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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해제 / 6 서론 / 39 제1부 세계론 / 91 제2부 인간론 / 103 제3부 철학론 : 철학의 자기 자신으로의 복귀 혹은 철학의 철학 / 177 프리드리히 슐레겔 주요 연보 / 201 참고문헌 /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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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독일낭만주의 사상과 관련하여 슐레겔의 철학의 핵심은 ‘알레고리론’에 있다. 무한자인 우주자연의 운동도, 이에 대한 의식의 운동도 알레고리를 낳는다. 삼라만상은 단순한 개체 혹은 사물이 아니라 무한자가 산출한, 무한자 자신의 알레고리로서 신성을 지닌다. 또한 인간의 의식 활동도 개념(=철학)과 감각적 표현물(=예술)을 무한히 산출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의식을 통해 포착된 무한자에 대한 개념과 예술작품 역시 무한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알레고리일 뿐이다.
알레고리론을 통해 우리는 슐레겔이 ‘신인동형론(神人同型論, anthropomorphism)’의 입장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무한자(=신성)의 운동도, 의식(=인간)의 운동도 모두 알레고리, 즉 상(像)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무한자와 의식의 본질은 공히 ‘상을 만들어내는 능력’, 즉 ‘상상력(Einbildungskraft)’이다. --- p.22 낭만주의에서 인간의 본성은 이미 살펴본 대로 ‘숭고의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인간의 본성규정인 ‘이성성(=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성은 숭고의 감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성이 근본적인 인간규정이 아니라 ‘인간은 숭고의 감정을 지니는 존재’가 근본규정이 된다. 숭고의 감정에 토대한 이상의 추구가 철학으로도 예술로도 나타난다고 할 때, 인간의 이성성은 인간의 규정과 관련하여 근본뿌리가 아니라 철학과 연관된 하나의 가지일 뿐이다. 낭만주의자에 의하면 모든 학문과 예술의 공동적 토대는 이성이 아니라 숭고의 감정(=미감적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학문과 예술은 미감적인 것을 토대로 재편되어, 하나의 종합적인 학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노발리스가 내린 지상명령의 핵심이다. --- p.24 슐레겔에서 도덕과 종교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도덕과 종교의 과제는 사회(=공동체)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즉 낭만주의자는 인간의 도덕적 삶과 종교적 삶은 사회를 매개로 해서만 실현된다고 본다. 나아가 사회와 정치는 불가분리적이므로(사회와 정치는 모두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에서 유래한 개념) ‘정치’를 통해서만 인간의 도덕·종교적 삶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본다. 인간의 본성에 따른 사회적 형태는 역사적으로 가족(혈연공동체=자연공동체), 위계(교회공동체=정신공동체)11), 공화국(국가공동체=자연공동체와 정신공동체의 종합)으로 나타난다. 사회 형태에 대한 이러한 역사철학적 인식하에 슐레겔은 정치를 통해 이루어야 할 가치(=이념)를 ‘자유와 공동체, 평등’으로 요약한다. 나아가 이 이념들을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정치)형태로 ‘무정부(Anarchie)’를 든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원한 이상이므로 ‘공화국’의 수립을 자기 시대의 과제로 제시한다. --- p.26 슐레겔에게서 의식은 대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개념의 산출(=구성과 성격규정)로 나아간다. 이것은 반성적 추론능력과 사변(=관조)적 직관능력이 상상력을 통해 매개됨으로써 이루어진다. 반성은 대상을 의식의 필요에 맞게 주관화하는 능력이며 사변은 대상으로부터 일체의 주관을 배제함으로써 의식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능력이다. 이 양자가 상상력을 통해 종합됨으로써 개념이 산출된다. 그렇지만 무한자가 산출한 만물 즉 대상과 우리의 의식이 산출한 개념은 영원한 간극에 머문다. 왜냐하면 절대자는 무한자로서 끊임없이 생성·변화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결코 절대지에 다다를 수가 없다. 우리가 산출한 개념 혹은 지는 절대자, 즉 무한자의 알레고리일 뿐이다. 따라서 대상과 개념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의식의 노력은 무한히 계속된다. --- p.28 철학은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뉜다. Ⅰ부. 이론철학. 이론철학은 현존재와 의식을 하나로 현시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구성한다. Ⅱ부. 철학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삶으로 들어간다. 철학은 삶의 개념들, 즉 종교와 도덕을 서로 엄격하게 구분하며, 그러고 나서 그것들을 통일한다. 또한 이를 통해 삶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그러나 분리를 통해서만 전체로서의 인간이 드러난다. Ⅲ부. 철학은 다시 자기 자신으로 복귀한다. 철학은 활동적인 것으로 현시된다. 이제 그것은 철학의 철학이다. 철학은 여기서 단순히 객관에 대한 방법론이 아니라 이론과 경험의 결합, 아울러 모든 예술들과 학문들의 결합의 문제들을 지닌다. --- p.178 진리는 대립적인 오류들이 중화될 때 나타난다. 절대적인 진리는 인정될 수 없다. 이는 사상과 정신의 자유에 대한 증거이다. 절대적인 진리가 발견될 수 있다면 그와 더불어 정신의 업무(Geschaft)는 완성될 것이며, 또한 존재하기를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신은 활동에서만 실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진리가 상대적일 뿐이라면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갖고 사변에 몰두할 수 있다. 실재적인 것에 기반을 둔 연구의 전 계열은 진리로 나아간다. 우리가 오류를 제거하여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면 진리는 저절로 생겨난다. --- p.181 철학이 스스로 자기 한계[경계]들을 명확히 하고, 자기 방법에 관하여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과 관련하여, 철학을 비판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한계의 정확한 규정은 비판철학의 참된 개념 본연의 것이다. 또한 참되지 않은 개념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한계규정에서 시작하는, 자신의 능력들을 사용하기도 전에 그 능력들이 없음을 아쉬워하는, 이성의 한계규정에서 시작하는 철학은 통상적인 개념으로는 비판적이라고 규정되고 해석된다. 그러나 이는 벌써 잘못된 것을 따르는 형식이다. 왜냐하면 저 주장은 능력을 먼저 실험하고 그러고 나서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는 잘못이다. 전개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능력을 알게 된다. 이것이 옳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이성에게는 결코 어떠한 한계들도 주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의 한계규정을 부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관념론의 본질이다. --- p.186 우리는 아직 철학의 제3막, 혹은 철학의 철학을 다룬다. 이 제3막은, 철학사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모든 유기적인 예술들과 학문들은 또다시 자신들의 자연(본성Natur) 유리시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술들과 학문들에서 발휘되어 온 탁월한 것을 갖고 있다. 그것은 직감[본능]에서 나온 것, 즉 예술에서 나온 것 이상이라고 간주되어야만 한다. 철학의 철학은 가능하다. 철학이 예술들과 학문들의 거대한 전체(무한한 실재성)에서 일부분만을 이룬다면 말이다. 독단론에서는 그 반대이다. 즉 독단론은 철학의 철학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에 관념론과 독단론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 독단론이 아직도 여전히 내용[질료]을 지니지 못하고 철학의 형식에서 시작하는 참된 내적인 이유는 덮여지고 은폐된 약점, 즉 실재성을 파악하는 데서 갖고 있는 약점 때문이다. --- p.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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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 소개되는
독일 초기 낭만주의 최초의 철학서 근래 들어 독일 초기 낭만주의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이유는 근대적 합리성(이성 중심적 사유방식)의 기획에 대한 회의와 이에 대한 대안 모색과 관련이 있다. 근래의 이 관심은 독일 낭만주의의 연구방향 자체의 변화를 수반한다. 과거의 연구가 주로 ‘문예이론과 비평’ 쪽에 집중되어 왔다면 최근의 연구는 ‘철학’으로 그 연구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프리드리히 슐레겔이다. 그는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이다. 그는 문예이론가, 비평가로서는 명망이 높았지만 오랜 기간 철학자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방대한 양의 철학 강의와 저술들이 발견 혹은 재평가되면서 그의 철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독일 초기 낭만주의 연구가 문예이론에서 철학으로 확대된다고 할 때 그 중심에는 슐레겔과 그의 철학이 있는 것이다. 슐레겔의 초기 철학사상은 Fr. Schlegel, Philosophische Vorlesungen[1800-1807], KA XII.- XIII. hrsg. von Jean-Jacques Anstett(1964)에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예나(Jena)대학에서 행한 『초월철학강의』(1800/01)와 쾰른(Koln)에서 지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철학의 발전, 전12권』(1804/05), 『철학입문 및 논리학』(1805/06), 프랑스 오베르장빌(Aubergenville)에서 강의한 『형이상학』(1806/07) 등이 들어 있다. 슐레겔의 철학은 슐라이어마허 등에게 영향을 주어 ‘철학적 해석학’을 낳게 한다. 또한 그의 ‘생철학(Lebensphiosophie)’, ‘역사철학’, ‘언어철학’ 등은 딜타이(W. Dilthey), 니체(F. Nietzsche), 베르그송(H. Bergson), 하이데거(M. Heidegger) 등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의 철학은 100년 이상 동안 ‘인용부호 없이 인용’되어 왔다. 그는 강단의 직업철학자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동시대의 철학 천재들인 피히테, 셸링, 헤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한 독자적인 입장과 사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발터 벤야민(W. Benjamin)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개념』(1920)1)을 통해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의 인식론적 전제, 즉 철학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선구적인 주장을 편다. 아울러 초기 낭만주의를 이해·수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론 수립과 실제적인 적용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그 실례를 그의 교수자격 취득 논문(Habilitationsschrift)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1924)에서 발견한다. 이 논문에서 그는 슐레겔로부터 수용하여 발전시킨 “알레고리” 개념을 통해 16~17세기 독일 바로크 드라마(=비애극)의 특징을 분석한다. 이로써 독일 “비애극(Trauerspiel)”이 고대 그리스 “비극(Tragodie)”의 단순모방이 아니라 독창성과 고유성을 지닌 것임이 규명된다. 『초월철학』은 슐레겔이 1800/01년 예나 대학에서 행한 강의를 받아 적은, 누군가의 필사노트이다. 슐레겔의 탓인지 필사자의 탓인지 알 수 없으나 논리전개 혹은 논의맥락이 잘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고, 내용이 분명치 않은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슐레겔의 철학적 입장의 대강을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이 강의록은 체계적인 형식으로 전개된, 현존하는 그의 최초의 철학저술이다. 이 강의 이전에도 슐레겔은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피력해 왔으나 대부분 단편(Fragment) 형식의 글이었다. 『초월철학』은 차안(此岸)에 의지함 없이 이 세상을 낭만화하고자 했던 그의 철학사상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출된 저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