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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 그 영원한 이름
중광, 내 속 무던히 썩혔다 한 많은 년 한 쪼까 풀어주시오 예순 육갑 풀어 십시왕을 불러놓고 초향이, 그 춤 한번 보고 싶다 예술이 널 도와줄 때가 있을 것이다 이야, 붓대롱이 밥 먹여 준데? 장아찌도 팔자를 고쳐야 맛나 겨울 숭어 얹은 자리, 뻘만 훔쳐 먹어도 달다 속알머리 없는 사내 가슴 울렁거린다 내 오랜 동료를 팔 수가 없다 니 세상을 살다 가야제 덤으로 사는 데 뭐가 무서울끼고 2. 당신의 삶보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둘째만 생각허면 뼈마디가 시려 방죽을 파면 머구리가 뛰어들어 소도 어덕이 있어야 비비제 어무이, 나도 아들 낳을 때가 있소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을들 니 엄미 공 갚겄냐 발바람에 동상 걸렸제 부잣집 며느리, 개 밥 꿂듯한다 꺼꾸로 매달아도 산세상이 좋다 않더냐 소한테라도 푸접 삼고 살을래 어매 어매 우리 어매 뭘할라고 날 낳아서 내가 눈 뜬 장님이다 아무리 더워도 나쁜 나무 그늘에서는 쉬지 마라 내 문전에 온 손은 흔연히 대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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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순창서 300년을 넘게 살아온 대감집이야. 해마다 고추장을 담가서 이웃집도 한 단지씩 나눠주기도 하고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한테도 보내주고 친척들한테도 선물하고 그랬는데 그쪽에서 맛있다고 좀 살 수 없냐고 성화니께 그러다 저러다 보니까 고추장을 대량 담게 되었제.
처음에는 기관에서 많이 찾았어요.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예부터 순창고추장이 유명하다고 찾으니까 열 단지, 스무 단지, 서른 단지, 그렇게 연방 가져가. 그러다 81년인가 국풍 때 지방 특산물로 순창고추장을 조금 가지고 갔는데 눈 깜짝 할 사이에 다 나가 버렸어요. 그때부터 판매도 하고 그랬죠. 이 집 와서 고추장 담근지도 스무살 때 시집와서 설 되면 육십삼이니까 사십삼년이 되네요. --- p.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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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여든 하난데 한 육십만 되어도, 아니 일흔만 되아도 펄펄 날겄어.' - 팔순에 한글공부시작한 김연임 할머니
---p.261,---pp.1-3,--- 본문 중에서 '명인으로 지정되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찾아오네요. ~ 또 어란은 순전히 수공이고 정성인데 기계로 대량생산하년 그 맛이 나오겠어요. ~ 잘하면 잘 하는 대로 기다려주고 지켜봐야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용하여 떼돈을 벌까 그 생각만 하는 게 아닌가. 사람이란 게 돈에 현혹되기 쉬운데 그런 식으로 자꾸 집적거리면, 사람 맘이 지조만 가지고 살겠어요.'- 어란 명인 김광자할머니---p.102,---pp.16-23,--본문 중에서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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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여자』에는 스물 다섯 명의 어머니들 삶이 소개되어 있다. 제1부는 자신의 목소리와 색깔을 가지고 살아온 어머니들의 삶을, 제2부는 자식과 남편과 가정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어머니들의 삶이 소개되어있다. 제 1부 <어머니, 그 영원한 이름>에는 중광스님의 어머니로 중광의 예술세계를 열어준 박혜련, 병신춤의 명인으로 수많은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나 여인으로서는 한없이 외롭다는 공옥진, 씻김굿 단골무당 채정례, 고된 시집살이를 견뎌낸 끝에 고추장 할머니라는 명성을 얻는 문옥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기폭제인 소녀회를 결성했던 박옥희, 지리산 빨치산이었던 고계연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제2부 <당신의 삶보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에는 징용에 끌려간 남편을 44년 만에 만난 현학단, 묵정밭이라도 일구어 자식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신길순,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딸을 열이나 낳은 임근순, 바람이 나서 자식과 집안까지 버린 남편 대신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삼베를 짜다 발 바람에 동상까지 걸렸다는 김복남, 남들은 효부라고 상까지 주었지만 병든 시부모 모시는 일이 너무 힘들어 어매타령을 불렀던 김이례, ‘뼈끝 깨끗하고 옳은 귀신 소리 들어라’던 친정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여 스물 두 살에 혼자 되어 지조를 지켜왔다던 김금례,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팔순에 한글공부를 시작한 김연임, 선영을 모시기 위해 사당을 지키는 김효연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부모는 산에다 묻고 자식은 가슴에도 묻는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가난과 병고로 어린 자식들을 두세 명 앞세우는 게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식의 발에 흙이 묻기 전에는 호적에도 올리지 못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다 묻는다는데, 박혜련은 6남매를 낳아 6남매 모두를 잃었다. 인생이 허무하여 머리를 깎고 출가, 고행을 하던 중에 중광 스님을 만나 모자의 연을 맺고 오늘날 중광 스님의 예술세계를 열어주었다. 중광 스님은 “오늘날 내가 있기까지는 어머니의 눈물과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장남만은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 우리네 어머니들이다. 장남을 집안의 기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민경련 할머니는 30여 년 동안 하숙을 쳤다. 큰아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큰아들은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여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둘째아들은 택시기사다. 물론 스스로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보낸 게 지금도 후회스럽다. 잠을 자다가도 밤거리를 헤매고 있을 둘째아들만 생각하면 뼈마디가 시립다고 한다. 문맹이 한이 되어…, 내가 눈 뜬 장님이다 가난 때문에도 배우지 못했지만, 예부터 여자가 그릇 한 죽(20개)을 샐 줄 알면 팔자가 사납다는 것 때문에 딸들의 교육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글을 알지 못하니 답답하고 부끄럽다. 팔순이 넘어서야 한글공부를 시작한 김연임의 문맹 탈출기가 눈물겨운 것은 이 때문이다. 한 자 한 자 배우는 즐거움에 5년 동안 결석 한번 하지 않고 한글교실에 다니는 김연임 할머니는 이제야 눈 뜬 장님에서 벗어날 수 있어 세상이 온통 밝다고 말한다. 딸을 열이나 낳았으나…, 대를 잇지 못하면 산목숨이 아니다 한국 여인에게 있어 가문의 대 잇기는 목숨과도 같았다. 대를 잇지 못하면 공공연하게 씨받이를 들였고 둘째 부인에게 안방을 내주어야 했다. 임근순씨는 3대 독자 며느리로 딸을 열 낳았다. 시댁 어른의 질타와 남편의 구박 속에 드디어 열한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을 낳기 위한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과 아들에 대한 그녀만의 철학을 들어본다. 니 뼈끝 깨끗하고 옳은 귀신 소리 듣는다 두 살 된 아들과 임신 6개월 된 아내를 두고 군에 간 남편은 죽어서 아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 둘. 젊은 딸이 행여 마음이 변할까봐 친정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한다. “박실아. 맘 변하지 말아라. 혼자 살기 정 힘들면 치마에다 돌 가득 담아서 물 속에 뛰어들어라. 그러면 니 뼈끝 깨끗하고 옳은 귀신 소리 듣는다.” 뼈끝 깨끗하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평생 홀시어머니 모시고 농사를 짓고 사는 김금례씨의 외로움을 누가 알겠는가. 절개와 지조라는 이름으로 청춘을 보냈던 어머니가 어디 김금례씨 혼자 뿐이겠는가. 언젠가는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독립운동가에서부터 빨치산까지 소녀회를 결성했던 박옥련 할머니,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장재성씨의 미망인 박옥희, 지리산 빨치산이었던 고계연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무너지고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