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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김영두(소설가^(사)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회장)
축사┃김호운(소설가^(사)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전기스탠드와 아스파라거스┃한말숙 …16
모루를 찾아서┃정연희 …19
통리재의 애환을 그려낸 단편 「심포리」┃이수남 …22
중동 근로자들의 뜨거운 눈물┃김지연 …25
임진리 유료 낚시터┃정수남 …27
폐허의 고성古城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야간 조명 쇼┃김호운 …31
심포리 기찻길과 아카시아┃김민정 …35
고집의 나이, 향기의 나이┃홍성훈 …39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김영두 …42
온천 가는 길┃원준연 …46
흥국사에서 찾은 인연┃강준 …50
가덕도 숭어망루에 오르다┃강인수 …54
아직도 못다 부른 노래┃강태근 …57
바람의 언덕에서, 한 사람의 방식이 시작되었다┃강해원 …61
값진 역사탐방┃고천석 …64
칼춤[劍舞]을 보고┃구양근 …68
낙화의 시간┃구자인혜 …71
바람이 불어오는 곳, 미몽迷夢과 각성覺醒의 섬에 관하여┃권기현 …74
목표는 저 산봉!┃권도운 …77
언제든, 어디든┃권비영 …81
쓰가루[津輕] 여행┃권영재 …85
원초적 삶을 동경┃김건중 …88
할아버지의 고향┃김근당(김영호) …91
청말淸末, 광서제와 여인들┃김길수 …95
순바의 연인┃김다경 …99
파도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부른다┃김도성 …102
푸른 5월┃김동근 …106
상트페테르부르그 여행기┃김동형 …110
시간의 열쇠┃김명석 …114
사막의 이정표┃김미희 …117
상상으로 떠나는 운주사┃김상휘 …121
실크로드에서 건져 올린 「낙타의 시간」┃김성달 …124
금강산에서 만난 요정妖精┃김성열 …128
마지막 선심┃김순녀 …132
대성골 가는 길┃김시흔 …136
백령도에서 보낸 한 철┃김신운 …140
독일마을에서 마침표를 찍다┃김영범 …143
나는 왜 벳부[別府]를 다시 찾았는가┃김영익 …146
골목 끝에서 만난 독립운동가┃김영찬 …149
연길에서 만난 여인┃김영탁 …153
金婚式 旅行┃김영한 …156
모녀의 추억┃김용림 …160
여수 금오도 여행┃김용필 …164
장편 󰡔삼각지에 온 빈포 사람들󰡕의 여로┃김유조 …168
섭섭하이(안녕하세요?라는 뜻)┃김재순 …172
담아 빚다┃김재찬 …174
경주┃김정희 …178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늘┃김종찬 …182
소설가에게는 여행도 창작으로 이어진다┃김준경 …186
죠슈아 트리의 기습┃김진명 …190
씁쓸한 외출┃김진수 …193
에로틱 사원의 ‘까막과부’┃김진초 …197
내 소설 입문의 발원지 소백산┃김창식 …201
고향 여행은 내 소설 소재의 창고┃김학섭 …205
위도에 가다┃김현삼 …209
지중해 건너 어딘가┃김현주 …213
「풍화일장로」의 고향┃김현진 …217
우연한 동행┃김호진 …221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지상낙원, 뉴질랜드┃남태일 …224
그대 어디로 가는가┃류만상 …228
그날의 데자뷔┃류은경 …232
작가-언어의 연금술사-정지용 문학관을 다녀온 후┃류재순 …236
그늘에서 자라는 기도┃문갑연 …240
장편소설 󰡔장다리꽃󰡕 퇴고했던 케임브리지┃문선희 …243
하와이에서┃박금숙 …247
울고 웃는 현장 속으로┃박산윤 …250
우즈벡 여행과 나의 소설 창작┃박상진 …254
아찔한 기억┃박서영 …258
알퐁스 도데의 󰡔별󰡕을 따라┃박숲 …262
런던 한입 베어 물기┃박은주 …266
바티칸 여행┃박정순 …269
소설에 담은 하늘 아래 첫 도시┃박종규 …273
지리산 종주와 내 소설 속의 山┃박충훈 …277
나일강 가에서 건진 소설┃박태주 …281
천 개의 이름┃박하경 …284
숨구멍┃박혜숙 …288
사막의 지팡이┃박혜원 …292
꿈속 물놀이장을 찾아┃방서현 …295
신랑 각시는 아직도 그 신작로에서 빠끔살이 중이다┃방안나 …299
다시 가보고픈 소이작도┃방영주 …303
온돌 열차 타고 과거 속으로┃방은 …307
소설가의 답사┃방현일 …311
지도 밖의 길에서 길을 만나다┃백일기 …314
성장의 공간, 다시 가고픈 로마┃백지영 …317
오지의 나라들을 찾아서┃서기향 …321
델포이 그리고…┃서용좌 …325
푸스코 신전과 마추피츠┃서한경 …329
구사센리[草千里]에 가 보셨나요┃서형숙 …332
인생은 새옹지마┃손경형 …335
거저울을 찾아서┃손영목 …338
영혼의 지문指紋┃손영미 …342
이야기 따라 북한강 물길을 걷다┃송경하 …346
소설의 배경을 찾아 나서다┃송기봉 …350
12시에 출발 햤는디… 아직까정 천안이래유┃송인자 …354
여행에서 얻은 소재의 소중함┃신동규 …358
모르는 사람끼리┃신동근 …362
불의 강으로 가는 길┃신미송 …365
카스고르칸 애장터┃신상성 …368
채움이 된 여행의 다정함┃신은섬 …371
길에서 자음과 모음을 줍다┃심봉순 …375
‘족두리 묘’에서 흘린 눈물┃안휘 …379
화석이 된 도시 폼페이 거리를 걷다┃안문현 …383
세화항 고도리┃안정희 …387
밴프의 보우강에 띄운 문장들┃안중익 …390
궁중 진상석 등메를 찾아┃양승근 …394
샘터 같은 보고寶庫┃양승본 …398
자연과 더불어┃양창국 …401
삼류 작가의 독도 사랑┃오대석 …405
아버지와 똥 막대기┃오석영 …409
2월의 만남┃유미경 …412
또 다른 약속┃윤석원 …416
두 ‘해남댁’ 이야기┃윤원일 …419
남편과의 추억여행┃윤인구 …423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의 서사┃윤재용 …427
부다페스트와 「오렌지빛 가스등」┃윤중리 …430
여울을 넘는 길┃윤찬모 …433
세계의 밤 문화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이계홍 …437
무장현 읍성 탐방기┃이광희 …441
용문산, 오래된 산의 기억을 다시 잡다┃이기철 …445
강원도 정선군 사북의 불빛┃이남산 …450
그 가을 사흘 동안┃이득균 …454
다시 시작한 여행┃이병숙 …457
내소사 절하는 소나무와 인연┃이병옥 …461
무전여행┃이석곡 …465
베네치아 코덱스┃이선구 …468
소설가의 여행┃이신현 …471
만 69세의 좌충우돌 여행┃이애연 …475
소설 󰡔기나긴 여울󰡕┃이영백 …479
해결사┃이영숙 …483
파리의 우울┃이윤협 …486
[남미 여행] 후에 내 소설은 이렇게 변했다!┃이은집 …490
지리산, 대원사 둘레길 이야기┃이인규 …494
60년┃이인록 …498
서부전선을 가다 [태양처럼 뜨겁게]┃이정은 …502
인도네시아를 가다┃이정희 …506
절벽은 바람을 기다린다┃이지혜 …510
그 길에서 그는 항상 걷고 있었다┃이진-정환 …514
파도 먹고 사는 무인도┃이창대 …518
다시 길이 시작되다┃이철호 …522
사우샘프턴에서 에딘버러까지┃이충호 …526
이순耳順의 여행은 너그럽다┃이현숙 …530
바다와 아버지┃이현신 …533
지심도, 침묵의 내면을 걷다┃전흥웅 …537
군산, 시간을 걷는 법┃정기옥 …541
꿈을 찾아 떠나는 소설가의 여행┃정만진 …544
강구항의 인연┃정성환 …547
키 작은 이이와 무의도┃정순복 …551
발칙한 거짓말┃정이수 …554
소풍 가듯 여강麗江 길을 걷다┃정재영 …557
욕지도는 내 로망의 곳┃정현교 …561
용바위┃정형남 …564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삶과 죽음의 혼재)┃조경진 …567
도쿄 디즈니랜드 씨┃조미경 …571
팝콘이 지는 자리┃조인순 …574
여행, 그 현장의 취재와 소설에의 접목┃조진태 …577
하늘에 새긴 부적┃주영숙 …581
풍경 속 여인┃차호일 …585
아내에게 감사!┃채수정 …588
소설가의 동유럽 여행┃채종옥 …591
전라도길┃최성배 …595
춤추는 하늘씨를 위한 여정┃최성진 …599
여행의 마법┃최임수 …603
적성 가는 길┃최태식 …607
어떤 전업 작가의 여행 이야기┃표성흠 …610
생명을 살린 소설 속 배경┃표중식 …613
각시바위에 서린 神氣가┃한보영 …616
선상船上의 날 선 고독┃한창규 …620
칭짱열차┃허부노립(정수) …624
노량의 피는 꽃┃현종호 …628
실크로드 기행 : 트루판┃홍성암 …631
자발적 유배지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홍숙희 …635
몽골의 하늘과 바람┃홍혜문 …639
길 위에 남겨진 사람들┃황단아 …642
낭도┃황보정순 …646

저자 소개 1

편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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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숙 정연희 이수남 김지연 정수남 김호운 김민정 홍성훈 김영두 원준연 강준 강인수 강태근 강해원 고천석 구양근 구자인혜 권기현 권도운 권비영 권영재 김건중 김근당 김길수 김다경 김도성 김동근 김동형 김명석 김미희 김상휘 김성달 김성열 김순녀 김시흔 김신운 김영범 김영익 김영찬 김영탁 김영한 김용림 김용필 김유조 김재순 김재찬 김정희 김종찬 김준경 김진명 김진수 김진초 김창식 김학섭 김현삼 김현주 김현진 김호진 남태일 류만상 류은경 류재순 문갑연 문선희 박금숙 박산
한말숙 정연희 이수남 김지연 정수남 김호운 김민정 홍성훈 김영두 원준연 강준 강인수 강태근 강해원 고천석 구양근 구자인혜 권기현 권도운 권비영 권영재 김건중 김근당 김길수 김다경 김도성 김동근 김동형 김명석 김미희 김상휘 김성달 김성열 김순녀 김시흔 김신운 김영범 김영익 김영찬 김영탁 김영한 김용림 김용필 김유조 김재순 김재찬 김정희 김종찬 김준경 김진명 김진수 김진초 김창식 김학섭 김현삼 김현주 김현진 김호진 남태일 류만상 류은경 류재순 문갑연 문선희 박금숙 박산윤 박상진 박서영 박숲 박은주 박정순 박종규 박충훈 박태주 박하경 박혜숙 박혜원 방서현 방안나 방영주 방은 방현일 백일기 백지영 서기향 서용좌 서한경 서형숙 손경형 손영목
손영미 송경하 송기봉 송인자 신동규 신동근 신미송 신상성 신은섬 심봉순 안휘 안문현 안정희 안중익 양승근 양승본 양창국 오대석 오석영 유미경 윤석원 윤원일 윤인구 윤재용 윤중리 윤찬모 이계홍 이광희 이기철 이남산 이득균 이병숙 이병옥 이석곡 이선구 이신현 이애연 이영백 이영숙 이윤협 이은집 이인규 이인록 이정은 이정희 이지혜 이진-정환 이창대 이철호 이충호 이현숙 이현신 전흥웅 정기옥 정만진 정성환 정순복 정이수 정재영 정현교 정형남 조경진 조미경 조인순 조진태 주영숙 차호일 채수정 채종옥 최성배 최성진 최임수 최태식 표성흠 표중식 한보영 한창규 허부노립 현종호 홍성암 홍숙희 홍혜문 황단아 황보정순 황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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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9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654쪽 | 152*225*35mm
ISBN13
9788961385930

책 속으로

드디어 예약되어 있던 음식점에 다다랐다. 김 여사의 뒤를 따라가니까 홀에는 손님들이 꽉 차 있었다. 식당은 크지 않았다. 우리 자리는 맨 끝자리였다. 바로 앞에 잔디와 여러 가지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밭이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랗고 햇빛은 온화하게 내리쪼이고 있었다. 독일의 생맥주로 셋이서 건배하고, 한 모금 마시고 바로 햄을 나이프로 한쪽을 떼어먹었다. 그런데 이게 햄이라고? 어찌나 맛있는지 나는 또 한쪽을 썰으려 하니까 김 여사가 아스파라거스도 들어보시라고 해서 아스파라거스도 먹었는데, 모양은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먹어 본 아스파라거스인데, 너무 연하고 향기 있고 맛있어서 입속에서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김 여사가 금방 밭에서 따왔고, 5월은 아스파라거스가 가장 맛있는 달이라고 했다. 소스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하도 맛있어서 소스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없을까 했더니, 이 집 특제라 안 가르쳐준다고. 김 여사는 해마다 5월에는 이 집에 와서 먹는다고 했다. ‘금강산도 식후에’라는 말도 있으나 나는 먹느라고 관광객인지도 잊고 있었다. 남편도 김 여사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수십 번의 해외여행 중에 기억에 남는 음식은 1983년에 파리에서 먹은 부야베스(bouillabaisse)다. 그 식당은 그것으로 유명하다고. 국물도 일품이었다. 거기다 빨간 와인을 마시니까 기가 막힐 맛이었다. 서울에서도 양식당에 하루 전에 예약하면 먹을 수 있으나 맛은 전혀 달랐다. 도쿄의 유명한 생선 스시집의 스시도 지금 생각나서 먹고 싶어진다. 폴란드의 빨간 무 냉스프도 먹고 싶다. 이렇게 생각나도록 맛있게 하는 음식점들은 그곳의 주민들이 알고 안내하기 때문에 관광객은 알 수가 없다.
맛있는 아스파라거스와 햄과 생맥주를 조금 마시니까, 무조건 행복했다. 식사가 끝나자 갑자기 오른쪽 발목이 거북해졌다. 남편도 김 여사도 빨리 함부르크의 큰 병원에 가자고 서둘렀다. 식당에서 나와서 오던 거리를 되돌아가는데, 옛 독일 마을은 내 눈을 사로잡아서 나는 발목에 이상을 느끼면서도 꽃으로 쌓인 아름다운 집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걸었다. 게다가 공기는 깨끗하니까 몇 번이나 길게 들이마시기도 했다. 그런데 전등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앗, 내 눈을 사로잡은 초록색 유리 갓의 전기스탠드가 있었다. 나는 덮어놓고 그 가게에 들어가서 그 전기스탠드를 샀다. 김 여사가 갓이 유리인데 서울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으나 내가 따로 들고 가면 된다고 했다. 남편은 다리를 절면서? 하며 역시 반대했다. 나는 조금 클래식한 디자인의 내 책상에 딱 어울릴 것 같아서 요지부동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어디에도 이처럼 아름다운 전기스탠드를 파는 곳은 없었다.
함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김 여사가 큰 병원에 안내했다. 그곳 간호사장이 그녀의 오랜 친구라며. 독일인 젊은 미남 의사가 내 발을 물로 씻고, 조금 찬 액체 약을 발라주었다. 내 발은 약간 부었을 뿐 별것 아니었다. 나는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당케 쇈(Danke Suchön.고맙습니다) 했다. 그 초록색 유리 갓의 전기스탠드는 서울의 내 집까지 무사히 왔다.
---한말숙 「전기스탠드와 아스파라거스」 중에서

1960년대 초, 영동선 이용 여객들은 철암역 지나 통리역에서 통나무 계단 깔린 급경사 1,2km를 내려가 심포리역에 대기 중인 열차에 올라 나한정, 강릉으로 갈 수 있었고 반대로 청량리, 안동행 여객들은 심포리에서 통리까지 걸어 올라가 대기 중인 열차로 환승할 수 있었다. 청량리, 강릉행 여객들은 그 모두를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처럼 그렇게 좁고 경사진 비탈길을 묵묵히 오르내렸다. 주어진 삶을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순응하듯 그렇게 오르내렸다. 그뿐 아니라 심포리에서 나한정까지도 바로 내려가지 못하고 스위치백switchback 선로인, 열차 진행 방향의 앞뒤가 바뀌면서 지그재그 형식으로 오르내리는, 그런 특수한 방법으로 운영되었다.
산업선인 영동선은 중요한 산업기지인 철암 지역의 석탄 개발을 위해 개통되었으나 험한 지세를 어쩌지 못해 통리-심포리-나한정 구간은 다른 어디서 볼 수 없는 그런 특이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영동선은 그것의 통로였다. 자연 경사진 통리재를 오르내리는 여객들의 짐을 맡아 목적 역까지 운반해 주는, 직업화된 ‘짐꾼’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들이 기거하는 집단 마을도 심포리 비탈면인 통리재에 형성되었다.
그들은 생업을 위해 내리막 심포리까지, 반대로 오르막 통리까지 여객들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무거운 두 발로 걸었다. 좁은 통나무 계단은 경사도 심했지만 굵은 모래가 깔려있어 미끄럽기도 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천지사방 험한 산줄기가 흘러갈 뿐인 그곳의 지명이 하필 ‘깊은 물가 마을’ 뜻인 ‘심포리’인가 싶기도 했다. 아마도 천지개벽 전 이곳에 대하가 흘러넘쳤던 것은 아닌가, 엉뚱한 생각을 유도하는 지명이었다. 그렇게 심포리는 석탄의 검은 빛깔 같은 만만찮은 서민들의 삶이 노출되는 지역이었다.
필자가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목격한 것은 1960년대 초, 대구에서 속초행 여행길에서였다. 짐을 들고 통리역 플랫폼에 내린 여객들을 따라 필자는 영문 모르고 경사진 통리재를 내려가야 했고 또 환승한 심포리역에서 나한정까지 긴 열차가 갈지자 형식으로 전진 후진하며 내려가는 장면을 신기한 듯 차창 밖으로 목을 빼면서까지 보았다. 잠시 대기했던 심포리도 어느 산골 마을 역 비슷한 풍광이었으나 열차를 내려보내는 역장의 푸른빛 수기처럼 소시민의 애환이 저절로 흔들려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통리재를 내려가는 그 특이한 철도 운영 방식과 짐꾼들의 행태는 신기함으로 오래오래 남아 있었고 필자는 그것을 2007년 「심포리」란 제하의 단편으로 [21세기문학] 겨울호에 발표했다.
---이수남 「통리재의 애환을 그려낸 단편 ‘심포리’」 중에서

호텔방에서 창을 열면 바로 바이칼 호수가 보인다. 발코니에 나서면 광대무변한 바다, 아니 호수가 시야에 펼쳐진다.
나는 한없이 신비롭고 마성마저도 띈 바이칼을 알현하기 위해 목욕재계를 한다.
몸담고 부대끼던 껍데기에서 빠져나온, 우렁이 같은 나는 단지 바깥세상의 경이로움에 경탄할 뿐이다.
이렇듯 대자연은 인간을 겸허하게 한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깨닫게 한다.
뜰에 모여 있는 여행객들의 잔에 벌써 달이 떴다. 바이칼 호수의 모양은 거대한 초승달이다. 초승달 호수에 그믐달이 떴다. 술잔 속에 뜬 달은 초승달일까, 그믐달일까….
신성한 신, 바이칼에게 고수레를 하고 음복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값지고 소중한 존재이다. 신이, 자연이, 타인이 내게 베푸는 은혜를 어찌 보이지 않는다고 가벼이 할 수 있으랴. 나는 대자연을, 인간을, 관장하는 신에게 감사의 예를 올린다.
고단했던가. 취기가 오른다. 아슴아슴 잠에 빠져든다. 꿈도 없는 바이칼의 심연 같은 잠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잠이 들었는가, 했더니 새벽이다. 동쪽 창이 여명으로 벌겋게 물들고 있다. 주먹으로 하품을 불어 끄다가 문득 일어나 발코니로 나가는 문을 거세게 열어젖혔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부릅뜨고 바다를 노려본다. 일출이 막 시작되고 있다.
바다 심저에서 불을 지피는 듯 붉은 기운이 서서히 바다를 압도하고 있다. 바다는 끓어 넘칠 듯 몸을 뒤채며 막 불덩이를 토해내고 있다. 어디선가 소슬한 바람 한 자락이 빛의 가루를 휘말아 올려 하늘에 흩뿌린다.
세상천지를 서서히 밝히며 지그시 퍼져오는 찬란한 빛의 공격에 잠든 새들도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풀도 나무도, 돌멩이도 이슬을 털어내며 푸르르 기지개를 켠다.
포옹의 갈망을 더는 참을 수 없는 물과 불이 교합을 시작한다. 드디어 이미 가슴을 열어준 바다 위로 불덩이는 불쑥 얼굴을 내민다. 막 떠오른 장대한 태양이 바다 위에서 포효한다. 바다는 짐짓 잠잠해지며 지레 진홍빛으로 물든다.
나는 꿀꺽 침을 삼키고 신음을 참으며 웅려한 일출을 지켜본다.
바이칼 호수의 동트는 아침과 수평선과 달과 별과… [유정]의 남정임과 최석과… 안고 온 외로움과 두고 온 그리움과… 품고 가야 할 기억과 희망과 기쁨과 사랑과, 버리고 가야 할 슬픔과 증오와 절망…
---김영두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중에서

당시는 배낭여행이 마치 대학생의 필수 코스같이 여겨졌기 때문에 친구들도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우리는 졸업하기 전 꼭 함께 배낭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꿈을 이루지 못한 채 4학년이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나는 4학년 여름방학 때 부모님께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친구들에게도 함께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외환위기로 나라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라 나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건실한 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실업자가 느는 상황에 달러를 쓰며 여행을 가는 게 맞을까 싶었다. 식구들도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내겐 꼭 이루어야 할 꿈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죽어도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나는 대학 4학년 때 생애 첫 해외여행을 갔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여행사에서 모집한 일원들과 함께. 내성적인 데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라 낯선 사람들에 섞여 낯선 곳에 간다는 건 나에겐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스위스 영국 오스트리아를 여행했다. 낯설고 두려웠지만 정말이지 꿈같은 시간이었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던 에팔탑, 콜로세움 등 많은 유적지와 고호, 다빈치 등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좋은 만큼 아쉬움도 컸다. 이런 좋은 것들을 친구들과 함께 봤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싶었다. 아쉬움과 함께 나는 종종 남들이 눈치채지 않게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외로워서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밀려드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바티칸에서 천지창조와 피에타상 같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곤 거의 통곡을 하고 말았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함께 작가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 여행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이탈리아 그것도 로마였던 것 같다.
로마를 떠나던 날 나는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며 기도했다. 언젠가 꼭 다시 오게 해달라고.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언제 다시 그곳에 가게 될지 기약이 없다. 그런 아쉬움 때문일까. 내 첫 장편소설인 󰡔나의 노열패밀리󰡕에서 주인공 오세진은 로마에 간다.

이틀을 머문 후 나는 공항까지 바라다 준다는 내외의 호의를 거절한 채 오빠 집을 나왔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기 전 택시를 돌려 다시 트레비분수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동전을 던져야 할 것 같았다. 큰오빠가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언젠가 꼭 다시 한번 와보고 싶었다.
잠시 분수 근처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관광 명소답게 분수 앞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동전을 던지고 그것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여기저기서 셔터를 눌러댔다.
---백지영 「성장의 공간, 다시 가고픈 로마」 중에서

한참 달려가자, 어이없고 난감한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지역은 군사 훈련장이므로 민간인 출입을 금한다는, 육군 어느 부대장 명의의 경고판이 그것이었다. 밀어서 여닫는 크고 엉성한 철망 문은 활짝 열려있으나, 그렇다고 경고를 무시하고 불쑥 들어가기도 찜찜한 노릇이었다.
실망스런 표정인 아내는 돌아가자고 했지만, 나는 곧장 진입해 차를 계속 몰았다.
평행하는 강줄기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며 끝도 없이 이어진 도로는 우리가 전진할수록 심통을 부렸다. 차체의 덜컹거림은 기본이고, 길바닥을 거의 점령한 잡초더미가 차바퀴 축을 휘감아 버티고 늘어지거나, 우기에 패인 구덩이 때문에 차체 바닥이 땅에 끌리기도 했다.
아내의 참을성이 임계점을 향해 올라가고, 나도 은근히 걱정되면서 본인의 무모성에 슬슬 화가 날 무렵, 참으로 절묘하게 우리의 시련이 갑자기 끝났다. 길바닥 사정이 훈련장 진입로 수준으로 양호해지며, 제법 넓고 평탄한 대지가 나타나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평탄함은 땅바닥 자체일 뿐, 그 위의 사정은 어수선하고 너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폐사목이 된 채 우두커니 서 있거나 초봄인데도 겨울의 앙상함 그대로인 나무들. 무성히 자라서 뒤엉켰다가 말라죽은 잡초더미. 군데군데 집터와, 수북이 쌓이거나 널려있는 각종 생활 쓰레기. 간단히 요약하면 오랫동안 방치된 폐허 그 자체로 거저울이 우리를 담담히 맞아준 것이다.
고개를 돌려 강 건너편을 망연히 바라보던 아내가, 이만 돌아가자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고탄교 동단에 진입하게 돼서는 아까 왔던 쪽으로 꺾어 돌아가는 대신에 포천 쪽으로 직진해 서울로 향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자동차 여행자를 위한 식당에 찾아들어 약간 늦은 점심 식사를 한 다음 다시 차를 출발시키면서,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의 심기를 물었다.
아내가 오랜 궁금증을 풀어 속이 시원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결코 진심에서 하는 대답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사람이 평생 동안 가슴에 품어 온 감정의 응어리가 어찌 그처럼 간단히 해소될 수 있으랴. 우리네 정서와 삶이란 게 그렇지 아니한가.
내가 애착을 느끼는 단편소설 중의 하나인 「한탄강」은 이날의 여행에서 탄생했다.
---손영목 「거저울을 찾아서」 중에서

용이 오른 암벽 첫머리에 조촐한 제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늙은 무녀가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며 비운의 바다용의 화신에게 치성을 드리고,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혼령들과, 멀리로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수중고혼이 된 넋들과, 가깝게는 여순사건 때와 육이오전쟁 당시 억울하게도 바다에 수장 된 원혼들을 천도하고 있었네.
그 비손이가 너무 애절하고 간절한지라 주춤거리며 그 곁에 오르니 말없이 막걸리를 내주었네. 목마름으로 막걸리 한잔을 음미하며 파도가 넘실거리는 검푸른 바다를 굽어보니 고깃배가 지나가네. 저 멀리 여수가 보이고, 한걸음에 건너뛸 수 있는 여수 물목 경계를 그저 한숨지으며 망연히 바라만 보던 것을 이제는 다리를 놓아 오가는 정겨움이 격세지감으로 가깝게 묻어나네. 이름하여 팔영대교네. 그 반대편으로 눈길을 주면 남영해수욕장과 송림해수욕장이 펼쳐지네. 모래사장도 희고 곱고, 파도 또한 천년을 노래하며 전설을 담아오네. 하얀 갈기를 세우며 다가오는 파도는 흰고래의 형상으로 다가오네. 멀리로는 우주선 발사대가 하늘로 치솟아 있고, 바다용의 넋이 그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금방이라도 하늘로 오르지 못한 자신의 한을 눈물로 씹어 삼키지 않겠는가.
늙은 무녀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강태공들이 무심삼매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고, 정다운 연인들이 금방이라도 낙석이 떨어질 듯한데도 밀어를 즐기네. 청춘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인가. 뭉클 지난 시절 사랑을 심었던 추억이 아련히 지펴 오르면서 조금은 방해꾼만 같아 멋쩍은 마음을 안고 더 앞으로 나아갔네. 갑자기 회오리 파도가 들이치는 소를 만나게 되고, 그 안쪽에 목울음으로 잠기는 바위 동굴이 나타나네. 바위 동굴 위에 철쭉꽃 한 무더기가 붉게 피어나 순간적으로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 바친 노인의 헌화가를 떠올리게 하였네.
---정형남 「용바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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