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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 Heming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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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목덜미에 깊은 주름이 잡혀 무척 여위고 수척해 보였다. 그의 두 볼에는 열대 바다의 뜨거운 햇볕에 그을려 생긴 양성 피부암 같은 갈색 반점들이 있었다. 그 반점들은 얼굴 양쪽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노인의 두 손에는 낚싯줄로 물고기를 잡아 올릴 때 파인 깊은 상처들이 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이제 막 생긴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 물고기 없는 사막의 침식지대처럼 바싹 메마른 묵은 상처들이었다. 노인의 모든 것은 완전히 늙어 있었다. 다만 힘차고 지치지 않는 바다 같은 두 눈빛에는 무엇에도 굴하지 않을 생기가 감돌았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소년이 바닷가 기슭으로 작은 배를 끌어올리는 노인을 도우며 말문을 열었다. “저는 곧 할아버지랑 다시 바다에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돈을 좀 벌었거든요.” 노인은 오랫동안 소년에게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문인지 소년은 노인을 잘 따랐다. “아니다, 얘야. 넌 운이 좋은 배를 타는 게 낫단다. 그들과 계속 함께 있으렴.” 그러나 소년은 노인의 말을 쉬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옛날에 혼자 팔십칠 일 동안이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저랑 함께 바다로 나가서 삼 주 내내 대어를 낚아 올렸잖아요. 생각나시지요?” “그럼, 기억하지. 네가 날 믿지 못해서 떠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단다.” --- pp.8-9 노인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꿈속에서 어렸을 적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눈부신 백사장과 긴 황금빛 해변, 높은 곶, 높게 솟아오른 갈색의 산들을 보았다. 그는 요즘 매일 밤마다 꿈속에서 그 해안에 살다시피 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원주민들이 탄 배가 파도 너머에서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꿈결에 갑판 위의 뱃밥(물이 스며들지 않게 배의 틈새를 메우는 물건_옮긴이 주)과 타르 냄새를 맡았고, 아침이면 뭍바람이 실어다주는 아프리카의 냄새를 느꼈다. 보통 노인은 뭍바람을 맡으면서 잠에서 깨어나 옷을 입은 뒤 소년을 깨우러 갔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유달리 뭍바람 냄새가 일찍 불어왔다. 그는 꿈속에서 도 너무 이르다는 것을 알면서 여전히 꿈을 꾸었다. 노인은 꿈결에 바다에 솟아오른 섬의 하얀 봉우리들을 보았다. 또한 카나리아 제도의 정박소와 항구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더 이상 노인은 폭풍우나 여자, 대어, 큰 사건, 싸움, 힘을 겨루는 시합, 그리고 죽은 아내에 관련된 꿈을 꾸지 않았다. 그저 여러 마을들과 해변을 거니는 사자들에 관한 꿈을 꿀 뿐이었다. 어스름해질 무렵, 사자들은 어린 고양이들처럼 뛰어놀았다. 그는 소년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자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노인은 꿈속에서 소년을 보지는 못했다. 그는 스르르 잠에서 깨어나 열린 문틈으로 달을 바라보고는 베개 삼아 돌돌 말아져 있던 바지를 펴서 입었다. --- pp.30-31 노인은 꾸준히 노를 저었다. 해류가 소용돌이칠 때 말고는 바다가 잔잔해 속도를 내기에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다. 배를 앞으로 전진시키기 위해 노인이 써야 하는 힘의 삼분의 일 정도는 물살이 자연스럽게 거들어 주었다. 그래서 날이 밝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배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멀리 먼 바다로 나와 있었다. 노인은 깊은 우물 근처에서 일주일 동안 애써 봤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오늘 다랑어와 날개다랑어 떼가 지나는 곳에 가야 대어를 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이 훤히 밝기 전에 노인은 미끼를 꺼내 바다에 띄웠다. 배는 물살이 흐르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는 첫 번째 미끼를 바닷속 칠십 미터 아래로 내렸다. 두 번째 미끼는 백삼십 미터, 세 번째와 네 번째 미끼는 각각 백팔십 미터와 이백이십 미터 아래로 내렸다. 미끼는 낚싯바늘 중심에 단단히 꿴 다음 머리를 아래쪽으로 해서 바다에 담갔다. --- p.38 어둠 속에서 일을 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럼에도 노인은 생각한 대로 일을 해치웠다. 한번은 물고기가 요동을 쳐서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에 갑판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눈 밑에 상처가 났고 피가 흘러내렸다. 다행히 피는 뺨에만 흔적을 남기고 턱에 닿기 전에 곧 굳었다. 그는 이물 쪽으로 움직여 뱃전에 몸을 기대고 쉬었다. 부대로 다시 몸을 감싸고 어깨에 멘 낚싯줄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위치를 바꾸었다. 노인은 낚싯줄을 만져 물고기가 잡아당기는 힘을 주의 깊게 느껴 보았다. 물속에 손을 담가 배가 나아가는 속도를 짐작해 보기도 했다. 무엇이 녀석을 요동치게 만들었을까? 노인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낚싯줄에 달린 철사가 물고기의 등을 건드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 p.70 노인은 생각했다. 그래, 좋은 일일수록 오래가지 않는 법이지. 차라리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군. 애당초 대어를 낚지 않은 채 침대에 홀로 누워 신문이라도 읽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순 없어.”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얼핏 물고기를 죽인 일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이제 고난의 시간이 다가올 텐데, 노인은 작살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청상아리는 몹시 잔인하면서도 똑똑한 상어였다. 물론 그는 자기가 상어보다 더 슬기롭다고 확신했지만, 어쩌면 그렇지 않은지도 몰랐다. 단지 아까는 상어보다 좀 더 유용한 무기를 갖고 있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자, 늙은이.” --- pp.147-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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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로 혼자 나간 노인은 그렇게 바라던 거대한 물고기를 잡지만 승리를 만끽할 사이도 없이 바로 상어 떼를 맞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싸운다. 물고기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노인의 모습은 인간의 무엇이 그리도 위대한지를 잘 보여준다. 1952년 세상에 처음 발표된 《노인과 바다》는 초반부는 잔물결같이 조용히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파고가 점점 커져 책을 덮는 순간에는 깊은 울림으로 남는 소설이다.
노인은 벌써 84일 동안 고기잡이에 실패했다. 이런 노인에게 유일한 위안은 그의 곁에서 항상 믿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소년뿐이다. 그러나 그 소년마저 부모님의 만류로 다른 고기잡이배로 옮겨 타고 이제 노인은 혼자서 고기를 잡으러 먼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다. 항구를 떠나온 지 3일 만에 사투를 벌여 고기를 잡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인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물고기도 상처로 피를 흘린다. 결국 물고기의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노인과 물고기를 공격하게 되고 노인이 애써 쌓은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깜깜한 새벽 노인은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그에게 희망이 되어주리라 믿었던 물고기는 머리와 뼈만 볼품없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돌아와 침대에 누워 사자 꿈을 꾸는 노인을 지켜보며 소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현대인 모두는 매일같이 일상에서 전쟁을 치른다. 일희일비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굴의 의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겨내는 노인의 삶은 커다란 위로가 된다. 그래도 잘 싸우고 있다고, 비록 허무한 날이 계속되고 실패를 겪더라도 삶을 멈출 수는 없다고 말이다. 노인은 고기를 잡아서 먹고사는 처지이지만 자연을 거스르거나 자연 앞에 오만하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자신이 잡은 물고기에게조차 마치 형제와도 같은 느낌을 교류하며 존중한다. 젊음을 바다에 바치며 살아온 노인에게는 바다만큼 깊은 지혜가 있어서일까, 노인은 자연과 인생 앞에 늘 겸손하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잠시 멈춰서 헤밍웨이가 우리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