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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 간첩間諜과 최초의 간첩 전문서 『간서間書』
영원한 익명의 조연, 간첩間諜 / 주봉갑朱逢甲과 『간서』 / 『간서』의 체제와 이론 및 의의 외 제1부 - 간론間論 최초의 간첩 여애, 하나라를 중흥시키다 / 이윤,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은(상)나라를 세우다 외 제2부 - 간술間術 1. 사간死間 _ 관기사關其思를 사간으로 이용한 정나라 무공武公 외 2. 반간反間 _ 편지로 조나라 장수 이량李良을 반간한 진나라 장수 외 3. 향간鄕間 _ 북위 후연侯淵의 향간 활용 외 4. 내간內間 _ 내간을 교묘하게 이용한 한 고조 외 5. 생간生間 _ 생간을 활용한 원조 예지禮至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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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용간]편은 고대 간첩 이론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원조일 뿐만 아니라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많은 사람이 손자의 이론에 기초하여 다양한 간첩 이론을 제시했다. 손자의 이론에 다양한 주석을 다는 것으로 시작된 간첩 이론은 삼국시대 조조曹操에 의해 열렸다. 그는 이를 통해 ‘간첩전을 이용한 군사학’이라 할 ‘간전병학間戰兵學’을 제창했지만 이후 명맥이 끊어졌다. 그러다 당대에 이르러 이른바 ‘이이이두二李二杜’, 곧 이정李靖과 이전李筌, 두우杜佑와 두목杜牧에 의해 이론이 계승되고, 송대에 오면 군사 전문가들에 의해 간첩 이론의 제2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후 금?원?요?서하가 교체되는 격렬한 시대 변화와 숱한 전쟁을 겪으면서 간첩 이론은 침체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명?청 시대에 오면 우후죽순처럼 이론들이 등장하여 병법을 거론할 때는 반드시 간첩을 거론해야 한다는 풍조가 정착되었고, 마침내 간첩 이론의 제3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간첩 전문서로는 최초라 할 수 있는 청대 주봉갑朱逢甲의 『간서間書』가 그 대미를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 p. 44~46 중국 역사상 가장 억울한 사건들 중 하나로 꼽히는 원숭환의 죽음 이면에는 청나라 태종 황태극의 반간계와 이간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적의 포로를 간첩으로 삼은 반간계가 적중함으로써 명나라 내부는 완전히 갈라졌다. 반간계가 적중하면 내부가 이간된다는 것을 원숭환의 사례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중략) 아울러 이 사건은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황제도 얼마든지 간첩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례이기도 하다. 주봉갑은 하나라 왕 소강이 여애를, 탕 임금이 이윤을, 주 문왕이 강태공을 간첩으로 활용한 사례를 맨 앞에 소개한 다음 청나라 황태극의 사례를 들어 고지식하고 천박한 지식인들이 떠받드는 성현들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간첩을 활용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간첩은 떳떳하지 못한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 p.79~80 지백과 한, 위 삼국의 군대가 조의 진양성晉陽城을 공격해 왔다. 조나라의 장맹담이 은밀히 한, 위의 국군을 만나 “신이 듣기에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순망치한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지금 지백이 두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를 정벌하러 나섰습니다. 조나라가 망하면 다음 두 분들 차례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한, 위의 국군은 “어찌 하면 좋겠소?”라고 물었다. 이에 장맹담은 “우리 세 나라가 힘을 합쳐 지백을 없애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두 분의 입에서 나와 오직 저 한 사람만 들은 것으로 해야지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한, 위 두 나라의 국군들은 장맹담과 3국이 연합하여 행동에 옮길 날짜를 밀약했다. 그러고는 저수지를 지키는 관리를 죽인 다음 저수지 제방을 터서 지백의 군대를 수장시켰다. 지백은 포로로 잡혔다.(조나라 국군 조양자는 지백을 죽여서 그 해골로 요강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간조’는 서로 동맹 관계를 맺은 사이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이간책이다. 적들이 동맹하면 내 전력은 그만큼 열세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동맹은 흔히 일시적인 이해관계로 맺어진 경우가 많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경우 서로 의심하고 또 서로 감시하게 된다. 이때가 이간책을 구사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자 적기가 된다. --- p.139~140 송 태조 조광윤은 당시 개인의 초상화를 구하기 힘든 상황을 잘 간파하고 거금으로 임인조의 시종을 매수하여 임인조의 초상화를 손에 넣었다. 그러고는 이를 반간계의 핵심 축으로 삼아 남당에서 보낸 사신을 교묘하게 간첩으로 이용했다. 조광윤은 일련의 치밀한 수순을 통해 남당의 후주를 올가미 안에 끌어들여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다음 결국 임인조를 죽이게 함으로써 자신의 근심을 덜었다. 남당의 후주는 조광윤이 임인조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는 이유를 임인조가 보낸 것 말고는 다른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조광윤의 반간계는 그 독창적인 방식에서 눈길을 끈다. 간첩을 활용하고 이용하는 용간술과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치를 잘 보여준다. --- p. 216~217 전국시대 위나라 왕실의 공자 신릉군은 이웃 나라 조나라 왕의 동정을 훤히 꿰고 있을 정도로 정보망과 정보력이 대단했다. 위나라 왕과 바둑을 두다가 조나라 왕이 위나라를 공격해 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었지만 신릉군은 태연히 바둑을 계속 두었다. 뒤이어 사신이 알고 봤더니 조나라 왕이 사냥을 나온 것이라고 보고했다. 위나라 왕이 놀라자 신릉군은 조나라 왕 주변에 간첩을 심어두었기 때문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는다고 했다. 위나라 왕은 그때부터 신릉군을 멀리했다. --- p.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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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인류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의리와 명분의 첩자 이야기!
간첩의 역사는 동서양 모두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간첩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에게 비밀이란 것이 생겨나고 그것을 캐기 위한 행위가 이루어진 그 순간이 간첩의 역사가 시작된 때라 할 수 있다. 간첩은 인류사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생산이 어느 정도 발전한 단계 이후의 산물이다. 사유재산이 출현하고 계급이 나뉘고서야 나타났다. 특히 전쟁의 필요에 따라 본격적으로 출현했다. 전쟁이 단순한 힘겨루기에서 총체적 지혜 겨루기를 중시하는 쪽으로 변하면서 간첩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간첩은 계급사회에서 국가나 집단이 벌이는 대외 정치투쟁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뛰어난 정치가들과 군사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간첩 활용의 전문가였다. 청나라 말기인 19세기 중엽 때 사람 주봉갑朱逢甲이 쓴 『간서間書』는 중국 상고시대 하나라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4,000년에 걸친 간첩 활동과 관련한 사료를 모아 고대 간첩 문제를 체계적으로 논술한 책이다. 하나라를 중흥시킨 최초의 간첩 여애, 간첩을 이웃 조나라 왕실에 침투시켜 조나라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파악한 전국시대 위공자 신릉군, 이간책으로 항우와 범증을 갈라놓음으로써 유방을 초한쟁패의 최후 승리자로 만든 진평, 조조가 보낸 간첩 장간을 역이용해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유 등 80개에 이르는 풍부한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영원한 익명의 조연’ 간첩과 간첩 이론, 간첩 활용술을 살펴보았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비본?本’ 『간서』는 세계 최초의 간첩 전문서 『간서』를 번역하고, 여기에 편저자의 해설과 함께 현대의 경영이나 사회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유사한 일부 사례들을 해당 항목에 맞추어 소개함으로써 현대의 국가 간 전쟁, 기업 간 경쟁, 개인의 사회생활에 적용할 만한 전략을 배울 수 있다. 주봉갑朱逢甲과 『간서間書』 『간서』를 엮고 지은 주봉갑은 나고 죽은 해가 분명치 않다. 대략 청나라 도광제道光帝와 함풍제咸豊帝 연간인 19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한다. 함풍 4년인 1854년 무렵부터 귀주貴州 흥의부興義府의 지부知府 벼슬에 있는 장릉張?의 초청으로 귀주에서 『흥의부지興義府志』 편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귀주에서는 묘족苗族의 봉기가 발발하는 통에 주봉갑은 붓을 버리고 전투에 참여하여 봉기군을 진압하는 데 나서게 되었다. 바로 이때 주봉갑은 간첩 활용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다양한 문헌과 전적들을 정성을 다해 수집한 다음 이를 다시 정리하고 체계를 잡아 마침내 함풍 5년인 1855년 간첩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저술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간서』다. 『간서』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크게 ‘간론間論’과 ‘간술間術’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간론은 간첩 활용의 이치를 전문적으로 논하면서 간첩의 종류, 메커니즘, 운용, 특징 등 여러 방면을 언급했으며, 제2부 간술은 여러 종류의 간첩을 활용하는 방법을 종합적으로 논술한 것으로 다양하고 상세한 사례와 분석을 곁들였다. 『간서』는 중국 고대 군사 문헌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간첩 이론을 전문적으로 논술한 저술로 그 문헌학적 가치가 대단히 높고, 간첩 활동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계통적으로 논술함으로써 중요한 이론적 가치를 갖추고 있으며, 『간서』가 체현하고 있는 지식 체계는 전문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대단히 광범위한 사회적 인지 기능을 갖추고 있어 실용적 가치가 매우 크다. ‘영원한 익명의 조연’ 간첩 동양에서는 중국의 기록들이 간첩과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서양 간첩의 역사가 고대에 단편적으로 등장하다 상당 기간 공백을 보이는 반면, 중국의 간첩 관련 기록은 그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좌전左傳』에는 약 4,000년 전 하나라의 간첩 여애의 행적이 짤막하게 남아 있는데 이를 중국 최초의 간첩 기록으로 본다. 특히 춘추전국시대라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겪으면서 간첩의 활동상은 더욱 다양하게 전개되었고 그 중요성도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춘추 후기 손무孫武라는 걸출한 군사 전문가는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 간첩과 관련한 정교하고 체계적인 이론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이다. 손무의 『손자병법』이 역사상 최고의 병법서로 평가받듯, 그 간첩 이론과 사상 역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탁월한 인식을 보여준다. 간첩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간첩에게 주어지는 반대급부도 커졌다. 자리가 주어지고 조직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성격상 간첩은 ‘은밀’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어서 이름이 남지 않았다. 조직 역시 임시성이 강해서 확실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간첩은 종종 전쟁의 승부는 물론 조직과 국가 나아가서는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간첩의 이 같은 역사적 의의에 비해 그에 관한 제대로 된 인식이나 전문적인 연구는 수천 년 동안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주봉갑이 편찬한 『간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물론,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담은 최초의 간첩 전문서로서 향후 깊은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간서』는 병법서의 바이블로 인정받는 『손자병법』을 비롯하여 『육도』, 『이위공병법』, 『삼략』, 『36계』, 『삼국지』, 『사기』, 『좌전』 등 다양한 문헌과 전적을 바탕으로 간첩 이론을 정립하고 53가지 간첩 활용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사간 7개, 반간 22개, 향간 4개, 내간 3개, 생간 17개) 현대 국가의 군사와 정치에 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개인의 처세와 사회관계에도 적용 가능한 지혜를 억을 수 있다. 『사기史記』에서 발견한 첩자 관련 기록과 정보의 중요성 저자 김영수는 30여 년 간 사성史聖 사마천司馬遷과 『사기史記』를 연구해온 말 그대로 ‘사기’꾼이다. 이런 그에게 붙은 또 하나의 타이틀은 ‘첩자 전문가’다. 그가 지금까지 쓰거나 펴낸 관련 논문과 저서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 이 분야의 연구가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의 첩자 연구 역시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상고시대부터 한나라 때까지 3,000년의 역사를 담은 『사기』에는 간첩에 관한 내용이 즐비하다. 중국 역사상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흥망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졌으니 생존을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간첩을 양성하여 활용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익명과 비밀에 쌓인 이들 존재의 역할과 작용은 대단히 중요해 전투의 승부는 물론이고 한 나라의 안위까지 결정했다. 저자는 『사기』 곳곳에서 발견되는 첩자 관련 기록을 검토하면서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보의 중요도는 단 한 번도 외면당하거나 도외시된 적이 없다. 저자는 이들이 남긴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과거와 지금의 정보 수집의 중요성과 그 방법들에 주목했고, 생각 끝에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간첩 전문서인 『간서』를 번역 해설한 ‘비본?本’ 『간서』를 펴내면서 독자들에게 ‘정보’라는 키워드를 움켜쥐고 이 책을 읽어달라고 당부한다. 지금 세계의 간첩 활동은 이미 군사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판의 각축, 비즈니스 세계의 경쟁, 인생에서의 고군분투 등이 모두 정보와 관련한 일이 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인류는 이미 고도의 정보화 시대에 진입했다. 정보를 얻고 정보를 조작하고 정보를 고의로 전달하는 일은 이미 정치와 경제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관건이 되었다. 따라서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취득하는 일은 국가의 안전, 사회의 진보, 사업의 성공에 지극히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간서』의 정교하고 모범적인 사례와 논술은 현대의 우리에게 엄청난 참고 자료로서의 값어치를 발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