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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여성사, 한 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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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01 다시, 여성사를 위하여

김은경 젠더링하고 퀴어링하고 크리핑하라!
정현백 여성사 연구 40년 그리고 다가올 미래 잇기

02 세계 여성사, 지금 여기

이남희 20세기 미국의 민주주의적 양육과 모성
정용숙 산업문화와 젠더
기계형 세계 여성박물관과 여성 연대
나혜심 근대의 이주 여성, 경계 넘어 사회질서에 저항한 이들
배혜정 자전거, 바지 그리고 여성 해방
김인선 노예 실리아의 주인 살해와 여성 노예의 저항
염운옥 여성사와 동물사의 만남
최재인 텃밭에서 시장으로
배인성 기독교 권위에 맞선 19세기 영국 자유사상가들의 여성관
황혜진 남성 의료인의 경합장이 된 여성의 몸
이진옥 18세기 영국의 ‘아내 팔기’ 풍습
박효근 여성과 종교개혁
변선경 성녀와 마녀, 르네상스기 모순적 여성 모델
문혜경 고대 아테네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천성림 서옥과 장주낭가
장수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여성 해방이 갖는 의미
이선이 일본군‘위안부’ · 전범 · 용서 그리고 여성사

03 한국 근현대 여성사, 지금 여기

홍양희 ‘포스트 가족’을 상상하며 ‘가족의 시대’를 성찰한다
윤정란 · 이성숙 한국 ‘여권통문의 날’은 어떻게 제정되었나?
소현숙 근대 초기 이혼소송과 ‘역사적 행위자’로서 여성
김점숙 사진신부 천연희의 생애 기록
박미현 1920~1930년대 강원 여성의 ‘연대’ 역사 쓰기
김수자 해방 직후 ‘여성의원 최저할당제’ 입법화 좌절기
김미선 ‘한국 젠더경제사’를 위한 시도
장미현 한국의 ‘노동운동가’ 이소선과 수많은 ‘이소선’을 기억해야 할 의무
이송희 1980년대 이후 부산 지역 진보여성운동 속의 지식인 여성들
정현주 여성사 보급과 대중화
이배용 한국 역사 속 여성들의 도전 정신

04 조선 · 고려 · 고대 여성사, 지금 여기

박 경 조선 여성들의 권리 찾기
하여주 조선의 ‘효성스러운 며느리’ 만들기 프로젝트
임혜련 수렴청정, 여성 정치 활동에 대한 인식 전환의 통로
이미선 조선 후궁, 내명부 일원이자 왕족 여성
박미해 조선 가부장제의 유연성
한효정 조선 후기 가부장제에 대한 ‘위험한’ 발상
이순구 딸에서 며느리로
정해은 《규합총서》, 조선 여성이 구축한 살림 지식의 세계
남미혜 조선시대 여성들은 모두 길쌈을 했을까?
김정운 안정복 집안 여성들의 소통과 사랑
박 주 열녀,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창
서지영 조선시대 기녀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 틀
탁효정 여성 불교사의 허브, 조선시대 비구니 연구의 빛과 그림자
권순형 달라도 너무나 달랐던 고려시대의 열녀
이현주 신라 왕실 여성의 자리 만들기
김선주 금관으로 읽는 신라 여성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저한국여성사학회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사 학회로 2004년에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분야의 여성사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했다. 학회 창립의 직접적인 계기는 2005년에 한국에서 열릴 세계여성학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여성사 패널’을 조직한 것이며, 이를 통해 학회 창립의 뜻을 모았다. 학회는 여성사 관련 학술 활동을 증진하고 여성사 연구자들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 창립 이래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월례 발표회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며, 대외적으로는 ‘인문학 여성 연합 학술대회’, ‘역사학대회’, ‘동아시아 여성사 국제학술대회’ 등을 주관 또는 참가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사 학회로 2004년에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분야의 여성사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했다. 학회 창립의 직접적인 계기는 2005년에 한국에서 열릴 세계여성학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여성사 패널’을 조직한 것이며, 이를 통해 학회 창립의 뜻을 모았다.

학회는 여성사 관련 학술 활동을 증진하고 여성사 연구자들의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 창립 이래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월례 발표회를 통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며, 대외적으로는 ‘인문학 여성 연합 학술대회’, ‘역사학대회’, ‘동아시아 여성사 국제학술대회’ 등을 주관 또는 참가하면서 국내외 여성사 연구자들과 꾸준히 연대와 교류를 실천해 왔다. 또한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인 《여성과 역사》를 발행하여 현재 한국에서 여성사 학계를 대표하는 학회로 자리매김했다.

글쓴이|
김은경|한성대학교 교수
정현백|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
이남희|이화여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교수
정용숙|춘천교육대학교 조교수
기계형|서울대 서양사학과 강사
나혜심|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
배혜정|부산대 사학과 조교수
김인선|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조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최재인|한국미국사학회 회원
배인성|전북대학교 사학과 강사
황혜진|영남대학교 역사학과 조교수
이진옥|부산대학교 사학과 강사
박효근|세종대학교 대양휴머니티칼리지 초빙교수
변선경|신라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
문혜경|제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천성림|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연구부교수
장수지?|세대학교 강사
이선이|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윤정란|숭실대 교수
이성숙|여성사연구소 대표
소현숙|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연구팀장
김점숙|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박미현|《강원도민일보》 논설위원실 실장
김수자|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부교수
김미선|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장미현|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이송희|전 신라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정현주|(사)역사·여성·미래 상임대표
이배용|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박 경|건양대학교 인문융합학부 강의전담교수
하여주|부산광역시청 시사편찬 연구위원
임혜련|한남대학교 교육연구소 연구교수
이미선|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 연구교수
박미해|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한효정|한국학중앙연구원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이순구|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정해은|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남미혜|동덕여자대학교 국사학과 조교수
김정운|경북대학교 학술연구교수
박 주|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서지영|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탁효정|순천대학교 연구교수
권순형|(사)역사·여성·미래 전문위원
이현주|아주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김선주|중앙대학교 교수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464쪽 | 672g | 152*224*23mm
ISBN13
9791156122883

책 속으로

젠더사는 민속학적 탐구 영역이나 일상사적인 관심을 넘어 맥락을 고려하는 연구로 나가야한다. 특히 다양성의 시대가 만들어 내는 맥락맹context-blind의 위험성을 고려해야 하고, 그래야만 여성사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즉 젠더사의 이론화가 가능할 것이다.
--- p.37

1920년 수정헌법 제19조의 통과로 건국 이후 2세기가 넘어서야 인구의 절반을 차지했던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여성사에서 큰 획을 긋는 사건이자 1차 여성주의운동The First Wave of Feminism의 결실로 평가된다.
--- p.47

여성박물관은 ‘여성’ 위인의 하우스 뮤지엄을 넘어서려는 집단적 시도이자, ‘자기만의 방’을 위해 고군분투한 여성들의 노력을 가시화하는 획기적인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여성박물관 설립은 68운동과 제2차 페미니즘 물결의 세례를 받은 여성운동가, 역사학자, 미술사가, 예술가, 전시기획자들의 문제의식이 1980년대를 지나며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결과물이다.
--- p.61

미국 펜실베이니아 여성 의과대학 출신의 로제타 홀의 경우, 조선에 이주해 한국인 여의사 양성에 노력했다. 감리교 신자였던 메리 커틀러는 미시간 의과대학 출신으로 여성참정권운동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었다. 의대 졸업 후, 여성 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바 있던 그도 조선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약했다. 본국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외과 수술의 기회를 얻기도 했다.
--- p.74

1836년 필라델피아 노조연합은 “모든 작업장에서 여성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일을 덜 할수록, 남성이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 수 있다. 그러면 결국 여성은 여성이 해야 하는 (집안) 일을 하게 되고, 남성이 하게 되어 있는 (임)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
--- p.112

중산층 가정의 여성이 상당 규모로 임노동에 진출한 것은 1880년대부터 사무직이 증가하면서였다. 여성 임노동자 대부분?1900년까지 70퍼센트 이상?이 가사도우미나 여공이던 시절, 여성 임노동은 빈곤의 표시였다.
--- p.114

1876년 ‘기독교 증거협회’의 토론에 참석한…클로튼 주교는 헤리엇 로가 토론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복음의 진리에 도전했던 남성들의 말을 들을 준비는 됐지만, 뻔뻔스럽게 (남성과) 동일하게 행동하려는 여성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상상하지도 못했다”고 거칠게 비판했다.
--- p.122

신흥 남성 산과 의사들이 전통적인 여성 산파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산과의들은 산파가 과학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공격했고, 결국 이들을 분만실 밖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출산의 주도권은 남성 의사에게 넘어갔고, 분만 과정에서 산모와 여성은 소외되었다.
--- p.132

영국에서는 1918년이 되어서야 겨우 재산이 있는 기혼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되었다.…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재산권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번 돈을 자신이 소유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재산을 처분하고자 한다면…당시 교회나 법을 전혀 개의치 않고 나름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아내 팔기인 것이다.
--- p.141

아내 팔기는 그 표현과 달리 아내가 팔렸다기보다 아내 스스로 결혼을 해체하여 새로운 대상을 ‘선택’할 수 있었던 제도 속의 하나의 틈이었다. 그래서 이것은 아내의 독립적인 일을 인정하고 그 수입과 재산을 허용한 법 개정이 있자, 저절로 사라졌다.
--- p.144

1527년 카테리나 마테이에 대한 성녀전을 집필함으로써 ‘신의 마스카’를 성녀로 제시했다. 이러한 사실은 정반대에서 대치한다고 생각했던 성녀와 마녀의 모델이 실제로는 굉장히 모호한 기준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신의 은총과 악마의 환상을 구별해 내는 것은 대부분 남성 성직자의 판단에 의존했다. 다시 말해 성녀인지 마녀인지를 가르는 것은 전적으로 남성의 자의적 판단에 달렸던 것이다.
--- p.163

중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허우둥어는…“중일 수교가 맺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역시 한 사람도 이 한을 풀어 주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다”라며, 하물며 수교가 맺어져 배상 요구를 포기한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녀는 죽기 전 자신과 같은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찾아다니며 “잘못한 것은 우리가 아니다”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 p.198

미국의 세네카폴즈 선언(1848)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여성 권리 선언이라고 한다면, 〈여권통문〉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여성 권리를 알린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권리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여성들에게는 순한글로 《황성신문》(1898. 9. 8), 《독립신문》(1898. 9. 9)에, 전 세계 여성들에게는 《독립신문》 영문판(1898. 9. 10)을 통해 여성 권리 선언을 알렸다.
--- p.215

당시 이혼은 ‘기처棄妻(아내를 버림)’라 불렸는데 이는 남성은 아내의 잘못(칠거지악)을 근거로 아내를 내칠 수 있지만, 아내는 어떤 이유라도 남편을 버릴 수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숙양의 소송은 이러한 법과 관행이 무너지기 시작한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일로, 일제가 여성의 이혼 청구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판례였다.
--- p.223

이혼법은 1922년 〈조선민사령〉 제2차 개정을 통해 재판 이혼이 도입됨으로써 일본 민법을 따르도록 변경되었다. 이를 통해 관습에 의해 허락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여성의 이혼 청구권이 법적으로 명문화되기에 이른다.
--- p.224

미국으로 이주하려던 일본 여성과 한인 여성들이 중매쟁이를 통해 미혼남성 이주자와 사진을 교환해서 혼인을 약속하고, 예비 신랑감이 있는 하와이 또는 미국 본토로 입국하여 결혼식을 치르는 ‘사진결혼’이 시작되었다. 1910년 말에 최초의 한인 신부 최사라가 호놀룰루에 도착한 이래…
--- p.235

천연희는 1919년에 창립된 대한부인구제회와 1921년에 조직된 대한인동지회에 참여하여 고국의 독립을 지원했다. 그녀가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한인 사회는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박용만의 지지자와 외교와 교육을 통한 독립을 주장하는 이승만의 지지자로 나뉘어 있었다. 무장투쟁론이 시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천연희는 이승만을 지지했다.
--- p.238

(1927년) 여학생의 술판 접대 동원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교육 취지에 맞지 않는 전습소 운영 전반에 걸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고 개선을 촉구 하였다.…“나중에 오는 학생에게도 못할 일이니 못된 폐단을 고치도록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수용되지 않으면 동맹퇴학할 것을 알렸다.…전습소 및 감독기관인 강원도청에 책임을 요구하며 전습소 교육 전반의 개혁사항을 내걸고 동맹 휴·퇴학 운동을 전개한 여학생들을 가리켜 당시 신문은 “개혁파 학생”이라고 명명하였다.
--- p.248

“편법을 쓰게 되면 여성 자체의 투쟁력이 없어지고 노력 없이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여성운동에 추진력이 없어지는 것”, “투쟁해서 실력으로 선거가 되어야 한 사람이 나와도 가치가 있고 귀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여성의원 할당제에) 반대했다.
--- p.258

간통한 남녀 사이가 특수관계가 아닌 경우 그 형량은 《대명률》의 화간和奸·조간?奸 규정에 따라 장 80~100에 해당한다. 그런데 양반층 여성의 간통은 태종 대부터 사형 등 중형에 처하다 결국 중종 대에 교형에 처하도록 법제화되어 《대전속록》에 수록되었다. 양반층 여성이 정절을 지키지 않는 것을 목숨을 내놓아야 할 범죄 행위로 보았던 것이다.
--- p.311

여성의 입장에서 그들 삶을 돌아보자. 그들은 출가외인으로 살았어도 친가와의 단절을 추구하지 않았다. 근친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과 명분으로 친가에 살거나 출입하고 물자를 보냈으며 친가 사람들을 돌보는 등 친가와 긴밀하게 지냈다. 이러한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효’ 이념을 시가와 친가 사람들 모두에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 p.324

수렴청정의 본래 명칭은 ‘수렴동청정垂簾同聽政’이다. 수렴은 발을 드리운다는 뜻이고 청정은 정사를 듣는다는 것이니 ‘수렴동청정’은 왕과 함께 발을 드리우고 정치를 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명칭 자체만 보더라도 정치를 독단하거나, 왕을 대신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발을 치는 이유는 조선이 유교 국가였기 때문이다.…대왕대비라도 남성들인 신하들과 직접 대면하여 정무를 보는 것은 내외에 맞지 않는 것이었기에 발을 치게 된 것이었다.
--- p.327

국왕이 어린 경우 정통성만으로 왕위를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단종의 선례를 통해 경험한 바 있었다. 그러므로 선왕의 적처嫡妻로서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왕대비가 일정 기간 수렴청정을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왕조의 존속을 위한 차선책으로 받아들여졌다.
--- p.334

일부일처제인 조선에서 왕의 첩인 후궁을 합법적으로 궁궐에 두려면 명분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명부제도였다.…조선 시대 후궁은 이처럼‘ 여성 관료’인 여관의 일원으로서, 공인公人이었다. 그들은 왕과의 개인적 관계에 머물지 않고 명실상부한 공적인 지위를 갖는 여성이 되어 왕비를 보필하는 직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 p.338

선왕의 후궁이자 후왕의 사친私親을 예우하는 제도도 생겨났는데, 궁원제宮園制의 시행이다. 궁원제는 후궁이었던 왕의 생모를 격상하여 사당을 ‘궁’으로, 무덤을 ‘원’으로 승격한 것이다. 내명부가 후궁의 사적 지위를 생전에 공적 지위로 격상시킨 것이라면, 사친 추숭은 후궁 사후에 왕의 사적 영역의 공적 제도화를 이룬 것이다.
--- p.343

조선 시대도 마찬가지로 불법적이지만 법률자문가로서 외지부外知部가 존재했고, 향촌 사족들이 일반 백성을 위해 소장을 작성하거나 소송의 자문가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대송은 소송 당사자보다 법적 지식이 풍부한 대리인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양반 여성의 대송 자격은 오히려 그들의 소송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 p.359

빙허각은 “총명이 무딘 글만 못하다 하니, 그러므로 적어 두지 않으면 어찌 잊을 때를 대비하여 일에 도움이 되리오”라는 생각에 요긴한 내용을 가려 적고, 본인의 의견을 덧붙여 이 책을 집필했다. 따라서 나이 쉰한 살에 완성한 《규합총서》는 생활경제의 담당자로서 자신이 처한 환경과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일궈 낸 연구 결과이자 경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 p.377

《규합총서》에는 조선 후기의 새로운 학풍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빙허각이 이 책에서 인용한 저서가 무려 100종이 넘는다. 이에 대해 직접 “인용한 책 이름을 각각 작은 글씨로 모든 조항 아래 나타내고, 내 소견이 있으면 ‘신증新增’이라 썼다”라고 밝히고 있다.
--- p.378

조선 전기부터 기녀는 궁중 연향을 관장한 관습도감慣習都監에 소속된 공인工人이었다. 어전에서의 전례나 연향, 사신을 위로하는 사신연과 산대, 나례에서 기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관습도감 기녀에 대한 조정의 훈령에는 “여러 공인의 기예는 나날이 단련하고 다달이 연습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정묘한 지경에 이를 수가 없다”는 공인의 사명을 기록하고 있다.
--- p.413

신라 금관은 왕들만 썼던 왕관이 아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황남대총 북분 금관이다. 황남대총 북분은 여성의 무덤이다. 물론 신라에는 여왕이 있었다. 그렇지만 황남대총 북분은 신라의 첫 여왕인 선덕왕(재위 632~647)이 즉위하기 훨씬 이전의 무덤이다.

--- p.446

출판사 리뷰

동서양과 고대~근현대를 넘나들다

그만큼 책에서 다뤄진 주제는 다양하고 폭넓다. 시간적으로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공간적으로는 동서양을 넘나들기에 여성이 주체인 역사이지만 단순히 여성들이 쑥덕공론하는 ‘규방역사’의 범주를 넘어선다. 가부장제와 가족이라는 전통주제는 물론이고, 여성사와 동물사를 연결지어 종차種差를 넘는 정의를 모색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한국전쟁 이후의 양장점 성업을 분석하며 젠더경제사를 파고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한국을 포함한 동서양의 여성사를 포괄하는 이 책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단 하나의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말 영국의 탈코르셋 운동과 여성의 자전거 타기를 다루면서 “여성은 자전거를 탈 때 몸이 편할지 마음이 편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셈이었다”(85쪽)고 갈파하거나 조선의 양반 여성들이 소송을 할 때 요즘으로 치면 변호사라 할 외지부外知部를 활용했다(359쪽)는 이야기 등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경험이다.

친절한 서술에 담긴 미래지향적 시각

그러면서도 책은 마냥 근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자 원고지 150매 분량의 논문 쓰기에 익숙한 필자들이 30매짜리 글을 쓰면서 각주를 없애고, 소제목을 넉넉히 붙이는 등 독자를 위한 배려를 놓치지 않는다. 2018년 선보였던 《한국사, 한 걸음 더》처럼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친절한 글쓰기’를 시도했기에 진지한 글들이지만 의외로 잘 읽힌다. 여기에 18세기 영국에서 흔히 보던 ‘아내 팔기’ 풍습의 원래 의도(141쪽)라든가 1927년 잠사업게 취업생 훈련소인 강원도 춘천의 전습소에서 여학생을 술판 접대에 동원한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개혁파’ 여학생들의 동맹휴학운동 등 놓치기 아까운 사실史實들이 곳곳에 있어 읽는 재미를 돋운다.

그렇다고 책은 여성사 학계의 현주소만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AI시대를 맞아 제기되는 이론화의 필요성이나, 수많은 ‘이소선’을 기억해야 할 의무 등을 강조하는 등 동료 연구자나 후학들을 위한 방향 제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우선 우리 여성사 연구가 어디쯤 와 있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보여주는 책이어서 여성사 연구자 또는 여성사 연구 지망생에게는 값진 나침반이 될 수 있겠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인류 최후의 식민지는 여성”이란 말이 어떻게, 왜 나왔는지 엿볼 수 있는 뜻깊은 읽을거리가 되겠다. 영국의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의 권리 옹호》(1792)에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이성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했을 때, 철학자 토머스 테일러가 저서 《짐승의 권리 옹호》에서 “여성에게 이성이 있다면 동물에게도 이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결론은 불합리하기에 성립될 수 없다”(102쪽)고 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 만나겠는가. 또는 TV드라마에서 궁중암투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대왕대비의 수렴청정(334쪽)이나 후궁의 실체(338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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