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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알고리즘에서 로그아웃하는 중입니다
김정은 에세이
김정은 저
도서출판도화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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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사_아름다운 아픔을 그린 글 / 정수남(소설가)
글을 시작하며

Part 1. 속도에 체하지 않는 연습

온라인고스톱의 반전
고물 노트북의 위로
굿바이! 모니터 속 백설공주
오토도어 앞 인간들
내동댕이쳐진 휴대폰
비밀번호의 습격
주인 없는 신문지

Part 2. 손으로 만지는 세계의 다정함

치매 어르신의 연필
아버지의 누런 월급봉투
빛바랜 어머니 혼수저고리
아버지의 낡은 수동 카메라
로봇 태권브이와 자장면
자발적 컴맹의 위기
빨간 우체통의 행방

Part 3. 버리지 못한 마음의 평수

스팸이 깨우는 아침
전기가 끊기면 사라지는 것들
나를 보고 있는 눈
익명성의 칼날
디지털 일기장의 잠금열쇠
할머니와 에어팟
알림지옥의 유세꾼

Part 4. 연결될수록 외로워지는 우리를 위해

시스템 앞의 인간들
좋댓구알의 습격
AI야, 리포트 써 줘
디지털의 유효기간
디지털 코끼리 집어넣기
키보드 뒤의 마리오네트
로그아웃 이후의 행복

저자 소개 1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디지털 저작권 관련 논문으로 언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재직 시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일상의 디지털 적응기를 다룬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를 연재했고 ‘2006년 오마이뉴스 2월 22일상’을 수상했다. 퇴사 후 20여 년간 어린이집과 요양원을 운영하며 겪은 생생한 현장 경험과,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고 분투해 온 경험과 생각을 더해 이 책을 썼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14쪽 | 140*210*20mm
ISBN13
9791124052334

책 속으로

난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다른 질문을 했다.
“언니는 컴퓨터 많이 배웠구요?”
“응, 그럭저럭… 그런데 말이다. 온라인 고스톱 참 재미있더라. 고스톱 하다보면 한두 시간이 금방 지나가거든… 애들이 왜 그렇게 게임을 좋아하는지 이해도 되고 말이지….”
난 선배와의 전화를 끊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 게임중독 막으려다가 배우게 된 고스톱 게임에 정작 선배가 게임에 빠져 또 다른 조절이 필요하게 되는 건 아닐까?
뭐든지 적당하게 알고 뭐든지 할 줄 아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애들이나 어른들이나 조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적당히 컴퓨터를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1인 1PC의 시대가 오리라는 예상을 비웃듯 지금 우리는 컴퓨터 대신 컴퓨터의 대부분을 할 수 있는 1인 1스마트폰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문서 작성이나 대형 모니터가 필요한 고사양 게임이 아니라면 굳이 컴퓨터가 필요 없을 뿐 아니라, 랩탑 컴퓨터, 태블릿 PC,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 등 용도에 따라 분산 사용할 수 있으니 컴퓨터를 상자 속에 넣어버린들 사람들의 디지털 중독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PC 중독보다는 스마트폰 중독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아녀자 김씨(金氏)는 두어 자 글로써 모니터에게 고(告)하노니, 디지털 세상사 가운데 중요한 것이 모니터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到處)에 흔한 바이로다. 이 모니터는 한낱 소모품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눈앞에 둔지 우금(于今) 5년이라. 어이 인정(人情)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身)을 겨우 진정(鎭定)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懷抱)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새벽녘에 문제의 원고를 마감하고 서둘러 [오마이뉴스]에 올리려고 하는 중에, 5년 정도 ‘밤새도록 낮새도록’ 켜놓았던 17인치 CRT 구형 모니터의 화면이 갑자기 정전기가 나듯 지지직거리더니 별다른 인사 없이 그 불쌍한 생을 마감했다.
이럴 수가. 10년 넘은 고물 노트북 컴퓨터도 아직 제 생을 다하지 않았고, 모니터도 아직까지 5년밖에 안됐는데 이럴 수가…. 도저히 믿기지 않아 PC 업그레이드한 곳에다 물어봤다. 그랬더니 보통 모니터 수명이 2년 정도인데 그렇게 밤새도록 낮새도록 주구장창 켜놓았는데도 5년 정도 썼다면 아주 오래 쓴 거라며 사망 선고를 하고 새로운 모니터를 구입하란다.
그래도 나는 그 말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CRT 모니터나 TV 브라운관이나 원리는 같을 것이고 5년 된 컬러 TV는 아직도 멀쩡한데 모니터만 왜 이러냐고 괜한 시비를 걸어보았다. 하지만 그 시비는 듣는 사람 없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월급봉투에 담긴 끈끈한 추억
누런 갱지로 만들어진, 오래전 부친의 두툼한 월급봉투 뭉치를 보니 깨알같이 손으로 일일이 적어놓은 급여명세 내역이 낯설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공제한 금액이 300원이라는 사실이나, 봉투에 인쇄된 ‘매월 25일은 저축의 날’내지는 ‘쓰고 나서 후회 말고 쓰기 전에 절약하자’라는 직설적인 표어문구도 매우 흥미로웠다.
마치 외계에서 온 물건을 바라보듯 아버지의 급여봉투를 한참 보고 있자니 예전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월급날 누가 훔쳐갈세라 꼭꼭 숨겨놓았던 월급봉투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어머니에게 건네주시던 아버지의 낯익은 모습이 조각조각 이어졌다. 되살아난 기억 속에서 본 아버지의 월급봉투는 지금과는 달리 너무나 친숙하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급여봉투는 비록 투박하지만 거기엔 한 달 한 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생활했던 아버지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이 되어가건만 아직까지도 당신의 명주저고리보다 오히려 좋은 상태로 보관된 급여봉투를 본 순간, 아버지의 땀방울과 그 땀방울의 소중함을 고이 간직해 놓은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아버지의 투박한 급여봉투는 요즘 월급날이 되면 책상 위에 달랑 던져진 급여명세서 한 장을 보는 둥 마는 둥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던, 그동안의 내 건방진 행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20여 년이 흐른 2026년 현재, 나는 남에게 돈을 받는 샐러리맨에서 남에게 돈을 주는 고용주의 입장이 되었다. 경영자로서 급여명세서는 여전히 중요하고 반드시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자신의 급여명세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저마다 다르다. 불행하게도 이제는 그 누구도 명세서를 깊이 있게 거들떠보지 않는다. 통장에 찍히는 자동이체 금액이 중요하지, 내역을 프린트한 종이가 연말정산 외에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마저도 필요할 때 요청하면 언제든 솟아나는 ‘마르지 않는 디지털 샘물’ 같으니, 옛날 우리 어머니처럼 봉투를 차곡차곡 모아둘 필요도 사라진 것이다.
마음 한편으로 쓸쓸함이 감돌던 와중에, 문득 자동이체된 급여를 굳이 만 원짜리 지폐로 바꾸어 흰 봉투를 채우던 그 시절 선배의 고집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련함이 아니었다.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리는 디지털 숫자 속에서, 노동의 숭고한 가치와 가장으로서의 당당한 존재감을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었던 아날로그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음을 이제야 눈물겹게 깨닫는다.

쓰레기 속에서 보석을 찾는 마음으로
그렇게 끔찍하면 메일을 안 보고 계정 자체를 아예 없애면 되지 않나 하고 반문하는 이도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그런 식의 얘기는 디지털 세계에서 새로운 무인도에 갇혀 사는 21세기형 신 로빈슨 크루소가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주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정말 힘든 일일 것이다.
또 하나, 내가 메일을 안 보고 계정 자체를 없앨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러한 끔찍한 쓰레기들 속에 섞여서 들어오는 보석처럼 빛나는 격려성 메일이나 질책성 메일들 때문이다.
격려성 메일이든 질책성 메일이든, 내 글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단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에 결국 나는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보석이라는 생각으로, 하루에 수백 통씩 오는 쓰레기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찾느라 메일을 하나씩 지우는 노동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고 광고한 가전회사 냉장고를 본 모 해외 신문이 ‘쓰레기 메일이 쌓이는 냉장고’란 표현을 썼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글쓴이가 오죽 그런 종류의 메일에 시달렸으면 인터넷 소리만 들어도 마치 [파블로브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쓰레기가 떠오를까? 피식 웃음이 나지만, 웃을 일도 아닌 것이, 쓰레기성 스팸메일은 전 세계적으로 이미 인내의 한도를 넘어설 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는 “좋댓구알(좋아요^댓글^구독^알림)”을 외치며 광고를 건너뛰지 말아 달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반복된다.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광고 시청이 창작자의 생존과 수입을 좌우하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콘텐츠와 광고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방송 속에 자연스럽게 끼어든 협찬 상품, 영상 아래 고정된 구매 링크, 광고를 보면 포인트를 주는 보상형 광고, 음악 스트리밍 도중 흘러나오는 중간 광고, 앱을 열기도 전에 화면을 채우는 전면 광고, 숏폼 속 자연스러운 PPL 등등. 이제 앱은 광고의 집이 되었고, 광고주는 앱 생태계의 주인이 되었다.
진짜 문제는 그 광고들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심지어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먼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광고는 귀찮게 따라붙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속삭인다. “당신이 필요로 해서 내가 이미 여기 와 있는 것”이라고, “당신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주니 우리는 윈윈(Win-Win)하는 관계”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결코 대등하지 않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위치, 생활 패턴, 소비 이력은 물론, 몇 시에 깨어나는지, 지친 밤의 감정 상태까지 정밀하게 학습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할 것 같은’ 가장 취약하고 정확한 순간에 할인 쿠폰과 쇼핑 추천 푸시를 띄운다. 밤 11시의 배달 앱 알림, 출근길의 커피 쿠폰, 월급 직후에 타이밍 맞춰 날아오는 명품 쇼핑몰의 알림 같은 것들로.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이쯤 되면 우리의 욕망조차 고도로 설계된 결과물이 아닐까. 정말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원하도록 유도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이 교묘한 광고가 보기 싫다면 프리미엄 요금을 내며 ‘돈’을 지불해야 하고, 그게 싫다면 닥치고 광고를 보며 개인 정보와 시간, 데이터를 바쳐야 한다.
나는 한때 광고가 싫어 유튜브 프리미엄 가입을 고민했지만, 결국 익숙한 불편을 택했다. 심지어 광고가 붙는 저가형 넷플릭스 요금제로 바꾸면서 “어차피 매일 보는 것도 아닌데 싼 게 낫지”라며 기묘한 합리화까지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광고에 굴복한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 시스템 자체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2004년, 웹을 지배한 것은 단순한 팝업광고였다. 그렇다면 2026년 현재, 내 생활과 욕망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답은 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나보다 먼저 알고 있다. 내가 누르고 싶어 하는 ‘구매하기’ 버튼을 24시간 내내 알고리즘과 함께 대기시키고 있다. 오늘 밤도 나는 유튜브 먹방 속 먹음직스러운 낙지볶음을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알고리즘이 설계한 완벽한 덫에 걸려 협찬 링크를 클릭하고 있는 의지 박약한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예전의 도토리를 좋아하던 미니홈피는 각종 화려한 동영상과 이미지로 넘쳐나는 블로그와 SNS로 대체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15초짜리 ‘숏폼 영상’에 영혼을 빼앗기고, 몇 줄의 글을 읽는 것조차 지루해하며 ‘세 줄 요약’을 요구한다. 자극적인 영상 소스들을 이리저리 이어 붙인 ‘밈(Meme)’을 소비하고 퍼나르는 데 하루를 다 보내는 모습을 보면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이쯤 되면 텍스트의 파편화를 넘어, 사유의 파편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 홈피 방명록에 “님 글 퍼가요”라고 맹랑하게 남기던 그 시절 중학생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혹시 그 아이들이 자라서 “AI야, 리포트 써줘”라고 명령어를 치는 어른이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최근 뉴스에 나온 것처럼, 해외연수 보고서를 AI로 대충 써서 제출했다가 덜미가 잡힌 어느 공무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은 비교할 수 없이 스마트해졌지만, 과제를 기계적으로 해치우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참 한결같다. 예전에는 남의 홈피 글을 긁어오다 걸렸다면, 이제는 AI가 뱉어낸 그럴듯한 글발 속에 숨어 있는 거짓 정보(환각 현상)를 필터링 없이 그대로 제출했다가 교수에게 들통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진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는 하나가 있다. 성의 없이 베낀 글, 기계가 영혼 없이 뱉어낸 글은 읽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 컷의 영상이 우리 몸속의 도파민을 일시적으로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내면의 철학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고뇌하며 써 내려간 긴 호흡의 글이다. AI의 그럴듯한 가짜 정보와 복제된 글이 아닌, 서툴더라도 투박하게 내 손으로 꾹꾹 눌러 쓴 ‘내 삶의 맥락이 담긴 단단한 문장’들의 가치를 알아주는 시대가 되길 바란다.

---본문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2024년의 내가 2026년의 내게 묻다
어느날 오래된 내장디스크를 정리하다가 21년 전의 글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그때 마무리 못했던 생각과 의문이 담긴 문장들이 지금의 나를 향해 조용히 되묻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동안 얼마나 달라졌나요”
ChatGPT와 제미나이에게 과거 오마이뉴스 연재 글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인간이 잊고 있던 감정의 간극을 더 날카롭게 짚어 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흔적을 되돌려주는 이 기묘한 시대에, 나는 역으로 용기를 얻었습니다.

추천평

어쨌든 우리는 지금 자신도 모르게 디지털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김정은 님도 그것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그 속에 살지라도 옛것만큼은 잊지 말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누구나 그의 소망대로 이를 함께 통감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정수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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