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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비진리다”
모두가 말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대에 읽는 키르케고르의 일기 수많은 말이 빠르게 퍼지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판단을 자신의 생각처럼 반복한다. 그러나 그 말이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렸을 때, 책임지는 이는 누구인가. 『키르케고르의 일기 NB 1』에 담긴 질문은 오늘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1846년, 풍자 주간지 『코르사르』의 공격과 거리의 조롱 속에서 키르케고르는 군중(Mængden)의 힘을 자신의 삶으로 겪었다. 이 일기는 그 경험을 통과하며 진리와 책임, 신앙과 저술의 의미를 다시 묻는 기록이다. “군중은 비진리다”라는 그의 선언이 겨누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지워 버리는 군중의 작동 방식이다. 혼자서는 감히 하지 못할 말을 익명성 뒤에서 내뱉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 판단하고 응답해야 할 자리를 떠난다. 키르케고르는 바로 그 자리에 단독자(den Enkelte)를 불러 세운다.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누구의 이름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저술을 그만두려던 사상가, 다시 자신의 소명 앞에 서다 이 책에 담긴 1846년부터 1847년까지는 키르케고르의 저술 활동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던 시기다. 『결론의 비학문적 후서』를 출간한 그는 자신의 저술이 하나의 마침표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며 목사로 살아갈 길을 고민한다. 그러나 일기의 기록들이 이어질수록, 조용한 삶을 향한 소망과 다시 글을 써야 한다는 자각이 교차한다. 독자는 그 망설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된다. 재정 형편에 대한 걱정, 몰이해에 대한 분노, 자신의 저작을 돌아보는 평가, 앞으로 쓸 책에 대한 구상이 한 노트 안에 놓여 있다. 그 사이로 기도와 성서 묵상, 고난에 대한 성찰이 이어진다. 사상은 이 구체적인 삶의 조건 속에서 문장을 얻는다. 완성된 저서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머뭇거림과 방향 전환이 이 일기에는 남아 있다. 그런 까닭에 『NB 1』을 읽는 일에는 특별한 긴장감이 따른다. 우리는 키르케고르의 날카로운 통찰과 함께 상처받은 인간의 격한 감정도 만난다. 각각의 기록이 쓰인 상황을 헤아리며 읽을 때, 자신의 소명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진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선다는 것, 한 사람을 끝까지 존중한다는 것 키르케고르에게 단독자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로 깊어진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사회적 인정이나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자신의 삶에 대한 최종적인 근거로 내세울 수 없다. 믿음은 자신이 의지해 온 것들을 돌아보게 하며, 알고 있는 진리를 어떻게 살아 낼 것인지 묻게 한다. 이 책에 거듭 등장하는 기도와 고난, 시험과 그리스도를 따름에 관한 기록에는 그러한 물음의 무게가 담겨 있다. 동시에 단독자를 향한 그의 사유에는 구체적인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이 흐른다. NB:64의 헌정문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겨울 폭풍이 몰아치는 날 텅 빈 교회를 찾아온 가난한 여인들, 남편의 장례 마차 곁을 홀로 걷는 아내를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자신의 가장 뜨거운 말과 진실한 위로를 내어놓겠다고 한다. 군중을 향한 준엄한 비판과 한 사람을 향한 이러한 다정함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사람의 수와 영향력으로 가치를 판단하지 않을 때, 눈앞의 한 사람을 온전히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가 기다린 독자 역시 유행이나 명성을 따라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읽는 한 사람이었다. 첫 번째 NB 노트에서 만나는 사유의 생생한 움직임 『키르케고르의 일기 NB 1』은 이후 서른여섯 권으로 이어지는 NB 노트의 첫 권으로, 215개의 기록을 담고 있다. 덴마크어 원전을 바탕으로 한 번역에 주요 개념의 원어를 병기하고, 상세한 주석과 역자 해설을 더했다. 『코르사르』의 풍자화 등 부록 자료도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책은 키르케고르의 철학과 신학을 탐구하는 독자에게 그의 사유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또한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망설이며, 믿음과 삶 사이의 거리를 고민하는 독자에게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시대와 언어를 건너온 이 일기는 오늘 책을 펼친 한 사람에게 묻는다. 나는 군중의 목소리 속에서 어떻게 내 말과 삶에 책임질 것인가.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