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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하고 돌아와 :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쌍조(雙調)·경동원(慶東原)] 중서성을 떠나 4수[중려(中呂)·보천락(普天樂)] 참의직을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다(辭參議還家)[월조(越調)·채아령(寨兒令)] 참의직을 사직하고 마을 연회에서(辭參議還家, 連次?會十餘日, 故賦此)[월조(越調)·채아령(寨兒令)] 첨사승으로 부임하러 가다가(赴詹事丞) 2수[중려(中呂)·조천곡(朝天曲)] 관모 걸어 두고(退隱) 4수 중 2수[중려(中呂)·십이월겸요민가(十二月兼堯民歌)] 불구덩이에서 뛰쳐나와(歸田樂)[쌍조(雙調)·수선자(水仙子)] 이제야 돌아왔네(隱逸) 3수[쌍조(雙調)·고미주겸태평령(沽美酒兼太平令)] 세상일이란(嘆世)[쌍조(雙調)·안아락겸득승령(雁兒落兼得勝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知機) 6수 중 4수[쌍조(雙調)·신수령(新水令)] 사직하다(辭官) * 투수어찌 공명을 좇으랴! : 세상에 대한 경계[쌍조(雙調)·침취동풍(沈醉東風)] 은거할 수밖에(隱居嘆) 7수 중 3수[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전원에 돌아온 변(歸田漫述) 3수 중 2수[중려(中呂)·최고가겸희춘래(最高歌兼喜春來)] 누가 궁궐을 그리워하랴[중려(中呂)·희춘래(喜春來)] 한바탕 악몽이었네(隱逸) 4수 중 3수[중려(中呂)·주리곡(朱履曲)] 세상을 경계하다(警世) 9수 중 6수[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어떻게 살아야 할까(述懷) 10수 중 5수[쌍조(雙調)·침취동풍(沈醉東風)] 열세 도인 후화경에게(寄閱世道人侯和卿)은거의 즐거움 : 산수의 흥, 전원의 삶[중려(中呂)·보천락(普天樂)] 즐거움은 끝없다(隱居?興) 9수 중 6수[중려(中呂)·보천락(普天樂)] 진정한 즐거움(閑居)[중려(中呂)·조천곡(朝天曲)] 농부는 즐겁다(村樂)[중려(中呂)·조천곡(朝天曲)] 넘치는 흥(逸興)[중려(中呂)·조천곡(朝天曲)] 계절 풍경(詠四景) 4수 중 2수[중려(中呂)·십이월겸요민가(十二月兼堯民歌)] 한식날 길에서(寒食道中)[쌍조(雙調)·전전환(殿前歡)] 향촌의 삶(村居)[쌍조(雙調)·호십팔(胡十八)] 나이 먹고 보니(嘆世) 7수 중 3수수려한 내 고향 : 나만의 운장[쌍조(雙調)·경선화(慶宣和)] 이리도 즐거운걸[쌍조(雙調)·전전환(殿前歡)] 회파루에 올라(登會波樓)[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못을 파다(鑿池)[중려(中呂)·보천락(普天樂)] 대명호에 배 띄우고(大明湖泛舟)[쌍조(雙調)·낙매인(落梅引)] 세상 밖 운장 6수 중 4수[월조(越調)·채아령(寨兒令)] 작연정의 계절 4수 중 2수[정궁(正宮)·새홍추(塞鴻秋)] 작연정 꽃구경(綽然亭)[쌍조(雙調)·안아락겸청강인(雁兒落兼淸江引)] 산이 좋다(野興)[중려(中呂)·십이월겸요민가(十二月兼堯民歌)] 수한당에서(遂閑堂?事)아름다운 경물 : 꽃, 달, 강남…[쌍조(雙調)·전전환(殿前歡)] 국화 앞에서(對菊自歎)[쌍조(雙調)·전전환(殿前歡)] 옥향구꽃(玉香球花)[쌍조(雙調)·청강인(淸江引)] 가을 해당화를 읊다(詠秋日海棠) 11수 중 5수[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호금을 읊다(詠胡琴)[쌍조(雙調)·수선자(水仙子)] 좋구나, 강남(詠江南)[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금산사를 지나며(過金山寺)[쌍조(雙調)·절계령(折桂令)] 중추절 달빛(中秋)역사를 돌아보며 : 이겨도, 져도, 백성은 괴롭다[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여산 회고(驪山懷古) 2수[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민지 회고(?池懷古) 2수 중 1수[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북망산 회고(北邙山懷古)[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동관 회고(潼關懷古)[중려(中呂)·산파양(山坡羊)] 미앙궁 회고(未央懷古)다시 백성 곁으로 : 비를 기원하며[남려(南呂)·서번경(西番經)] 조서가 내려와(樂隱) 4수 중 1수[쌍조(雙調)·득승령(得勝令)] 4월 1일의 기쁜 비(四月一日喜雨)[남려(南呂)·일지화(一枝花)] 반가운 비(詠喜雨) *투수[중려(中呂)·희춘래(喜春來)] 내가 우습다(贈廉能) 4수 중 2수해설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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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炅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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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청렴한 명관의 바람처럼 고결한 노래몽골족이 지배하던 원나라 시절, 수많은 지식인이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세상을 풍자할 때 홀로 고관에 올라 청렴함과 강직함으로 백성을 섬긴 인물이 있다. 바로 원대의 대표적인 명신이자 시인인 운장(雲莊) 장양호(1270∼1329)다. 그는 황제의 사치와 정사의 해악을 목숨 걸고 비판했던 곧은 선비였으며, 지방관 시절에는 백성의 억울함을 풀고 원나라 최초의 과거 시험을 주관하는 등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자신이 쓴 《목민충고》에서 “백성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여기라”고 강조했던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도 관중 지역에 혹독한 가뭄이 들자 일곱 차례나 거절했던 나라의 부름을 뒤로하고 구휼 현장으로 달려갔다. 가산을 털어 빈민을 구하고 길가의 아사자들을 거두어 묻어 주며 밤낮으로 기도하던 그는 결국 현장에서 과로로 생을 마감했다. 고려 충선왕이 세운 만권당에서 이제현 등 고려 문인들과도 깊이 교류했던 그의 삶은 오직 백성과 나라를 향한 따뜻한 헌신 그 자체였다.장양호의 이러한 삶의 궤적은 원나라 운문 문학의 꽃이라 불리는 ‘산곡(散曲)’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산곡은 정해진 곡조에 가사를 붙여 부르는 자유롭고 통속적인 노래 형식으로, 당시 작가들은 냉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비웃거나 개인의 슬픔을 노래하곤 했다. 그러나 장양호의 산곡은 달랐다. 그의 작품은 진지하고 관조적이며 품격이 높아 “귀한 나무에 바람이 이는 것 같다(玉樹臨風)”는 찬사를 받았다. 관직의 위태로움에 대한 솔직한 고백,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 자연 속에서 누린 평화로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백성에게로 향하는 뜨거운 연민이 거친 비속어 없이 진솔하고 고결하게 펼쳐진다.이 책 《장양호 산곡선》은 600년 전, 관료로서 모범을 보이고 문인으로서 깊은 울림을 남긴 장양호의 대표 산곡 소령 90수와 투수 2곡을 엄선해 정성껏 풀이했다. 백성의 아픔을 껴안았던 청렴한 관리의 삶과, 세속을 벗어나 자연을 노래했던 문학적 성취가 한데 어우러진 그의 산곡은 세파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참된 삶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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