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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제주도민족지(1935~37년 현재) 제1장 자연환경 제1절 지질 제2절 지형·수계·해류 제3절 기상 제4절 식물 및 동물 (가) 제주도의 식물 (나) 제주도의 동물 제5절 종합 제2장 촌락 연구 제1절 주민과 역사 (가) 개벽 신화와 ‘솟아나는 신(神)’ (나) 일본과의 관계 (다) 제주도인의 신체 형질 (라) 몽골 및 운남과의 관계 제2절 부락의 분포 상태와 그 성격 제3절 제주도 내의 성씨 제4절 촌락과 일터 제5절 교통 제6절 종합 제3장 가족 연구 제1절 세대인구와 가족성원 제2절 가족의 음식물 제3절 농업과 가족 (가) 농업과 그 기술 (나) 농업 노동의 형태 (다) 숯 굽기[製炭]와 사냥 제4절 목축과 가족 (가) 목축과 그 기술 (나) 목축 노동의 형태 제5절 어로와 가족 (가) 어업과 그 기술 (나) 어업 노동의 형태 (다) 나잠과 그 기술 (라) 나잠 노동의 형태 제6절 섬의 여성 (가) 가족 내의 분업과 여성의 지위 (나) 결혼과 출산 제7절 종합 제4장 초가족집단 연구 제1절 친족관계 (가) 식게[祖上祭] (나) 장례식 (다) 마을과 친족집단 제2절 품앗이와 계 (가) 수눌음(품앗이) (나) 계 및 기타 집단 (다) 기타 기능적 집단 제3절 말방애 집단 제4절 물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 (가) 이용되는 물의 종류 (나) 용수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 (다) 용수권과 말방애 집단 제5절 종합 제5장 제주도의 종교 제1절 섬의 성소(聖所) (가) 보편적 성소 (나) 개별적 성소 제2절 우도(牛島) 도네마을의 행사 (가) 정기 행사 (나) 임시 행사 제3절 종합 제6장 제주도 민구(民具) 제1절 의류 (가) 갈옷(감물옷) (나) 가죽옷 (다) 관모 (라) 우의 (마) 신발 제2절 식기 및 기타 생활용구 (가) 식기 (나) 구덕(대바구니) (다) 차롱(뚜껑 있는 대바구니) (라) 질그릇 제3절 농구 (가) 경작 농구 (나) 제초, 수확 용구 (다) 도정 용구 (라) 잡구 제4절 어구 (가) 어선 (나) 어망 (다) 낚시 도구 (라) 둠북 채집구 (마) 나잠 용구 제5절 가옥 제2부 도쿄에 있어서의 제주도인(1950년 현재) 1. 머리말 2. 도쿄 X지구 제주도인의 이주 경과 3. X지구 제주도인의 분포, 사회 결합 4. 가족 구조 5. 성씨와 이름 6. 남녀의 생활 7. 소비 생활 8. 교육·종교 생활 9. 성격·로르샤흐 테스트에 의한 분석 제3부 제주도에 있어서의 30년(1965년 현재) 1. 머리말 2. 경제 변동 3. 가족과 친족의 변동 4. 맺음말 역자의 말을 대신하여 주석 제주도 관계 문헌 목록 부록-제주도 방언 어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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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한반도와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과의 중간, 목포 남방 142킬로미터 해상에 가로놓인, 감자 모양의 본도(本島)와 34개의 부속도서[屬島] 및 암초로 이루어진 대화산도로 동경 126도 10분~126도 58분, 북위 33도 12분~33도 34분 사이에 있어 일본의 후쿠오카[福岡] 현, 오이타[大分] 현 및 고치[高知] 현 남단과 거의 같은 위도다. 본도는 동서 약 80킬로미터, 남북 약 40킬로미터, 해안선 2백여 킬로미터로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 p.17 양·산촌 사람들에게 숯 굽기는 겨울 부업으로, 특히 남자 일로서는 놓칠 수가 없었다. 삼림에서 베어낸 활엽수를 길이 한 자 정도로 잘라서 모양이 반듯한 너무 굵지 않은 것(지름 3~10센티미터)을 종(鐘) 모양으로 쌓는 것을 ‘남재임’이라 한다. 직경 1.8미터, 높이 1.5미터 정도의 남재임 속에 될 수 있으면 세로로 통나무를 쌓아 올린다. 그 다음 적토(赤土)를 물에 반죽하여 밑에서부터 발라 올라간 후 꼭대기에 지름 30센티미터 크기의 연기구멍 ‘굴토’를 낸다. 하부에 60×30센티미터 정도의 땔구멍 ‘불붙임’을 뚫어 점화한다. 연기가 나오는 정도를 엿보아 먼저 굴토, 이후 불붙임을 막고 7일 정도 두었다가 흙벽을 허물어 구워진 숯을 꺼낸다. 그들은 고정된 숯가마를 만들지 않고 수시로 이러한 일회용 숯굴을 만들어 굽는다. --- p.114-115 눈이 내리기 전, 골짜기의 적당한 장소에 긴 ‘삽(목책)’을 쳐둔다. 큰눈이 내린 뒤 쾌청한 날 여럿이 ‘상첨[隊]’을 짜 각자 개를 데리고 산 위쪽으로 사냥감을 몬다. 총을 가진 한두 사람이 울타리 일부를 뚫어서 사냥감의 출구를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잠복한다. 산 쪽으로 돈 사람들은 발이 눈 속에 빠지지 않게 하는 ‘테왈’을 덧신고 개를 부추기면서 사냥감을 내몰아온다. 깊은 눈 때문에 사냥감은 경사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밑으로 밑으로 몰려오다 울타리를 만나고 울타리 따라 도망갈 구멍을 찾아 출구로 나온다. 이걸 쏘아 죽이는 것인데 한 번에 많이 잡았다고 한다. 울타리의 위치 및 내모는 방향의 결정, 전대(全隊)의 지휘는 나이든 경험자가 한다. 고기는 상첨 참가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고 가죽은 그날의 공적에 따라 분배된다. --- p.115-116 제주도 잠녀는 일본의 해녀보다 추위에 강하고 또 임신·월경에도 아랑곳없이 사철 조업한다. 바다에 들어갈 때는 소중의라는 짙은 남색 무명 수영복을 입는다. 이 옷은 앞면은 젖가슴까지 가리나 등 부분은 드러나며 가는 천이 X자가 되어 하부를 당겨 올리게 되어 있다. (…) 헤엄을 치는 법은 거의가 평영(平泳)과 입영(立泳)이며 잠수 방법은 일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즉 입영 자세로 물속에 얼굴을 넣고 캘 만한 목표물을 가늠 잡아서 다리를 꽉 구부려 가슴에 바싹 당기고는 머리를 재빨리 수중으로 박으며 몸을 펴서 두 다리를 공중으로 차올려 침하속도를 붙인다. 몸이 완전히 수중에 잠기면 발을 차듯이 움직이고 손으로 물을 양옆으로 가르면서 깊이 잠겨 들어간다. 해조류를 베거나 패류를 떼어낼 때는 손동작만 달라질 뿐 수중 자세는 달라지지 않는다. (…) 이 섬의 잠녀는 잠수하는 깊이에 있어서나, 날씨나 계절에 대한 강함에 있어서나 일본 해녀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에 한국 연안에서 작업하던 이세(伊勢, 일본 미에 현 지방의 옛 이름) 해녀가 맞서지 못해 물러났고, 육지는 말할 것도 없고 쓰시마를 비롯 일본 각지, 나아가서는 만주에까지 진출했다. --- p.137-139 결혼 형식은 전적으로 유교적이어서 육지와 다르지 않으나 예장에 신랑 신부의 식장에 있어서의 방위를 적지 않는 것은 한국의 일반 관습과는 달랐다. 또 첫날밤 의식에서 섬에서는 신부가 신랑 옷을 벗겨주는데 이는 육지와 정반대다. 본도에 있어서의 남녀관계를 말해주는 재미있는 예다. 출산에 관한 행사 역시 육지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출산 전후 여자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각종 노동에 종사한다. 육지 사람과 섬사람의 출산 행사에 대한 차이점은, 육지 사람은 출산 후 곧 문에다 고추와 숯을 번갈아 배열한 금줄을 매는데 제주도 사람은 이를 하지 않는다. 유아기엔 양 ·산촌에서는 어머니가, 해촌에서는 주로 아버지가 돌보고 일고여덟 살이 되면 딸은 어머니, 아들은 아버지에게 붙어서 일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남녀는 서로 정신적으로는 전혀 딴 세계에 사는 것이다. --- p.169 제주도에서는 개가(改嫁) 또는 재개가(再改嫁)한 여자가 사망했을 경우, 그 여자의 제사를 어디서 하느냐가 자주 문제가 된다. 원칙적으로는 사망 당시 가족에 의해 치러진다. 즉 마지막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나는 자식들에 의해 장례나 그 후의 제사도 지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가끔 전 남편 자식들에 의해 묘가 파헤쳐져 시신을 빼앗기는 사건이 일어난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경우 시신을 빼앗긴 쪽도 가만있지 않는다. 유혈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 제주도 사람들은 “아버지 제사에 어머니 이름을 함께 모시지 못하면 아버지에 대해 섭섭”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둘째 처 이하는 그녀들에게 자식이 있는 한, 본처의 자식은 이를 모시지 않는다. 만약 본처가 떠났다면 제사 때 후처 또는 둘째 처 이하의 이름을 아버지 이름과 함께 모셔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아버지가 가엾은” 것이 아니라 본처의 자식들이 어머니 그 자체를 그들의 친족 계통 속으로 데려오고 싶은 것이다. 즉 제주도에서는 ‘애비 없는 자식’보다 ‘어미 없는 자식’ 쪽이 떳떳치 못하다는 얘기가 된다. --- p.339-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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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적 입장에서 본 제주학 개론의 사실상 첫 번째 총체적 보고서
이즈미 세이치가 30년에 걸쳐 써낸 『제주도』는 내게 큰 감동이었다. 그의 학자적 자세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인류학적 사고의 총체적 시각이 갖는 인식의 힘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 이 책은 제주도에 관한 연구서를 넘어서 인류학적 조사 방법과 분석, 서술의 한 전범을 제시한 명저로 평가되고 있다.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야말로 진실로 제주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저서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중에서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은 신비로운 영기(靈氣)가 어린 산이다. 제주 섬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해낸다. 경성제국대학의 학생 이즈미 세이치는 1936년 새해 첫날 산악부 대원들과 함께 한라산 정상에 도달했다. 일찍이 적설기(積雪期) 한라산 정상에 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낸 후 치밀한 등반 계획을 세운 끝에 이루어낸 쾌거였다. 그러나 산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쉬이 허락할 수 없었는지, 강풍과 눈보라 속에서 산악부 대원 중 한 명이 조난을 당하고 말았다. 한라산 조난사 내지 한국산악사 최초의 이 사건은 이즈미 세이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문화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한라산과 제주 섬의 마을들을 신들린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친구가 잠들어 있는 제주도를 제주인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이끌었던 것이다. 1930년대의 제주도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 연구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한국 전쟁 기간에는 도쿄에 이주해온 제주도인들을 대상으로 문화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했고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뒤에는 제주도를 다시 방문하여 30년 동안의 변화상을 추적했다. 1930년대에 시작된 이즈미 세이치의 30년에 걸친 제주도 연구는 1966년 한 권의 책으로 묶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 『제주도(濟州島)』다. ■ 제주 섬과 사람에 대한 따뜻하고 세심한 관심이 만들어낸 역작 『제주도』는 1930년대 제주를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여준다. 각종 통계 수치를 반영한 그래프와 표, 그림 예시들이 충분히 수록된 학자의 보고서지만, 건조하고 딱딱한 학술서를 넘어서는 서정적인 표현과 묘사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흰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한라산과 이를 둘러싼 중대가리 같은 오름 기슭에 펼쳐지는 초원에서 ‘사낭소리’나 ‘속히 갑시다’ 소리를 높이 부르며 수백 마리의 마소 떼를 거느리고 건너가는 소년소녀의 모습은 이 섬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사낭소리(소가 길을 벗어났을 때 똑바로 가라는 노래) = 이러 이러 이러 호 속히 갑시다(말더러 빨리 가라는 노래) = 호 호 호 호 (p. 124) 이 책에는 제주 섬의 지질과 동식물 분포 같은 자연환경에서부터 신화와 역사, 사람들의 의식주를 비롯해 종교, 언어, 풍습, 상례·혼례·제례 등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다양한 문헌들을 뒤지고 부지런히 마을들을 돌아다녔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던 시절에, 섬의 동서남북의 방언이 제각각이어서 의사소통이 원활할 수 없던 상황에, 이러한 결과물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학자적인 호기심 이상의 관심, 섬과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저자의 태도 덕분이었을 것이다. 저자가 연구를 시작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제국주의자로서의 시선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제주 섬을 대하는 저자의 마음에서는 순수한 열정이 느껴진다. 또 제주의 자연과 문화, 생활을 살피며 바다 건너 육지, 일본,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의 잣대로 판단을 내리거나 가치부여를 하지 않고 닮음과 다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 제주학 연구의 선구이자 전범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총체적 기록 이즈미 세이치의 30년에 걸친 제주도 연구는 감히 비교하거나 상대할 수 있는 다른 결과물을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연구 당시의 제주 섬과 사람들을 보여주고, 때로 30년의 세월이 남긴 흔적 또한 담아낸 80컷의 자료사진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기록된 것은 모두가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진정한 제주학(濟州學) 연구에 있어서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는 허투루 지나쳐버릴 수 없는 독보적인 필독서다. 그런데 이 책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아본 제주 섬 출신의 역자가, 저자의 조사와 연구를 뒤쫓아 참고문헌들을 뒤지고 직접 마을들을 찾아가 사라진 마을 이름과 방언들을 조사하며 일본어 원문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해놓지 않았다면, 이 책은 이처럼 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 이즈미 세이치와 마찬가지로 산을 좋아한 역자 김종철은 이즈미 세이치가 연관된 한라산 조난 이야기를 통해 저자에게 관심 갖게 되었고, 이 방대한 저술을 한국어로 옮겨 제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실로 영험한 한라산의 점지로 이어진 저자와 역자의 합작물이 바로 이 책 『제주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