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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뭇한 인생
들꽃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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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노을의 춤

알몸으로 달아난 젊은이
떨기나무 불꽃들
절망 이후
문맹 없는 나라
거북이 한글반
달리는 노인
부록; 죽음 수다방

작품해설
고영직 _ 시대의 우울에 맞선 무명의 헌신

저자 소개 1

안이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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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유신 헌법이 선포된 1972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하다가 1979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금되었다. 이때의 후유증으로 40년이 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한성여중 국어 교사, 민음사, 평민사, 동광출판사, 또하나의 문화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제 앞가림도 못 하면서 수시로 끓어오르는 정의감에 잠을 설치는 성격으로 시위에 머릿수 채워 주는 조역으로 빠짐없이 참석했다. 최근에는 할머니들과 어울려 놀고, 소설을 쓰며 지낸다. 독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그린 장편소설 『여자의 첫 생일』과 가부장제 사회에
195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유신 헌법이 선포된 1972년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하다가 1979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금되었다. 이때의 후유증으로 40년이 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한성여중 국어 교사, 민음사, 평민사, 동광출판사, 또하나의 문화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제 앞가림도 못 하면서 수시로 끓어오르는 정의감에 잠을 설치는 성격으로 시위에 머릿수 채워 주는 조역으로 빠짐없이 참석했다. 최근에는 할머니들과 어울려 놀고, 소설을 쓰며 지낸다. 독신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그린 장편소설 『여자의 첫 생일』과 가부장제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장편소설 『버지니아 울프가 결혼하지 않았다면』을 펴냈다. 연작소설집으로 『안젤라』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고양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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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150*220*20mm
ISBN13
9788961432528

책 속으로

문맹 없는 나라

1. 해와 달

경사날 일인가? 아니면 망할 징조인가?

일요일이었다. 어머니는 혼자 아침을 먹은 후 설겆이를 하던 참이었다. 문득 이마 언저리에 환하고 밝은 기운이 느껴져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세상에! 창밖에는 잡티 하나 없이 맑은 물빛 하늘이 드높고 가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렇게 푸르른 가을 하늘을 언제 보았던가 싶었다. 기억이 까마득했다. 매연이 완전히 걷힌 청명한 하늘이 제 본래 모습을 드러낸 풍경을 본 지도 한참 되었으니까.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는 새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투명한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깊이 들여 마셨다. 서늘하고 쾌적한 대기가 가슴속을 시원하게 씻어 주었다. 팔을 활짝 벌리고 고개를 한껏 뒤로 제친 채 한바퀴 빙 돌아 보았다. 동쪽 하늘에는 커다란 햇님이 찬란한 빛을 수많은 바늘처럼 쏘아대고 있어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서쪽 하늘에도 해맑게 씻긴 달덩어리가 하야스름하게 떠 있지 않은가? 추석 보름달이 미처 사그라들지 않았나?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아침 하늘은 오늘따라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한 하늘에 나란히 떠 있는 해와 달이라… 이것이 길운인가? 흉조인가? 멍청히 생각하던 어머니는 새삼스레 마당과 담, 집의 모양새를 지그시 겨눠 보았다. 조상들이 잠든 야트막한 안산 밑에 자리잡은 삼층 양옥. 반지하와 삼층은 세를 들이고, 일층이나 다를 바 없는 이층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나무랄 데 없이 포근하고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아들은 직장에서 돌아와도 공부를 하느라 언제나 밤늦게 잤다. 일요일 아침인데 조금만 더 자게 해야지… 어머니는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장가 들여서 아이 낳으면 삼층의 셋집은 내보내야지. 아들은 시끌벅적한 살림집과 동떨어진 조용한 공부방이 꼭 필요해.

어머니는 자신의 손때가 묻은 마당을 둘러보았다. 집 지을 때 인부들이 정원석을 놓고 잔디를 깔라는 것을 한사코 마다한 어머니였다. 손자가 생기면 모래를 깔고 그네를 맬 생각에서였다. 아이들한테는 흙장난이 최고야. 지금은 텃밭을 꾸며 상추며 들깻닢, 배추 나부랭이를 걷어먹고 있지만, 손자만 생겨 봐라. 해바라기, 홍초 빙 둘러 세우고, 나팔꽃, 옥잠화, 맨드라미, 채송화, 분꽃, 없는 꽃 없이 다 갖춰야지. 어머니는 손자와 함께 꽃밭와 채소밭을 가꿀 상상만으로도 흐뭇해져 빙긋빙긋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어쨌든간에 어떤 여자인지 오늘 나가 잘 봐야지. 그 동안 나한테 아무 귀뜸도 없이 여자를 사귀었다고? 매일 저녁 책과 컴퓨터만 붙잡고 있으면서 어느 짬에 여자를 다 만났담? 아들 눈에 들었으면 참한 색시이긴 할 텐데 아무래도 내가 직접 봐야…

갑자기 다급해진 어머니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전화기부터 잡았다. 근처에 사는 딸에게 독촉을 해야 했다. 신호가 한참 울리고 나서야 딸은 전화를 받았다.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얘, 김서방 약국 나갔니?
오늘은 약국이 쉬지 않는 공휴일이었다.
녜, 지금 막 나가려고 해요.
나가려고 하긴? 아직도 퍼질러 자고 있겠지. 겔러 빠진 것들, 내가 전화하지 않았으면 일어날 생각도 안했겠지. 어머니는 터져 나오려는 욕을 참고 본론만 딱 잘라 말했다.
그럼 후딱 미장원으로 가자.
김서방이 모처럼 약국을 봐준다고 했으니 딸은 오늘 자유였다.
아이, 어머니. 도우미도 아직 안 왔어요. 그렇게 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시간 넉넉해요. 아줌마 오면 솔지 맡기고, 약국 잠깐 들렀다 미장원에 갈께요. 어머니 먼저 머리 손질 하고 계세요.
일요일은 파출부가 오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서 늘 어머니가 외손녀 솔지를 봐주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특별히 웃돈을 주고 도우미를 나오라고 했는데, 돈만 미리 처받고 늘짱거리는 모양이었다.
약국엔 왜 들러? 김서방이 봐준다고 하지 않았어?
부부가 다 약사여서 김서방은 제약회사를 나가고, 딸은 약국을 경영했다. 김서방이 약국 봐주는 일에 서툴 리가 없었다.
그래도 제가 잠깐 처리할 일이 있어서… 오분이면 돼요.
오분 좋아하시네. 보나마나 삼십분은 잡아먹을 거다.
어여어여 해라! 느려 터져 갖곤…
어머니는 기어코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홧김에 아들도 깨울까 했으나 미장원 갔다 와서 깨워도 늦지 않지, 남자는 외출 준비에 시간이 안 걸리니까 싶어서 참고 말았다.
이어 어머니는 정성껏 머리를 감고 목욕을 했다. 늙으면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십상이라고, 늙을수록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늘 아이들 외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였다.
아침 아홉 시쯤 대문을 나선 어머니는 지름길을 놔두고 굳이 아파트 쪽으로 향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도시와 옛마을 자리가 나뉘었다. 신도시 아파트 쪽 길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게 널찍하고 번듯하며 깨끗했다. 이름도 멋스런 무원마을, 샘터마을, 소만마을 등등의 고층 아파트들이 우람한 거목들처럼 빽빽이 서 있었으며, 반듯반듯하게 정리된 넓은 찻길과 인도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이렇게들 잘살 수도 있었는데, 뭣땜에 그렇게 지지리궁상으로 힘들게 살았었을까?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은 워낙 논과 밭이 끝간 데 없이 펼쳐져 있던 평야였다. 대지주는 대지주대로, 소지주는 소지주만큼, 소작농들과 머슴, 뜨내기들은 말할 것도 없이, 쌀농사와 채소 농사와 소 키우기가 최고인 줄 알고, 허리춤을 졸라매고 비지땀을 흘리며 흙과 뒤범벅이 되어 살아 왔었다.

-이하 생략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노을의 춤

비가 오고 있다.물방울 하나보다 작은 우주 먼지가 지구인으로 태어나 한 생애를 완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생겨나는 걸까?태어나기,살아내기,나이들기의 생애 주기에 따르면 성장통 못지 않게 힘든 시기가 노년기다.신체가 쇠하면서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지고 생각도 흐릿해진다.몸이 힘드니 매사가 버겁고 짜증이 난다.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 남들에게 불똥처럼 튀어나간다.노인들을 배려하기 힘든 이유다.잘 자라기 힘든 것처럼 잘 늙기는 몹시 어렵다.따라서 나이 들수록 자기 성찰과 수양이 더욱 필요해진다.

이 소설은 칠순 넘은 의숙의 지금 일상이 [작가일지]라는 글로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사이,옛 기억들이 각각 다른 이야기로 불연속적으로 끼어드는 형식을 취해 보았다. 5,60년대의 유년기, 70년대 청년기, 8,90년대 직장 생활 한편으로 활동했던 한글 문해교육.그리고2000년대의 여성문제들,팬데믹과 필사적인 멸종저항 평화운동. 한 여성의 일생을 관통해온 작은 생애사다.

생애사처럼 지루해지기 쉬운 이야기가 있을까?과거를 돌아보는 이유는 성찰의 필요가 있을 때다.늙은 여성의 넋두리가 아니라,봉건을 채 못 벗어난 어려운 시절에 감히 독립적으로 살고자 했던,여자로서 감히 〈존재하고자〉했던 조촐하면서도 대담한 기록이다.여러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듬성듬성 이가 빠진 반쪽의 인생 보고서에 불과한데,과연 출판해야 할까 오래 망설였다.누구나 개인적 실존과 사회적 실존 사이에서,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그 실체에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계층 상승을 해서 성공하려는 욕구가 대다수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 체질이 아닌 한 왕따 여성이 기존의 가치에 대항하며, 상승이 아닌 하방으로 평생을 살아낸다. 이 글은 흐뭇한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게 된 어떤 노년의 모습이다.

어쨌든 묵은 원고들이 너무 쌓였으므로 완벽주의를 포기하고 출판한다.건강도 불투명해서 이 소설이 마지막이 될지,계획대로 앞으로 한 장편 더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등단했을 때 서문에서 썼던 지혜서의 한 구절을 다시 한번 인용한다.

-존재하는 것은 한없이 멀고 깊다.누가 이것을 통찰할 것인가?

2026년 6월
저자 안이희옥

추천평

소설집 『흐뭇한 인생』의 인물들을 추동하는 힘은 시대의 우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의 우울은 12.3 내란 사태가 말해주듯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작가 안이희옥은 특히 12.3 내란에 맞선 ‘빛의 혁명’ 와중에 쓴 작품들인 「떨기나무 불꽃」과 「절망 이후」 같은 작품들에서 1970년대 ‘뜻에서 뜻으로’ 이어지는 민중신학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회고하고, 1979년 불법구금 사건 이후 지금껏 앓는 독재 후유증의 깊고도 넓은 내상內傷을 정직하게 응시한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자기 치유의 시간이 되었던 셈이다. - 고영직 (문학평론가)
흐뭇한 인생』은 한 개인의 유년과 삶을 회고하는 자전적 소설집이면서,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살아온 민중의 역사를 증언하는 문학이다.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면서도 치열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저자는 개인의 기억을 시대의 기억으로 확장하며, 역사적 상처를 성찰과 희망의 언어로 승화시킨다.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과 공동체를 향한 연민은 끝내 꺼지지 않는다. 『흐뭇한 인생』은 시대를 견뎌낸 민중의 생명력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담아낸 묵직한 삶의 기록이자, 오늘의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성찰을 전하는 한 권의 소설집이다. - 문창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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