하는 생주이멸의 순환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환술 그 자체가 바로 연기적 변화로써 현실의 실제적 세계를 나타낸다. 불법은 이러한 연기법을 근본으로 한다.---p.18
일상생활에서 집착심을 여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집착심을 ‘내려놓는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집착심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삶 자체가 남과의 연기적 관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집착심의 여읨도 구체적인 연기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적극적인 관계 속에서도 집착심을 여읜다는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아야만 무심 무념의 여여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p.34-35 선종에서는 대경무심(對境無心)이라고 하여 외경을 경시하며 마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런데 우주 만유는 서로 독립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상호 의존적인 연기관계에 얽매여 있다. 그러므로 마음은 항상 외물을 대상으로 해서 일어난다. 만약 마음이 외물에 무관하게 일어난다면 이것은 상상이고 공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불법과는 무관하게 되므로 타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p.44 실제로 모든 종교가 무조건적 신앙이나 기원, 기복 그리고 내세의 편안한 삶을 바라는 데만 몰두할 뿐 자연이 어떻게 훼손되고 병들어 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또한 실질적인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불교는 타 종교와 달리 과학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마음속의 막연한 주관적 정신세계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p.56 실제로 인간이 양식을 밖에서 구하는 한 타자와의 주고받음의 연기관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그리고 이런 연기관계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의 발생이 가능하다. 그래서 번뇌가 깨달음이고 깨달음이 번뇌라고 하는 것이다.…그런데 구태여 영속적 깨달음만 고집한다면 이는 연기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아상이나 증상만의 번뇌에 사로잡혀 있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p.62 사실 인간의 의식과 인식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구라는 작은 시공간 속에서 찰나적으로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그러나 불법은 우주 만유를 내포하므로 우리는 불법을 통해 언제나 인간을 포함한 만물에 대해서 보편타당한 객관적 진리의 불법세계를 구현토록 해야 한다.---p.70 우주 만물이 모두 생의를 지닌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흔히 ‘사람이 부처다’라는 인불사상으로 인간중심적이며 인간우월적인 사상을 표방하면서 인간만이 마음을 가진 생명체로서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착각한다. 그러나 우주 만유의 평등성과 보편성을 근본으로 하는 불법의 근본 사상에 따르면 인간도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삶의 가치를 지니는 존재일 뿐이다.---p.94 달마 대사로부터 법을 얻기 위해 굶주림과 차가운 눈보라 속의 고통을 참으면서 기다리다가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최상의 진리는 오랜 세월 동안 부지런히 수행하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은 능히 참은 결과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왼팔을 칼로 잘라 대사 앞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육바라밀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인욕바라밀을 보인 것이다.---p.101 자기의 마음에만 집중하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외물과의 연기적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산천초목과 일월성신이 모두 법성을 가진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 바라제 존자처럼 하나의 먼지에도 법성이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p.106 화두선은 젊은 수행자의 인생을 한쪽으로 몰아넣어 타자와의 적극적인 연기의 세계와 멀어지게 함으로써 자칫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될 수 있는 위험성이 따른다…대혜 선사는 《서장》에서 “화두를 들지언정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리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경계도 차별이며, 불법도 차별이며, 감정 티끌도 차별이며 화두도 차별이다.”라고 했다. 결국 연기적 무심의 경지에서 화두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p.125 시공을 벗어남은 타자와의 연기관계를 벗어나 고립된 관념적 세계에 몰입되는 경우를 뜻하는 것으로 실제적인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불교나 선이 이와 같은 관념적이고 비연기적 세계를 지향한다면 더 이상 석가모니부처님의 종교가 아니며,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p.131 우주에서 티끌보다 작은 인간이 어찌 우주보다 더 큰 마음을 지닐 수 있겠는가? 우주는 결코 인간의 손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작은 구슬처럼 신비한 관념적 존재가 아니다. 우주가 살아 있기에 인간이 살아 있음을 깨닫는 것이 바로 불법의 요체며 화엄법계의 실상이다.---p.145 귀종 선사가 부젓가락으로 솥뚜껑을 두드리며 소리를 냈다. 이때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소리를 듣는 것은 일어난 결과를 아는 것이며, 소리를 나게 하는 행위는 소리가 없다. 현상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그 본질을 놓치기 쉽다. 그러므로 현상을 일으키는 작용 즉 행위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귀종 선사가 솥뚜껑을 두드리는 행위는 현상과 본질 사이의 연기적 관계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p.205 선가에서는 주관적인 마음을 중시하면서 객관적인 외경을 경시한다. 그러나 조주 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처럼 객관적 대상이 모두 부처인데 어찌 외부 사물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부처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외부 대상에서 부처의 불성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p.235 이 세상에서 아무리 비천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존재도 모두가 동등한 생의를 지닌 부처이므로 자연 만물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들과 바른 연기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곧 불법을 따르는 길이다. 타자와 연기관계가 없이는 자신의 광명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자타동일의 원융한 연 기의 세계에서 홀로 광명을 비추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불법의 이치이다.---p.256 유위적으로 조작되지 않은 연기적 관계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하다. 이는 만유의 법성을 그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체 모든 법이 그림자 같고 꿈과 같아서 진실함이 없다”라고 함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여기서 ‘진실함’은 변화하는 정체성을 뜻한다. 진실이란 진리를 따르는 사실(실체)을 뜻하는 것으로 일체 만법은 반드시 불법의 연기적 진리를 따르는 존재이다.---p.264 현인과 성인은 불성을 드러내는 사람이고 중생은 불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흔히 분별한다. 그런데 현인과 성인도 유위적으로 조작된 연기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불성의 발현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연기의 세계에서는 개인적 불성의 발현보다는 집단 전체의 연기적 안정성이 더욱 중요하다.---p.299 법당에 놓여 있는 부처의 조각상은 조각품일 뿐이지 부처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 조각상의 부처를 쳐다보고 심오한 감정을 가지며 경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불법은 이러한 정적인 부처보다는 생동하는 만물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조각상의 부처는 단지 이름이 부처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름에 집착하여 본래의 깊은 내면의 뜻을 잊는 경우가 많다.---p.327 우리는 흔히 특별한 것에 얽매여 불법의 세계를 보려는 좁은 안목을 지닌다. 그러나 만유는 평등하고 보편적이므로 모두가 불법의 세계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그래서 소수 산주가 “문을 나서면 누구를 만나고 문에 들어오면 무엇을 보는가?”라고 반문한 것이다. 즉 유정과 무정을 분하지 말고 삼라만상과 일월성신이 모두 불법을 드러내고 있는 부처임을 깨닫도록 일러주었다. ---p.341 복사꽃의 자비로운 인연은 바로 자연 만물과 인간 사이의 평범한 주고받는 연기의 세계이다. 만약 복사꽃을 꺾었다면 이미 아름다운 인연은 사라지고 한 생명을 잔인하게 사라지게 한 업을 짓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만물이 본래의 생멸을 이어가도록 그대로 두고 인간의 뜻에 따라 조작하지 말아야 한다. ---p.388 특히 불교에서도 불법의 연기적 근본 이법을 모르고 무조건적 신앙으로 기원과 기복을 중시하며 자신과 가족의 복만을 빈다면 이것은 일종의 미신적 종교이지 결코 연기적 불법을 바탕으로 한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 불교는 아니다. 과연 오늘날 불교에서는 과연 낙엽을 금이라고 배우고 또 가르치지는 않는지? ---p.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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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가 가리키고 있는 길,
우리 불교가 나아가야 할 길 저자 이시우 박사가 말하는, 현대 사회에서 직지를 통해 볼 수 있는 불교의 가르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 또 직지는 우리에게 어떤 길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인가? 선불교에서는 구속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존재와의 연기적 관계가 무시되는 자유는 오히려 권위의식을 지닌 아상의 표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저자 이시우 박사는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는 연기적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주의 만유와 더불어 연기법에 따라서 인간 본연의 삶의 가치와 존재가치를 구현토록 하는 것이 선불교의 목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시우 박사는 특히 과거칠불의 게송 역시 연기에 따른 중도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사람이 부처라는 인불사상으로 인간의 마음만을 중시하고 외물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따른 주관과 외물에 대한 객관이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주객불이의 만불사상(萬佛思想)을 보이고 있다. 선사들이 자연의 외물에 불법의 진리가 들어 있음을 깨달음의 노래인 게송에서 강조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사들은 근본적으로 만유의 연기법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선불교도 이제는 연기법을 바탕으로 인간의 진면목을 드러내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데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인생의 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직지, 길을 가리키다》는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바른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우주 만물이 부처이므로 이들과 더불어 공존 공생하는 만불사상(萬佛思想)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종교가 인간 세계에 국한된 채 정신적 내면의 세계만을 다룬다면 자연과의 연기관계가 소홀해지고 자연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파괴하게 될 수 있다. 이시우 박사는 만일 이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삶의 터전인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궁극에는 자연의 선택으로 인류가 지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인류를 위협하는 갖가지 환경 문제 역시 연기법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게 될 때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천문학자 이시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별처럼 빛나는 통찰력과 혜안으로《직지》에 담긴 게송과 선문답에 대한 촌철살인의 단상(斷想)으로 이루어진 《직지, 길을 가리키다》, 이 책이 가리키는 대로 걷다보면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