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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초년기의 교육과 경험
제2장 서기장 마키아벨리 제3장 첫번째의 사절 임무들 제4장 첫 프랑스 사절 시기 제5장 속국의 반란과 발렌티노의 행적 제6장 발렌티노에 대한 사절 시기 제7장 첫 로마 사절 시기 제8장 두번째 프랑스 사절 시기. 첫 『십년기』. 민병대 제9장 마키아벨리와 피렌체사. 줄리오 2세에 대한 두번째 사절 시기 제10장 독일 사절의 시기. 피사 전쟁과 탈환 제11장 만토바ㆍ베로나 사절 시기. 세번째 프랑스 사절 시기 제12장 12시 정오 제13장 ‘비판에 잠긴 마키아벨리’ 제14장 산탄드레아의 ‘여가’ : 『리비우스 논고』와 『군주론』 제15장 사랑과 고통 제16장 ‘무료함’ 속의 글쓰기: 『당나귀』『만드라골라』『벨파고르』 제17장 『카스트루초 전(傳)과 『전술론』. 보잘것없는 돈에도 불구하고 역사 쓰기를 택하다 제18장 '나막신 공화국’ 사절 시기 제19장 역사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제20장 역사가이자 희극 작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제21장 ‘역사가이자 희극 작가이며 비극 작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제22장 육십평생에 제23장 결말 제24장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 제25장 ‘신이 내린 글’ 부록 : 마키아벨리의 ‘실패한 회심(回心)’을 다시 생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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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라네. 하지만 바람은 나를 더욱 괴롭게만 하네.
나는 우네. 하지만 울어도 가슴은 그저 쓸쓸하기만 하네. 나는 웃네. 하지만 웃어도 마음은 허망하기만 하네. 나는 태우네. 하지만 불꽃은 밖으로 피어나지가 않네. 나는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것들이 두렵기만 하네. 모든 것들이 나에게 새로운 고통을 주네. 그래도 바라면서, 나는 울고 웃고 태우며, 또 내가 듣고 보는 것들을 두려워하네. --- p.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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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열정으로 정치를 사랑한 마키아벨리의 일대기
16세기 이탈리아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만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른바 마키아벨리의 문제(questione del Machiavelli)(크로체), 마키아벨리의 수수께기(enigma of Machiavelli)(머콜리)로 요약되는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행적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논쟁은 여전히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리돌피의 『마키아벨리 평전』은 47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행적을 둘러싼 논쟁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일곱 차례의 수정과 보완으로 거쳐 완성된 것으로 마키아벨리에 관한 가장 훌륭한 평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른바 학술출판의 전범으로 평가받는 이 책에서 리돌피는 방대한 문헌학적 사료와 치밀한 실증적 연구를 바탕으로 그 동안 왜곡되었던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재구성해 내고 있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 가의 한 사생아의 아들로 잘못 알려진 마키아벨리의 혈통 문제를 바로잡은 일,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위치 폄하에 대한 재정립(사실 마키아벨리는 제2서기장, 10인위원회 서기장, 정무위원회 서기장을 겸임했을 뿐만 아니라 외교사절(대사)의 역할까지도 감당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의 핵심 개념이 『군주론』 이전에 이미 형성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리비치』의 작성 연대 정립 등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정치사상에 있어 잘못 알려졌던 크고 작은 사항들을 바로잡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분명 공화주의자였다! 무엇보다도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둘러싼 논쟁 중에 최대의 문젯거리는 과연 그가 공화주의자인가 군주론자인가이다. 자유를 너무 사랑하였다는 마키아벨리가 그 자유를 빼앗아 간 메디치가를 위해 봉직했다는 아이러니가 바로 마키아벨리가 친메디치파였는지, 혹은 그것을 가장한 반메디치파였는지의 문제를 발생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상반된 정치이념을 밝힌 『리비우스 논고』(공화제)와 『군주론』(군주제)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도 연결된다. 리돌피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분명 공화주의자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피렌체를 사랑하는 것만큼 공화주의를 애호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이념이 이탈리아 전체나 다른 유럽 국가들에까지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며, 특정 정치 이념의 이론적 적용보다는 당시의 현실에서 공화정이 더 적절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는 무엇인가? 군주는 악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전쟁이 꼭 필요하다면 그것은 정당한 것이며, 어떤 군주가 자신의 잔혹함으로 백성들에게 닥칠 더 큰 잔혹함을 막을 수 있다면, 그의 행위는 자비로운 것이다 등등. 리돌피는 『군주론』이 씌어진 시대 상황에 주목한다. 무질서와 부패, 가난이 판쳤던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은 마키아벨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구상했던 공화국의 이상을 보류시켰고, 그 대신 시대의 구원자, 새로운 군주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군주의 전범을 칭송될 만하고 누구나 생각하는 신적, 인간적 교의를 갖춘 인물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라 바람직한 결과를 이루어 내는 지도자에서 찾게 되었다. 마키아벨리를 이런 식으로 본다면, 『군주론』과 『리비우스 논고』에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적 모순이 해소될 수 있으며, 오히려 두 저작 사이에 명백한 통일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그래서 리돌피는 마키아벨리의 주요 저작들이 모두 동일한 정치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마키아벨리는 과거사에 대한 끊임없는 독서와 현재의 세상사에 대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이란 그 속에 담긴 욕망과 악덕, 약점과 미덕과 함께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정치 원리를 발견하였고, 이를 그의 모든 저작들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적 문제의 불가해성은 바로 이러한 측면들이 뒤엉키고 혼동되면서 초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요약하자면, 마키아벨리는 심정적으로는 공화주의자였으나, 결코 극단적인 이데올로그는 아니었다. 『군주론』과 『리비우스 논고』는 각각 군주국과 공화국에 대해 논하고는 있으나, 양자를 관통하는 원리적 통일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냉소적이면서도 예민하고 열정적이었던 시인, 마키아벨리! 이 책은 치밀하고 엄격하게 고증된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마키아벨리에 대한 리돌피의 애정이 가득 담긴 문학서의 체취를 지니고 있다. 그의 전기 곳곳에는 냉혹한 정치 이론가로서가 아니라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또 시와 희곡을 썼던 문필가로서, 그리고 도덕과 정치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서, 마키아벨리의 면모가 그야말로 인간적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리돌피는 마키아벨리의 품성과 행적 속에서 냉소적이면서도 예민하고 열정적인 시인의 정신을 찾아낸다. 마키아벨리는 현실 정치라는 냉혹한 이익의 각축을 과학적으로 관찰하는 데 흥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언제나 예술가와 시인의 즉흥성과 열정과 이상 속에 녹여내는 묘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저작에서 우리는 인간과 세상사를 날카롭게 관찰하고 도덕적 판단에 얽매이지 않은 채, 논리적 엄격성을 유지하면서 명쾌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남다른 능력을 보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그의 행동에서 겉으로는 변덕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한결같고, 가혹하며 신랄하고 냉소적이면서도 부드럽고 관대한 이중적 면모와, 미덕과 악덕의 측면을 과장해 보이려는 괴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사실을 충실히 전하면서도 그의 인간적 면모를 문학적으로, 나아가서는 시적으로 그려보는 것. 마키아벨리의 정치 관념들을 그의 기질과 함께 시대 속에서 성숙해 간 인간을 통해 보이고자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리돌피가 그려내고자 한 마키아벨리의 모습이다. 이 책에 나오는 방대한 주석과 참고문헌들은 평전이 갖는 학술적 빈약함을 잘 보충해 주고 있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시킨 역자의 성실한 설명은 이 책의 학술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격류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실천적인 지식인, 또 다른 의미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로베르토 리돌피(Roberto Ridolfi, 1899-1991)는 누구인가? 1899년 마키아벨리와 동향인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리돌피 가문은 마키아벨리 시대에도 종종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피렌체의 유서 깊은 명문가이다. 소년시절 곤충학자가 되고 싶어했으나, 생각을 바꾸어 고문서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서지학, 문헌학, 그리고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수많은 중요 문서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 업적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도 15-16세기 이탈리아 문학과 사상이 그의 전문 분야라 할 수 있다. 마르조토 문예상(1954)을 필두로 이탈리아 각지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고, 피사 대학(1960)과 옥스퍼드 대학(1961)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피렌체 대학에서 서지서적학을 가르쳤고(1952-57), 1957년에는 동 대학에 고인쇄술학 연구소를 설립하여 활동하였으며, 역사인문 분야 학술잡지들의 공동 편집자로도 활약하였는데, 특히 1944년 이래 《애서(愛書): 책의 역사와 참고문헌에 관한 잡지(La Bibliofilia: Rivista di Storia del Libro e di Bibliografia)》 편집자로 있으면서 많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1960년에서 1985년에 이르는 25년간 저명 일간지 《일 코리에레 델라 세라》의 문예란 고정 기고자였다. 특히 리돌피는 『마키아벨리 평전』, 『귀차르디니 평전』, 『사보나롤라 평전』 등 탁월한 전기들을 간행함으로써, 르네상스 시기 전기 분야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1991년 12월 자신의 노년 거주지 라 바론타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돌피는 수많은 글과 저서들을 남겼는데, 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15, 6세기 피렌체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연구서로서 『사보나롤라 평전』, 『귀차르디니 평전』, 『마키아벨리 평전』 등이 이에 속한다. 두 번째는 주로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회고적 성격의 것들이다. 그는 57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학문 역정을 되돌아보는 책을 썼으며, 이후 1983년 마치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예감하는 듯한 제목의 『라 바론타여 안녕』으로 오랜 문필 생활을 실질적으로 끝맺었다. 이 이야기체의 회고담들은 리돌피 개인의 인생 역정을 여러 측면에서 증언해 줄 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20세기 이탈리아의 지성사 자체를 조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91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기리는 학술 회의들이 열렸다. 그가 40여 년간을 책임편집자로 일했던 《애서》 지는 한 호를 할애하여 그를 기리는 특집호로 꾸몄다. 그 결과물들로서, 알레싼드로 올스키, 뤼지 발사모, 에우제니오 가렝, 조반니 스파돌리니, 인드로 몬타넬리가 서지학, 역사학, 문체, 인물 등의 측면에서 생전의 리돌피를 그린 『로베르토 리돌피』와 프란체스코 아도르노, 비토레 브랑카, 젠나로 사쏘 등에 의한 역시 비슷한 성격의 『로베르토 리돌피를 위하여』가 1992년에 동시에 간행되었다. 그리고 1996년 올스키 출판사 주최로 열린 리돌피 심포지엄의 결과로 이듬해 『로베르토 리돌피』라는 기념 연구서가 나오기에 이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