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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발언 뒤에 남는 것들 같은 숫자, 다른 승패 불안으로 번역된 정치 되돌아온 심판 ‘재건’이라는 권력의 자격 낮은 말, 낮아지지 않은 권력 누가 ‘진짜’ 주인인가 대중의 손에서 폭발한 말 아직 오지 않은 위험의 질서 말이 통치가 되는 곳 에필로그 말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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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화면에는 대개 말의 표면만 남는다. 하지만 정치는 그 표면 아래에서 움직인다. 현장에서 자꾸 눈에 밟힌 것은 받아쓴 문장 자체가 아니었다. 발언의 한 겹 아래에서 작동하는 힘이었다. 그 힘은 문장의 맨 앞에 놓인 단어에 있기도 했고, 특정 표현의 반복 속에서 커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감정처럼 보이는 말 안에 숨어 있었다.”
--- p.8 “이겼다는 말은 어느 부분을 부풀리고, 졌다는 말은 어디를 비워두는가. 책임을 인정하는 문장은 어느 지점에서 자기 방어로 바뀌는가.” ---p.16 “‘아쉬운 결과’와 ‘참패’의 차이는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었다. 아쉬운 결과라면 불씨를 살려낸 지도부가 남은 임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참패라면 그 결과를 만든 지도부가 책임지고 물러나야 했다.” --- p.34 “권력자의 언어는 정책의 경계에 선 1주택자들에게 ‘나도 단죄의 대상인가’라는 불안을 불러일으켰고, 야당은 이를 ‘세금폭탄’과 ‘최후의 보루’라는 직관적인 말로 번역해 확산시켰다. 서울에서 부동산은 집값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산의 미래이자, 정치가 개인의 삶과 기회를 가장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통로였다.” --- p.55 “오히려 상대를 향해 도덕적 심판의 잣대를 높이 세울수록, 그 잣대는 말을 꺼낸 권력에도 돌아왔다. ‘이재명과 조국은 어떤가’라는 질문은 곧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얼마나 공정하고 상식적인가’라는 역질문을 불러냈다.” --- p.70 “강한 이름을 붙였다고 판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름이 발화자의 책임을 불러내면 시선은 역전될 수 있다. 상대를 벌하는 말만 남으면 대안의 자리는 반대편이 차지한다.” --- p.73 “정치에서 미래의 이름을 먼저 차지하는 것은 그 미래를 설명할 기준을 먼저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대표직 유지와 지도부 교체, 제명된 인물의 복당은 모두 재건을 위한 선택으로 설명될 수 있었고, 상대는 재건을 가로막는 책임자나 질서를 해친 인물로 배치됐다.” --- p.76 “결국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말이 행동과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불일치를 덮는 장치로 바뀌는 순간이다. 어조가 아무리 낮아져도 실제 국정의 변화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 언어는 설득력을 잃고 권력과 민심 사이의 간극만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 p.95 “이 시기 대통령의 발언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않으면서도 정치적 선택의 구도를 나누고, 정책 논쟁을 도덕의 문제로 옮기며, 비판의 내용보다 비판하는 시선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 p.102 “이름을 한데 묶으면 각 인물의 정책과 정치적 위치보다 그가 어느 편에 속하는지가 먼저 보인다. 복잡한 노선 차이는 짧은 멸칭 안에서 하나의 적대 구도로 압축됐다.” --- p.133 “이 말들은 단순한 유행어나 전당대회용 선거 구호가 아니었다. 당권 경쟁, 대통령과 당의 관계, 기존 지지층과 새롭게 유입된 지지층의 충돌, 민주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이 한꺼번에 압축된 언어였다. 겉으로는 사람과 세력을 가르는 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민주당의 주인이 누구이며 집권당은 어떤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누구의 언어로 정의할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 p.135 “말은 여의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여의도를 흔들 수 있게 된다. 말의 권력이 가장 강력해지는 순간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말할 때만이 아니다. 최초 발화자의 손을 떠난 말이 대중의 것이 되고, 그 말로 움직인 대중이 다시 권력과 제도를 움직일 때다.” --- p.140 “말의 권력은 그 말의 무게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말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나온다. 말은 대중의 손에 넘어갈 때 폭발한다.” --- p.160 “위험은 언제나 사건이 벌어진 뒤에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아직 오지 않은 군중의 숫자로 먼저 계산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피해의 가능성으로 규정되며, 누군가의 일상적인 말에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면서 만들어진다. 어떤 가능성이 ‘위험’이라는 이름을 얻는 순간 행정과 제도, 사람들의 시선은 실제 사건보다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 p.163 “말의 권력은 이미 벌어진 사건을 해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가능성에 먼저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으로 현재의 통제와 판정을 움직이기도 한다.” --- p.183 “이재명식 엑스 정치를 둘러싼 핵심 질문은 대통령이 SNS를 많이 쓰는 것이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다. 대통령의 질문과 지시, 개인적 의견과 정책 신호를 어디까지 구분할 수 있는가다. ‘의견을 묻는다’는 문장이 부처에는 검토 지시로, 시장에는 정책 예고로, 지지층에는 확산 요청으로, 야당에는 공격의 표적으로 읽힌다면 그 문장은 이미 권력 행사에 가까운 정치적 효과를 낸다.” --- p.210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엑스는 이미 대통령의 국정 수행 방식을 정의하는 핵심 장치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엑스에서 말을 많이 하는 대통령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엑스에서 말로 정부를 움직이고, 움직이는 정부를 다시 보여주는 대통령이다.” --- p.211 “이곳에서 말은 무엇을 문제라고 부를지 정하고, 무엇을 먼저 보게 할지 가르며, 누가 답해야 하는지를 지정하고, 정부가 어디로 움직일지를 먼저 알리는 힘이다. 권력이 법률과 예산으로 완성되기 전, 말의 형태로 먼저 행사되는 곳. 이재명 대통령의 엑스 정치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말의 권력’ 그 자체다.” --- p.212 “말의 권력은 발화의 순간보다 그 이후에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누가 그 말을 받아 반복했고, 어떤 감정과 행동이 뒤따랐는가. 그 말로 누가 책임자가 됐고, 누가 중심에서 밀려났으며, 어떤 정책과 행정이 시작됐는가. 그 궤적을 끝까지 따라가야 말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볼 수 있다.” --- p.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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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말 가운데 무엇이 살아남아 권력이 되는가.
최근의 정치는 이미 충분히 기록된 것처럼 보였다. 정치인의 회고부터 비상계엄과 탄핵을 둘러싼 증언과 기록, 선거 결과와 유권자의 선택에 대한 분석, 정치인의 말하기와 정치 언어의 프레임을 다룬 책까지 잇따라 나왔다. 인물의 선택과 사건의 전말, 선거 결과를 낳은 요인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기록되고 분석돼왔다. 그렇다면 또 한 권의 정치 서적은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말의 권력》은 최근 정치를 다시 요약하는 대신, 권력이 태어나고 무너지고 옮겨간 과정을 ‘문장의 역사’로 복원하며 이 질문에 답한다. 이 책이 통과한 2년여 동안 권력의 주체와 각 세력의 위치는 연달아 뒤바뀌었다. 집권 세력은 총선에서 민심의 심판을 받은 뒤 비상계엄과 탄핵을 거쳐 권력을 잃었고, 야당은 새로운 국정의 주체가 됐다. 새 정부도 불과 1년 만에 다시 유권자의 평가를 받았다. 그 사이 패배한 권력은 복귀를 정당화할 이름을 찾았고, 승리한 권력 안에서는 계승의 자격을 둘러싼 경쟁이 벌어졌다. 이미 끝난 승패도 어떤 말로 불리느냐에 따라 다음 권력의 명분이 됐다. 이 책은 서로 떨어져 보이던 사건들을, 말이 결과를 해석하고 그 해석이 다음 정치의 출발점을 만드는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다. 이 책은 힘을 얻은 말만 좇지 않는다.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말, 말에 상응하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 말이 어떻게 설득력을 잃고 도리어 권력의 한계를 드러내는지도 함께 살핀다. 그 흐름은 여의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말은 처음 등장한 자리를 벗어나 대중의 반복과 변주, 선택과 행동을 거치며 전혀 다른 힘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대중은 정치의 말을 전달받는 수신자가 아니다. 대중은 어떤 말은 살리고 어떤 말은 소멸시키며, 그 힘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그렇게 힘을 얻은 말은 정치권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이 경로는 통치의 내부로 들어간다. 이는 한 정치인의 새로운 SNS 활용법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소통법을 함께 놓고 볼 때 드러나는 구조적 변화이자, ‘엑스’라는 플랫폼이 메시지 전달 수단을 넘어 통치가 시작되는 장소로 바뀌는 장면이다. 《말의 권력》은 정치가 완전한 과거가 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승패의 의미와 권력의 자격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이 현재형으로 충돌하던 순간을 나란히 기록했다. 그러나 속도에만 기대어 쓰인 단발성 시사 기록은 아니다. 확인할 수 있는 발언과 반응, 실제로 이어진 결과를 연결하며 어떤 말이 살아남아 현실을 움직였는지 끝까지 추적한다. 오늘의 정치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이 책의 약점이 아니라 존재 이유다. 훗날 확정된 하나의 해석으로는 복원할 수 없는 경쟁과 긴장, 말이 힘을 얻는 바로 그 순간이 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레드캠프는 《말의 권력》이 가장 현재적인 정치의 기록이면서, 그 현재가 지나간 뒤에도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책이라고 믿는다. 흩어진 장면들을 하나의 권력 작동 구조로 연결하고, 이미 알려진 사건뿐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말이 힘을 얻는 순간까지 읽게 하는 책. 이것이 우리가 《말의 권력》을 지금 펴내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