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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족 혁명
귀족계급 군주정치의 위기 2. 부르주아 혁명 부르주아지 부르주아지의 첫 승리 삼부회 3. 민중 혁명 민중의 동원 1789년 7월 14일의 파리 혁명 지방에서의 도시혁명 4. 농민 혁명 농민 5. 8월4일 밤과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루이16세의 소극적 저항 애국파의 분열 : 양원제와 거부권 문제 민중의 봉기 10월 폭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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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이 개입함으로써 국민 의회를 구하였다고 하여 민중이 부르주아지와 사상적으로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민중은 민중대로 스스로의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봉건적 권리의 폐지 같은 것은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동기의 하나였다. 민중은 또한 자본주의의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18세기에 정부와 대토지 소유자, 그리고 상층 부르주아지가 다같이 합세하여 점진적으로 파괴해가고 있던 과거의 통제 경제 체제를 부활시키려소 하였다.
민중의 반란으로 다시 한 번 곡식 매매의 자유가 억압되고, 농민들은 공동체적 권리를 회복하였으며 도처에서 방목권이 부활되고, 빼앗겼던 공유지를 다시 소유하게 되었다. 보다 더 일반적인 형태로서 '권리'의 평등선언은 '재력'의 불평등을 표면에 드러나게 하였으며 재력의 불평등은 부분적으로는 부의 불평등에 기인하는 것인만큼 우산자와 무산자 사이에는 정치적 사회적인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갈등은 혁명을 민주주의로 이끌어가는 동시에 10년 후에 부르주아지로 하여금 ' 명사'의 지배를 부활시키기 위하여 군사적 독재를 지지하게 되었다. ---292~29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