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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해제
제 1편 학이 제 2편 위정 제 3편 팔일 제 4편 이인 제 5편 공야장 제 6편 옹야 제 7편 술이 제 8편 태백 제 9편 자한 제 10편 향당 제 11편 선진 제 12편 안연 제 13편 자로 제 14편 헌문 제 15편 위령공 제 16편 계씨 제 17편 양화 제 18편 미자 제 19편 자장 제 20편 요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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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상도 그것을 잉태케 한 시대적 배경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공자의 논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살았던 그 시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래 주나라 무왕이 무도한 은나라의 주왕을 멸하고 천하를 장악한 것이 B.C. 1122년이었다. 주나라는 이미 문왕 때부터 인정을 베풀어 만백성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은나라의 폭군 주왕은 사치와 폭정으로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에 문왕의 사후 그의 아들 무왕은 만백성의 해악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은나라를 공격하였다. 마침내 무왕은 목야싸움에서 주왕의 군대를 격멸하고 천왕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무왕은 천자가 된지 7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어린 아들 성왕이 아버지의 자리를 이었다. 그 당시 무왕의 동생 주공은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하여 주의 정치적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그는 섭정으로써 봉건제도와 종법제도. 예약과 관료체제의 정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므로 공자는 주공을 자신의 사상적 스승이요, 정치적 이상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만년에 심하도다, 나의 노쇠함이여! 내 오랫동안 주공을 다시 꿈에서 뵙지 못했으니 (술이-5).라고 탄식하여 주공에 대한 경모의 정을 잊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