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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SCENE # 01 사랑의 낭만적 특이점 : [비포 선라이즈] × 빈, 오스트리아 SCENE # 02 그 모든 간극들에 대하여 : [비포 선셋] × 파리, 프랑스 SCENE # 03 투명에 가까운 순수 : [사운드 오브 뮤직] ×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SCENE # 04 약속의 유통기한 : [냉정과 열정 사이] × 피렌체, 이탈리아 SCENE # 05 평범한 날들 속의 어떤 강조점 : [원스] × 더블린, 아일랜드 SCENE # 06 꿈의 폐곡선 : [싱 스트리트] × 더블린, 아일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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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 이 영화의 모든 판타지가 집약되어 있다. (…) 우리가 여행을 떠나며 기대하는 최고의 낭만은, 단순히 아름다운 도시와 유명한 랜드마크 따위가 아닌,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더 나아가선 운명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일 테다. (…) 처음 보는 두 남녀가 만나 일상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처음 보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일. (…) 이것은 우리가 여행지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꿈꾸는 낭만의 최전선이다. (…) 이건 현실을 가장한 완벽한 판타지에 가깝다.
---「1장 사랑의 낭만적 특이점」중에서 그들은 성당에서 나와 빈 시내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변을 따라 걷는다. 나 역시 영화 속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도나우강변으로 향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밤의 강가엔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이 가끔씩 지나갈 뿐이었다. 이름만 도나우강이고 도시만 빈일 뿐이었지, 흡사 한강 둔치를 보는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나른한 강의 기운 때문이었는지, 혹은 한강이 떠올라서였는지, 그동안 내심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여행이라는 행위가 결국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이라지만, 처음 가보는 도시는 언제나 사람을 외롭고 긴장되게 만든다. 그렇게 매일 낯선 사람과 낯선 언어들 사이에 놓여 있던 우리가 그 속에서 낯익은 풍경과 정취를 발견하는 그 순간, 낯섦과 익숙함은 농도가 적당한 반죽처럼 잘 섞여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우리가 영화라는 허구 속에서 현실의 모습을 발견할 때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처럼. ---「1장 사랑의 낭만적 특이점」중에서 앙드레 지드나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이 즐겨 찾았던 역사 있는 서점이기도 한 이곳에서 영화는 제시와 셀린의 재회를 그린다. 미국에서 온 제시와, 파리의 여인 셀린. 둘의 재회를 나타내기에 이렇게 상징적인 곳이 또 있을까. 온통 프랑스어로 가득한 파리 한가운데 마치 영어의 섬처럼 위치한(파리의 한가운데에 영국 최고의 작가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딴 서점이라니!) 이 이질적이면서도 운치 있는 영미 문학 서점에서 둘의 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미국 남자와 프랑스 여자의 9년 만의 재회를 다루기엔 더없이 적절한 장소처럼 보인다. ---「2장 그 모든 간극들에 대하여」중에서 내가 떠올린 영화는 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그저 순수함의 결정체처럼 보이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그날 나는 퇴근하자마자 홀린 듯이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청명한 하늘과 푸른 숲을 배경으로 맑고 순수한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고,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도 같이 상영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영화.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 작품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순수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 막연한 환상이 생겼던 것 같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투명해지는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에선, 잃어버린 순수를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환상이. 그리고 정확히 다음 날, 나는 그 도시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3장 투명에 가까운 순수」중에서 여행의 기간 동안 나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을, ‘Goldstar’라는 상표가 붙은 검은색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에서 ‘도레미 송’을 따라 부르던 작은 꼬마를 떠올렸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를 찾아가는 일은, 결국 과거의 나를 찾으러 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 촬영지들 속에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과거의 내가 되며 따뜻해질 수 있었다. ---「3장 투명에 가까운 순수」중에서 건물들은 10년도 더 넘은 영화에 나온 그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도시의 모습이 세월이 흘러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시 말하면 사는 이들에겐 한없이 불편한 점투성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다는 건 그것대로 불편한 일투성이일 테다. 그러나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은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객으로 하여금 인위적이지 않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였다. 과거를 사는 쥰세이라는 캐릭터와 피렌체는 그런 면에서 더 없이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피렌체는 온통 과거의 시간으로 가득한 곳이었으니. ---「4장 약속의 유통기한」중에서 존 카니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살아온 더블린이라는 도시의 지극히 일상적인 장소와 거리들을 보여준다. 영화임에도 소설이 아니라 한 편의 에세이 혹은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앞에서 말한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나 캐릭터들의 특징, 연출 등의 이유도 있지만 결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영화 속 촬영 장소들 때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르던 월턴스(Waltons)라는 더블린의 악기 상점 역시 영화가 아니었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그저 평범한 가게에 불과했다. 더블린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이렇게 숨어 있는 영화 촬영지들을 발견해내는 재미들이 있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감독이 꽁꽁 숨겨둔 보물을 찾는 기분이었달까. 사실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더블린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 나에게 이 도시에선 영화 속에 나온 장소들만이 의미 있는 장소였다. ---「5장 평범한 날들 속의 어떤 강조점」중에서 나는 이어폰을 꽂고 그녀가 부르던 ‘If You Want Me’를 들으며 천천히 영화 속 장소를 그대로 걸었다. 거리는 조용했고,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목소리는 몽환적이었다. 그러나 노래가 들리는 4분 남짓한 시간 동안은 이 회색의 도시가, 우중충한 하늘이 마치 눈앞에 필터를 씌운 듯이 다르게 보였다. 보폭에 따라 흔들리는 시야는 영화 속에서 핸드헬드로 담겨진 그 장면을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놓고 있었다. 불 꺼진 가로등이 오렌지 빛을 내며 켜지고, 주위가 어둠에 덮이는 상상을 하며, 영화 속 그녀가 된 듯한 착각에 잠시 빠졌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의 걸음에 보폭을 맞춰 걸었다. 마법 같은 노래와 장면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5장 평범한 날들 속의 어떤 강조점」중에서 영화 속에서 라피나가 지낸 곳으로 나오던 기숙사는 학교 앞에 위치한 일반적인 가정집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돌계단과 난간을 보며 나는 라피나가 시크하게 앉아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반해 그녀에게 다가오던 한 소년을 떠올렸다. 늘 그렇듯이 영화 속 촬영지를 다니는 여행은 장소에 대한 상상력과 때로는 과한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겉으로 보기엔 별것 아닌 거리와 건물들을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 그런 여행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오직 영화 속 한 장면이다. ---「6장 꿈의 폐곡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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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유독 사랑했던 영화들의 배경이 된 도시를 찾은
아주 특별한 유럽 여행 에세이 영상과 글 모두를 다루는 콘텐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윤정욱은 지난한 ‘취준’ 기간을 마무리하며, 답답한 직장인 시절에 숨통을 틔우려, 꿈을 따르기 위해 퇴사를 하고 나서 등 20대 삶의 변곡점에서 세 번의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을 의미 깊게 만든 것은, 저자가 사랑하여 수도 없이 찾아 본 영화들의 배경이 된 공간을 찾았다는 것. 저자는 첫 유럽 여행을 앞두고 학창 시절부터 취미로 삼아 한 몸이 된 카메라를 메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음에 깊이 남은 영화들을 따라다니기로 한다. 그 영화들은 저자에게 제목만으로도 배꼽이 간질간질해지는 영화, 진한 첫사랑의 추억이 배어 있는 영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환기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편에 품었던 영화들이기도 하다. 때문에 빈, 파리, 잘츠부르크, 피렌체, 더블린 등의 유럽 도시들의 풍경을 한가득 담아낸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 그 영화를 보던, 처음 그 도시에 발을 내디뎠던 그 시절이 되살아나는 마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도레미 송’을 부르며 마리아와 아이들이 계단을 뛰어오르던 미라벨궁전의 장소에 서서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던 15년도 훨씬 전의 나를 떠올렸다. 잘츠부르크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떠올리며 도시로 온 사람들을 과거로 보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과거는 추억과 회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다가와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_본문 144쪽에서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를 따라다닌 저자의 눈에, 한 도시에서 오롯이 촬영된 영화들과 그 도시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매력이 들어왔다. 여행지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한 열망을 유행시킨 [비포 선라이즈]의 환상적인 낭만이 빈의 밤에 가득했으며, 파리는 관광지로서의 낭만과 그 이면의 고단한 여정이 선사하는 간극이 마치 9년 만에 재회한 제시와 셀린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것과 같았다. 소박한 도시 잘츠부르크와 눈이 시릴 정도로 청명한 경관을 자랑한 그 교외의 장크트길겐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환기하는 순수함을 닮아 있었고, 수백 년 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피렌체는 과연 과거의 연인을 잊지 못하는 [냉정과 열정 사이] 속 쥰세이의 도시 그 자체였다. 음악 영화 [원스]와 [싱 스트리트]의 배경이 된 존 카니 감독의 고향 더블린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음악이 울려 퍼져, 거창하거나 크게 굴곡진 서사가 없이 음악들을 선사하는 그의 영화들과 꼭 닮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블린을 여행하는 동안 도시에선 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던 그래프턴 스트리트(Grafton Street)뿐 아니라, 평범한 음식점에서도, 탁 트인 광장에서도 사람들은 늘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단순히 흥얼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악기를 꺼내어 들고 본격적으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식이었다. 더블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있는 공간이 어디든 그곳을 음악 소리로 가득 채웠다. (…) 음악과 한 몸을 이루는 영화의 배경이 되기엔 더없이 적절한 도시라는 생각이 여행 내내 들었다. 더블린 출신의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어쩌면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_본문 227~231쪽에서 영화 속 장소들의 실재성을 발견하는 저자의 여정은 영화의 감동과 여행의 감상을 극대화하는 과정이 된다. 여느 평범한 골목길에서 헤어짐을 준비하는 제시와 셀린을, 수년 만에 이국의 땅에서 우연히 옛 연인을 발견한 아오이를, 같은 음악을 나눠 듣는 두 남녀가 마치 실존인물인 것처럼 생생히 되살려내는 것이니까. 마음 깊이 담아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와 장소에서 영화 속 인물들이 실재했을 거라 상상하고, 그들이 인상적인 장면을 치러냈으리라 상상할 수 있기에 그 장소를 사랑하게 되는 애정의 무수한 선순환에서 영화와 여행의 감동은 극대화된다. 해서, “나에게 이 도시에선 영화 속에 나온 장소들만이 의미 있는 장소였다”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이 특별한 여행을 통해 영화에 대한 편애는 극대화된다. 저자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인 ‘The Whole Nine Yards’를 들으며 작품 속 약속의 장소였던 두오모에 오르고 [원스]의 OST인 ‘If You Want Me’를 들으며 더블린의 주택가를 걸으면서, 공감각적으로 영화에 담뿍 빠져들었다. 전문가 수준의 사진 실력을 뽐내며 도시들의 정경을 한가득 담은 사진과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여정에서의 경험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써 내려간 글들을 읽다 보면, 저자가 공유하고 싶었던 그 낭만에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YOLO(you only live once)족’이 대두되며 해외여행 인구가 날로 많아지는 요즈음, 영화에 대한 하나의 헌사로서 《낭만이 여행자의 일이라면》은 남다르고 색다른 여행법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