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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몰염치사회의 민주주의
오석홍
자운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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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01 몰염치사회의 민주주의 11
02 공평사회로 가는 길을 헤맨다 185
03 와라가라 행정의 청산 221
04 다시 한 번 엽관주의에 대하여 243
05 개혁과 모방: 미국 CSC와 FBI의 모방 267
06 직업은 짧고 인생은 길다 283
07 저출산의 원인을 헤아려본다 295
08 대학의 영욕 317
09 인간과 인조물의 대결 341
부록 이런 생각 저런 생각 353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362쪽 | 152*225*30mm
ISBN13
9791193321041

책 속으로

01 몰염치사회의 민주주의

1 몰염치사회의 민주주의

염치는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사람들이 염치를 차릴 줄 알아야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세태를 보면 몰염치가 판을 치고 있다. 몰염치경주에서 정치권이 선두를 달리는 것 같다. 사회적 몰염치의 비호와 부추김을 받는 정치의 몰염치행보는 끝이 안 보인다. 그러니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거버넌스가 골병이 들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타락하게 한 정치는 나라의 발전에 장애가 되고, 나라의 발전경로를 어지럽히는 역기능적 세력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민주주의적 질서의 운행을 가능하게 하고 성공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는 국민과 통치체제의 염치이다. 염치라는 정신적 가치는 오뚝이(不倒翁)의 무게중심처럼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국민적 염치는 민주주의적 국가체제의 항상성을 유지해 주는 핵심적 기반이며, 위기를 겪고 쓰러지는 민주주의에도 복원력을 제공한다.

염치를 차려야 한다는 행동규범은 민주주의를 받쳐주는 핵심적 규범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허다한 행동규범들은 결국 염치규범에 의지한다. 염치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민주적 행동규범들은 구두선(lip service)이며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몰염치사회가 시늉으로 모방한 민주주의는 형식주의의 희생이 된다. 몰염치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실속 없이 거치적거리는 개발의 편자가 되고, 외화내빈의 허울 좋은 돼지 목의 진주목걸이가 된다. 겉은 번지레하면서 속은 썩은 민주주의는 국민의 삶에 해독을 끼친다. 국민의 삶을, 특히 정신적 삶을 피폐하게 한다. 후속세대에게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냐는 의문을 심어준다.

몰염치 때문에 상처받고 망가진 민주주의는 불신풍조를 만들고, 갈등과 투쟁을 격화시키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 몰염치는 도덕적 아노미를 부른다. 아노미는 독재를 손짓해 부른다. 독재야심가들을 유혹하고 충동질하는 소지가 된다. 민주주의가 요구하고 허용하는 자율을 감당할 염치가 없는 국민에게는 독재라는 외재적 통제만이 약이요 답이라는 논리를 부추기고 유인하게 만든다. 그러니 민주주의가 몰염치를 만나면 재앙을 부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잡담 제하고, 민주주의는 자기 일 자기가 알아서 하자는 주장(원리)이다. 각자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되 이웃의 이익은 침해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공동체의 공익을 스스로 형성하고, 공익에 자발적으로 기여하자는 주장이다.

민주주의는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능동적 자유인으로 보고, 자율규제와 협동의 주체로 본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전제는 인간의 합리성과 염치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주의, 합리주의로 출발했으며 거기에 사회적 배려와 인간주의적 배려를 보태면서 발전해왔다. 그 옆을 항상 지켜준 것이 사회적 염치이다.

지금 세상의 민주주의를 나는 인간주의라고 이해한다. 민주화는 인간화이다. 인간주의는 인간의 인간다운 속성, 고급화된 속성을 존중하며 북돋우려는 인간화의 원리이다. 인간주의는 인간의 영성(spirituality)을 중시하고 정신적 가치를 중시한다. 염치와 인도적 배려를 중시한다. 이런 인간주의는 물론 인간의 염치 있는 합리적 행동을 기반으로 한다.

민주주의, 자유주의는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적 판단을 믿고 전제한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성이나 이성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간의 완벽한 합리성이나 완벽한 이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정상성(正常性)에 결부해 규정되는 합리성이며 이성인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합리성이며 이성을 말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수준의, 비교적 높은 수준의 합리성과 이성을 지닌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한 민주적 의사결정을 하고 개인적 자유와 권리를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인간의 합리성은 완벽하기 어렵고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합리적 판단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율을 맞길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적어도 자율적 결정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합리성과 이성적 판단능력, 그것을 지지하는 감수성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합리적 결정능력이 수요점(需要點) 이하인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정상배(政商輩)들의 우민통치(愚民統治)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다 사람마다 욕구와 능력이 다를 수 있다. 국민전체를 보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겠는가. 그런 복잡계를 민주적 정치과정에서는 평등하게 취급한다. 이성적 판단능력이 탁월한 유권자나 심신박약인이나 공직선거에서는 같은 한 표를 행사한다. 이게 민주정치의 허점이지만 별 수 없이 품고 가야한다. 선거에서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그들을 차별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외적 측면이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국민전체의 비이성적 행동과 동행할 수 있다거나 그걸 옹호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민 대다수가, 특히 통치구조의 행동자들이 비합리적이고 몰염치하면 민주적 거버넌스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옛말에 의식족이지예절(衣食足而知禮節)이라 했다.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로 생활이 궁핍하면 예절을 차릴 여유가 없다.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는 예절을 갖출 수 있다. 체면을 차리고 염치를 차릴 수 있다. 이런 뜻이니 이치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에 점점 더 큰 의문이 생기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의식족이지예절이라는 언명 또는 원리에 관한 한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염치는 매우 중요한 인간속성이다. 염치라는 속성이 인간생활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퇴화(退化)해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 사는 게 풍족해진 풍요사회에 살게 되면서부터 역설적이게도 염치라는 인간속성이 퇴화의 길을 빠르게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짙게 든다. 사회 전체의 몰염치세태가 걱정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국가의 거버넌스체제를 구성하는 중추세력들의 염치퇴화가 유독 더 두드러져 보인다.

나라의 거버넌스를 이끌어가는 세력들의 염치상실행태에 주목하고 몰염치사회의 민주질서 파행을 이 책의 주제로 삼아 약간 긴 글을 썼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학계를 향해 거버넌스 연구의 염치론적 접근방법을 제안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학술서적의 기준에 맞춰 꾸미지는 않았다. 당초부터 서술방식을 대중화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희대(稀代)의 몰염치풍조를 바라본 사람이 후대에 남기는 비망록이기도 하다. 정관계의 견디기 어려운 몰염치를 비판하다 보니 질책하는 어조(語調)가 강해진 점 독자들이 양해하기 바란다.

몰염치사회의 민주주의라는 이 책의 중심주제에 대한 논의에 이어서 그에 무관하지 않은 몇 가지 이야기를 더해 이 책의 편제를 완성했다. 추가로 선택한 몇 가지 이야기란 공평사회화운동, 민원행정과 정부규제, 엽관주의, 모방적 제도개혁, 직업세계의 변화, 저출산 문제, 대학의 문제, 정보기술의 통제 등 정치적 · 행정적 의제들을 말한다. 이런 추가적인 이야기들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기 바란다.

“공평사회로 가는 길을 헤맨다”라는 제목 아래서는 우리사회에서 확산되어온 공평사회화운동의 과유불급을 비판하고 올바른 진행방향을 논의하였다. “와라가라 행정의 청산”이라는 제목 아래서는 우리나라 민원행정의 문제, 특히 방문민원의 문제, 그리고 민원사무 발생의 배경 내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규제의 문제를 논의하였다. “다시 한 번 엽관주의에 대하여”라는 제목 아래서는 엽관주의라는 인사행정 용어에 대한 정부 내외의 이해부족에서 빚어지는 혼란과 불필요한 논쟁을 비판하고, 통일적이고 표준화된 용어사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개혁과 모방: 미국 CSC와 FBI의 모방”이라는 제목 아래서는 개혁의 여러 접근방법과 모방적 개혁의 개요를 설명하고 모방적 개혁의 과오를 지적하였다. 과오의 사례로 미국 연방인사위원회와 미국 연방수사국을 벤치마킹한 모방 또는 모방계획을 들어 설명했다. “직업은 짧고 인생은 길다”라는 제목 아래서는 사회발전에 따라 유동화되고, 수명은 짧아져 가는 직업들의 변화추세, 그리고 빠르게 늘어나는 인간수명의 변화추세를 살피고, 그 사이에 끼인 사람들의 적응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저출산의 원인을 헤아려본다”라는 제목 아래서는 우리나라에서 생각할 수 있는 저출산의 원인들을 두루 살폈다. 미시적 원인보다 거시적 원인의 고찰에 더 많은 역점을 두었다. “대학의 영욕”이라는 제목 아래서는 오늘날 우리 대학들이 겪게 된 어려움, 그리고 대학의 신망저하를 조장하는 원인들을 살펴보았다. “인간과 인조물의 대결”이라는 제목 아래서는 인간이 만든 인조물의 부작용과 해독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였다. 특히 AI로 대표되는 첨단정보기술이 인간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기술이 인간에게 해코지를 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국가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민주주의는 염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원리이다. 염치가 빠진 민주정치는 타락한 정치이며 가장 취약한 정치이다. 우리 사회, 우리 정치가 염치라는 유실물(遺失物)을 되찾지 못하면 우리 민주주의의 앞길은 점점 더 암울하고 험난해질 것이다. 국민적 · 국가적 염치회복은 진인사대천명의 문제이며, 국운에 달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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