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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_ ‘큰 고향’과 예술적 원형 · 작가적 태도 · ‘큰 고향大鄕’ - 이상향에의 귀향과 좌절 · 황소 - 대향 예술의 대표적 상징 도상 · 유목적 삶과 모성 집착 · 〈돌아오지 않는 강〉의 의미 · 사랑과 순수 2부 _ 화가에게 영향을 준 환경과 사람들 · 평양 문화 - 기질과 문화적 특성 · 선구자 김관호 김찬영의 영향 - 평생 동행의 급우 김병기 · 삭성회회화연구소 ·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향 3부 _ 오산학교 시절과 민족주의 정신 · 낙방이 곧 기회 - 평양에서 정주로 · 류영모와 함석헌의 영향 · 시인 김소월과 백석의 시정신 4부 _ 임용련과 백남순 부부화가 - 당대 최고 지성의 미술 교육 · 최초의 부부 유화전 개최 · 화가 백남순 · 화가 임용련 · 유존작 전무의 불행 · 오산 시절의 미술활동 5부 _ 일본 유학과 화가 입문 · 제국미술학교 입학과 중퇴 · 문화학원 학창생활 · 문화학원의 삼총사 · 대향의 성격과 학창 시절의 일화 6부 _ 화가 등단과 예술 세계 · 등단과 혹은 주목 받은 ‘일등 화가’ · 일본 초현실주의와 대향 작품 · 문학수와 초현실주의 화가 · 초현실주의 화가 김종남의 실체 · 자유미술가협회 참여 · 추상회화의 선구자 무라이 마사나리 · 전위예술 운동의 다키구치 슈조 · 조선신미술가협회 활동 · 월북화가 이쾌대 · 황소의 화가 진환 7부 _ 식민지 말기의 원산 시절과 마사코와 결혼 · 야마모토 마사코와의 연애 · 마사코에게 보낸 대향의 엽서화 · 전쟁 악화와 귀국 이후의 원산 생활 · 대향의 구혼과 마사코의 원산행 · 원산에서의 국적을 뛰어넘는 결혼식 · 해방 -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갈등 · 독립미술협회 참가와 시집 『응향』 사건 8부 _ 전쟁과 월남 그리고 참담한 피란민 생활 · 생애 최악의 시절- 피란민 생활 · 서귀포 시절과 그림에 담은 가족애 · 작품 〈서귀포의 환상〉 · 부산 피란 시절과 화단 분위기 · 월남작가와 월북작가 · 부산의 다방문화 9부 _ 생활고와 처자와의 생이별 · 가족과 생이별로 이끈 궁핍한 피란 생활 · 대향의 성품 - 외유내강 혹은 우울한 귀공자 · 일주일간 도쿄에서의 처자 상봉 · 부산 시절 불쏘시개된 대향 그림 · 통영 시절의 생활 안정과 작품 제작 · 선배 백석 시인과 통영 여인 · 아내 마사코에게 최후 통첩 · 서울 개인전의 성공과 실패 10부 _ 스스로 재촉한 요절 · 아내 사랑과 가장의 역할 · 정신 이상 - 기행 · 피폐해진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병원 출입 · 요절 - 왜 그렇게 서둘러 이승을 떠났는가 11부 _ 대향 예술세계의 실체 · 대향은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남겼을까 · 대향 예술세계의 주제와 소재 가족과 부부애 - 큰 고향의 최소 기초 단위 황소 아이들과 물고기 물고기 도원 혹은 천도 복숭아 작품 〈닭〉의 상징성 까마귀 12부 _ 대향예술의 양식적 특징과 기법 · 원형 구도 · 일필휘지 - 기운생동의 역동성 · 소도구 끈의 상징성 · 재료와 기법 - 드로잉, 유화, 물감 · 은지화의 경우 13부 _ 대향 예술의 새로운 접근 · 대향 예술세계와 연기사상과의 관련 · 불교의 상호의존성 논리 · 노자의 참된 도 이론 · 아내에의 과도한 집착과 모성 콤플렉스 에필로그 과연 ‘천재 이중섭의 신화’는 가능한가 나의 ‘이중섭 신화’ 편력기 부록 주요 참고 문헌 대향 이중섭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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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신화.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윤색되어 증폭되었다. 이중섭의 생애와 예술은 대중적으로 각광 받아 날로 격상되어, 결국 ‘국민화가’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화가,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하는 화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이런 뉘앙스를 바탕에 둔 호칭, 바로 국민화가였다. 때문에 이중섭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나 드라마 혹은 갖가지 문학작품은 꾸준히 생산되었다. 시인들이 이중섭을 주인공으로 삼아 쓴 시만 다 모아도 두툼한 시집 한 권이 될 정도다. 그만큼 시인들에게 매력적인 화가였고, 이와 같은 여세는 시인동네를 넘어 도처로 퍼져나갔다. 다만 전문성을 배제한 일방적 예찬은 이중섭 실체와 관계없는 ‘소음’일 때도 많았다. 심지어 본질을 왜곡시켜 이중섭 예술의 실체 접근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미술사학계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학문적 성과를 내기 이전의 대중적 신화 작업은 이중섭 본인에게도 손해라고 본다. 물론 이와 같은 현실로 이어지게 한 일정 부분은 미술 전문가의 책임도 있다. 학술적 연구 이전에 대중적 신화의 주인공으로 부상한 이중섭, 과연 그 실체는 무엇일까. -
---p.22 역시 이중섭은 시대 환경에 온몸으로 대응하면서, 그 환경에 대하여 절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적으로 구현해 낸 화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라기보다, 현실과 대응하면서 꾸준히 작업한 그야말로 ‘정직한 화공’이었다. 정직성은 전쟁이라는 현실에 대한 화가 나름 전력투구의 반응을 포함한다. 가식 없고 진정성 있는 세계에 대한 화가로서의 진솔한 발언, 거기에 이중섭의 진정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도 정직한 화공이라는 표현이 천재라는 표현보다 이중섭 예술의 진면목을 이해하는데, 더 좋다고 믿는다. - ---p.26 ‘화공 이중섭.’ 자칭 화공이라는 표현은 세속적 인기나 겉멋으로서의 예술가라기보다, 성실하고 근면한 창작의 종사자라는 자기 겸손의 표현일 것이다. 한마디로 대향은 내공을 길러가면서 스스로 숙성되는 스타일의 화가다. 숙성되는 화가. 그것도 정진형의 숙성된 화가가 바로 대향 이중섭이다. - ---p.42 대향의 소 그림에 대한 소설가적 상상력은 흥미롭다. 하필이면 원산에서 부산으로 피란 와 배치받은 수용소가 식민지 시절의 우사牛舍였을까. 그것도 일제에 의한 물자 약탈의 현장에서 가족과 함께 견뎌야 하는 처참한 피란 생활의 첫 자리여야 했을까. 조선 소의 약탈 현장에서 대향은 끌려간소들의 냄새를 맡으면서 소 그림을 생각했다. 인간을 위한 식용도 아니고, 노예 같은 노동도 아니고, 오로지 하늘을 향해 껄껄껄 웃는 소, 바로 자유와 해방의 소를 그리고자 했다. 부산 피란지의 외양간은 대향 가족의 집이었다는 점, 역설적으로 흥미로운 인연이다. 황소나 대향이나 같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점, 현주소의 공유, 정말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대향 공간에서 황소는 동행하는 도반道伴이었다. ---p.5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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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것은 이중섭인가, ‘이중섭 신화’인가
한국인에게 이중섭은 이미 한 명의 화가를 넘어선 이름이다. 황소, 은지화, 제주 피란생활, 일본인 아내 마사코와 두 아들, 가난과 이별, 정신병원, 그리고 마흔이라는 나이에 맞은 죽음. 그의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장면은 오랫동안 소설과 영화보다 강력한 이야기로 소비되어 왔다. 그 결과 이중섭 앞에는 언제나 같은 수식어가 붙었다. 천재 화가. 비운의 화가. 국민화가. 전설적인 순애보의 주인공. 그런데 미술사학자 윤범모는 이 익숙한 서사의 출발점부터 의심한다. “천재 이중섭은 없다.” 도발적인 선언이다. 그러나 이 선언은 이중섭을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천재’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어 온 이중섭에게서 그가 실제로 들인 시간과 노력, 교육과 실험, 시행착오와 성장을 돌려주기 위한 선언이다. 저자가 대신 꺼내 드는 이름은 ‘화공畫工 대향大鄕’이다. 이중섭은 자신을 화공이라 불렀다. 그림 그리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 묵묵히 수행하는 장인.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중섭의 진정한 위대함을 찾는다. 그는 ‘돈오頓悟’의 천재라기보다 ‘점수漸修’의 화가, 즉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자신의 경지에 도달한 화가였다는 것이다. 천재의 탄생 대신, 화가의 성장을 추적하다 이 책의 중요한 성과는 이중섭의 인생을 ‘가난한 천재의 비극’이라는 결과론에서 거꾸로 읽어간다는 데 있다. 평양에서의 성장 환경, 오산학교, 류영모와 함석헌, 김소월과 백석의 문화적 토양, 임용련·백남순 부부의 미술교육, 일본 제국미술학교와 문화학원, 무라이 마사나리, 자유미술가협회와 당시 일본 전위미술계까지 촘촘하게 복원한다. 특히 1930~40년대 일본 화단에서 이중섭이 이미 소를 주요 소재로 삼았으며 자유미술가협회에 참가하고, 당시 비평가들에게 초현실주의적·전위적인 작가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김환기가 이중섭을 당시 화단의 ‘일등’으로 평가한 기록도 다뤄진다. 이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이중섭의 계보를 바꾼다. 이중섭은 전쟁과 가난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천재가 아니다. 그는 1930년대 동아시아의 첨단 미술운동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경쟁하며 자신의 조형언어를 만든 현대미술가였다. 사랑의 엽서도 모두 ‘걸작’인가 이 책은 이중섭 연구에서 일종의 성역처럼 다뤄졌던 부분에도 질문을 던진다. 대표적인 것이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다. 저자는 1940년대 초의 엽서화와 1950년대 피란기의 은지화를 나란히 놓고 보면 구성, 묘사력, 주제의식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엽서화는 본래 연인에게 보낸 사적인 연서에 가까우며, 이를 모든 작품과 동일한 미술사적 위상으로 다루는 관행에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파격적인 문제 제기다. 그러나 여기서도 결론은 이중섭의 폄하가 아니다. 엽서화에서 은지화로의 거대한 도약 자체가 이중섭의 성장과 정진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었던 천재’보다, 시대와 경험을 통과하며 자신만의 미술을 만들어낸 화가가 오히려 더 위대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순애보 뒤에 가려진 한 인간의 불완전함 마사코를 향한 사랑 역시 무조건적인 낭만적 순애보로만 다루지 않는다. 이중섭의 편지는 격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나친 의존과 집착, 가족에 대한 그리움, 생활인과 가장으로서의 무능, 자기혐오와 좌절도 드러낸다. 저자는 이를 미화하지 않는다. 그가 훌륭한 예술가였다는 사실과 생활인으로서 불완전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원 입원과 거식, 영양실조, 고독 속의 죽음 역시 ‘천재의 광기’라는 낭만적인 이미지 대신 전쟁과 분단, 가족 해체, 극도의 빈곤 속에서 한 인간이 서서히 무너져간 과정으로 복원된다. 이 역시 이 책이 ‘신화’를 거부하는 이유다. 그리고 다시 작품으로 돌아간다 신화를 걷어낸 뒤 저자가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곳은 결국 작품이다. 황소와 아이들, 가족과 물고기, 복숭아와 닭, 까마귀, 둥근 구도와 힘찬 선, 은지에 새겨 넣은 세계. 저자는 이 반복되는 형상들을 ‘대향大鄕’, 곧 큰 고향이라는 하나의 중심 개념으로 모은다. 분단으로 어머니에게 돌아갈 수 없었고,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졌으며, 끝내 자신이 꿈꾼 가정을 되찾지 못한 이중섭에게 ‘대향’은 실제 장소를 넘어 잃어버린 이상향이었다. 그의 그림 속에서 아이와 가족과 동물들은 서로 몸을 맞대고 얽혀 있다. 현실의 이중섭이 누릴 수 없었던 결합과 화합이 그림 속에서는 되풀이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중섭의 예술은 단순히 ‘고통에서 태어난 미술’이 아니다. 상실된 세계를 그림 속에서 끊임없이 복원하려 한 예술이다. 2026년은 이중섭이 태어난 지 110년,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되는 해다. 한 세기를 훌쩍 넘어선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찬사가 아닐지 모른다. 한 예술가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방법은 그를 신화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제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그림을 만들었으며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세계에 도달했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 『이중섭 신화, 거꾸로 보기』는 이중섭을 신화에서 끌어내리는 책이 아니다.신화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더 강한 한 인간과 예술가를 세우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