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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문고전으로 세상을 읽다. 1부 국가와 사상이 뿌리내린 시대 소크라테스의 변론 플라톤 | 국가론 아리스토텔레스 | 니코마코스 윤리학 2부 인문의 시대 니콜로 마키아벨리 | 군주론 (1513년) 토마스 모어 | 유토피아 (1556년)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 돈키호테 (1604년) 토마스 홉스 | 리바이어던 (1651년) 너대니얼 호손 |주홍글씨 (1850년) 3부 새로운 변혁의 시대 장 자크 루소 | 인간불평등기원론 (1762년) 장 자크 루소 | 사회계약론(1762년) 애덤 스미스 | 국부론 (1776년) 찰스 디킨슨 | 올리버 트위스트(1838년) 존 스튜어트 밀 | 자유론(1859년) 표드르 도스트예프스키 | 죄와벌(1866년) 4부 이념과 갈등의 시대 칼 마르크스 | 자본론(1867년) 막심 고리끼 | 어머니(1906년) 마크 트웨인 | 허클베리핀의 모험(1885년) 5부 실존의 시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파우스트(1808년) 프리드리히 니체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년) 알베르 카뮈 | 이방인 (194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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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지혜와 공자가 말하는 앎이 의미하는 것이 서로 통하지 않나요? 저는 인문 고전이 이래서 좋습니다. 마치 21세기의 전파연결망처럼 생각은 이미 연결되어 있었고, 함께 변화하고 성장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게다가 이런 문장이 주는 의미는 하나가 아닙니다.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자기에 맞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성장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 고전 인문에서 얻은 지혜가 하나 있다면 두고두고 곱씹어 깊이 생각해야 하죠. 그러다 보면 이전의 나보다는 더 나은 성찰을 얻게 되더라고요. 이런 점이 제가 인문고전의 매력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중에서 동양의 위대한 철학자 공자는 통치자인 군주는 군자가 되어야 백성이 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왕들에게 군자의 길을 설파하며 세상을 돌아다녔죠. 플라톤의 철인통치와 공자의 군자사상은 통하는 게 있어요. 둘 모두 자신을 뛰어넘어 덕을 실천하는 성인군자들이죠. 하지만 과연 개인적인 욕심은 없고 숭고한 뜻이 있어 세상을 편안하게 만드는 데에만 의미를 두고 추구하는 통치자가 과연 존재할까요? 플라톤의 국가를 읽다 보면 인간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건 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죠. ---「플라톤의 ‘국가론’」 중에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비롯한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인 바탕이 되었던 거죠. 프랑스 국민들의 비참한 삶에서 나온 비애는 루소와 같은 프랑스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을 흔들었고 이런 사회 현상을 연구했습니다. 인간의 불평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타고난 신분 때문인가? 그렇다면 신분을 만들게 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자연적인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 것이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내용입니다.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중에서 역사는 억지로 굴러가는 게 아닙니다.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 소련이 되었다가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기까지 역사의 수레바퀴는 시간이 돌리는 방향에 맞춰서 돌아갔던 겁니다. 인문학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함께 맞추어 돌아가는 바퀴의 한 축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은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앞뒤로 살펴봐야 진짜 재미있고 매력을 느낄 수 있답니다. ---「막심 고리끼 ‘어머니’」 중에서 괴테가 살던 독일은 종교개혁이 시작된 나라인 만큼 기독교적 배경이 깔려있는 나라입니다. 파우스트 또한 기독교적 사상이 바탕이 된 소설이에요. 파우스트 시작부터 등장하는 악마와 하나님의 내기에 관한 설정만 봐도 알 수 있거든요. 괴테는 주인공 파우스트처럼 한때 세속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아마 자신의 경험을 통한 깨달음을 파우스트에 고스란히 들어있겠죠. 그만큼 문학의 기본 재료는 자신의 삶이니까요. ---「괴테의 ‘파우스트’」 중에서 21세기에 들어선 인류는 정보통신 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획기적인 발달로 인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초연결세상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는 듯합니다. 스마트폰이 보여준 세상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었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기술 혁명의 매력에 빠지기보다 지구 환경위기나 질병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하죠. 이렇게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졌음에도 인문학이 걸어온 길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지만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우리는 여전히 웃고 고민하는 인간이거든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니체를 말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