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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책을 발간하며
추천사 기획의도 2부: 시대의 대학 언론이란? 1950년대 6·25 전후 대학 저널리즘의 태동 1960년대 4·19와 좌절된 민주주의 1970년대 유신과 긴급조치 시대의 대학 언론 1980년대_1 사월에서 오월까지, 그때 핀슨 홀에서 1980년대_2 80년 광주와 연세춘추 1980년대_3 87년 6월 항쟁, 이한열과 민주화 1980년대_4 학원 자율화와 연세춘추 1990년대 전반 우리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1990년대 후반 세기말, X세대, 불탄 종합관과 연세춘추의 어느 좋았던 시절 2000년대 대학, 언론, 대학 언론의 위기 2010년대 이후 21세기의 대학, 대학 언론의 좌표 3부: 대학 언론의 위기, 그 명제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연세춘추동인회 주관 대학 언론 좌담회 맺음말 부록 역대 신문방송 편집인 역대 주간교수 역대 편집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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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은 사회문제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것이 당시 추세였다. 그러나 한때 조금 특별한 특집으로 연세춘추가 곤욕을 치른 사건이 있었다. 바로 5·16 이후 1년 뒤에 진행된 ‘혁명 공약대로 민정이 이양되겠는가’에 대한 앙케트다.
이는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이화여대 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진행했던 특집이었다. 당시 취재부장이었던 나 그리고 김성효 군이 앙케트 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혁명 공양대로 민정이 이양되겠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답변이 우세했으며, 한편으로는 다행히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나 싶었다. 그러나 일본 재팬타임스에서 문제가 되었다. 앙케트의 결과가 일본에서 공개가 되었고, 일본 주일대표부에 있던 공보관이 해당 결과를 확인하면서 역으로 연락이 온 것이다.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4·19와 좌절된 민주주의」 중에서 문동만의 시 중에 「사월이 오월에게」라는 것이 있는데, 80년대 초의 상황은 딱 그랬다. ‘겹겹이 포개어진 사월과 오월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겹겹이 포개어져 있었다. 우리가 겪은 최초의 시위는 4·19 무렵이었다. ‘독재타도!’의 구호가 두 음절도 채 목구멍을 넘어오기 전에 교정 가득 앉아있던 사복경찰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들이 무차별적으로 던진 사과탄이 파편과 함께 날아다녀 치마 입은 여학생들의 다리가 피로 물들었다. 인문학관 대형강의실에도 사과탄이 터져 매캐한 연기로 가득차기도 했다. 우리는 처음 본 공권력의 막강한 무력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그 주말 조선일보 외간실에 모인 우리는 주간 교수의 매서운 눈초리와 선배들의 침묵에 다시 압도되었다. 발언권이 없는 예비수습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벌어진 사건인 시위를 1단 기사로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절망했다. 1980년 신문처럼 그 자리를 여백으로 남기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사월에서 오월까지, 그때 핀슨 홀에서」 중에서 붉은색 플러스펜으로 첨삭한 원고를 여러 차례 반복해 고쳐 쓰다 보면, 밤 9시를 넘겨서야 오케이(OK) 사인이 떨어졌다. 백양로를 함께 걸어 신촌으로 내려온 우리는 ‘백두갈비’에서 막걸리에 늦은 저녁을 먹거나 ‘만미투’, ‘원투쓰리’에서 맥주를 들이켜다 지하철 막차 시간에 맞춰 귀가하곤 했다. 아쉬울 때면 돈 모아 술을 산 뒤 ‘은하장’, ‘성일여관’ 등에 방을 잡거나, 학교에 올라가 새벽까지 마신 뒤 학생회관 아무데서나 잠을 잤다. 취재부장은 종종 큰 소리로 우리들의 원고 한 대목씩을 읽어준 뒤 공개 면박을 주곤 했다. “유치하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이 문장은 대체 누구 것이냐?” 쓰고 고치고 베껴 쓰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는 이 과정은 극도의 모멸감을 견디는 훈련이기도 했다. --- 「우리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중에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아 열심히 만든 신문은 과방에서 자장면 그릇 받침으로 쓰이기 일쑤. 이런 일도 있었다. 평소엔 월요일마다 새 신문이 나와도 그 전주 신문이 다 나가지 않아 편집국으로 옮겨 오곤 했는데, 학교 축제 기간에 웬일인지 학내 가판대에 쌓여 있던 신문이 온데간데없었다. 이 신문이 어디로 갔나 했는데 노천극장에서 공연을 기다리면서 그늘이 없으니까 얇고 넓고 가벼운 연세춘추가 햇빛가리개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학생들이 더 이상 학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2013년 1학기 학교가 ‘자율경비 선택납부제’를 실시하면서 숫자로 드러나 버렸다. --- 「21세기의 대학, 대학 언론의 좌표」 중에서 현재 대학 언론은 기자가 쓰려는 것과 독자가 읽으려는 것 사이의 괴리를 겪고 있다. 70, 80년대에는 그것이 일치했다. 그때도 학생들의 관심사는 다양했지만, 시국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한 하나의 의제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은 학생 기자와 독자 사이의 틈이 벌어져버렸다. 대학 언론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 중심적이어야 하고, 다양해야 한다. --- 「연세춘추동인회 주관 대학 언론 좌담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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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언론 역사의 정직한 회고록이자
대학 언론과 함께했던 청춘들의 희로애락 기록 대한민국의 기록을 돌이켜보면 항상 대학 언론이 함께 있었다. 대한민국의 시간 속에서 대학생은 언제나 목격자임과 동시에 행위자였으니, 그들이 대학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남긴 모든 잉크 자국이 대한민국 역사의 획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학 언론, 두 세기의 대화』는 이처럼 대한민국 역사에 많은 부분 기여했음에도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던 대학 언론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는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대학 언론의 역사를 통하여 당대 대학인의 총체적 인식을 파악하고, 변천 과정을 성찰함으로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대학 저널리즘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다. 나아가 대학 언론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회고는 한국 언론사의 전사이자 공백으로 남아있는 부분에 대한 점검의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거시적인 관점의 대학 언론으로 국한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대학 언론의 주체인 대학 언론인 개개인의 진솔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옮겼다는 점에서 『대학 언론, 두 세기의 대화』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 언론이 갖는 사회적, 역사적 의미와 함께 언론인이 가진, 가져야 할 사명과 역할에 대해서도 성찰하게끔 만들며, 당시 보도할 수 없었던 시대상에 대한 배경을 기록으로 남겨 사료적 가치 또한 더하였다. 이 책을 통해 대학 언론의 위상과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