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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한 팔레트와 이상한 손
2. 아를로 떠나는 고흐 3. 왼손잡이로 그려진 고흐 4. 반 고흐 형제 회사 5. 고흐의 자화상에 똑같은 얼굴은 없다 6. 아를, 태양의 종말 7. 합성된 얼굴 8. 생레미에서 그린 자화상 두 점 9. <왼손잡이 자화상>을 둘러싼 이야기 10. 이사크손의 갈등 11. 고흐의 종착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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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작품이 고흐가 그린 것이라면, 이 작품만 왼손으로 그렸다는 결과가 나온다. 단, 고흐의 왼손에 어느 정도의 표현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고흐의 작품 중에 왼손으로 그린 것이 절대로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왼손잡이>가 1889년 9월, 길고 심했던 발작 직후에 그린 두 점의 자화상 중 한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을 고흐가 그렸다면 오른손에는 '이상한 팔레트'를, 왼손에는 붓을 들고 있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 p.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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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고흐는 생레미의 정신병환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에서 입원생활을 시작한다. 고흐는 귀를 자른 이후 생레미 시설에 자원 입원하기까지 아를에서 있었던 약 135일 간의 고흐 생활에 관해서 논의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주민들과 끊임없이 이어지던 분쟁은 일단 자취를 감추었지만, 고흐의 정신은 그런 일을 치르면서 확실히 위축되어갔다. 그러면서 제작되는 작품수도 현저히 줄고, 충만함이란 차원에서만 보면 다른 시기의 작품에 비해 작품도 눈에 띄게 열악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1889년 1월부터 4월까지는 고흐에게 엄동(嚴冬)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 겨울에는 인식되지 못했지만 고흐의 영혼은 그 시기를 견디면서 영롱함과 깊이를 더해갔다. 그야말로 고흐의 인생은 빈곤, 굴욕, 그리고 고통과 같은 단어들이 어울리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에 남는 위업을 달성한 고흐는 바로 그런 생활 속에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흐는 그런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지구상에는 스스로 원해서 고통스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흐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고흐는 항상 자신을 이단과 역경이란 굴레 속에 놓으려고 했지만 그에겐 그 속에서도 붕괴되지 않을 만한 강인한 정신력과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낙천적인 성격이 있었다. --- pp. 172-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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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경제적 위기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했기에 주위 사람들을 비난하는 일은 스스로 삼갔다. 사망하기 직전에는 자신과 대립적인 이해관계에 놓여있던 요한나를 책망하는 일 따위도 하지 않았다.
고흐 자살은 궁극적으로 요한나를 용서하는 행위였다. 어느 별 아래서 생겨난 숙명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고흐 자살이 성립된다. 사람을 미워하고 한을 간직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끊을수 있을까?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이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바로 그순간에 바라는 것은 거울처럼 말고 고요한 경지이다. 한때 고흐는 분명히 요한나를 혐오 했을 것이다. 자신의 본심을 간파당한 듯한 그때 고흐의 모욕적인 시선은 요한나에게도 굴욕적인 것으로 전달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고흐는 요한나를 용서했다. 그는 모든것을 용서한 뒤에, 죽음을 맞이 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총탄은 고흐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고흐가 최후의 순간까지 얼마나 절실하게 삶을 소망했는지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가 있다면, 그의 인생의 근간을 형성해온 사랑이 영원히 계속되고 있음이 보이게 될 것이다. --- p.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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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살아 있는 동안 20점 정도의 자화상을 그렸다. 이 책『고흐의 증명』에서는 20점의 자화상 중 1888년에 제작된 자화상 한 점과 이듬해인 1889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세 점의 자화상이 소개된다. 고독한 미치광이 천재 화가로 불리는 고흐는 1890년 의문의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 세 점의 자화상은 자살 직전에 자신을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 자화상 중 한 점인 <왼손잡이 자화상>에 '비(非) 고흐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껴왔던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모두 자살 직전의 고흐의 정신 상태 때문일 것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그러나 화가인 이 책의 저자는 이 작품이 위작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철저한 조형성 검증을 통해 그 작품이 고흐의 자화상이 아님을 증명해낸다.
『고흐의 증명』은 그 동안 자명하다고 믿어온 사실에 대한 '뒤집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고흐상> 바로 잡기와 세계적인 명화로 인정받고 있는 <왼손잡이 자화상>의 위작 증명이다. 실제로 이 뒤집기를 인정 받으려면 방대한 자료로 무장한 지적인 공격이 필요하다. 또 고흐의 진정한 영혼과 만나고 싶은 열망과 고흐란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화가인 저자는 예술적 감수성과 치밀한 조형성 검증으로, <왼손잡이 자화상> 속에 담겨 있는 구체적인 사물과 그림이 표출해내는 세계를 분석하면서 그림의 실체를 낱낱이 밝힌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자화상이 언제, 누가, 왜 제작했는지까지 추리해낸다. 위작자를 추적해가며, 그 위작자의 황당한 제작 동기와 제작 시나리오, 그리고 그 위작자의 배후에 숨어 있던 공범자까지 추리해낸다. 이와 같은 저자의 추리와 해석은 속이 다 후련해질 정도로 설득력이 있다. 그동안 '고흐 신화'의 핵심에는 고흐의 병에 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자살에 관한 억측이 있었다. "고흐는 귀를 자르며 '발광'했고,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며, 퇴원한 후에는 자살했다" "동생 테오는 고흐를 헌신적으로 원조했고, 그 때문에 자신은 희생되었다" "고흐는 항상 극도의 가난으로 고뇌의 나날을 보냈으며, 생전에는 그림이 팔리지 않은 외로운 천재화가였다" 등, 몇 가지 별 관련 없는 요소들이 연결되어 잘못된 고흐상을 만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흐상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이것은 고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되어버렸다. <왼손잡이 자화상>은 이러한 고흐 신화를 증명하는 작품으로 막강한 영향을 끼쳐 왔다. <왼손잡이 자화상>에는 고흐의 어떤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장된 병과 왜곡된 정신이 담겨 있다. 그래서 만년의 고흐를 순교자니 수난자니 하는 종교적인 이미지와 결합시키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 병적이고 유약한 고흐의 모습을 그릴 때 빈번하게 사용되어 왔다. 이런 현상은 <왼손잡이 자화상>이 고흐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인지시켰고, 그런 분위기 속에 <왼손잡이 자화상>는 고흐의 작품으로서 조금도 의심받지 않고 당당히 존재해왔다. 따라서 <왼손잡이 자화상>의 위작 증명은 고흐의 신화를 뿌리째 흔들어버리는 작업이자 진짜 고흐의 모습과 만나는 작업이다. 이 책『고흐의 증명』은 고흐에 대한 진심으로 애정 어린 '동감'을 느끼게 한다. 한 거장의 자화상을 다룬다는 것 자체는, 마누엘 가써의 표현대로 그 거장과 교제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자화상에는 같은 시대나 후세의 사람들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얼굴이 그려져 있으며, 환경이나 감정에 따라 무수히 변할 수 있는 얼굴 중 유일하게 적절한 한 형태를 잡아 '불면의 증명'에 착수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화상을 감상하고 분석해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화가로서의 존재의 총체가 구현되어 있고 나아가서 그 시대의 전체의 정신이나 개인의 운명을 구속하는 것까지 알아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고흐와 함께 한다. 화가를 관찰하는 것이자, 그의 창작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젤은 앞에 두고 화필, 팔레트를 들고 있는 그와 함께 있는 특전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10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시대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형상으로 느껴질 만한 초상화를 그리는' 고흐와 함께 삶과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400쪽이 넘는 한 권 전체를 독파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저자와 함께, <왼손잡이 자화상>의 위작성을 증명한 조형성 검증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가다보면 어느새 고흐의 그림을 보는 눈이 떠진다. 게다가 파리를 떠나 아를, 생레미를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거장의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고흐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