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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들기 벌거벗은 힘으로 산 권진규 봄 마당 하나 [도모], 사랑을 만남 둘 [기사], 세상으로 나아감 여름 마당 셋 [춤추는 뱃사람], 검푸른 시대를 헤쳐감 넷 [지원의 얼굴], 우담바라 꽃 세 송이를 빚음 다섯 [재회], 다시 만났으나 다시 헤어짐 가을 마당 여섯 [손], 솜씨를 다해 혼을 빚음 일곱 [자소상], 나를 드러내 보임 여덟 [십자가 위 그리스도], 구원을 기림 겨울 마당 아홉 [불상], 미륵의 강림을 염원함 열 [흰소], 예술을 기리며 떠남 맺기 2022 새로운 여정에 듦 주 참고 문헌 작품 목록 |
許卿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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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권진규에게서 겨울 참나무를 본다. 겨울 참나무의 벌거벗은 몸통과 가지에 돋아있는 힘, 나력을 본다. (…) 눈바람 치는 겨울날 두 팔 벌리고 선 참나무를 본다. 비운의 혼이 아닌 투사의 혼을 본다. 살아생전 그는 자신이 가치를 둔 리얼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투혼을 쏟아부었다. 추상 조각의 대세 속에 포위된 채 홀로 입지를 구축해 보려는 참호전 같은 것이었다.”
--- p.16 - “예술가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다. 작품을 통해서다. 작가의 삶을 배반하는 작품은 없다. 작가의 삶으로부터 유리(遊離) 된 작품은 없다. 명작이든 졸작이든 그러하다. 작품을 보면 삶이 보인다. 그들이 내는 작품은 그들이 살아온 삶의 고백이다. 이 책은 조각가 권진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좀처럼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의 삶을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은 그 고백을 감히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작품을 통해 그가 고백한 그의 삶을 민낯 그대로 드러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삶으로 다시 그의 작품을 보고자 한다.” --- p.19 - 예술 작품을 기존의 시각과 달리 보는 것은 금지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며 또한 반길 일이다. 그만큼 해당 작품이 품은 바가 풍부하다는 반증이며 그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이 다면화 · 다각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p.99 - “[지원의 얼굴]은 망토의 단추를 채우지 않고 있다. 입은 것이 아니라 걸치고 있다. 걸치고 있는 망토는 게다가 놀랍게도 여성 망토가 아니다. 단추가 [지원의 얼굴] 가슴 오른편에 달려 있다. 남성 망토인 것이다. 의도적 설정임에 틀림없다. 또렷한 형태로 세 개나 달아 놓았다. 작가는 보는 사람들이 곧 알아채 주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그러나 전시에 출품한 지 50년이 넘도록 아무도 알아채 주지 않았다. 모두 무심한 마음으로, 깍지 낀 눈으로 보아 왔기 때문이 아닐까.” --- p.108-109 - “포장은 때때로 내용을 감춘다. 때로는 내용을 압도한다. 눈에 띄는 현란한 무늬 포장지의 용도이기도 하다. 권진규는 저널리즘이 입힌 천재화, 비운화의 포장에 싸여 있다. 그의 작품은 동양적 신비주의가 입힌 종교화, 신비화의 포장에 싸여 있다. 이제 그 무거운 포장들을 벗겨 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를 보다 실제에 가깝게 보고 이해하며 그의 작품을 보다 다면적으로 알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 p.112 -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 자이다. 만든 작품으로 전시회에서 관람자에게 말을 거는 자이다. 화자(話者)이다. 관람자는 작품을 보는 자이다. 작가가 거는 말을 들으러 온 청자(聽者)이고 들은 말을 되새김질하는 독자(讀者)이다. 그렇게 예술 작품은 전시회에서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대화로 완성된다. 같은 작품이라도 대화는 천차만별이다. 독자의 눈에 달렸다. 비평 혹은 해설이란 이 대화를 돕는 행위이다. 작가가 작품의 저자(author)라면 관람자와 해설자는 작품을 함께 완성해 가는 공동 작업자(collaborator)라고 할 수 있다.” --- p.140 - “이 점에서도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리고, 대중은 버스로 간다며 양자 간 소통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백남준과 사뭇 달랐다. 권진규는 보통 사람들의 속도를 존중하고 신뢰했다. 그에게 예술 작품이란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게임 같은 ‘사기’가 아니라 그들과의 진지한 ‘대화’ 속에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 대화에 성공하기 위해 설혹 낼 수 있는 속도가 다를지라도 예술가는 승용차가 아니라 버스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었다. 버스 안에서 가슴에 민중의 감정을 안고 머리에 민중의 얼을 올리고 함께 가야 하는 것이었다.” --- p.148 - “그(권진규)의 죽음은 비탄 속 질문과 함께 그렇듯 따가운 추궁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누군가 이에 답해야 한다. 사자(死者)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한다. 후학 연구자의 몫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아직 나온 연구가 없다. 허락한다면 감히 나라도 시도해 보고자 한다. 나의 눈에 그는 분명 예술가로서 평가 받을 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나름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위한 변명을 쓰고 싶은 것이다. 후에 누군가가 그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 주기를 고대하며 쓴다.” --- p.203 - “이카로스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솟아올랐다. 한참 한참을 올랐다. 더 이상 태양을 향해 갈 수 없는 고도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날갯짓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이 이노베이터의 운명이다. 챔피언의 운명이다. 그래서 권옥연은 ‘진규 아저씨’의 1주기 추모전에 붙인 글에서 그가 가난이나 병마 탓에 스러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도모한 ‘자기류’가 갖는 ‘한계’ 끝까지 추구하였고 더 이상 그 너머로 오를 수 없겠다는 좌절감 속에 떠난 것이라고 한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만이 받을 수 있는 오마주가 아니었을까.” (‘[십자가 위 그리스도], 구원을 기림’, pp.214-215) - “이 책 곳곳에는 (살아온) 세월이 숙성시켜 준 인생철학이 녹아들어 있다. 그 철학 잉크로 쓴 책이다. (…) 이 책을 탄생 100주년을 맞는 외삼촌 권진규의 영전에 바친다. 그의 조카이기에 쓸 수 있었다.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 p.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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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권진규 소개 조각가 권진규는 1922년 4월 7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45년부터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으며 6·25 전쟁 때 가족 모두가 월남,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정착하였다. 1947년 이쾌대가 개설한 성북회화연구소에 들어가 미술을 배웠다. 1948년 형 진원의 간병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해 들어갔고, 1949년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했다. 1953년 졸업하던 해 일본 이과전(二科展)에서 석조 [기사](1953), [마두 A](1952년경), [마두 B](1953년경)를 출품, 특대의 상을 수상하였다. 1959년 귀국하여 성북구 동선동에 아틀리에를 손수 설계해 짓고 1973년 5월 4일 떠나는 날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다. 동북아에서 앙투안 브루델(Antoine Bourdelle, 1861-1929)-시미즈 다카시(淸水多, 1897-1981)로 이어지는 예맥을 이었으되 자기만의 ‘자기류’를 추구, 석고-브론즈-목각-석조-테라코타-건칠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한국적 리얼리즘 조형 세계를 구축해 갔다. [지원의 얼굴](1968), [손](1968), [십자가 위 그리스도](1971) 등의 대표작을 남겼으며 2009년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의 창립 80년 역사가 배출한 졸업생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작가’로 선정되었다. 오늘날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 미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고려대학교박물관 등 국내 유수 미술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