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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실패하니까 사람이다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모든 이들의 새 출발을 위하여
최강 저
가톨릭출판사 2011.07.15.
판매자
사업자 구해줘은근마켓
판매자 평가 4 5명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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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머리말

제1장 쓰자좡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
중국으로 시집간 아들
쓰자좡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
안 간다! 푸르른 내 청춘
거지 엄마의 미소
개구멍에도 영성이 살아 있다
사랑이 지겨울 때

제2장 하늘이 진짜로 무너지는구나!
첫날 밤
인생이라는 시험
아이고, 내 돈 육백 위안
하늘이 진짜로 무너지는구나!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오이는 어디로 갔을까
장미꽃 향기

제3장 옷장 속 성당
만족하니 행복하구나
평안한 밤 ‘핑안이예’
옷장 속 성당
혼자 사는 데 꼭 필요한 것
어디에 서 있는가?
부 야오 썅차이
베개 두 개

제4장 지금 즐겨라, 카르페 디엠!
진짜 아팠다니까
닭대가리
안동 간고등어
불편함의 진실
지금 즐겨라, 카르페 디엠!
불꽃으로 살라

제5장 첫사랑을 배신하다
고마운 사람들
선교사의 하루
첫사랑을 배신하다
돌고양이
당신의 갈릴래아
모든 것은 산이 결정한다

저자 소개

저자 : 최강
한국 외방선교회 소속 사제로서 로마 라테란 대학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자신이 실패했다고 밝히는 중국을 떠나 현재는 멕시코 캄페체 교구의 산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선교 사제로 활동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7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306g | 140*205*20mm
ISBN13
9788932112374

책 속으로

현관문이 잠겨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제가 입고 있던 것은 얇은 반팔 티셔츠와 팬티가 전부였습니다. 제가 옷을 갈아입던 와중에 일을 미루지 않고 너무나도 즉각적으로 행한 결과였습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이 복장으로 밖에 나갔다가는 금방 동태가 될 것이고, 중국인들이 타인의 옷차림에 비교적 관대하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잠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는 정도지 속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지는 않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졌습니다. ‘하늘이 진짜로 무너지는구나!’ ……
살다 보면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오게 마련입니다. 그 원인이 누구에게서 비롯되든 누구나 한 번쯤은 참을 수 없을 만한 고통과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께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의지하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절망은 오히려 희망의 때이기도 합니다. 가정과 주변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 때는 하느님과 생명에 대한 감사함과 절실함이 없다가도, 일단 내게 하늘이 무너진 듯한 절망적인 순간이 닥쳐오면 원망이든, 탄원이든 하느님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 시작하니까요.
그런 간사함도 괜찮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든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의 희망이요, 구원이시니까요. 하지만 똑똑히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변함없이 영원히 우리를 살릴 수 있는 것인지를. ---‘하늘이 진짜로 무너지는구나’ 중에서

대략 십여 년 전, 파푸아 뉴기니에서 호주 출신 배리 놉스 신부님과 함께 정글 속의 원주민 공소를 돌아다닐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동네마다 다 돌아다녀 봐도 화장실 비슷하게라도 생긴 곳 하나 찾을 수가 없어서 생리 현상 해결이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습니다. 며칠을 어찌어찌 참고 지내다가 결국 배리 신부님께 “아니, 어떻게 화장실 하나 없이 산대요? 자기들은 없이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같이 자기들을 일부러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하나쯤은 만들어 놔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그랬더니 배리 놉스 신부님이 제게 한 가지 충고를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저는 둔기로 머리를 한 대 두드려 맞은 얼얼함을 느꼈습니다.
“스티븐! 선교사는 선교사 자신들을 위해서 이 사람들이 사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하거나 불평을 해서는 안 돼. 선교사는 먼저 이 사람들이 사는 환경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자신을 그 세상에 익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 자신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을 때, 그런 세월만큼 그들과 함께 살아간 다음에야 객관적인 시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가려낼 수가 있는 거지. 내 말 이해할 수 있겠어? 자, 이 사람들은 화장실이 없어도 다들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잖아. 잘 해결해 봐. 다 방법이 있을 거라고. 하하하.” ……
건 대통령이건 서시 같은 절세미인이건 간에 사람 사는 거 이렇게 혹은 저렇게 큰 차이가 나 보인다 싶어도 사실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똑같은 한평생 살다 가는데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날까요. 자기가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큰 힘입니다. 똑같은 상황에 있어도 어떤 사람은 불평만 늘어놓으면서 그 상황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그 상황을 오히려 즐기며 재밌어 합니다. 즐기면서 재밌게 지내다 보면 그만큼 빨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 ‘만족하니 행복하구나’ 중에서

스승 예수님!
고백합니다. 그동안 너무 외로웠습니다. 함께 미사를 드릴 신자도 없는 이곳에 살면서 ‘선교 사제로 평생을 보내겠다’고 당신께 드린 약속을 한 수만 물러 달라고 떼를 쓰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뜨는 달이 그렇게 외로워 보여서 홀로 남겨 두지 못하고 밤새 바라보며 창문 옆에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태양도, 바람도 외로웠습니다. 행여 일이 생기거나 친구가 생기면 좀 덜할까 싶어서 일에 빠져 보기도 하고, 친구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미사를 드리는 시간은 점점 힘든 시간으로 변해 갔습니다. 정성은 눈곱만큼도 없이 그냥 빨리 ‘해치우는’ 식으로 바쳤습니다. 기도는 점점 저만의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음성을 듣기 위해 홀로 기다려야 하는 시간조차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빈 밥통을 보여 주신 바로 그날, 한 선배 사제의 낯선 고백을 들은 그날, 스승님이 제게 빈 밥통과 낮은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고, 지금도 그 놀라움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제 외로움의 시작과 끝을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제 외로움은 곧 당신의 부재입니다. 당신의 부재가 제 외로움의 시작이고 제 생명의 끝입니다. …… ---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중에서

혼자 지내는 일을 제법 잘 즐기는 편이면서도 혼자 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싫은 일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혼자 미사 드리는 일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면서 세상을 향해 양팔을 벌려 주님의 평화를 나누려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그 짧은 고요가 제게는 아직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집니다. 그럴 때면 무슨 신비의 공간인 양 옷장 속에 차려진 제대와 그 앞에 걸려 있는 선교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제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요?” 하고 하느님께 여쭙고는 한참을 멍청하게 앉아 있곤 합니다. ……
제게는 아직 그런 본당도, 한두 분의 신자도 없지만 저 역시 제게 주어진 이 상황을 건강하고 성스럽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작은 옷장 속의 제대가 저의 본당이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면서 저와 항상 함께 길을 걸어가는 저의 모든 친구가 제 본당 신자들이니 사실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 ‘옷장 속 성당’ 중에서

베개 두 개! 시장에서 구입한 침구 세트에 들어 있던 것으로, 그동안 별 생각 없이 하나는 머리에 베고 다른 하나는 껴안거나 다리를 올리는 용도로 써 왔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새벽에 제 눈에 들어온 베개 두 개는 제 신경에 몹시 거슬렸습니다. 화가 났다는 게, 아니, 갑자기 너무 외로워졌다는 것이 좀 더 솔직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 그날 새벽 베개 하나를 옷장 속에 내동댕이치듯 처박아 두면서 혼잣말로 내뱉었습니다.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 ……
미사를 마쳤을 때 어느새 여명은 창문까지 닿아 있었고 저는 옷장 속에 처박아 놓은 베개를 다시 꺼내어 가만히 침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제야 제가 품고 자던 그것은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임의 베개’였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한 구도자와 함께 매일 밤을 보내시는 나의 임을 위한 베개! 저는 다시 제 곁을 지키며 함께 살아 주시는 하느님을 생생하게 느끼며 이곳에서의 삶을 봉헌합니다. 지금 제 침대에는 다시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저는 행복한 구도자입니다. --- ‘베개 두 개’ 중에서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젖을 빠는 아이를 바라보는 그 엄마의 눈빛에는 아슬아슬한 미소가 비쳤습니다. 그 슬쩍 비쳐진 거지 엄마의 미소! 제 눈에는 그것이 어느 성자의 미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짧은 미소는 제게 많은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슬그머니 야수들의 전쟁터를 빠져나와서 그 거지 모자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좀 더 가까이에서 그 아기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아기는 온통 전쟁 중인 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젖을 문 채 엄마의 품 안에서 온전한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
이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는 행복은 우리의 외부적인 역할 수행에서 찾아 들어오기보다는 우리의 내부 저 깊숙한 존재 자체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것입니다. 물론 성직자로서, 회사원으로서, 군인으로서 혹은 역술가로서의 외적인 역할 수행도 행복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나’의 행복은 자신이 맡고 있는 주된 역할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했을 때 그 상태의 문제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등과 같은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인 ‘존재의 상태’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거지 엄마의 미소’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실패로 좌절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나는 넘버쓰리가 두렵다》(2007),《밴댕이 신부의 새벽 고백》(2008)이라는 책들로 유쾌한 글쓰기로 정평이 난 최강(스테파노, 44, 멕시코 캄페체 교구 싼 프란치스코 본당 사제) 신부가, 이번에는 자신의 뼈아픈 ‘실패’의 경험을 고백하며 ‘실수나 실패에 좌절하여 고개를 떨군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실패하니까 사람이다》를 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신부)에서 펴냈다.

교회법으로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교황청립 로마 라테란 대학교에서 최단기간에 박사 학위를 받은, 전도유망한 한국 외방 선교회 소속 선교사 최강 신부. 그가 자신의 첫 선교지 중국에서 2년 정도 머물면서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깊이 뿌리내리고 잘 살아 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던 그곳에서의 삶이 처절한 실패였음을 인정한 그는 덜덜덜 떨면서 중국을 탈출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한다. 실패의 경험은, 많은 경우 그 사람을 위축시키고 그의 내면을 압박한다. 이제 지구 저 반대편에서 선교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저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고백하며, 실수와 실패를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기를 권한다. 동시에 그로 인해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도착하던 날과 마찬가지로 홀로 쓸쓸히 중국을 떠나오던 날,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서서히 밝아 오는 태양이 비추어 오던, 바로 그 방향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던 기차 안에서, 저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습니다. 다시는 기억에조차 떠올리지 않겠노라고. 그날 북경의 날씨가 그렇게 추웠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덜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영광스럽고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에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던 체험들과 쓰디쓴 실패의 경험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비록 그 순간에는 너무 힘들어서 얼른 그 멍에를 벗어 버리는 일에만 온 신경을 썼다 할지라도, 바로 그런 체험들을 거치면서 우리는 무겁고 힘든 인생의 무게를 지고 걸어가는 다른 동료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머리말’ 중에서

실패와 외로움의 상관관계, 그리고 일상에서 ‘발현’하는 외로움

이 책에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누구나 성공을 바란다. 그리고 성공 가도를 달릴 때는 ‘외로움’이 표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의 기운은 인간 실존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자극하여 두드러지게 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외로움을 외면하는 사람이 진정한 삶을 산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면 깊이 숨어 있던 외로움은 실패나 좌절의 감정과 함께 일상에서 ‘발현’한다. 저자는 맛있게 끓고 있는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에서, 옷장 속에 차려진 제대와 그 앞에 걸려 있는 선교 십자가에서, 식기들 위에 진을 치고 있던 바퀴벌레들 중 한 마리를 생포해 꾹 눌러 버린 후 눈에 들어온 베개 두 개에서 선명한 ‘외로움’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사진으로 찍는다면 바로 그런 형상들일 거라고 한다. 우리 각자는 살아가면서 또 다른 모습의 외로움의 형상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지혜로운 스승처럼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로 말해 준다.

땀을 식힐 틈도 없이 냄비에 김치를 길쭉하게 찢어 넣고, 대파와 마늘도 ‘송송송’ 썰어 넣고, 껍질까지 붙어 있는 돼지고기도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가 팔팔 끓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 천년 같은 기다림 끝에 ‘최강표 김치찌개’가 마침내 완성됐고 저는 밥을 담기 위해 주걱을 들고 밥통을 열었습니다.
아뿔싸! 밥통에 밥이 없습니다! 쌀통에 쌀도 없습니다! 쌀이 떨어진 지가 벌써 며칠이 지났을 텐데 도대체 이놈의 주부가 살림을 어떻게 하기에 쌀통 채우는 일도 안 하고 며칠을 보냈을꼬!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 바로 옆에 놓여 있는 빈 밥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서 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 의외였습니다. 시장기는 다 어디로 도망가고 갑자기 파도처럼 제 가슴을 적시는 감정은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동안 외로움이니, 고독이니 하는 감정을 주제로 글도 몇 편 써 봤고, 강론도 몇 차례 해 봤지만 그 빈 밥통 앞에 서서 느낀 외로움은 굉장히 낯선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사진 찍듯 정확히 찍어 놓은 광경 앞에서 저는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모든 재료가 다 들어가서 맛있게 끓고 있는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이게 외로움이구나! 일견 다 있어서 풍요로운 듯 보이지만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없어서 모든 의미가 그 빈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 버리는 것, 그래서 내 존재의 의미마저 희미해져 가는 것, 이것이 외로움이었구나!……
주식이 빠진 밥상! 주님이 멀어진 선교지에서의 삶! 그것이 저의 외로움의 시작이었습니다. 밥 없이 반찬만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없듯이 주님 없이 활동만 있는 선교사의 삶이 어찌 풍요로울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의 대화 없이 어찌 친구들과의 수다만으로 구도자의 기도가 완성될 수 있을까요.
- ‘김치찌개 옆의 빈 밥통’ 중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용기를 드립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되돌아가는 것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때론 평생 함께하자고 한 약속이 무색하게 변질되어 버린 경우도 있다. 길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하나뿐인 외길인가? 회의하며 때로는 다른 길로 접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출발했던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새롭게 출발하기도 한다. 사람은 그럴 수 있고, 또 그러니까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일종의 배신으로 보일지라도 자신에게는 그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누구든지 그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라 여겨지기에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가 끝내 견딜 수 없었던 첫 선교지, 그의 첫사랑 중국을 떠나 현재의 멕시코 캄페체 교구 산 프란치스코 본당에 있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께서 옆집의 공주를 불러 주시고는 커다란 야외 욕조에 둘을 벌거벗긴 채로 집어넣어 주셨습니다. ‘맘마 미아!’ 야외 욕조에 물을 채워 달라고 그토록 애원하며 졸라 대도 물을 아껴 써야 한다며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 물을 채워 주시던 ‘엄마’가 그날은 제가 조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물을 채우시고 그 속에 풍덩 넣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나의 공주와 함께! 그것도 벌거벗은 채로 킥킥! 세상이 다 제 것 같았습니다. 수영장처럼 크게 느껴지는 야외 욕조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공주랑 함께! ……
공주와 함께 물장구를 치며 한참을 정신없이 놀던 제게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머니의 기운이 느껴지지가 않았지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부리나케 욕조를 빠져나와 온 집 안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치사한 엄마, 공주까지 불러다가 나를 물놀이에 정신없게 만들어 놓고 혼자 나가시다니…….’ 다른 생각을 더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저를 떼어 놓고 시장에 가시려고 기차를 타러 역에 가셨을 것입니다.
저는 물놀이를 하던 그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 그대로 세상이 떠나가라 울면서 십 분쯤 걸리는 기차역을 향해 뛰었습니다. 저쪽에서 기차가 플랫폼을 향해 다가올수록 제 울음소리는 기차의 화통 소리를 능가할 정도로 더욱 커졌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듣지 못해도 어머니들은 당신 아이의 울음소리를 기가 막히게 듣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결국 기차에 오르지 못하셨고, 기차 안의 사람들이 벌거벗은 채 ‘앙앙’ 울고 있는 저를 보고 웃어 댔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보다도 훨씬 젊으셨던 사십 년 전의 젊은 어머니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얼굴이 붉어지면서 저의 등짝을 때렸습니다. 등짝이 엄마의 얼굴처럼 붉게 변하도록 맞아도 저는 엄마랑 함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어머니가 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고만장했지만 잠깐이라도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들은 저에게는 죽음이나 다름없었지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있는’ 생명의 시간을 위하여 그렇게 좋아하던 공주까지 포기했어야만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날 공주가 느꼈을 황당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치사한 녀석, 그렇게 나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자기 엄마가 눈에 안 뵈니까 나를 그렇게 헌신짝처럼 버려? 넌 끝났어!!!”. ……
공주에게는 심각한 배신행위가 되었을 그때의 그 결단과 행동을 되살려 이제 저는 다시 한 번 세상의 모든 좋다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더 좋고, 더 사랑스러운 주님과 함께하고 자 멀리 떠나갑니다.
- ‘첫사랑을 배신하다’ 중에서


다음은 저자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으로, 저자가 직접 작성한 글이다.

저자 인터뷰

1. 현재 하고 계신 일을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저는 현재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캄페체Campeche’라는 교구에서 본당 사목을 하고?있습니다.?현재 제가 일하고 있는 ‘산 프란치스코San Francisco’라는 본당은 교회사적으로, 특히 교회 선교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492년 콜뎷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황금을 찾아 나선?스페인 군대가 긴 항해 끝에 1517년 멕시코 캄페체에 도착했을 때, 그 군인들과?동행하고 있었던 최초의 프란치스코회?소속 선교사들이 전체 미주 대륙을 통틀어 최초로 하느님께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게 됩니다.?1540년 캄페체 시가 건설되고?그로부터 6년 후에는 최초로 미사를 봉헌했던 바로 그 자리에 미주 대륙 선교의 기점으로 사용될 선교 센터가 세워졌는데?바로 이 센터가 제가 일하고 있는 본당의 기원입니다.?저를 비롯한 한국 외방 선교회 회원들은 이제 최초의 미주 대륙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이곳 캄페체 교구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마야 원주민들을 비롯한 현지인 사목에 투신할 것입니다.

2. 이 책을 아버님께 바치셨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쓴 글들에는 16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저의 최고의 친구이자, 인생의 스승이셨고, 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저와 함께하셨고, 저를 가르치셨고, 또?지켜봐 주신 분이셨습니다. ‘죽음은 삶의 스승’이니 항상 우리들 삶의 마지막 여행지를?잘 생각하면서 살면 놀랍게도 우리들의 삶은 더욱 진솔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가르침을 주신 분도 제 아버지이셨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사시다가 돌아가신 분이시고요. 제 인생에 있어서의 어쩌면 가장 쓰디쓴 실패를 경험하고 있을 때 그런 아버지가 못 견디게 그리웠던 것은 제게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실패를 딛고 인생에 있어서나, 신앙에 있어서나 더욱 깊고 진지한 깨달음을 체험한 저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하느님의 품에서 쉬고 계시는 아버지께 도란도란 다정한 이야기로 들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영광의 순간에 쓴 글들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시련의 시기에 썼던 글들이라서 더욱 아버지께 바치고 싶은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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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책 출간 소감을 들을 수 있을까요?
제게는 세 번째 책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세 번째 책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앞의 두 권의 책,《나는 넘버쓰리가 두렵다》와《밴댕이 신부의 새벽 고백》은 사실 다른 이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닙니다. 그 책들이?하느님께서 제게 비춰 주시는 지혜와 깨달음의 빛을 제 안에 잘 정리해서 담아 두기 위해?제가 저를 향해?했던 이야기들이라면, 이 세 번째 책《실패하니까 사람이다》는?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면서야?비로소 좀 더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었던 이 땅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자’들에게 나눠 주고 싶은 이야기들입니다. 이 책이 출간되어 세상에 빛을 봄으로써 쓰디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면 만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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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부님은 어떻게 실패를 인정하고 새 출발을 하게 되셨나요?
사십대 초반을 지나고 있을 때까지의 제 인생은 그동안 너무도 평탄하고 순조로웠습니다. 돌아보면 그야말로 ‘영광’의 길이었고 ‘승리’의 길을 걸어온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랑과 지혜가?넘치는 부모님 아래에서 실패를 모르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선교 사제로 파견 받아 살던 중국에서 너무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어느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라고 만날 성공만 해야 돼?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깨끗이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나?” 저는 덜덜덜 떨면서 홀로 중국을 떠나왔습니다. 어떤 다른 이의 선언에 의해서가?아니라 제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고 돌아서는 그 길은 참으로 멀고 괴롭더군요. 그 멀고 괴로운 길을 되돌아서서 다시 태어난 듯한 첫 마음으로 또 다른 출발선에 섰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좀 편안한 인생의?길을 걸을 수 있게 되더군요. 지금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한 인생의 순간을 저의 새로운 선교지 멕시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조차?밝게 웃으며 보내고 있습니다.

5. 한 번 실패로 새로운 출발을 감행한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쓰디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고 새로운 출발을 앞 둔 친구들이여! 두 가지만 내려놓으면 됩니다. 첫째, 절망! 내려놓으십시오. 특히 당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더욱 절망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들에게 희망의 빛을 밝혀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실패하니까 사람입니다! 만약 실패 한 번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매우 교만해져 있을 것입니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겸손을 온몸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실패라는 값을 치르고 겸손을 살 수만 있다면 한두 번쯤, 아니 서너 번이라도 다시 하고 싶은 소중한 경험입니다. 그러니 모든 실패한 친구들이여! 다시 희망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당신 홀로 당당하게 서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십시오. 뭐가 문제입니까? 당신은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체험을 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6. 실패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에게 가족이나 친지가 할 수 있는 일이나 말은 무엇일까요?
실패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에게 주변 사람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나 말이 많지가 않습니다. 이제는 제 스스로가 실패를 그 나름대로 인생에 있어서?고유한 가치를 가지는 소중한 체험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말은 최대한 아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섣부른 위로나 격려의 말은 아직 그 실패를 바탕으로 소중한 깨달음을 얻기 전의 친구들에게는 방해가 될 뿐입니다. 그러니 침묵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의 곁에 함께 있어 주는 일’입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곁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바라봐 주는, 그래서 실패로 떨고 있는 사람이 실패했다고 해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아마 가장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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