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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지브롤터 해협을 떠나며 / 밤의 시간들 / 구름 낀 새벽 / 가따 곶 정찰 / 빨로스 곶에 이르다 / 공해상에서 마르가리데스 군도를 향해 / 죽은 자들의 동굴 / 석류나무 계곡 / 정지된 시각 / 폭발 / 북풍 드라고네라 섬을 향해 / 목적지 도착 저자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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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다. 그해 8월, 북풍이 휘몰아쳐 온통 하얗게 부서지는 거센 풍랑이 일던 바다 위에서 그는 죽음에 대해 깨달았다. 그러니까 마을에 축제도 없었고 매주 일요일이면 요란스럽게 거리를 돌아다니던 날카로운 피리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여인들이 박하나무 화분에 물을 주어 문 옆에 걸어두곤 하던 8월이었다. 옆 동네 사라꼬의 보리를 베어낸 황금빛 밭 사이에 있는 에스코스에서 열리던 경마도 그해 8월에는 열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탈곡도 하지 않았고, 밀과 보리 다발들은 들판에서 방치된 채 그대로 놓여 있었으며 알갱이들은 새들의 먹이가 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억양의 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어느 참혹한 밤에 공동묘지의 담장 뒤에서 총에 맞아 죽은 이들의 가족들이었고,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고 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심한 새들은 말라서 바삭바삭 소리가 나는 곡식 알갱이들은 쪼았고 어지러운 여름을 지저귀는 소리로 가득 채웠다. 아비규환과 피비린내 나는 죽음을 동반한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것도 몇 주 전이었다. --- p.26
바다는 잔잔했고 햇빛은 채찍으로 때리는 것처럼 따끔따끔하게 빛났다. 배는 빛바랜 넓은 막으로 뒤덮여 있는 것 같은 티 한 점 없는 쪽빛 바다를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배는 마치 날카롭게 반짝거리는 빛 사이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뱃머리가 가르고 있는 두 줄기의 물살만이 생생하게 피어오르는 물보라와 더불어 어떤 신선함 느낌을 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배의 철 갑판은 이글이글 타는 것 같았다. 쁘루덴시는 샤워실로 가서 바닷물을 담아 놓은 통을 들어올렸다. 그 통들을 갑판으로 던졌다. 물은 즉시 가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정도로 펄펄 끓는 듯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동쪽 바다와 육지가 하얀 구름 띠에 뒤섞이고 있었다. 매끄러운 물 위로 고기 하나가 튀어 두 뼘쯤 높이에서 몸을 비틀더니 물의 표면에 부딪칠 때 첨벙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희미한 원형의 물살이 생겼다가 넓게 퍼지며 사라졌다. 보따폭 호 뒤로는 잔잔한 항적이 보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얀 국수가락 같았다. 서쪽으로 멀리 배 한 척이 보였는데 크기가 구두만 했다.--- p.97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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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항해, 저마다의 삶들이 갈망하는 ‘황금양털’
발따사르 뽀르셀이 쓴 최초의 본격 모험소설로 평가받는 《밀수꾼들》은 에스파냐어와 까딸루냐어로 씌어진 작품으로, 지중해에 관한 발따사르 뽀르셀의 소설 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발따사르 뽀르셀의 소설 가운데 지중해적인 특성과 특수한 상황에 처한 지중해 인간의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현란하게 드러나 있다. 한 무리의 밀수꾼 사내들이 ‘보따폭’ 호에 밀수품을 가득 싣고 에스파냐와 아프리카가 맞닿아 있는 지브롤터 해협을 출발해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는 섬 마요르까를 향한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과 에스파냐 출신 부인 마리아 돌로레스 딸라베라(일명 ‘로리타 안’)가 살았던 곳으로도 널리 알려진 마요르까 섬이 지닌 거칠음, 서정성, 선정성, 아이러니, 비극, 환상은 《밀수꾼들》에 찐득찐득하고, 단맛 나고, 촉촉하고, 위협적인 문체로 녹아들어 있다. 하루하루 겪게 되는 망망대해의 매혹적인 외로움, 선원들의 ‘발가벗은’ 선상 생활, 언제 어느 곳에서 불시에 닥쳐올 수 있는 온갖 위험 앞에 노출된 선원들의 불안과 본능적인 방어 심리, 그때마다 회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불거져 나와 현실과 얽히고설키는 선원들의 다양하고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과거의 삶, 그리고 지중해 고유의 풍광과 문화, 지중해의 삶 등이 밀수꾼들의 강력하고 투박한, 고독에 찌든,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언어를 통해 드러나 있으며, 이런 것들이 이 소설을 모험과 생생한 삶이 담긴 ‘바다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 지중해의 과거와 현재, 지중해 인간과 삶은 등장인물들의 환상과 실패(실망), 지중해의 맛, 냄새, 색과 더불어 이 소설의 전반에 녹아 있다. 밀수선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무수히 접해야 하는 긴장감 넘치는 ‘여행’에 참여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운명이 시적으로, 관능적으로, 아이러니하게, 비극적으로, 환상적으로, 비유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렇듯, 소설의 시·공간적 현실로 등장하는 지중해는 소설의 전반에 걸쳐 지중해 특유의 꿈과 좌절, 맛과 냄새를 아낌없이 제공한다. 바다가 지닌 모든 면모를 인간의 운명에 관한 비유적인 이야기로 변모시킨 배경은 그리스 신화에 닿아 있다. 비록 《밀수꾼들》에서 시간(에스파냐 내전 시기)과 공간(지중해)의 사실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지중해, 마요르까 섬을 무대로 하는 여행과 모험을 통해, 그리고 지중해 문화에 깊숙이 투영된 그리스 신화의 재해석을 통해, 인간과 세상사가 가장 현대적인 방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황금양털을 찾아 아르고스 호를 타고 떠났던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들이 지중해의 매혹적이면서도 거친 모습을 생생하게 겪었던 것처럼 밀수꾼들의 환상과 패배와 맛과 냄새가 생동감 넘치고 매혹적인 지중해와 더불어 작품 전편에 녹아 있다. 신화 속의 아르고스 호 선원들이 발따사르 뽀르셀의 펜을 통해 현대의 밀수꾼들로 멋지게 환치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도《Los argonautas(아르고스 호의 선원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