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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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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며
‘여자 안중근’과의 만남 8 논어와 근사록을 읊조리는 소녀 29 의병 남편의 죽음과 유복자 아들 20 24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48 23년간 ‘보통 여인’으로 살기 61 1919년 그 짧은 혁명 71 47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80 만주, 투쟁의 땅 희망의 벌판에 서서 87 동향사람, 이상룡과 김동삼 98 만주에 여걸이 나타났다 106 서울 혜화동, 권총을 든 여인 121 도산 안창호를 구출하다 130 만보산 사건, 그리고 김동삼 구출작전 137 무명지를 자르며 141 일본 전권대사 무등을 암살하라 155 임종, 위대한 유언 163 차 례 61세 남자현과의 가상 인터뷰 168 이봉창, 신채호와 같은 급의 훈장을 받다 184 부록 하나 Interveiw One 친손자 김시련 190 Interveiw Two 친정 손자 남재각 202 회고담 장남 김성삼 209 여협 남자현전 (조소앙 지음) 211 부록 둘 ‘조선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220 ‘이등박문의 양딸이 된 흑치마’ 배정자 239 독자들에게 쓰는 편지 왜 이토록 역사는 남자현을 지워버렸는가 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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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3월 1일 윤보선 대통령은 남자현에게 독립유공자 건국공로훈장 복장(2등 훈장)을 수여한다. 복장은 모두 58명이 받았으며, 이 중에는 신채호, 이봉창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성 중에서는 남자현이 유일했다. 독립운동의 공로를 훈장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현은 3 1 만세 운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관순 열사보다 더 높이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184쪽). 그러나 유관순 열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만주에서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불린 남자현을 모른다.
경북 영양군에서 자란 남자현은 양반집의 며느리였다. 그녀는 20대에 의병 전투를 치르던 남편을 잃고, 38세에 나라를 잃었다. 남편 없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그녀는 47세의 나이에 만주로 향한다. 만주에서 그녀는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의 해결부터 시작했다. 독립운동의 분파를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벌였으며, 자신의 손가락 3개를 베어 가며 혈서를 쓴다. 그녀가 국제연맹으로 혈서와 베어낸 손가락을 보낸 뜻은 대한의 여성이 이토록 치열하게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염원의 강렬함을 확인시켜주고자 함이었다. 그녀는 조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서울로 잠입했지만, 저격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후 61세의 나이에도 그녀는 만주국의 일제 실세인 전권대사를 죽이러 간다. 만약 상황이 도와주었다면, 우리는 안중근, 이봉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일제의 거물을 암살한 ‘위대한 여성 의거’를 역사에 기록해놓았을 것이다. 거의 없다시피 한 남자현에 대한 기록과 그녀가 남긴 글, 유품의 부재(-:)는 한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더불어 그 사후조차도 안타깝게 하였다. 남자현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 행적과 삶의 의미를 기리는 일은, 그녀의 후손들에게 영광을 되찾아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지역 관광 사업을 돕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적 진실을 찾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책무이며, 어떤 경전이나 시문보다도 빼어난 가르침을 한 인물의 삶을 통해서 되찾는 일이다. 남자현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 후손들에게 추앙받기를 원한 것은 아닐 테다. 하지만 그녀가 목숨을 걸고 살아낸 삶과 공훈이 우리 겨레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야 할 것은 더욱더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