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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마을을 만나다
2장 땅 이야기 3장 싸우고 또 싸우다 4장 땅은 일하는 농민의 것 5장 빵과 장미 6장 유토피아의 적들 7장 세상에 맞선 마을 8장 유토피아의 종말? 감사의 글 해제 | 경쟁의 가치보다 연대의 가치로 사는 공동체_ 강수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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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날레다는 오늘날 스페인에서는 누구나 아는 이름일지 모르지만 20세기 말에야 악명을 얻었다.…… 1975년 프랑코가 무자비한 승리를 거둔 지 36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지방이 역사적으로 반항적인 소작농의 고향이고 프랑코로 상징되는 중앙 정부의 골칫거리인 데다 1936~1939년 내전 때 프랑코의 적이었으므로, 그는 안달루시아가 썩어 문드러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스페인이 파시즘에서 자유 민주주의로 서서히 조심스럽게 이행하기 시작하자 마리날레다 사람들은 정당을 만들고 노동조합을 결성해 토지와 자유를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0년 넘게 쉼 없이 투쟁하며 공항과 기차역, 정부 청사, 농장, 궁전을 점거하고, 단식 투쟁을 하고, 길을 가로막고, 행진하고, 팻말 시위를 했다. 그리고 애쓴 보람도 없이 수없이 구타당하고 체포되고 재판을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1991년에 이겼다. 정부가 그들의 저항에 진이 빠져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부유한 귀족 가문으로 손꼽히는 집안의 우두머리 인판타도 공작의 소유지 1200헥타르를 그들에게 주었다. _21~22쪽
나는 2012년 1월에 정신없이 어수선한 시장 집무실에 앉아서 산체스 고르디요에게 시의 문장에 있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집들과 비둘기 그림과 문구에 관해 물었다. 거기에는“평화를 추구하는 유토피아”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정치를 하는 다른 방법, 경제를 하는 다른 방법, 함께 사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본보기 말입니다.” 그는 잠시 멈추더니 내게서 자본주의의 현실주의와 패배주의를 씻어 내고 다시 반쯤 청년기로 되돌아가게 하는 말을 했다. “유토피아는 근거 없는 환상이 아닙니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가진 가장 고귀한 꿈입니다. 투쟁을 통해 현실로 바꿀 수 있고 바꾸어야 하는 꿈입니다. _44~45쪽 마리날레다에 처음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현대 스페인 역사에서 마을의 위치를 확고히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1980년 8월에 지방 전역에서 일어난 파업을 배경으로 마리날레다가‘굶주림에 맞선 굶주림 투쟁’을 벌였다. 700명이 아흐레 동안 음식을 거부했다.…… 단식 투쟁에 들어간 지 엿새째 되는 날, 아이들 몇이 앉아 펠리페 왕자에게 편지를 썼다.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아들인 왕자는 왕위 후계자이며, 열두 살이었다.…… 우리 마리날레다 아이들이 네게 안달루시아 상황을, 그중에서도 특히 마리날레다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어 기뻐. 며칠 전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공개 집회에서 단식 투쟁을 계속하기로 했어. 우리도 어머니 아버지와 연대하고 있어. 지금 우리는 여러 날 단식 투쟁 중이야. 우리가 왜 단식 투쟁을 하느냐고? 그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이미 6개월 동안 공동체 고용 기금으로 살았기 때문이야.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 200페세타도 못 벌어. 한 달에 이틀밖에 일하지 못할 때도 있기 때문이야. 가게에서 더는 외상을 주지 않아 이웃에서 돈을 빌려야 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 우리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 봐.……이것은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야. 너는 절대 모를……. 진심으로 부탁하는데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 봐. 그러면 너도 화가 나거나 불쌍한 생각이 들 거고, 그럼 너나 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겠지. _91~92, 95~97쪽 마리날레다 협동조합은 인간의 노동력이 가장 많이 필요해 되도록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농작물을 골랐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올리브 나무와 올리브유 가공 공장에 더해 다양한 종류의 피망과 아티초크, 누에콩, 깍지강낭콩, 브로콜리를 심었다. 이는 가공해 통조림을 만들고 단지에 담을 수 있는 농작물이어서 마을에 가공 공장을 만들어 2차 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늘렸다.“우리의 목적은 이윤이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산체스 고르디요는 설명했다. 이러한 철학은 후기 자본주의에서‘효율’을 강조하는 것과 완전히 대비된다. 효율이라는 말은 신자유주의 사전에서 거의 신성한 지위로 격상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주가라는 제단에 인간의 존엄성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_125쪽 마리날레다에서는 토지―땅과 흙―를 주권이나 집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깊이 들어가면 토지가 거의 호르날레로의 DNA를 구성하는 요소다. 산체스 고르디요의 화려한 수사에서 토지la tierra는 언 제나 숭고한 것이다. 그와 함께하는 정치적 동료와 노동조합, 디에고 카냐메로 같은 사람들의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다. 토지는 지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것이기도 하다. 토지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부정당하면, 이것이 사뭇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마리날레다의 모토는―많은 모토 가운데 하나는―“경작자에게 토지를”이다. 그것이 그들이 푸에블로로서 하도록 되어 있는 일이다. 이는 1991년 투쟁을 그들의 목적론적 종착점에 놓는 철학이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역사의 종말이다. _131~132쪽 어느 날 밤 나는 법과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크리스티나와 함께 카니타라는 값싼 라거 맥주를 홀짝거리는데, 그녀는“한 달에 1000유로면 괜찮아요. 1200유로면 꽤 괜찮고”라고 말했다. 한 달에 1000유로로 그럭저럭 사는 법을 배웠다고 하여‘1000유로 세대’로 불리는 그녀의 세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최저 임금은 대략 월 600~700유로고, 실업 수당은 일반적으로 월 500~600유로다. 크리스티나는 어머니와 함께 마리날레다에 살지만, 에스테파에도 아파트의 방 하나를 빌렸다. 그녀는 에스테파에서 1주일에 며칠을 교사로 일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중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리날레다보다 큰 푸에블로에서 자기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사랑한다. 그것은 불행하게도 길어진 청소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해 준다. 에스테파에 사는 그녀의 또래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서른이나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부모와 산다. _139쪽 조합의 활동가 수백 명이 두 슈퍼마켓에 나타나, 대다수는 밖에서 집회를 하고 그동안 소수가 안으로 들어가 열 개 정도의 카트에 기본적인 식품―기름과 설탕, 병아리콩, 쌀, 파스타, 우유, 비스킷, 채소―을 가득 싣고 계산을 하지 않고 나왔다. 슈퍼마켓 직원 몇몇과 실랑이가 조금 있었지만, ‘수탈한’것을 가지고 나오니 군중이 모두 환호했다.…… 그들의 메시지를 잘못 읽기란 불가능했다. 자본주의 아래서?‘위기’에도?주요 슈퍼마켓 체인들은 주주들을 위해 식품을 팔아 수억 유로를 버는데, 그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 사건은…… 스페인 신문의 1면을 휩쓸고, 저녁 뉴스에서 톱뉴스가 되고, 로이터와 국제적인 뉴스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유럽과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인도와 이란,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에도 퍼졌다.“우리는 수탈자를 수탈하고 싶습니다”라고 산체스 고르디요는 선언했다.“수탈자란 지주와 은행, 대형 슈퍼마켓을 뜻합니다. 그들은 경제 위기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_230~231쪽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공화주의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를 회상하며“혁명을 믿는 저 이상하고 가슴 뭉클한 경험”을 누구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 사회는 잠시 살아 있는 공산주의를 경험하면서 활기가 넘쳐흘렀다. 마리날레다는 완전한 공산주의도 완전한 유토피아도 아니다. 그러나 푸에블로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오늘날의 스페인에 한 발짝만 들여놓아도 연일 난타당하는 빈곤하고 원자화된 사회, 가난한 사람들이 죽든 살든 전혀 관심 없는, 그동안 한 번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정치 계급과 경제 제도가 죽음과 파괴의 구렁텅이로 끌어당기는 사회를 보게 될 것이다. 산체스 고르디요가 이룬 것은 토지와 주택, 생계 수단과 문화만이 아니다. 그것들도 물론 놀라운 업적이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이상하고 가슴 뭉클한 경험이고, 오웰이 말한 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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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이상한 마을이 있다!
마리날레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도 세비야에서 동쪽으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다. 별다른 산업 시설이나 관광 자원 없이 올리브와 농작물을 기르는 스페인의 평범한 농촌인 이곳에 스페인 전역과 전 세계의 눈길이 모이고 있다. 1979년 이래 주민이 직접 선출한 시장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Juan Manuel S?nchez Gordillo가 30년 넘게 마을을 다스리고 있으며, 농산물과 올리브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농장과 공장을 협동조합의 형태로 살림을 꾸리고 판매와 수출까지 한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하루에 여섯 시간 반 일하며 47유로, 한 달에 1200유로(약 180만원으로 스페인 최저 임금의 2배)를 받고, 협동조합은 이윤을 분배하지 않고 재투자한다. 최근의 이주민들을 제외하면 완전 고용 상태나 다름없다. 더 놀라운 것은 지방 정부로부터 자재를 지원받아 주민들이 살 집을 직접 짓고 한 달에 15유로 정도만을 부담하여 사실상의 무상 주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마을의 중요한 사안은 총회에서 주민의 참여로 이루어지며 이 마을에서 벌이는 떠들썩한 축제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이상한 마을을 두고 극단적 평가(유토피아 또는 공산주의 테마파크, 독재 체제)가 엇갈리고 있다. 이 책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댄 핸콕스Dan Hancox가 이곳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시장을 비롯한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동체를 심층 취재하고, 이 마을의 지지자와 반대자를 두루 인터뷰하여 내놓은 결과물이다. 마리날레다 입구에 서 있는 표지판. ”마리날레다, 평화를 위해 투쟁 중”이라고 쓰여 있다. ◈ 마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십 년간의 투쟁으로 땅과 일을 얻어 내다 마리날레다가 속해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 역사에서 줄곧 빈곤과 반란, 대지주(귀족)의 독점적 토지 소유(라티푼디오latifundio), 중앙 정부의 소외와 배제 등으로 그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프랑코 독재 정권은 이 지방에 관광?건설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으나 개발의 이익은 고스란히 빠져나갔고, 프랑코의 사망 이후에도 이 지역의 낙후성은 쉽게 개선되지 않아 최근의 경제 위기에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최근까지도 안달루시아 땅의 50퍼센트를 단 2퍼센트의 귀족 가문이 독점했을 정도로, 스페인에서 토지가 가장 비옥하지만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1970년대 후반 마리날레다의 소작농들이 1년에 한두 달밖에 일거리가 없어 스페인 다른 지역과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등 생존이 위기에 처하자 주민들은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의 지휘로 직접 행동에 나선다. 1980년 이 지역의 실업률이 60퍼센트를 넘자 700명의 주민이 9일간‘굶주림에 맞선 굶주림 투쟁’, 즉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얻어 냈다. 그러나 이들은 보조금이라는 미봉책에 만족하지 않고 토지 개혁과 재분배를 요구하며 장장 12년에 걸쳐 한여름에 매일 16킬로미터를 행진하여 귀족 소유의 땅을 점거하고 쫓겨나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정부는 그 땅을 귀족에게 보상하고 마리날레다에 주었다. 이후 마리날레다는 보수 언론과 정치인, 부유층, 귀족, 지주, 교회 등으로부터 모함과 흑색선전에 시달려야 했으나, 정부의 보조금과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적이고 자율적인 노동과 그 성과를 통해 자신들의 투쟁이 정당함을 입증해 왔다. ◈ 자본과 권력의 억압에 상상력과 비폭력으로 맞서다 저자는 마리날레다를 공산주의적 유토피아가 실현된 공동체로 보거나 정반대로 실패한 현실 공산주의의 축소판으로 보는 관점 모두 이 마을을 단편적으로만 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마을은 스페인 역사에서 안달루시아가 차지하는 독특함, 즉 자립과 분권에 대한 강한 열망, 땅과 일에 대한 집착, 상당한 수준의 무정부주의 등을 배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특정한 이념으로서의 공산주의를 실현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한편으로 이 마을이 지닌 자유로움과 개방성, 마을 규모에 비해 다섯 배나 많은 여가 시설,‘빵과 장미’/노동과 축제의 적절한 균형은 실패한 공산주의의 축소판으로도 볼 수 없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의 지원이나 복지 제도에 기대지 않고 자립이 가능한 경제 모델을 만들어 냄으로써 기존의 사회 민주주의나 복지 국가 체제와도 다르다. 마리날레다는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토지와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평화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투쟁해 왔다. 행진과 단식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절대적 빈곤을 전국에 알리고, 정치인과 지배층, 언론의 부당한 흑색선전(“이 마을 주민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차를 구입했다” 등)에 단호히 대응하여 사과를 받아 내는가 하면, 평화적인 집회와 점거, 눈길을 끄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슈를 부각한다. 또한 경찰 병력을 두지 않고도 치안을 유지할 나름의 규율을 만들어 내고 그 예산을 복지에 투입하고, 스페인은 물론 전 세계의 대안/저항 세력(바스크, 카탈루냐, 팔레스타인, 서사하라, 중남미 등)에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1990년대 초반에 마을이 기나긴 투쟁에서 승리하고 자립을 꾸려 나가면서 이들은 그 투쟁 대상을 자본주의와 세계화로 점차 확대해 나간다. 스페인을 강타한 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던 2012년 마리날레다와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은 대형 슈퍼마켓 체인 두 곳에 들어가 계산을 하지 않고 식료품을 가지고 나와 지역의 푸드뱅크와 무주택자들에게 30년 이상 마리날레다의 투쟁과 실험을 이끈 시장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 기부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유명세(‘로빈 후드 시장’)와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이는 스페인이 처한 위기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 마드리드에서 월스트리트까지, 파국의 자본주의 이후를 고민하다 1990년대 초반의 유럽 통합과 무제한적 성장과 개발,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유럽 경제 위기로 누적된 불안 요소는 유럽연합의 주변부인 남유럽과 동유럽에 직격탄을 날렸다. 건설 붐이 가라앉자 스페인 전체 주택의 16퍼센트가 비어 있는 상태가 되었고, 40만 가구가 금융 기관에 의해 자신의 집에서 강제 퇴거당했으며, 노숙자가 4만 명 이상에 이른다. 스페인 전체의 실업률은 26퍼센트이고, 안달루시아 지역에서는 무려 36퍼센트에 달한다. 2011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indignados)’운동이 일어나 전국적 현상(5?15 혁명 또는 스페인 혁명으로 불린다)으로 퍼져 나갔다. 600~850만 명의 사람들이 주요 도시의 광장과 시설을 점거하고‘지금 진짜 민주주의를!’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외침은 이후 런던과 뉴욕 월스트리트의 오큐파이(occupy, 점거) 운동에서 다시 반복되었다. 스페인과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고민하는 이들이 이제 이 작은 도시를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마리날레다를 자본주의에 맞서는 하나의 대안으로, 현재 진행형의 실험으로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중이다. 그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실험은 실업과 주택 문제, 빈부 격차 등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체제의 위기와 혁신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준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여러 이슈(공동체, 협동조합, 대안 주거, 고용 문제 등)를 앞서 실험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눈길을 끄는 점이다. 김종철 선생이『프레시안』인터뷰(2013. 7)에서 이 마을을 두고 한 언급(“얼마나 흥미롭습니까? 새로운 정치, 새로운 질서는 바로 이런 상상력에 기반을 둔 행동에서 시작합니다”)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에 도전하고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는 사회적 상상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지난하고 끈질긴 도전과 실험을 통해 유토피아는‘어디에도 없는 곳’이 아니라‘지금 여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라는 산체스 고르디요 시장의 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