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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炳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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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떠난 뒤 석모도에 오시면 전신주의 소실점 구도 속으로 이어지는 염전의 소금 창고들을 지나 민머루 해변의 솔밭도 거닐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도회에서 묻혀오는 허망한 욕심들까지 솔바람 속에 비늘처럼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청정한 솔바람은 쏴아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몸을 훑고 지나가면서 '버리라. 버리라' 속삭여 줍니다. '감사해라'고 속삭여 줄지도 모릅니다.
--- p.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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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이제나 대중의 속성은 잔인하다. 배우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울고 웃으며 열광하다가도 돌아서면 눈흘기고 침뱉기 일쑤다. 노모와 함께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돈만 있다면 무대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울먹였던 이월화. 나이 들면서 서서히 무너지는 자신의 외모와 샛별처럼 빛을 발하며 떠오르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느꼈을 서글픔과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p.262-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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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사는 지금 퇴락해 있다. 집 뒤의 단송과 대숲만이 바람결에 옛 시인의 넋을 전해줄 뿐이다. 시인이 음독 순절했던 생가와 맞배지붕 사당이며 팔작지붕 유물관 등은 한결같이 퇴락해 있다. 한말 우국지사의 죽음 현장마다에서 매천의 시는 그 죽음을 증언하는 한 떨기 붉은 꽃으로 피어났다. 그의 시는 시대의 어둠을 밝힌 광망의 불꽃이었던 것이다. 시우 명미당 이건창의 부음에 강화까지 천리길 한달음에 와서 통곡의 시를 남겼던 그는 을사조약체결(1905, 광무 9년)로 민영환이 자결했을 때 '혈죽'이라는 시를 써서 그 혼을 위로했다.
--- pp.118-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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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조의금이 몇백 걷혔다. 생전에 그렇게 '큰돈'을 만져본 적 없는 시인의 장모는 가슴이 뛰었다. 이 큰돈을 어디다 숨길까.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 거기라면 도둑이 든다해도 찾아낼 수 없을 터였다. 노인은 돈을 신문지에 잘 싸서 아궁이 깊숙이 숨기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그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타오르는 불길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이상했다. 땔나무 불빛 사이로 배추 이파리 같은 것들이 팔랑거리고 있었다.
조의금은 그렇게 불타버렸다. 다행히 타다 남은 돈을 한국은행에서 새돈으로 바꾸어주어, 그 돈을 먼저 떠난 시인이 '엄마야'며 따르던 팔순의 장모님 장례비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은 늘 '엄마'의 장례비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 p. 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