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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의 환희와 좌절 - 인민위원회 주도기
해방전후의 전후상황 인민위원회의 태동 미군정 실시 신탁논쟁과 정치갈등 제주도제 실시 독자노선의 좌파활동 1947년의 이념갈등 2. 3.1절 발포와 4.3 의 길목 미군정 공세기 4.3의 도화선 3.1절 발포 일관 총파업과 민군정의 대응 불어닥친 검지 선풍 수뇌부 강성인물로 물갈이 미CIC 상주와 서청의 존재 군정당국과 민중의 반목 탄압국면 맞은 좌파세력 제주 남로당의 세대교체 고문치사사건과 4.3의 길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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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의 무제한적인 초토화 작전 전개로 인명피해가 극심한 시기이다. 경비대는 해안을 봉쇄한 후 해안선에서 5km 이상의 중간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한다고 포고령을 내리고 주민소개령과 동시에 마을 방화와 무차별 학살을 자행한다. 특히 12월 연대교체를 앞둔 9연대는 '좋은 전과와 기록을 올리려는 욕망' 에 의해 해안마을로 소개당한 주민들을 대거 학살한다. 토벌대에 쫓긴 무장대는 아지트를 산중 깊숙히 옮기는 한편 때때로 해안마을에 대해 보복기습전을 시도한다.
--- p.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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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절 발포사건의 시발
오후 2시쯤 기념행사가 끝나자 곧 가두시위가 시작되었다. 제주북국민학교를 나온 시위행렬은 두 갈래로 나위어 한 대열은 관덕정을 거쳐 서문동으로, 다른 한 대열은 '북신작로'를 거쳐 동문통으로 이어졌다. 오현중에 집결했던 군중들도 경찰의 제지선을 뚫고 가두 시위를 벌였다. 시위군중은 학교와 마을별로 뭉쳐졌다. --- p.2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