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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기르는 사람들의 모임
열다섯 가지 습관 고쳐 쓰다가 걷기의 활용 속으로 하는 말 러브 레터 상관없는 계절 해설 | 굽은 길을 걷는 시간 · 소유정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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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왜 길렀는지 이제 알겠어? 준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뿐인 것 같았는데 이젠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는 나에게 왜 머리를 기르는지 되물었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나도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될지도, 했다. 그래요, 안녕. 안녕.
---「머리 기르는 사람들의 모임」중에서 수연이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혹여나 수연이 오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전립선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생명력이 강한 암세포에 잠식당하고 있을 전립선의 운명을 생각하면 수연을 향한 실망감도 점점 작아졌다.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죽음을 상상하는 것이 나만의 습관은 아닐 것이다. ---「열다섯 가지 습관」중에서 -걱정 마. 은희는 잘 있어. 잘 있다니 다행이었다. 못 지내면 어쩌나 걱정을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잘 있다니까 마음이 편했다. 그나저나 걔는 죽은 애가 잘 지내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걸 알 방법이 있다면 나에게도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 뒤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고쳐 쓰다가」중에서 그맘때 나는 자주 걸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그랬다. 당시에는 걷는 것이 일이었다. 먹고사는 일이라는 게 아니라,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어서 남들이 노동을 하듯 종일 걸었다. [……] 걷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로 시작한 고민은 80세 노인이 된 미래까지 갔다가 결국에는 다시 오늘 저녁에 뭐 먹지, 하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 즈음에는 기력이 떨어져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걷기의 활용」중에서 그날 이후로 나는 태수 형을 만나지 않았다. 내 잘못인가. 난 여전히 그의 그 말이 괘씸하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누가 누구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 말인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잘못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내 잘못인가. ---「걷기의 활용」중에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승언과 헤어진 건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약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진리는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 실체가 있어도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새로운 진리. 그러니까 어쩌면 믿음이라는 것 자체도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속으로 하는 말」중에서 그래서 다시 여기에 왜 왔느냐고 물으면 죽기 위해서도 아니고 애도를 하기 위함도 아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모든 것이 이해된다던 안의 말처럼 나는 무언가를 이해해보기 위해 여기 16층에 와 있다. 결국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를 잠식하는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라는 낙관의 태도로 노인과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계속한다. ---「러브 레터」중에서 사람과 사람이 멀어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것들이라고. 그 옆 팀 직원도 처음에는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만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느냐고. 그 사람도 점차 이유를 잊어버릴 거라고. 오래 지나면 그런 게 다 별일 아니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하지 못했다. ---「상관없는 계절」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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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어서
남들이 노동을 하듯 종일 걸었다” 사라진 것들 곁에서 시작되는 기나긴 걸음 소설집을 여는 「머리 기르는 사람들의 모임」은 제목 그대로 함께 머리를 기르는, 정확히는 과거에 함께 머리를 길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임원 다섯 중 둘은 떠나갔고, 남은 셋은 동쪽 바다에 와서 멀어진 인연을 떠올린다. 멀어진 사람과의 시간을 되짚는 한편 곁에 머무는 사람과의 인연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 “진짜 올까요?” “온다고 했어”(p. 40). 나른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에서 돌고래를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은, 관계의 앞날을 의심하면서도 그것이 오길 바라는 천진한 믿음이 우리를 내일로 향하게 함을 전한다. 「열다섯 가지 습관」에서는 오지 않는 ‘수연’을 기다리며 성북동을 배회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때 수연은 ‘나’의 말을 통해서만 드러날 뿐 그 윤곽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의 기다림은 비단 구체적인 누군가를 향한 일시적 행위가 아니다. 대상의 모호함으로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삶이 곧 ‘기다림’ 자체라는 점. 무한대(∞) 모양으로 걷는 인물의 발자취를 좇는 권희진의 펜 끝에서, 걷기란 기다림을 대표하는 행위이자 삶을 유보하는 자세가 된다. 이러한 걷기의 의미는 표제작 「걷기의 활용」에서 한층 깊이 있게 그려진다. 오랜 시간을 함께해왔으나 어느 순간 어긋나버린 ‘나’와 ‘태수’. “우리는 어쩌다 멀어졌을까, 그건 내 잘못인가”(p. 116).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잘못인가”(p. 141). 묻지 못한 질문과 전하지 못한 답을 거듭하며 이젠 과거형으로만 씌어질 수 있는 태수와의 시간을 복기하는 일은 ‘나’로 하여금 “도망치듯이 걷던 그 자세”(p. 140)로 돌아가게 한다. 후회의 무게를 짊어진 채 끝내 걸음을 옮기는 인물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나온 관계와 끝내 매듭짓지 못한 마음을 마주한다. 그것이 우리의 일부를 이룬다는 사실도. “이렇게 높은 데 올라오면 뭔가를 다 이해하게 돼. 신기하지?” 멀어짐으로써 선명해지는 마음의 모양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다 권희진은 복기와 체념으로 구성되는 우리 삶의 바탕을 집요히 응시한다. 「속으로 하는 말」은 자신을 믿었던 ‘정훈’과 ‘승언’을 떠나보 내고 홀로 남은 ‘나’의 목소리다. 이미 떠나간 “타인의 용서를 바라는 일은 욕심”이지만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가능”(p. 177)하기에, ‘나’는 거울 속 남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상관없는 계절」의 ‘나’는 모든 걸 잊는다고 말하면서도 지나간 인연을 끊임없이 복기하는 인물이다. 죽은 친구 ‘한솔’, 떠나간 여자 ‘혜인’ 그리고 엄마를 떠올리며 ‘나’는 “과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내 의지와는 별개로” “점점 멀어지고 있”(p. 233)음을 느낀다. 두 작품은 가려져 있던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회한, 죄책감과 부채감, 자기방어까지 덤덤히 묘파한다. 작가가 기어코 드러내는 것은 우리가 감추고자 애쓰는 남루한 마음들이 기실 인간 삶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마음을 생의 필연적 동반자로 둔 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권희진은 외려 이것이 과거를 바라보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써볼 수 있도록 이끄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러브 레터」에서 ‘나’는 잠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얼어 죽어갔을 노인의 심정을 더듬으며 옥상에 오른다. 높은 곳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동네 정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듯, 멀리서 바라봐야만 명확히 다가오는 장면들이 있다. 지난 시간으로부터 멀어진 현재에서 과거를 톺아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기억의 새김질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얽매임이 아닌, 당시에 놓쳤던 마음을 붙잡아 미래로 향해보려는 가쁜 움직임일지 모른다. 이러한 권희진의 시도는 「고쳐 쓰다가」에서 가장 선명히 드러난다. 소설 속 ‘나’는 전 여자친구 ‘은희’와 ‘서정’ ‘상이’ 그리고 동생과의 시간을 반추하며 기억을 다시 써 내려간다. 후회로 물든 과거를 이야기 속에서 새롭게 그려볼 때, 멈춘 시계가 다시 움직이진 않더라도 “어디선가 틱, 틱, 하는 초침 소리가”(pp. 108~109) 들려온다. 만남과 상실, 그리움과 체념, 끝나지 않는 반추로 깊어지는 인생 지난 어제로부터 새로운 내일을 비추는 권희진의 엷은 빛 우리는 걷는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얼마간 나란히 걷다가 저마다의 방향으로 멀어진다. 그때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은 익숙한 앞모습이나 옆모습이 아닌, 미처 알지 못했던 상대의 뒷모습이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안에야 새롭게 그려지는 표정들이 있다. 지나온 장면을 되짚으며 그때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헤아리기. 권희진의 소설은 그렇게 뒤늦게 도착하는 이해에서 출발한다. 지난 ‘이 계절의 소설’ 선정 인터뷰에서 작가는 “과거를 잊고 싶지는 않”아서 “과거로 돌아가는 대신에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래전 생겨버린 빈자리를 메우거나 멀어진 관계를 이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렇게 다시 씌어진 과거로부터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 『걷기의 활용』은 후회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나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나직한 희망의 빛을 드리운다. 함께 걷지 못한 눈 속을 기억 안에서나마 나란히 통과하고, 그들과 갖지 못한 시간에 잠시나마 분명한 모양을 입혀주는 일. 이별 후에 권희진의 인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일이었을 테다. 그렇게 보면 그 결정과 가장 닮은 것은 바로 권희진의 소설 그 자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기억과 닿지 못한 말, 고쳐 쓰다 만 문장들이 한데 굳어 비로소 한 편의 이야기라는 모양을 얻었으니까. -소유정 해설, 「굽은 길을 걷는 시간」에서 · 작가의 말 얼마간 글을 쓰지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주 헤맸고 매일 혼란했습니다. 벌써 밑천이 드러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들었습니다. 이제 겨우 발을 떼기 시작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이 암울한 시기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간신히 버텼습니다. 그러면서 하나 알게 됐습니다. 쓰는 일이라는 건 언제나 헤매게 되고 혼란해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비단 소설만 그럴까요. 그냥 사는 일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잘되고 어떤 때는 망하기도 하면서요. 앞일을 알 수 없어 불안한데 또 알 수 없으니 설레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테지요. 종종 길을 걷다 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왠지 모르게 자꾸 눈에 들어오고, 오래도록 마음에 잔상으로 남는 사람들이요. 안으로 침잠하길 좋아하는 저는, 그들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이건 같이 해야 하는 거구나, 또 그런 걸 느낍니다. 그러니까 쓰는 일이나 사는 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만나 뵙게 될 독자분들께 반가운 마음을 보냅니다. 여러분 덕분에 또다시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제 소설도 읽는 분들께 그런 존재가 되길 바라며. 2026년 가을 권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