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대중 대통령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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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1. 시골의 어린 시절 2. 요하네스버그 3. 자유투사의 탄생 4. 투쟁은 나의 삶 5. 반역죄 6. 검은 별봄맞이꽃 7. 리보니아 8. 로벤 섬: 암흑의 나날들 9. 로벤 섬: 희망의 시작 10. 적과의 대화 11. 자유 부록: 그 후의 이야기들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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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大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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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상 수상자 넬슨 만델라가 들려주는 진실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었나? 이 나라의 흑인 어린이는 흑인 전용 병원에서 태어나 흑인 전용 버스로 집에 돌아오고, 흑인 거주지역에서만 살아야 하며 ,흑인 전용 학교에만 다녀야 한다. 커서도 흑인들만 다니는 직장에만 취직할 수 있고, 흑인 거주 지역 내에서만 집을 빌릴 수 있으며, 흑인 전용 기차만 탈 수 있다. 밤낮을 불문하고 통행증을 제시하기 위해 수시로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하며, 통행증을 보여주지 못하면 경찰서에 연행된다. 한 가족인데도 피부색에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집단구역법(Group Areas Act)에 따라 서로 다른 지역에 헤어져 살아만 하기도 했다. 백인들이 남아프리카에 상륙한 이래 약 340년 동안에 걸쳐 흑인들은 가혹한 억압체제 속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왔으며, 이런 잔인무도한 체제에 저항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아 살해당하거나 실종되는 참상을 겪었다. 만델라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은 나치의 홀로코스트 다음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반인륜 범죄체제라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에 맞서 만델라가 왜, 어떻게 싸웠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고난을 겪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여 악으로 가득 찬 체제를 무너뜨렸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만델라는 소수의 백인이 대다수 흑인들의 인권을 짓밟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살해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인간파괴는 억압받는 흑인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탄압하는 백인들의 영혼도 똑같이 파괴하고 타락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일어나 싸웠고, 그러다가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만델라는 이 책에서 도피생활에서 겪었던 두려움, 오랜 감옥생활의 고통, 죽음의 공포, 가족과 동지의 고난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안타까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을 진실하면서도 감동적인 필체로 전해주고 있다. 그는 이러한 고통을 통해 깨달은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소중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부당한 힘에 의해 때때로 좌절하고 패배를 당할는지 모르지만 인간은 스스로 좌절하지 않는 한 결코 패배자가 될 수 없다는 교훈을 전해 준다. 패배가 지닌 숭고한 의미도 말해주고 있다. 감옥은 그에게 큰 고통을 주었지만, 만델라는 그런 시련을 통해 더욱 강해졌고, 관용과 용서로 자신의 적들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크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왔다. 시련 속에서 높이 들어올려진 그의 영혼, 그의 인간의 크기와 진정성, 그리고 그가 내민 용서와 화해의 손길이 이르는 곳마다 백인세력의 와해를 가져오는 극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폭력보다는 비폭력의 힘이, 사랑과 용서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언해 준다. 이 책은 우리의 과거사 정리 및 역사바로세우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델라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를 부록에서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망각에 맞선 기억의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진실을 밝히는 조건으로 범죄자들을 사면한’ 이 위원회가 왜,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났으며 어떻게 활동했고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그리하여 그것이 왜 세계적인 모델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상세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야만적인 범죄의 실상도 눈에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주어 우리를 전율케 한다. TRC에 접수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인권유린 사건은(1960~94년)약 2만 1,300건에 이르렀고, 이들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 수는 약 305만 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면을 청구한 범죄자들은 약 7천 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10분의 1인 7백 명이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만델라의 생애,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1918년 트란스케이의 한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추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 그는 자신이 용감한 템부족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하며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생 시절 그의 생각과 시야는 자신의 고향과 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어준 백인들에게 고마워하며 성실하게 공부하는 학생이었으며, 공무원이나 통역관이 되는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흑인 젊은이였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소년 시절의 자유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리고 젊은 시절 이미 자유를 빼앗겼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부터” 그는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나의 형제와 자매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만델라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와 만나게 되었고, 그때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의 말처럼 “남아프리카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치화될 수밖에 없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만델라는 동지들과 함께 1944년 ANC 청년동맹을 창설하고, 인종차별적인 법안들을 철폐하기 위한 활동과 흑인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1947년 ANC 트란스발 지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되면서부터 ANC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때 남아프리카는 국민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더욱 가혹한 인종차별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1952년 만델라는 올리버 탐보와 함께 남아프리카에서는 최초로 흑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흑인들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또한 ANC의 저항운동을 이끌면서 ANC 내부에서도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폭력 저항운동을 주장하던 그에게 1960년 70여 명이 살해당하는 샤프빌 대학살 사건은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만델라는 투쟁 방식을 비폭력 저항운동에서 무장폭력 저항운동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1956년 체포되어 반역죄로 기소되었지만 1961년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게 되어 지하생활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만델라는 폭력저항 단체인 ‘민족의 창(MK)’을 창설하고 무력투쟁을 추구하는 투사가 되었다. “나의 사명은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모두를 해방시키는 것” 지하생활을 계속하던 1962년 8월, 만델라는 차를 타고 가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전설적인 ‘검은 별봄맞이꽃’이 드디어 잡힌 것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일명 ‘리보니아 재판’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형을 면할 수 없으리라는 절박함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만델라는 1964년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2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범아프리카회의(PAC)를 비롯한 모든 저항단체들의 단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종종 탈출하고 싶은 유혹을 견뎌냈다. 로벤 섬, 폴스무어 등 악명 높은 교도소에서 보낸 27년간의 감옥 생활은 만델라와 남아공 정부 모두를 변화시키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만델라는 백인 정부와 대화를 시작해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백인 정부의 상황도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국제적으로는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더욱 강화되었고, 만델라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감옥에 있는 만델라는 이제 남아공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인내를 갖고 백인 정부와 대화한 끝에 만델라는 마침내 자기보다 먼저 많은 동지들을 감옥에서 석방시키고, 1990년 2월 11일 자신도 약 1만 일 동안의 감옥 생활을 끝내고 석방된다. 백인 정권은 만델라의 높아진 위상과 국제적인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석방된 후에도 인종차별을 없애고 흑인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던 만델라는 1993년 드 클레르크와 함께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1994년, 마침내 340여 년 간의 인종차별을 종식시키는 남아프리카 최초로 흑인이 참여하는 총선거가 실시되고,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만델라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위대한 사람들을 보면서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임을 배웠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두려움을 느꼈으나, 용기라는 가면 속에 두려움을 감췄다. 용감한 사람이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만델라는 모든 인간의 깊은 마음 속에는 자비와 관용이 있다는 점을 늘 잊지 않았다. “피부 색깔이나 가정 배경과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증오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증오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마음에서 사랑은 그 반대보다 훨씬 더 본성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착함이란 가려 있으나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그리고 그는 억압받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억압하는 사람도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델라는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은 사람은 증오의 포로가 되어 편견과 편협심의 창살에 갇혀 있게 된다. 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다면 남에게 나의 자유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