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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글 · 4
저자의글 · 6 신부님 서품 성구 · 9 1부 신앙의 여정 주님 부활 대축일 안 된다! 이대로 끝나선, 부활해야지! · 17 부활 제2주일 완고함에서 온유함으로 달래주시는 예수님 · 22 부활 제3주일 개인(Individual)과 부활 그리고 신앙 · 27 부활 제4주일 당신은 현재입니까? 과거입니까? · 32 부활 제5주일 아버지의 집 · 37 부활 제6주일 파라클리투스(Paraclitus, 보호자, 성령) · 42 주님 승천 대축일 사랑, 그 성숙의 경지로 · 48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과 함께, 또 하나의 여정 · 54 시 소반 · 60 2부 사랑의 삶 삼위일체 대축일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 63 성체 성혈 대축일 생명의 양식, 구원의 음료 · 68 연중 제12주일 일상의 ‘아하!’ 경험과 진리 · 74 연중 제13주일 열등감 저 너머로 · 80 연중 제14주일 착한 아이와 덜 착한 아이 · 85 연중 제15주일 악마가 튀어나왔나 봐! · 91 연중 제16주일 크다고 크지 않아, 작다고 작지 않아 · 96 연중 제17주일 듣는 마음 어때? · 100 연중 제18주일 사랑에 빠진다는 건 · 105 연중 제19주일 방어기제와 믿음 · 109 연중 제20주일 믿음, 본질적인 삶에서 · 113 연중 제21주일 통찰, 하느님의 은총 · 117 연중 제22주일 여정에서 만나는 고난과 죽음 · 121 연중 제23주일 사랑은 과학이다 · 127 연중 제24주일 세상 사람과 달리 · 132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나 때문에 · 137 연중 제26주일 본능 욕구와 본성 욕구 · 142 연중 제27주일 권능과 함께 춤을 · 147 연중 제28주일 내적 불안의 공허한 인생, 관계를 바라시는 하느님 · 152 연중 제29주일 의심을 즐겁게 · 157 연중 제30주일 학덕(學德)과 애덕(愛德) · 162 모든 성인의 대축일 하늘의 비밀, 땅의 비밀 · 167 연중 제32주일 마음놓침과 기름 · 172 연중 제33주일 이유야 어찌 됐든, 내 삶이요 나인걸 · 177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너로 인한 나 · 182 시 홍씨 아저씨 · 187 3부 구원으로의 초대 대림제1주일 구원의 이미와 아직, 그리스도인의 이미와 아직 · 191 대림 제2주일 시작된 구원, 회개의 시간, 하느님의 기다림 · 196 대림 제3주일 빛이신 그리스도 · 201 대림 제4주일 황홀한 낮춤과 비움의 신비, 그 응답과 수동성 · 206 주님 성탄 대축일 경이로운 하느님의 공감, 인류를 위한 새로운 에너지 · 211 예수,마리아,요셉 성가정 축일 건네오시는 말씀, 하느님의 초대장 · 216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상에, 천주의 성모라니! · 221 주님 공현 대축일 주님의 공현과 우리의 진정성 · 225 주님 세례 축일 진정성과 당위성 · 231 연중 제2주일 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 236 연중 제3주일 퇴행과 신앙 · 241 연중 제4주일 더러운 영이 물러나고 · 247 연중 제5주일 회복되는 인간의 존엄 · 251 연중 제6주일 나병과 자존심 · 256 사순 제1주일 불안, 유혹 그리고 회개 · 261 사순 제2주일 사람은 열 번 변한다 · 266 사순 제3주일 몸의 배신, “성전을 허물어라!” · 271 사순 제4주일 심판이 아니라 구원 · 276 사순 제5주일 자기 부정의 영성 · 281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그날 골고타에서 · 286 주님 부활 대축일 창조 때부터 그 사랑이 · 290 시 무인(無人)섬에서 나오다. · 294 4부 유익한 심리학 성격과 신앙생활 5 편집성 성격장애 · 297 성격과 신앙생활 6 경계의 어려움을 겪는 성격장애 · 300 성격과 신앙생활 7 분열형 성격장애 · 303 성격과 신앙생활 8 중독과 성격장애 · 306 성격과 신앙생활 9 성격은 바꿀 수 있다(1) · 309 성격과 신앙생활 10 성격은 바꿀 수 있다(2) · 312 성격과 신앙생활 11 청소년,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1) · 315 성격과 신앙생활 12 청소년,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2) · 318 성격과 신앙생활 13 부부 대화에서 존경과 연민(1) · 321 성격과 신앙생활 14 부부 대화에서 존경과 연민(2) · 324 성격과 신앙생활 15 대화와 소음 · 327 성격과 신앙생활 16 모세와 예레미야의 ‘자기개념’ · 331 성격과 신앙생활 17 사울과 다윗의 건강한 경계선 · 334 성격과 신앙생활 18 나는 모릅니다 · 337 성격과 신앙생활 19 매트릭스, 그 허상의 세계에서 · 340 시 사별 · 344 |
라자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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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투정 부리는 제자를 달래주신다. 더 큰 세상으로 이끌어주신다. 보고 만질 수 있는 세상만이 아니라, 볼 수 없지만 너무도 뚜렷하게 존재하는 하느님 나라, 만져볼 수 없지만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세계로 더 크게 살아가도록 불러주신다. 눈에 보이는 의미와 가치도 있지만 무형의 의미와 가치도 있음을 아는 더 큰 삶으로 초대하신다. 잠시 감정적으로 투정 부리고 어깃장을 놓으며 떼쓸 수는 있지만 완고해져서는 안 된다. 완고함은 불신앙의 한 모습이다. 하느님께서는 완고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토마스가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 앞에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하며 마음을 내려놓듯이, 우리도 온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당장 아픈 부분을 보면 하느님께 투정 부릴 만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할 일인가?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44-45) 똑같은 세상이지만 신자들의 삶은 다른 이들과 전혀 달랐다. 재산의 개인소유나 재물의 축적이 아닌, 오늘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처럼 보이는 생활방식으로 그들은 살았다. 그들은 개인의 욕망에 따르는 자유주의에 따르지 않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사도 2,46) 먹었다. 투정 부리는 사람도 어깃장을 놓는 사람도 없었고 아이들과 노약자들은 특별한 보살핌을 받았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모습이 아닌가? --- p.25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참된 행복인가?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행복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이 주는 행복을 좇는다. 우리 아이가 남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할 거라고 확신하는 듯하다. 서로 세상의 좋은 조건으로 만나 결혼하면 더 잘살고 행복할 거라고 굳게 믿는 듯하다. 세상에서 남보다 출세하면 더 당당해지고 더 큰 권세를 쥐면 남부럽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래서 기도한다. 대학 시험에만 꼭 붙게 해주신다면, 이번에 꼭 입사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신다면, 마치 평생 은인으로 모실 것처럼 온갖 맹세를 늘어놓는다. 하느님께서 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할까? 그렇다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들어주셔야 할까?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들어주셔야 할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나 병자들을 위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약자를 보호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마음의 자세가 기도로 표현되고 우리의 노력과 희생이 그렇게 실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로 하느님께서는 자연의 섭리 안에 이미 하실 일을 해두셨다. --- p.45 마태오 복음에서는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마태 10,26)이라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8)고 한다. 그러면서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31),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마태 10,30)라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오히려 참된 진리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임을 알려주신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두려워 자신의 진실을 감추며 자신을 속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두려워 자신의 거짓을 감추며 사람들을 속인다. 이렇게 자신을 속이는 일도, 사람들을 속이는 일도 없이 살고자 한다면 윤리적 정직성만으로는 안 된다. 전두엽의 통찰력 없이는 부지불식간에 누군가를 속일 수 있다. 자신이 거짓으로 살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잘살고 있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젠가 우리의 삶이 끝난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으니 지금 나에 대해 참되게 성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착한 아이도 아니고 열등감이나 존재적 불안으로 자꾸만 자기를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 행동도 아니다. 그것으로 나를 살릴 수 없다. 사람들의 거짓을 두려워하지 말자. 때로는 버티며 고집스럽게 그분만을 바라보고 가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외로운 법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미 내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단다. --- p.78 내 생각대로 뭔가 되지 않는다면, 정말 그렇다면 어찌 되는데? 뭔가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라도 나나? 자존심 좀 상하면 어때? 숨 막혀 죽는 것도 아닌데 마치 사생결단을 낼 듯이 감정에 휩싸여야 하는가? 좋아하는 사람, 의지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내 편이 되어줘야 하고 나를 이해해줘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배신감에 실망감에 몸부림치며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외치면 속이 시원한가? 지금 그토록 ‘이것이 아니면 안 돼!’라며 부여잡고 있는 것이 진정 그렇게 중요한 본질적인 것인지 한번 다시 보자. 물론 비본질적인 것이라 하여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은 궁극적이며 본질적이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나의 외모가 나의 존재를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더 근본적이고 더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쉽게 본질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이방의 여인은 주변부적인 것에 주의를 돌리지 않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했다. 사람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스스로 인정할 줄 알려고 노력하는 것, 남과 비교해서 나도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대신 타인과 다른 나만의 특성을 찾아 그 가치와 의미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기대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길을 가는 것, 이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닐까? --- p.116 사람이 되신 말씀은 우리 모두의 인격을 비추는 빛이시다. 예수님의 인격(페르소나)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상처로 비뚤어지고 폭력으로 일그러진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회복의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헤매며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그 빛이 우리 가운데 오신다. 비록 우리의 어린시절은 일그러진 자아에 그쳤다지만 그분이 오시면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이사 61,1ㄴ) 감싸주시며 치유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경우에도 ‘우리 안에 피워주신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1테살 5,19) 애써야 한다. 불의와 타협하거나 적당히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그분의 길을 갈 수 없다. 묵상하다 보면 이따금 빠져드는 생각 중 하나가, 열심히 잘 살다가도 한 번쯤 타협하고 합리화한 실수로 자신의 다른 모든 삶까지도 송두리째 부정해버리는 것이다. 우리 삶은 명제가 아니다. 하나라도 거짓이면 그 명제는 거짓이다는 식으로 우리 삶을 보아서는 안 된다. 삶은 역동적이어서 어제 옳다가도 내일이면 잘못인 경우도 있고, 오늘 잘못된 것이 내일에 새로운 계기가 되기도 한다. 파도가 출렁일 때 실제로 물은 위아래로만 움직일 뿐인 것처럼 어쩌면 우리의 삶도 위(옳음, 긍정, 참)아래(그름, 부정, 거짓)로 움직이며 앞으로 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가 좌우 날개로 날 듯이, 시계추가 양 끝을 오가듯이 이것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른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 그분이 ‘계시-드러내심’을 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는 그분의 계시를 배워야 한다. 그 빛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이 빛이셨다. 그 빛이 온 세상(모든 사람)을 비추신다. 그리스도인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 빛이 주어졌다. 이 빛에 비추어 자신을 본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만물이 그 빛 안에서 자기 생명을 성취해간다. --- p.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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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성경에서 나를 만나다”, “성경에서 너를 만나다”, “성경에서 자유를 만나다” 라는 상징적인 주제로 구성되었다.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3권을 통해서 세 가지 주제를 통합적으로 성찰하였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 하시며 우리 또한 세상을 이기는 삶으로 초대하신다.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는 일’이며 그 길에서 우리는 자유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원죄로 인한 모든 죄를) 극복해 나가야 할 곳이며 동시에 (하느님께서 창조해주신)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책과 함께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