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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쓰라림, 여기 잠들다
르상티망을 치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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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쓰라림
르상티망을 지닌 인간이 경험하는 것

1 보편적인 쓰라림의 감정 13
2 르상티망에 직면한 개인과 사회. 끓어오르는 반추 17
3 르상티망의 정의와 표출 양상 20
4 르상티망의 관성과 물신-르상티망 25
5 르상티망과 평등주의. 분별의 종말 31
6 풍요 속의 멜랑콜리 38
7 셸러가 돌봄에 대해 건넬 법한 교훈 45
8 르상티망의 여성성? 47
9 거짓자기 49
10 막膜 51
11 필연적 대면 56
12 쓰라림의 맛 58
13 멜랑콜리의 문학 60
14 결핍된 존재들로 이루어진 군중 63
15 망각의 능력 71
16 세상에 대한 희망 품기 76
17 디오니소스 여사제들의 비극 81
18 위대한 건강: 열림을 선택하기, 성스러움을 선택하기 85
19 끊임없이 세계에 대해 놀라워하기 92
20 행복과 르상티망 98
21 약자로부터 강자를 보호하기 101
22 르상티망의 병리학 105
23 인본주의인가, 인간 혐오인가? 114
24 분석을 통해 르상티망과 싸우기 116
25 시간에 가치를 되돌려주기 120
26 역전이와 분석 치료의 틀 안에서 124
27 르상티망의 근원을 향하여, 몽테뉴와 함께 135

제2부 파시즘
집단적 르상티망의 심리적 근원을 향해

1 망명, 파시즘, 르상티망. 아도르노 I 141
2 자본주의, 물화, 르상티망. 아도르노 II 154
3 인식과 르상티망 160
4 성좌적 글쓰기와 둔감함. 아도르노 III 167
5 어떤 사람들은 진실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영리하고 175
6 감정전염병으로서의 파시즘. 빌헬름 라이히 I 178
7 내 안의 파시즘. 빌헬름 라이히 II 185
8 역사가들의 독법과 현시대의 정신구조 206
9 창조로서의 삶: 열림은 구원이다 219
10 히드라 223

제3부 바다
인간을 향해 열린 세계

1 파농이 말하는 개방 235
2 개인성 상실을 무릅쓴 보편성 248
3 피식민자 돌보기 261
4 존재의 탈식민화 270
5 창조력을 회복하라 277
6 탈식민화 치료법 285
7 시오랑을 통한 우회로 하나 294
8 치료사 파농 301
9 특이성의 인정 309
10 개인의 건강과 민주주의 318
11 언어 훼손 324
12 증오에 기댄다는 것 331
13 거꾸로 뒤집힌 세계: 음모론과 르상티망 337
14 자아의 확장을 향하여 I 345
15 분리가 의미하는 것 348
16 자아의 확장을 향하여 II: 민주주의, 열린 가치체계 353
17 지하생활자: 심연에 저항하기 360

옮긴이 해제: 르상티망을 승화하기, 삶을 재발명하기, 역사의 가능성을 창조하기 382

저자 소개 2

저신티아 플뢰리

 

Cynthia Fleury

파리 GHU(정신 & 신경의학 대학 병원 그룹)의 ‘생트-안느 병원’ 철학 교수, 국립 ‘예술 & 직업 콩세르바투아르’의 ‘인문학과 건강’ 담당 교수이다. 《용기의 종말》(2010), 《보살핌은 휴머니즘이다》(2019), 《쓰라림, 여기 잠들다》(2020)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역이혜원

 
KAIST에서 물리학을, 고려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불문학을 공부했다. 동 대학원에서 논문 「보들레르와 알레고리의 시학적 문제들: 역사적, 이론적, 비평적 함의들」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들레르 시, 비평사, 번역비평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으며,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140*210*30mm
ISBN13
9791141603304

책 속으로

쓰라림의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고통에서 기인한다고, 또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서 유래한다고 일단은 말해볼 수 있겠다. 평온한 우리의 세계에 폭발을 일으키는 저 실재, 그리고 쓰라림과 더불어, 이미 유년기부터 무슨 일인가가 일어난다.
--- p.13

르상티망의 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어는 반추rumination인데, 이것은 무언가를 곱씹고 되새김으로써 신물나게 씹혀 삭아버린 내용물이 주는 특유의 쓰라린 느낌을 동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본래는 특정 인물을 겨냥했을 어떤 정서적 ‘반작용ré-action’을 되살린다는 의미에서, 반추는 그 자체로 다른 반추를 곱씹는 행위가 된다.
--- p.21

르상티망은 자신을 희생자라 여기는 망상이다. 개인이 실제로는 희생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망상인 것이 아니라-그는 잠재적 희생자다-개인이 어떤 부당한 질서의 유일무이한 희생자일 수는 없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망상이다.
--- p.29

주체가 불평의 권리를 포기하는 데 그처럼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불평이 하나의 ‘물신’처럼 기능하여 주체에게 물신이 주는 것과 같은 쾌락을 주고, 가림막이 되고, 현실을 견디도록, 현실을 중재하도록, 현실에서 현실성을 벗겨내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 p.31

르상티망에 대한 해독제를 모색하는 첫번째 실마리는 곱씹어 느낀 평등이라는 개념으로 귀결된다. 르상티망의 구조는 평등주의적이다. 르상티망은 주체가 확실히 불공평하다고 곱씹는 순간에, 무엇보다도 평등에 의해 피해를 봤다고 느끼는 순간에 발생한다. 불공평하다고 곱씹는 것만으로 그러한 정신 상태가 형성되지는 않는다. 욕구불만은 ‘무엇에 대한 권리droit à’가 부식되어버린 땅에서 쑥쑥 자란다. 내가 욕구불만을 느끼는 건 내게 주어진 몫과 권리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르상티망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떤 권리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적어도 토크빌의 계승자들과 셸러가 내건 논제가 그러하니, 이들은 평등주의의 개념이 민주주의의 구조적 쟁점이 되었기에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르상티망을 불러일으키는 체제라 보았다.
--- p.32~33

주체가 르상티망에 그저 “압도”당하고만 있다면 분별력이 침해되는 것은 논리적 수순이다. 분별이란 분리하고, 따로 떼어보고, 사안의 특수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구별함으로써 일반화하지 않는 행위, 더 간단히 말하자면 “사안을 적확하고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한 정신적 자질”이다. (...) 분별하려면 잠시 숨을 돌리고, 소리를 낮추고, 관음꾼이 아니라 투시자가 되고, 관찰 대상이 있는 그대로 활동할 수 있게끔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야 한다.
--- p.35~36

몽테뉴는 나이가 들면서 죽음을 향한 입문이 반추만은 아니라는 점, 오히려 반추에 굴복함으로써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점을 간파한다.
--- p.37

셸러는 자본주의 체제가 구조상 르상티망으로 기울기 쉬운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 토크빌은 이러한 점을 벌써 자기 시대에 사무치게 느꼈던바, 인간을 엄습하는 저 악惡, 평등주의를 지목하면서 그것이 조건들의 평준화로 나타날수록 인간이 평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 p.38

르상티망은 널리 인정된 획일적인 정치적 권리와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된다. 형식적 권리는 존재하나 실질적 권리는 부재하는 이 현실이 집단적 르상티망을 발생시킨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셸러와 달리 나는 인간 안에 보다 구조적인 르상티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평등주의적인 경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상징적 인정을 향해 나아가며 언제나 더 많은 평등주의를 요구하거나 아니면 타자에게 증오를 투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 p.40

셸러가 평등주의에 대해 퍼부은 비난의 난폭함에서, 평등하다는 느낌을 받고자 타인이 망하길 바라는 “노예도덕”을 다름 아닌 평등주의에서 발견한 니체의 난폭함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 p.41

르상티망은 문제가 언제나 다른 사람의 탓이요 절대 자기의 몫은 아니라고 여기는 심리적 꼼수다. 우리는 저마다 책임을 다하라 권장하지만, 책임을 떠안을 기회가 생기자마자 자신은 떳떳하다고 여긴다. 모든 사람을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으로 한데 엮는 기독교 도덕과 개개인에게 책임의식을 불어넣고자 하는 개인주의적 민주 도덕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다.
--- p.44

적대행위의 거부, 폭력의 거부는 온전히 “취약한 자들”의 몫이 아니라, 영혼의 결연함의 소산이니, 무엇보다도 그러한 결연함을 지향해야 한다. (...) 르상티망은 시간을 양분삼아 자라날 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장악하는 만큼 더 치명적인 독이다.
--- p.47

“거짓자기”는 르상티망에 물든 인간의 심리적 본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개념이다. 그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행동하지 않고 반응할 뿐이며, 자신이 존재하게 하는 대신 자신을 위장한다.
--- p.50

“거짓자기”의 뒤에는 언제나 스스로가 강제한 분열을 자각하는 “참자기”가 살아남아 있어서, 반드시 분열로부터 폭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분열은 지속되지 않으며 진실한 행동의 길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그런 분열을 없애야만 하리라는 점을 그 일부는 알고 있는 것이다.
--- p.51

르상티망은 허무주의와 마찬가지로 내부와 외부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을, 즉 개별자와 세계를, 자아와 자아의 바깥을 갈라놓는 미세한 막이 존재한다는 이 근본적인 진실을 망각한다. 이 막은 강제된 복종, 폭력, 아니면 공허를 마주한 인간이 거기 속절없이 빠져들 때 그로부터 벗어나게 함으로써 광기로부터 보호한다.
--- p.53

한편 몽테뉴는 특유의 슬기를 발휘하여, 악덕의 유혹을 받지 않는 미덕은 어쩌면 유혹을 경험하는 미덕보다 위대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아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덕망 있다고 주장하려는 모든 영혼에게 르상티망은 하나의 시험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 p.56

쓰라림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하며, 그런 미감이야말로 분명 탁월한 극기주의적 가르침을 줄 것이다. 쓰라린 감정을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런 감정이 존재할 때 무너지지 않고 그것을 음미하는 법을 알자는 것이다. “그러면 내 잔에 더 쓴 술을 채워주오”라고 카툴루스는 쓴다.
--- p.59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능세계의 유일하고도 환원할 수 없는 매개자로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매개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인간 일반on”이나 “자아” 따위를 발명해낸 것은 마땅히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두기 위함이다. 우리는 실재에 접근하고 타자에게 가닿으려는 시도 속에서 사라져가는 자아를 추구하는데, 이때 의지할 노잣돈이란 전부 자아라는 노잣돈이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슬픈 현실이겠지만 다른 누군가, 특히 니체의 기록을 넘겨받아 헤겔의 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누군가에게는 “노예도덕”을 극복하려는 또다른 시도가 될 수도 있다.
--- p.62~63

니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성이 병자와 약자와 범인凡人과 군중의 승리를 가져다주었으며 전 지구적으로 르상티망의 시대를 열었다고 고발한다.
--- p.68

비극의 감각은 행동의 반대항이라 할 수 있는 단순한 반동이 아니라, 바로 행동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비극은 체념을 가르치지 않는다. [……] 끔찍하고 불안한 것들을 표현하는 일이 예술가에겐 이미 권능과 영예를 향한 본능이다. 말하자면 그는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p.76

세계에 리비도를 집중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든 은근하게 숨을 조이는 고통을 느끼다가 방어기제로서의 르상티망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 지점에서 결국 개인의 노력과 사회적 노력의 교차가 결정적이다. 르상티망을 초래하는 구조적 조건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 p.79

작품은 공중, 트인 공간, 창문을 창조하며,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이고 스스로를 위해 생겨난 듯하며 존재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보이기에, 우리가 뿌리칠 수 없을 탈출구를 창조한다. 그것은 생명론적 순수성 속에서 나타나는 생명 그 자체다. “비극적 인간이란, 창조적 힘과 인식이 최고도에 이른 자연이니, 바로 이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산고를 겪는다.”
--- p.87

반복을 통해, 문체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것과는 다른 세계, 과거와 관련을 맺는 세계, 앞서 살았던 영혼들이 영속하며 그 규모가 문체 속에서 계속 울려퍼지는 그런 세계에 거주하게 된다.
--- p.90

대체 르상티망 없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인가? 내 생각에 이것은 중요한 쟁점인데, 왜냐하면 르상티망의 실재, 어쩌면 그 필요성마저 부정할 게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승화시킬지, 어떻게 르상티망만으로 역사의 춤을 이끌어나가지 않도록 할지 아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p.91

출판사 리뷰

원한과 부정의 쓰라린 감정, 반추와 승화 사이
개인의 정신건강과 민주주의를 돌보기 위한 야심찬 기획

‘르상티망ressentiment’이란 무엇인가? 저자가 니체에게서 빌려 셸러를 참조하며 정의하는 이 개념은 되씹고 곱씹은 쓰라림의 감정으로,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스스로가 불공정한 상황의 피해자이자 모욕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끓어오르는 원한, 앙심, 억울함 등의 부정적 정념이다. 플뢰리에 따르면 자가면역질환처럼 이 반추에 중독된 개인은 결국 자기감정에 유폐되어 스스로를 좀먹고, 이 반추 속에서 자신을 희생자로, 타자를 박해자로 여기게끔 만든다. 종내에는 자신은 물론 타인마저 공격하게 만들기에 위협적이다. 또한 이 감정은 오늘날 자본과 정치와 디지털정보가 결합한 권력집단에 의해 음모론과 포퓰리즘의 도구화로 전락하며 점점 더 민주주의적 인본주의적 역사를 퇴행시키는 집단적 재앙을 가져오는 불씨가 된다는 점에서, 절박한 성찰과 긴급한 예방을 요하는 감정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점점 능력과 성과로 양적 가치가 우위를 점하며 개인마저 구매력으로 셈해지는 가속화한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또한 민주주의의 객관적 조건인 만인의 평등주의에 내재된 필연적인 모순과 한계 속에서, 종교적 문화적 민족적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갈등과 전쟁으로 쉼없이 이어지는 글로벌 국제정치 상황에서, 이제 르상티망은 그야말로 (자기)소외와 물화를 양산하며 번성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되었다. 굳이 객관적 외부 조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소유에 대한 르상티망(시기)과 존재에 대한 르상티망(질투)”을 느끼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끊임없이 불평등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는 게 사회적 삶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처럼 르상티망에 빠진 인간이 소모적인 분노와 무책임한 권리 보상 욕구에만 매몰될 때 무력감의 쳇바퀴는 그를 주변 세계에 대한 부정, 욕구불만, 무행동으로 가닿게 한다. 그 어떤 해결책도 시도도 거부한 채 스스로를 응당 누려야 할 권리에서 배제된 피해자-희생자라는 나르시시즘적 덫에 걸려든 취약한 주체는 타자의 현실에 대한 부정, 세계의 경이에 눈감는 무기력과 낙담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개인의 내면과 공동체 윤리를 갉아먹는 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저자는 그간의 임상 경험과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완전한 회복에 대한 안온한 낙관은 경계하면서 개별 주체에서 사회집단 전체로 나아가는 이 변증법적인 난바다 여정을 시작한다. 책의 맨 앞에 쓴 저자 자신과 독자에 대한 주문과도 같은 말은 선언이자 결의다. 즉 이 어두운 심연에 맞서, 무엇보다도 주체의 역량과 의지에 대한 확신-“인간은, 주체는, 환자는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을 내보이며 오디세우스적 모험에 들어선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정부, 제도, 공공정책이 이를 뒷받침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고 상기시킨다. 르상티망의 역사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힘든 게 일면 숙명이라 해도 그 작동 기제의 핵심을 간파하고 이를 승화해 인간다움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이 책의 여정 자체는 곧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하는 모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총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 「쓰라림: 르상티망을 지닌 인간이 경험하는 것」은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의 정의와 본질, 이 감정의 연원과 동력을 파악하기 위한 정신분석학적인 정념 분석으로, 주로 이에 빠진 개별 주체의 내면을 살핀다. 2부 「파시즘: 집단적 르상티망의 근원을 향해」에서는 르상티망의 역사적 정치적 표출의 극점인 20세기 초반 파시즘 사회에서, 특히 아도르노와 빌헬름 라이히의 사유를 경유해 결핍된 군중이 어떻게 독재자의 얼굴과 겹쳐지는지 시대정신을 정치적으로 분석하고 죽음과 파괴의 집단적 욕동 속에서 르상티망에 굴복하지 않도록 이끄는 내면 성찰의 ‘열림’을 향한다. 3부 「바다: 인간을 향해 열린 세계」에서는 식민지 시민들의 파괴된 영혼과 삶을 재발명하기 위해 애쓴 탈식민주의 사상가이자 치료사 프란츠 파농을 중점적으로 재론하며 존재의 식민화로 연결되는 이 원한과 부정의 감정을 어떻게 승화와 치유, 자아 확장의 대양으로 나아가도록 할지를 교육과 돌봄 윤리, 삶과 창조적 작업 양식(스타일, 문체)의 발명에 대한 제안을 통해 모색한다.

이 3부의 기획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창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질 존재의 개별화와 주체화, 나아가 이 주체가 삶의 쓰라린 진실을 감당하고 진정한 행위주체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국가와 집단이 상호 협력하는 치유와 회복의 도정을 목표한 것이다. 즉 프랑스어의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묘비명과 같은 제목에서 보듯, 여기 쓰라림(l'amer)이 잠들고, 어머니(la mère)와 같은 영속적인 보호와 보상의 환상에서도 분리되어, 바다(la mer)라는 확장된 보편성의 세계와 하나되어 인생의 장엄한 대양 속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획인 셈이다.

주체의 역량과 공동체의 의지를 옹호하는 실천적 인문주의자를 위한 윤리학

오늘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불안정성에서 정신적 불안정성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저자는 이 위협적인 ‘슬픈 정념’ 르상티망의 예방과 승화가 무엇보다 긴박한 과제임을 여러 철학자의 저서와 문학작품을 빌려와 감동적으로 호소한다. 마르크스가 말한 소외와 물화를 가속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토크빌이 ‘풍요 속의 멜랑콜리’라고 말하고 셸러 역시 지적한 민주국가의 평등주의가 빚은 모순 속에서 번성하는 이 사회적 원한은, 인간과 삶의 전반이 취약해진 상황을 틈타 인포데믹스로 번지는 음모론의 도구로 손쉽게 쓰인다. 일례로 소셜미디어에서 쏟아지는 혐오 발언이나 뚜렷한 대상 없는 피해망상적 증오 범죄에서 이 욕동은 뚜렷이 확인된다. 또한 포퓰리스트나 권위주의적 독재자들이 ‘그들’과 ‘우리’라는 이분법 속에서 희생양을 택하고 대중을 선동하며 자신의 실리와 이득에 기반한 지지세력을 확보해가는, 파시즘의 집단적 심리 기저에서도 이 부정적 정념은 확연히 그 파괴성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여러분은 피해자고, 내가 여러분을 지켜주겠다”라고 말하는 트럼프식의 전형적인 논리는 아도르노가 “희생자들의 모든 박해 불안을 실현하는 박해망상 환자들의 독재”라고 정의한 파시즘과 정확히 공명한다. 르상티망을 도구삼아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마땅한 권리에 대한 무책임한 환상을 부추김으로써 주체로서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수동적인 피해자로서 둔갑시키는 이들의 권위주의적 독재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저자가 현대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며 섬세히 분석한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치유와 승화의 실천적 여정에 동참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 재설정을 위해 주체의 역량과 공동체의 의지를 끝까지 믿음직하게 지지하며 분석해간다. 릴케의 ‘열림’, 데카르트의 ‘관대함’,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와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 푸코의 ‘자기 통치/타자 통치’, 파농의 ‘개방’, 호네트의 ‘상호인정 윤리’,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 도스토옙스키의 상징화 작업, 시오랑의 검은 유머, 희극적 힘 등을 원용하며 이들을 시적 자양분으로 삼아 썩고 발효된 원한의 영토를 해독해내고 있다. 또한 셸러, 프로이트, 위니콧 등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독자이자 환자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실천가로서 독자를 현대의 정신적 삶의 밑바닥으로 데려가 원한의 어두운 힘이 개인과 공동체의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에 저항하도록 몇 번이고 경보를 울리며 독려한다.

인간의 가장 슬프고 치명적인 정념인 르상티망에 호소하는 지도자들이 득세하는 오늘날, 이 책은 필수불가결하며 대단히 명민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병에 걸리고 나아가듯, “아픈 자는 회복중인 자”로서, 신티아 플뢰리가 견지해내는 인간의 감정적 역량에 대한 확고한 믿음, 자아의 축소가 아닌 확장, 내면에 깃든 자아의 일부였던 회복 불가능한 상처에 대한 애도와 단념, 그리하여 인문학적 창조적 작업을 통한 승화에 사활을 건 이 책에서 진정 회복을 향해 일어설 용기와 현시대 자기진단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 프랑스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저자를 프랑스 최고의 사상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 팔터
우리의 원한은 매우 독성이 강하다. 정체성을 둘러싼 배타적 광기, 피해자임을 내세워 경쟁하는 정체성 정치, 혐오 발언, 캔슬 컬처가 뒤섞인 원한의 전성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신티아 플뢰리의 이 책은 그야말로 이 시대를 위한 책이다. - 디 차이트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부정否定과 원한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정체성 정치의 과잉에 맞서, 철학자 신티아 플뢰리가 이 강력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 필로조피 마가진
우리가 반드시 치유해야 할 르상티망과 피해의식에 대한 탐구. 정말이지 매혹적인 책이다! - 프랑스 앵테르
르상티망에 관한 성찰을 아주 잘 풀어낸 이 저서에서, 플뢰리는 주체가 스스로의 반추에 갇혀 무력하고 비통한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메커니즘을 사유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심오하며 다각적이다. - 클레어 콜브룩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
오늘날의 정치적 위기를 고려할 때,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가 영원하지 않으며 매우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더는 간과할 수 없다. 그 병의 이름이 르상티망임을 밝혀낸 이 책의 명징한 논증 속으로 뛰어들어, 저자가 제시하는 치유를 향한 철학적 정신분석학적 경로를 탐색하는 일이야말로 매우 시급한 과제다. - 술레만 바시르 디아뉴 (컬럼비아대 교수)
인용과 암시, 연상으로 풍성하게 꾸려진, 현대사의 궤적을 가로지르는 롤러코스터 같은 책.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가장 절박한 문제인 사회적 원한이 지닌 비대해진 권력의 핵심을 꿰뚫는다. - 쥐트도이체 차이퉁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플뢰리는 정치적 사회적 현실과의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르상티망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숱한 사회현상을 푸는 너무나 명백한 마스터키와 같아서, 책을 읽는 순간 수많은 자물쇠가 단번에 풀리는 경험을 하게 한다. - 디 벨트
끝없는 반추와 쓰라림…… 집단적 재앙의 온상이 될 수 있는,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 감정에 대한 강력하고도 정교한 분석. - 텔레라마
흥미진진한 이 에세이에서 저자는 개인과 공동체를 독살하는 내면의 반추와 피해의식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이 파괴욕동을 억제하기 위해, 민주적 제도의 역할뿐만 아니라 개인의 책임 또한 강조하고 있다. - 리르
개인과 사회를 부패시키는 이 묵직한 불만, 즉 원한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제시하는 책. 심연에 맞서기 위한 시도, 이 책을 통해 신티아 플뢰리는 우리 시대의 현대성을 살피는 필수적인 저자로 자리매김했다. - 리베라시옹
우리 존재의 심연을 탐구하며, 신티아 플뢰리는 르상티망의 탄생과 그 해로운 영향—개인과 민주주의 모두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흥미진진한 에세이를 내놓았다. 논증은 정교하고, 문체는 경쾌하며, 지식은 확고하다. - 시앙스 위멘
통찰력 있고 심도 있는 탐구. - 필로소피 앤드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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