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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0
제1부 문제의 자리 제1장 병원 문턱에서 시작되는 혼선 17 제2장 한 간판 아래 두 개의 논리 27 제3장 법은 왜 환자의 길을 끊어서 보는가 35 제4장 정보가 많아도 모르는 이유 45 제5장 동의서가 설명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 53 제6장 시술이 끝난 뒤 63 제2부 해외 규범이 비추는 질문 제7장 비교는 질문의 방식을 바꾼다 75 제8장 시장이 커질수록 위험은 이름을 얻는다 77 제9장 결정의 속도를 늦추는 법 85 제10장 비교 이후, 한국법의 빈칸 93 제3부 한국형 대안 제11장 피부에서 시작된 문제가 의료 전반으로 번지는 방식 103 제12장 치료받을 권리는 접수 이전부터 시작된다 105 제13장 시술을 택한 사람에게도 안전은 권리다 115 제14장 부작용 이후의 시간을 제도화하기 127 제15장 책임이 보이는 정보제도 137 제16장 의료서비스 품질법제의 설계 149 에필로그 158 참고문헌 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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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가 아파 병원을 찾는 일은 대개 작은 불편으로 시작된다. 가려움이 심해 잠을 설치고, 붉은 반점이 며칠 사이 번지고, 시간이 지나도 잘 낫지 않는 상처를 보고 더 큰 병은 아닌지 걱정한다. 그런데 환자가 인터넷 같은 경로로 먼저 병원을 찾을 때 꼭 진료와 관련된 것만 보는 게 아니다. 검색 결과와 예약창, 이벤트 배너와 후기, 할인 관련 문구와 상담 버튼이 먼저 말을 건다. 환자는 아픈 사람일 뿐인데 화면은 그를 소비자로 반긴다.
--- p.10 그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의료기관 안에서 환자에 대한 결정은 누가 하고, 그 결정 뒤의 위험은 누가 책임지는가? 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환자가 이미 선택했다면 동의서는 자기결정의 증명이기보다 판매의 마무리 절차로 전락할 수 있다. 시술이 끝난 뒤 연락할 곳이 닫히면 사후관리는 더 이상 응대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의 지속성이 사라진 사건이 된다. 가격은 공개하면서 자격과 책임, 기록과 전원 체계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병원에 대한 정보는 넘쳐난다 해도 의료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하는 셈이다. --- pp.12-13 환자가 똑똑할 필요는 없다. 복잡한 법률 지식과 시장 해독 능력이 없어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제도는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위험을 없애겠다고 하지 말고, 위험할 때 혼자 있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한국 의료법이 이를 분명히 할 때 진료가 판매보다 앞서는 질서를 세울 수 있다. --- p.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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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는데, 의료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하는 시대
오늘날 환자가 병원을 만나는 첫 문은 진료실이 아니라 검색창이다. 검색 결과와 예약창, 후기와 할인 문구가 먼저 말을 건다. 피부는 이 변화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영역이다. 아토피와 건선, 대상포진과 조기 피부암의 징후를 진료하는 공간에서 필러와 리프팅, 레이저 시술이 함께 이루어진다. 같은 대기실과 같은 상담창구, 같은 비용 안내 속에서 질환 진료와 선택적 시술의 경계는 흐려지고, 그 경계를 읽어내는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넘어간다. 환자의 길을 따라가며 법의 빈칸을 찾다 1부 ‘문제의 자리’는 병원 문턱에서 시작되는 혼선, 한 간판 아래 공존하는 진료의 논리와 판매의 논리, 정보가 많아도 환자가 알 수 없는 이유, 동의서가 설명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 시술이 끝난 뒤 닫혀 버리는 연락의 문을 차례로 짚는다. 한국법은 이미 많은 것을 규율하고 있다. 그러나 광고와 설명과 분쟁을 서로 다른 조문으로 끊어서 본다. 위험은 하나의 흐름으로 발생하는데, 제도는 그것을 여러 단위로 잘라서 보는 것이다. 미국·영국·일본에서 읽어낸 하나의 질문 2부 ‘해외 규범이 비추는 질문’은 해외 제도를 모범 답안처럼 옮겨 오지 않는다. 미국의 식품의약국(FDA) 안전경고와 주별 메드스파 규율에서는 위험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영국의 비수술 미용시술 인허가 논의와 의사 지침에서는 결정의 속도를 늦추는 숙려와 직접 설명을, 일본 후생노동성의 미용의료 검토에서는 상담실과 사후대응의 공백을 행정의 언어로 식별하는 방식을 읽어낸다. 세 나라의 차이 너머에서 반복되는 질문은 하나다. 환자에 대한 결정은 누가 하고, 그 결정 뒤의 위험은 누가 책임지는가. 치료받을 권리와 안전하게 시술받을 권리는 같은 법의 앞면과 뒷면 3부 ‘한국형 대안’은 구체적인 제도 설계로 나아간다.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가 접수 이전부터 진료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치료받을 권리, 일정 수준 이상의 시술을 ‘강화된 의료행위’로 명시하고 자격·시설·숙려 기준을 함께 두는 방안, 부작용 이후의 연속진료 의무와 신속한 초기 구제, 가격이 아니라 품질과 책임을 보여주는 공적 정보제도, 그리고 이 모두를 관통하는 의료서비스 품질법제의 설계까지 다룬다. 2026년 제정된 「환자기본법」과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의 흐름도 함께 짚는다. 저자는 의료현장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 좋은 의료기관이 이미 하고 있는 책임 있는 설명과 기록, 사후대응이 제도 안에서 보이고 정당하게 평가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피부에서 시작한 질문은 치과, 안과, 비만치료, 모발, 안티에이징 의료처럼 치료와 선택적 서비스가 뒤섞이는 모든 분야로 이어진다. 의료정책과 의료법을 고민하는 연구자와 실무자, 의료현장의 종사자, 그리고 시술을 고민하거나 부작용 앞에서 막막했던 경험이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 한 가지 원칙을 일깨운다. 좋은 의료법은 환자에게 더 많은 법률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복잡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환자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법이 좋은 의료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