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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국희 저
전망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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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사라짐과 살아냄 사이


당신의 밤은 안녕하신가요

누가 만고의 죄인일까

사라진 집

도서관 옆 공원묘지

단비

어느 아버지의 해방일지

광장에서

역사는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불멸의 틈 사이로


가족독서토론단, 책수저

크산티페의 길

무해

차가는 달이 보름달이 될 때

가덕도

보물찾기

틈새 사이 빛


불러보고 싶은 이름


이름의 완성

사주단자

삼베

꽃샘추위

우정의 변주

기억의 서식지에서 들려온 경고

의령을 지나며

순자 씨


겹겹의 눈부심


불완전한 아름다움

1~5g의 실존, 마스크

그날,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면

호이안의 밤

자박자박 다시 걷는다

국수 한 그릇

마네킹의 마음

다시 여행을 꿈꾸다


가족독서모임 녹취록

독서 서평

저자 소개 1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2022년 우연히 16회 <동서문학상>에 공모해 수필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그 시절 인생이 나에게 관대하지 않다고 투덜거리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단발성 운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면서 한 번도 꾼 적이 없는 꿈을 갖게 되었다. 단순한 쓰기가 아니라 문학이기를 바라며 읽고, 쓰고, 사유한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려 한다. 공저 『종이배에 별을 싣고』, 『부산에 삽니다』, 『성실한 불온, 김수영』, 『세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2022년 우연히 16회 <동서문학상>에 공모해 수필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그 시절 인생이 나에게 관대하지 않다고 투덜거리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단발성 운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월간문학≫으로 등단하면서 한 번도 꾼 적이 없는 꿈을 갖게 되었다. 단순한 쓰기가 아니라 문학이기를 바라며 읽고, 쓰고, 사유한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려 한다.
공저 『종이배에 별을 싣고』, 『부산에 삽니다』, 『성실한 불온, 김수영』, 『세계는 매번 우리를 첫 페이지에 앉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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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54g | 130*205*15mm
ISBN13
9788979736731

책 속으로

가족독서토론단, 책수저


십 분 전이다. 열어 둔 노트북은 조용하다. 따듯한 차 두 잔을 식탁 위에 놓는다. 찻잔 옆에 책 한 권이 얌전히 누워있다. 모든 게 준비되었다. 개막식이 다가오듯 마음이 들뜬다. 상기된 목소리와 함께 반가운 얼굴이 노트북 화면에 쏙쏙 나타난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귀가 쫑긋해진다. 눈은 화면에 고정된다.

“안녕하세요. 안녕.”

“두 분 식사는 하셨어요?”

“언니 요즘 바빠? 통화가 어렵네. 아버지는 지금 뭐 마셔요?”

“그래 다들 잘 지냈지? 반갑다.”

네 개로 분할된 노트북 화면에 슬쩍 손을 갖다 대며 쓰다듬는다. 다정하게 웃는 그들과 눈으로 안부를 묻는 순간이다. 딱딱하고 차가운 노트북에 온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그때 갑자기 “야옹”소리가 들린다. 첫째의 반려묘 슈만이 급하게 튀어나와 인사한다. 그도 가족으로 제 역할을 하겠다는 듯 침대에 턱 걸터앉아 화면을 빤히 바라본다. 모두가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건넨다. 슈만은 고개를 까딱이며 새침하게 눈을 내리깐다.

책을 꺼내고 노트와 펜을 찾는 모습이 분주하다. 책상 혹은 식탁 앞에 음료수, 물, 간식거리가 놓여 있다. 저녁 8시, 오늘 발제자인 첫째가 구름처럼 둥둥 떠 있는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지금부터 독서토론을 시작합니다. 먼저 돌아가면서 각자 읽은 감상을 말해주세요.”

이 모든 순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이 되기까지 걸어온 시간은 물 흐르듯 평탄하지 못했다. 우여곡절이 걸림돌처럼 놓여 있었다. 때론 강한 물살에 실려내려 갈 뻔도 했다.


“책 읽기 함께 해요.” 뜬금없는 제안에 당황했다. 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입시 결과와 상관없이 여행을 보냈다. 2015년 겨울엔 셋째의 차례였다. 셋째의 여행에는 실직한 남편과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둘째가 동행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세 사람이 큰 결심을 한 듯 ‘가족독서모임’이야기를 꺼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책을 싫어하는 셋째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대학까지 보냈으면 됐지 뭘 또 한다고. 더 이상 아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별로야, 그리고 자신도 없어.” 나지막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둘째가 말했다.

“효정이가 제안했어요.”

“뭐라고?”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입학한 학과가 영화과라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해요. 게다가 특성화고 출신이라 수업을 따라가는데 부족할까 고민도 많고…. 그래서 책이라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은데, 혼자서는 자신이 없다고 해요.”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뭔가를 제안하면 딸들은 거부했다. 그러다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중도에서 그만둔 일들이 많았다. 데자뷔 같은 상황이 또 되풀이될 것 같아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내가 제안한 게 아니었다. 막내가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었다.

제안자가 바뀐 것이었다. 책과 친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의견을 낸 셋째의 시간이 상상되었다. 어렵게 꺼냈을 마음에 가장 두려운 벽은 엄마였는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생각하니 단지 내 마음 편하기 위해 외면할 순 없었다. 힘겹게 내민 손을 뿌리친다면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았다. 머쓱해진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하는 ‘가족독서모임’이 결성되었다.

드디어 2016년 3월 셋째 주 일요일, 이시카와 야스히로 작가의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를 읽고 ‘가족독서모임’이 출발했다. 김애란 『바깥은 여름』, 정재승 『열두 발자국』,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션 캐럴 『빅 픽쳐』, 최은영 『밝은 밤』, 조선희 『상식의 재구성』,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첫 가족독서모임에서 남편이 제안을 하나 했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모임의 주된 목적이지만 예로부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는데 먹는 즐거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 맛있는 식사 먼저하고 하는 건 어때?” 모두가 동의했다. 그리고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중략)…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토론은 신나고 진중했다. 쏟아지는 생각과 폭포처럼 떨어지는 말은 초록 바람처럼 상쾌했다. 가끔 주제와 멀어지는 이야기로 인해 시간이 늘어져 피곤해지기도 했다. 토론을 핑계로 사담을 나누다가 눈총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더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움텄다. 그 길목에서 서로는 든든한 인생의 독자가 되었다.

‘가족독서모임’은 우리 가족에겐 밥상이었다.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밥상에서 밥을 먹듯 책상과 식탁에서 세상을 살아갈 양식을 먹었다.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밥상을. 밥상 위에 차린 음식이 비록 달랑 책 한 권이었지만 그 맛은 수라상인 12첩 반상으로도 담을 수 없었다. 밍밍한 하나의 맛일 거라 여겨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우연히 음미한 그 맛은 쓰다고 하기엔 달콤했고 담백하면서도 상큼한 풍미가 은은하게 스며 있었다.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매혹적인 맛, 건강하면서도 중독성이 강한 맛이었다. 그 맛에 취해 어느새 우리 가족은 금수저가 아닌 책수저가 되었다.

오늘도 열띤 토론이 노트북 화면에 고스란히 담긴다.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열기가 식을만 한데 여전히 모두의 눈빛이 빛난다. 무엇을 맛있게 먹을까? 번뜩이는 모든 감각이 살아 수런거리는 순간이다. 밥상을 앞에 둔 우리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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