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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발간에 부쳐
프롤로그 압록강 노동절의 풍경 1장 여정을 시작하며: 하얼빈과 후난을 향해 2장 만주의 유령: 장춘과 선양 3장 성스러운 산: 랴오양과 첸산 4장 국경지대: 선양에서 단둥까지 5장 다리를 건너: 신의주와 그 너머로 6장 시간의 흐름 뒤바꾸기 7장 새로운 예루살렘: 평양 8장 분단의 슬픈 현실: 개성, 도라산, 그리고 휴전선 9장 시해당한 왕비의 궁전에서: 서울 10장 역사의 상처가 새겨진 섬들: 부산까지 11장 금강산 가는 길: 원산 남쪽 12장 희망으로 나아가기 감사의 말 역자 후기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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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국가들은 모두 우호적인 모습을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 관광을 활용한다. 켐프가 조선을 방문했을 때에도 일본 정부는 외국 방문객이 제국을 둘러보며 일본 식민주의의 ‘근대화 작업’으로 달성된 “한반도의 괄목할 만한 문화 발전”을 목격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팸플릿, 광고, 사진, 영화 등의 수단을 동원하여 세심하고도 효율적인 선전을 재빠르게 펼쳤다. --- p.176
‘불량 국가’ 북한에 대한 뉴스거리와 함께 김일성광장에서의 군사행진을 지켜보며, 그곳이 한때 일본이 운영하던 전화 교환국 사무소와 조선은행 헤이조(일본 식민지시대 평양의 명칭) 사무소가 있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내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일본 언론은 일본과 그 이웃인 북한이 병합의 기억을 함께 기념하리라고는 거의 생각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의 한반도 내 식민 지배는 남한을 식민지로 삼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반면 북한에 대한 식민 지배의 역사는 불편하게도 점차 잊혀지고 있다. --- p.190 평양 거리에서 그녀의 관심을 끌었던 광경은 바로 물지게를 짊어진 풍경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도시에서도 여전히 강에서 물을 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물지게를 지는 힘든 일을 여성들이 했던 다른 지방과 달리 평양에서는 물 긷는 일은 주로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소중한 물독을 등에 지었다. 그러나 1910년 무렵 이미 사실상 도시를 지배하고 있던 일본 당국은, 평양 중심부를 관통하며 능라도를 품고 흐르는 넓은 대동강 둑에 새로운 급수장을 막 완공했다. 급수장은 평양 관광의 백미였다. 켐프는 그곳을 방문했을 때 생각에 잠겨 이렇게 썼다. “고풍스러운 저 물건, 물지게는 머잖아 추억으로 남겠지만 훌륭한 상수도 시설의 편리함은 주민들을 변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 p.192 쌍둥이와도 같던 부산항과 원산항은 지금은 한반도의 분단으로 갈라졌다. 부산의 항만은 기다랗게 누워 있는 섬들과도 같이 흐릿한 수평선에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컨테이너선들로 가득 차 있는 반면, 원산항은 텅텅 비어 있다. 항구에 있는 단 한 척의 배는 한때 원산과 일본의 니가타 항 사이를 운항했던 만경봉92호로, 2006년 핵실험 직후 일본이 북한에 제재를 가한 이후로는 운항이 중단된 채 원산항에서 놀고 있다. --- p.301 냉소적 혐오감은 무관심의 좋은 핑계다.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인도주의적인 관심을 갖는 것을 거부하는 데 그럴싸한 변명거리가 된다. 구호의 손길이 계속 말라가고, 국경이 폐쇄된 채로 북한 정권이 점점 깊은 위기로 가라앉게 된다면, 돌 깨는 인부들과 감 농장의 농부들과 시중호의 어부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만일 체제가 내부적으로 붕괴된다면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동북아시아는 부풀 대로 부풀어 너무도 절망적인 이 빈곤국을 재건하는 과업을, 곧 분명히 떠안게 될 그 과업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p.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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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에 걸친 북한 역사를 통해
동북아시아의 현재를 진단하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와 떠나는 아주 특별한 역사 여행 북한 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엮어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쓴 신은미 씨를 법무부는 국가보안법 7조를 위반했다며 강제 출국시켰다. 반면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세히 보도된다. 대한민국에서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뜨거운 감자인 동시에 말해서는 안 되는 금기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북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신중하고도 사려 깊은 시각을 갖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동시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아시아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 교수는 북한 문제에 대해 균형잡히고 신중한 관점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2010년에 하얼빈에서 단둥을 거쳐 신의주, 평양, 개성 , 금강산 등지를 둘러보고 다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와 임진각, 서울, 부산 등을 둘러보는 긴 여정을 다녀왔다. 이 여행 루트는 100년 전 영국의 여행가이자 화가였던 에밀리 조지아나 켐프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은 것이다. 저자는 여행을 하는 동안 100년 전 켐프의 여행을 되짚어보면서, 방문한 지역에 얽힌 갖가지 역사적 사실을 친절하게 상기시켜주고,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극단적인 악마화나 극단적인 신격화, 북한에 대한 양 극단의 의견밖에 설 자리가 없는 한반도에서 저자는 새로운 시선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여행을 통해 과거와 현재는 잇는 독특한 방법으로 북한과 한반도의 현재를 살펴보며, 신중한 자세로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모색한다. 100년의 시차를 두고, 만주와 한반도를 넘나드는 아주 특별한 여행의 기록이 바로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이다. 극단주의와 편견을 배제하고 북한을 바라보는 역사학자의 시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여행한 서구 여행자들은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과 제국주의의 시선으로 비서구 사회를 바라봤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봤다. 켐프는 제국주의적인 시선과 비서구에 대한 서구인들의 편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켐프는 중국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고, 조선에 대해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관점으로 회상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경험했다고 여행기에 남기고, 예전 여행객들이 전한 조선의 부정적 이미지를 여행기 곳곳에서 열심히 반박하기도 했다. 켐프 여정이 이런 시선과 관점을 담고 있기 때문에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수많은 서구 여행자들 가운데 켐프의 여정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극단주의와 편견을 극복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은 21세기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북한에 대한 악마화가 판치는 남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 김일성 일가를 신격화하는 북한, 양쪽 모두를 비판하는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도 밝혔듯이 “세계 언론에 비인간적이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토록 자주 그려지는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소개하는” 일을 통해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북한 사회의 폐쇄성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 저자의 태도는 냉소적인 양비론과는 다르다. 저자는 휴머니즘과 탈근대, 탈식민지화에 입각해 오히려 냉소에 기반한 무관심과 혐오를 비판하며, 여행을 통해서 한반도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아주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1945년 이전 북한사에 대해 말하다 제목에서도 설명하고 있듯이, 이 책은 북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북한에 대한 연구가 제한적이었고, 그나마도 북한사는 ‘1945년 이후에 김일성의 주도로 한반도 북쪽에 성립되어 그 후손들이 통치해오고 있는 국가의 역사’로 한정되었다. 1945년 이전의 역사, 즉 조선 말기와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한 역사는 남한의 역사로만 인식했다. 하지만 이는 역사를 분절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이러한 시선으로는 현대 북한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저자의 여행을 살펴보면 만주에서 시작해서 한반도를 종단하고, 100년 전 켐프의 여행과 자신의 여행을 포개어놓는다. 저자에게 북한의 역사는 시간적으로는 조선에서 식민지 시대를 거쳐 현대로 넘어오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고, 지리적으로는 한반도 북부를 넘어서 만주와 한반도를 전체를 두고 주변국들과 엎치락뒤치락하는 관계 속에 위치한다. 이것이 저자가 100년 전 켐프의 여행 루트를 그대로 밟으며, 만주를 거쳐 한반도를 횡단하는 여행을 한 까닭이다. 여행을 통한 역사 서술이라는 방식도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그동안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다른 곳에 뿌리를 내린 채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약자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것으로 유명한데,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또한 현지를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그 지역 고유의 자료와 사료를 발굴함으로써 국가와 지역의 틀을 초월한 역사를 새롭게 조명했다. 그 덕분에 이 책에서는 김정일과 김일성뿐만 아니라 돌 깨는 인부들과 감 농장의 농부들과 시중호의 어부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호출되며, 도도하고 거대한 역사의 격랑과 그 격랑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끈질지게 살아남는 민중들의 고난한 삶이 풍부하게 드러나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거시적인 차원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굵직한 사건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섬세하고 세밀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역사적 사건들에 더욱 풍부한 의미를 불어넣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한 제언 “세계화된 유목민으로 오래전에 고향을 잊어버린 떠돌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는 테사 모리스 스즈키가 남긴 북한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난 150년 동안 동북아시아 정세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에 따라 결정적으로 좌우되었다”고 주장하며, 중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고, 북한의 위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반도에서의 변화는 동북아시와 세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다고 이야기한다. 그 변화가 냉전의 종식일지, 아니면 또다시 격동하는 역사의 소용돌이일지는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가 아닐까? 분단과 북한의 위기를 끝낼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 문제를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거나 ‘뜨거운 감자’로 치부해버리는 정치 권력자들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노력으로 분단의 경계가 열리기를 소망하는 저자의 바람을 한국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이 책은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