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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멀티미디어 기술의 총화라 불리는 위성DMB 서비스가 개시됐다. 이 기술이 주목받은 데에는 공간적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점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컨텐츠와 통신기술 융합의 생생한 사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위성DMB 서비스 실시를 계기로 테크놀로지 ‘발전’이라는 측면과 미디어컨텐츠 개발이란 측면 각각은 더더욱 긴밀한 의존관계를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이 평가에 따르면 상호 독립적 과정으로 사후 결합의 양상을 띠었던 컨텐츠-테크놀로지간의 관계는, 이제 단일한 전체의 유기적 일부로 자리매김하는, 말그대로 ‘융합’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같은 기술적 흐름은 지리-물리적 제약의 극소화라는 지구화시대의 추세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이윤의 개척지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 ‘상식’을 떠받쳐 온 사회의 영역별?부문별 경계가 본디 ‘문법의 환상’이었다는 지적에 탄력이 붙은 지 오래라지만, 어쨌든 위성DMB 서비스는 ‘정보’와 ‘통신’을 가르던 형식적 경계마저 허물어버렸다.
토플러류의 미래학적 논의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이같은 사례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설레임을 북돋우는 또 하나의 촉매일지 모른다. 아니, 특정한 기술적 ‘진전’이 초래할 삶의 조건에 대한 전망이 테크노토피아적이건 테크노포비아적이건 간에 놓쳐선 안될 것은, 기술/테크놀로지상의 변화를 단선적 진보의 함수가 아니라 권력과 조직의 함수라는 분석틀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을 놓친다면 향후에 대한 대책없는 낙관과 무기력한 비관이라는 양극단의 함정을 시계추 마냥 왔다갔다하기 십상이다. 양자 모두 특정한 기술적 진전을 배태하는 특정 사회체제의 ‘역사성’―어떤 사회체제도 항구적일 수 없으며, 그 근본 이유는 다름 아닌 체제 ‘내부’에 있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이 누락된 채 운위되는 ‘기술적 새로움’이란, 따라서 삶을 살찌우는 정보이긴커녕 주어진 삶의 현실을 은폐?호도하는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자넷 와스코의 노작『정보화시대의 영화산업』(Hollywood in the Information Age)은 ‘산업’으로서의 영화 부문에서 보이는 기술적 ‘진전 또는 발전’이라는 문제를 이와 같은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책쓴이는 기술적 변화가 영화산업 자체는 물론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산업 및 팬시-캐릭터?광고?위락산업 등 유관부문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그 맥락을 살피면서, 이 과정을 통해 이른바 예전과 준별되는 ‘새로움’이라 지칭되는 현상들에 대해 비판적 분석을 시도한다. 여기서 이뤄지는 새로움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란, 예컨대 이런 식이다―이른바 ‘홈 비디오 혁명’이 일어났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혁명 같은 새로운 변화는 없다”(제6장 홈 비디오 혁명). 이같은 식으로 새로움들이란 게 실은 ‘익숙한 반복’, 달리 말해 영화산업 부문에서의 부단한 이윤창출 및 그 경로확장의 다른 이름임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 책쓴이의 문제의식은 매우 명료하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술적 진전/발전이라고 하는 것들이 과연 그 ‘수혜자’로 명명된 소비자 다수를 위한 것이냔 점이다. 이에 대해 책쓴이는 회의적이다. 그것은 “대중은 (영화산업 부문에서의 기술진전으로) 더 많은 선택권을 보장받고 더 나은 오락을 제공받게 될 것인가, 아니면 그저 비슷비슷한 오락의 양적 증대를 경험하는 데 그칠 것인가”라는 책쓴이의 자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책쓴이가 국면적으로 나타나는 기술상, 또는 수익모델상의 ‘새로움’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궁극적으로 이 과정에 면면히 자리하고 있는 영화 및 유관산업 일반의 장기지속적 추세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본의 이해로 환원되기 일쑤인 기술적 진전이 표면적으로는 언제나 소비자-대중의 이해가 선차적인 양 담론화돼 왔음을 감안한다면, 1970년대 이래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정치경제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라는 방법을 택한 책쓴이의 시도는 영화산업 부문에서 새로움이란 말이 갖는 진부함 만큼이나 비판이론 계열의 논의가 안고 있는 결론의 진부함을 피하려는 나름의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이런 의미에서 20세기 (미국)영화산업에 관련된 우리네 지식-담론의 장이 ‘역사적 실상’과 얼마나 괴리돼 있으며, 이를 위한 인식론적 전환 지점은 어디인지 살피는 제2장은 영화산업 뿐만 아니라 사회현상에 일반에 대한 비판적 분석지침으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