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
머리말
1. 도선의 국토선과 산천비보 도선의 풍수는 국토선 비보사찰을 찾아서 옛 가람의 자연미학 깨달음의 땅, 성불의 땅 2. 도선의 풍수와 비보사탑에 관한 이해 도선의 풍수를 말한다 나말려초의 비보사탑 연구 |
|
어렵사리 문경 봉암사를 찾았다. 사월초파일 하루만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터라 문전까지 왔다가 발걸음을 되돌린 적이 여러번이었다. 때마침 결제 기간이라 짓누르는 듯한 분위기에 운신하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주지 스님을 만나 봉암사의 풍수에 대해 여쭈었다. 스님의 기존의 속된 풍수를 경계하면서, 본연으로는 선과 풍수가 둘이 아니라는 요지로 말씀하였다. 요즘들어 선과 풍수가 한층 서로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는데 오늘 여기서 그말을 만나니, '선과 풍수가 둘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어느새 이 글의 화두가 되었다.
지금 선승들은 대부분 풍수가 잡술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조선조 이래 중국의 술법적인 풍수가 범람하여 우리 고유의 풍수 전통과 정신을 상실한 연유가 크다. 그런데 원래 우리나라에서 풍수는 신라 말의 선승들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선과 풍수가 아무런 모순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구산선문의 하나로 봉암사를 개창한 지증 도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증대사에게 선과 풍수는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는가? 그것은 봉암사의 터잡기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을까? 이제 필자는 최치원이 쓴 ''봉암사 지증 대사 비문''을 살펴 가면서 그 사실에 대해 서술코자 한다. 때는 881년경, 지증 대사가 입적에 들기 한 해 전의 일이었다. --- p.12 |
|
저자는 흔한 유적 답사기, 사찰 답사기와 달리 풍수라는, 조금은 특이한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가 보는 풍수는 선조의 묘 자리를 살피고 터를 골라 집을 짓는 것이 아니다. 그가 가진 풍수라는 잣대는 온 땅을 사람의 몸과 같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비기(秘記)니 비법(秘法)이니 운운하는 술법풍수가 아닌, 우리나라의 풍수, 곧 도선 풍수이다. 통일신라 말의 선승이자 한국 풍수지리설의 시조인 도선 국사는 불교와 풍수의 만남에서 정점(頂點)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처럼 땅에도 좋지 않은 기운이 있는 곳, 아픈 곳이 있다고 하여, 이런 곳에 절을 짓고 탑을 세워 그 땅을 치료하고자 했다. 자연에 기대어 기생하려는 인간이 아니라 아픈 땅을 돌보고 치유해서 끌어안으려는 적극적인 사고 방식, 이것이 바로 우리 풍수, 도선 풍수인 것이다.
이 책의 1부에는 도선 풍수의 현장 39곳을 직접 여행하며 적은 답사기가 9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고, 2부에는 비보 사탑에 대한 논문이 역사서에서 찾아 본 전거, 도표, 참고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 우리 풍수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