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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고대 게르만 민족의 기원 거주 지역·자연환경과 생활방식·경제생활·종교와 문화·신분관계 로마 시대의 게르만족 로마인이 본 게르만·게르만족과 로마의 군사 관계·게르만족의 팽창과 이동 중세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 시대·카롤링거 왕조 시대·프랑크 왕국의 분할 독일 역사의 시작 중앙권력의 와해·오토 1세·오토 2세·오토 3세·하인리히 2세·잘리어 왕가·합스부르크 왕가 중세의 생활 중세의 과학·가족 관계·신분 사회·농민들의 생활·중세의 도시·중세의 인구·종사제도·부역제도·인구와 흑사병 근대 초기 독일의 정치적 변화 제국의 상황·막시밀리안 황제의 등장과 오스트리아의 도약·근대 국가 형성의 움직임 근대 초기 문화와 교육 독일의 인문주의·1500년대의 교육 종교개혁 종교개혁 전의 독일·마르틴 루터의 등장·종교개혁 16세기 독일 농민전쟁 농민전쟁의 배경과 경과·토마스 뮌처의 농민전쟁·종교전쟁 후의 변화·종교개혁 및 농민전쟁 시대의 오스트리아 30년 전쟁 전쟁 발발·전쟁 초기의 상황·전쟁의 확대 종전의 결과 베스트팔렌 평화조약과 주요 내용·30년 전쟁의 영향·30년 전쟁 이후의 독일 강자로 등장한 프로이센 프로이센의 성장·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7년 전쟁·전쟁 후 프로이센의 경제 혁명의 시기와 독일의 변화 프랑스 혁명 시대의 독일 혁명기 독일의 상황·변화의 시도·혁명기 독일 지식인의 움직임·개혁과 변화의 시작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의 독일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팽창·신성로마제국의 해체·나폴레옹 전쟁의 영향 나폴레옹의 몰락과 빈 체제 나폴레옹의 몰락과 새로운 질서의 시작·빈 회의와 독일 문제의 대두 산업혁명기의 경제·사회의 변화 혁명의 시대 경제·산업혁명·경제제도의 변화·인구의 증가·산업혁명의 영향·산업혁명과 도시 수공업·교육의 변화 프로이센의 성장과 독일의 통일 1848년의 혁명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부흥과 혁명·메테르니히의 실각·프로이센과 혁명 프로이센의 성장과 비스마르크의 등장 최초로 통일을 이룩한 비스마르크·가슈타인 협정·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독일영방의 붕괴 독일의 팽창 정책과 제1차 세계대전 독일의 팽창 정책 빌헬름 2세의 등장·비스마르크와의 갈등·독일제국의 세계 정책과 유럽 체제의 분열과 동요·빌헬름 2세의 식민지 정책 유럽 체제의 동요 유럽 세력균형체제의 균열·영국-독일 해군 협상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 전야·제1차 세계대전 발발·제1차 세계대전 전황과 독일 사회·평화교섭과 휴전·제1차 세계대전 책임에 관한 논쟁 바이마르 공화국 구체제 붕괴와 민주주의 시작 베르사유 조약·에버트의 등장·바이마르 공화국의 탄생·불완전한 민주 국가·외교 정책·외교적 고립에서 해방·국방군의 재건·독소군사협력·재무장과 경제·경제적 상황·루르 점령과 경제의 위기·실업자 문제와 사회의 동요·공화국의 위기와 나치당의 탄생 제3제국 히틀러 통치 시대 히틀러의 성장 배경·나치당의 지지 기반·제3제국의 탄생·히틀러로 이동한 국가 권력·공포정치와 선동정치·교회 정책·히틀러의 지지자·히틀러의 반대자·나치의 경제 정책·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히틀러의 외교 정책·제2차 세계대전 발발·나치 시대의 유럽·전면전과 제3제국의 위축 연합군 통치 시대 과거 청산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 전쟁 종식과 독일의 상황·포츠담 협정·뉘른베르크 재판과 나치 청산·경제 정책·미군과 영국군 지역 통합·마샬플랜·화폐개혁·냉전의 출발, 베를린 봉쇄·소련군 점령 지역 독일연합공화국의 탄생 아데나워 시대 기본법 탄생·초대 수상 아데나워·전후 복구 문제와 경제 성장·베를린 위기 에르하르트 시대 긴장 완화 시대·동독과의 관계·극우 정당의 출현과 정국 위기·경제 위기와 정권의 종말 키싱어-브란트 시대 대연정 구성·키싱어 삶과 정치 행로·위기 극복 정책·6·8 학생운동 브란트 시대 소련과 관계정상화·폴란드와 화해 정책·동서독기본조약과 동독과의 관계 슈미트 수상 시대 동방 정책의 계승·정치개혁 콜 수상 시대 정책의 지속성·동독의 민주화운동·베를린 장벽 붕괴·통일의 과정 연대기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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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일주의적 독일 통일의 중심에 비스마르크가 있었다. 그는 독일 역사에서 최초로 통일을 이룩했던 정치가로 독일을 진정한 유럽의 강대국 대열에 들게 했다. 독일에서는 작센과 헤센 선제후국 그리고 브라운슈바이크공국과 하노버공국에서도 혁명의 운동이 일어났다. 시민들은 부당한 세금을 폐지하고 독일 국내의 관세를 폐지하고 국민의 군대를 창설할 것을 요구했으며 선거제도를 개혁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에 비스마르크는 동료들과의 토론에서 모든 것은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제도권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혁명적이고 파괴적인 행동과 생각에 대해서는 반대의 입장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비스마르크는 군복무를 마친 후부터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가업을 물려받아 고향에 가서 농사를 지을지 아니면 국가에 봉사하는 관료직에 진출할지를 두고 갈등했다. 결국 그가 가장 의지한 가족인 고모와 아내의 요구에 따라 관료직을 택했고 졸업 후 1835년도에 지방법원의 배석판사로 처음 직업을 가졌다. 1847년 5월 지방의회에 처음으로 진출하여 1850년까지 정치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 후 그는 프로이센 대표로 프랑크푸르트 영방의회에 참여하여 프로이센을 영방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오스트리아와 같은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영방의회에서 소독일주의를 주장하여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를 배제했고, 독일 통일의 이념을 제시했다. 통일 후 비스마르크는 남부 독일에 기반을 둔 가톨릭을 탄합하여 오스트리아가 독일에서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거했고, 사회 복지 정책을 실시하여 시민 계급을 국가 정책의 반대자가 아닌 조력자로 끌어들였다. 외교 정책에서는 러시아와 시종일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가 죽고난 후 황제 빌헬름 2세는 러시아를 독일의 외교권에 잡아두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통일을 이룩한 비스마르크는 외교에서 현상 유지Status Quo 정책을 주장하여 유럽의 강대국과 갈등 관계를 초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 시대 권력을 풍미했던 비스마르크도 새로운 황제 빌헬름 2세와의 갈등 때문에 1891년 현직에서 물러나 함부르크 근처에 있는 작센발트 숲에서 생활하다 1898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프로이센의 성장과 독일의 통일 - <최초로 통일을 이룩한 비스마르크> 중에서)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11월 9일 밤 콜 수상은 역사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독일에 있지 않고 폴란드를 방문 중이었다. 그러나 콜 수상은 폴란드 방문 일정을 중도에 포기한 채 수도 본으로 가지 않고 미 군용기로 역사적인 현장인 베를린으로 갔다. 그때까지 콜 수상은 베를린 장벽 붕괴가 통일로 이어지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통일에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고, 소련이 동독의 정치 질서를 더 이상 추스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보이자 콜 수상은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11월 28일 통일에 대한 10개항의 프로그램을 연방의회에 공개하면서 통일에 대한 여론이 공론화되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폴란드와 오더―나이세 국경선 문제를 협의하지 않았고, 연합국과 사전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콜 수상의 이러한 빠른 결정은 사전에 폴란드 및 연합국과 합의를 하게 된다면 많은 시간을 낭비하여 정작 통일이라는 큰 대업을 망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몇몇 측근들만 아는 가운데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였다. (독일연합공화국의 탄생 - <베를린 장벽 붕괴>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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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만 민족에서 독일의 통일까지, 역동적인 독일사의 현장을 읽는다
독일은 게르만족의 이동과 부족 국가의 시기를 거쳐 근대국가체제로 성장하면서 유럽에서 입지를 강화해간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역동적인 역사가 진행되었고, 현대사에서 통일을 이루었다. 역사와 지리적 위치와 국가적인 특징 때문에 독일 문제는 단지 독일이라는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독일의 안정은 곧 유럽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독일 내부의 역사에 중점을 두면서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해가는 모습을 다루었다. * 이야기로 읽고 사진으로 보는 독일의 역사 독일이란 나라는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한 통일로 처음 등장했다. 독일 민족은 존재했으나, 실체로서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가 독일이다. 동유럽처럼 다른 민족의 지배로 나라를 세우지 못한 것도 아니었으나 그들은 한 민족이었음에도 한 나라를 이루지 못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독일만큼 역동적인 역사가 진행된 나라는 없을 것이다. 독일은 후발 산업 국가로서 뒤늦게 산업화에 뛰어들었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유럽의 중심 국가 대열에 참여할 수 있었다. 또 뒤늦게 통일을 이루기는 했지만, 국가의 잠재적인 역량을 강화하여 기존의 유럽 질서를 흔들어버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현대사에서는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내지만, 그 망상이 좌절됨으로써 국토는 폐허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양분되었지만, 결국 자국의 땅에서 국민이 주체가 되어 분단 문제를 극복하여 통일된 하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로마제국의 멸망, 프랑크 왕국의 흥망,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 해체, 프로이센의 등장과 독일의 통일, 독일제국과 제1차 세계대전, 나치즘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 등등 숨가쁘게 지나온 독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