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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그레망
2. 모두스 비벤디 3. 페르소나 논 그라타 4. 비공식회담 5. 신임장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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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차올라 온 나라가 섬을 떠나는 판국에 정작 화장실에서는 손 씻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건 지독한 농담 같았다.
---p.13 광화문 사무실 파티션 안에서 읽었던 보고서 속 마히타는 해수면 상승, 상습 침수, 담수 고갈, 이주 권고 같은 건조한 명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마히타는 젖은 수건과 달궈진 냄비, 맨발로 자갈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밟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늙은 개의 하품으로 만들어진 세계였다. 둘 다 거짓은 아니겠지만 한쪽은 너무 말라 있었고,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축축했다. ---p.23 “우리는 원래 그냥 쑤니네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섬 밖에서 오는 선원들은 쑤니네라고 하면 누군 줄 알아. 하얀 플루메리아로 둘러싸인 집이라고 알려주다보니까 외항선 사람들끼리 키친 플루메리아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지.” ---p.75 “아마, 어떻게든 살겠다고 지금 짐 싸고 있는 이 사람들은 아닐 거요. 이 섬에 차가 있어, 뭐가 있어. 그런데 정작 서류에는 우리가 당신들한테 목숨값이라도 빚진 것처럼 적혀 있더군. 센터에는 안내문마다 수용국의 지원에 감사한다는 문장이 붙어 있고. 당신 생각은 어때?” ---p.120 “내가 그 사람을 보고 싶은 건, 옛날 마음이 남아서가 아니에요. 그런 건 진작에 다 부스러져 사라졌어요. 집도, 마당도, 나무도 없어지겠죠. 뭐 어쩌겠어요. 없어진다고 내가 못 살 것도 아니고. 내가 기억하면 돼요.” ---p.191 “집이 전날만큼 무섭지는 않았어요. 비가 좋아진 건 아니에요. 다만 그뒤로 비가 올 때마다, 내가 없는 줄 알면서도 내가 돌아올 자리를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같이 떠올랐어요.” ---p.277 쑤니는 마지막 흰 점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곳을 바라보았다. 쑤니는 마히타가 바다와 하늘 사이에 낮게 누운 선으로 남고서야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빨간 과자통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뚜껑 위에 포갠 뒤 배가 향하는 쪽으로 고쳐앉았다. …… 이제, 배는 갈 때가 되어 가고 있었다. ---p.316~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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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잠겨가는 태평양의 섬에서 펼쳐지는
기후위기 시대의 디아스포라 우리는 서로의 삶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사라지는 섬, 남겨진 기억, 그리고 다시 시작할 이야기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어요.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 내가 그런 시간들을 살았다는 것. 그게 내 안에만 남으면 꼭 없었던 일 같아지잖아요.” * 2026 경기히든작가 선정작 “삶은 결국 기억과 인연이 직조한 터전 위에 구축되는 것임을 이 소설이 새삼 일깨웠다.” _정재민(변호사, 전 외교부 법률자문관)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생은 계속된다는 명제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기억에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는 염원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이 소설의 주제이자 질문이기도 하다.” _한지혜(소설가)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개인의 삶과 기억을 지켜내는 연대의 힘 잠재력 있는 작가를 발굴해 한국 문학의 내일로 키우는 ‘경기히든작가’ 프로젝트의 2026년 소설 부문 선정작, 박지윤의 첫 장편소설 『키친 플루메리아』가 출간되었다. 무대는 기후위기로 서서히 잠겨가는 태평양의 작은 섬 ‘마히타’다. 작가는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과 기후이주조정기구 한국대표부 사무관 선우영의 시선을 통해 이주와 정착, 기억과 이별, 새로운 만남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떠남을 앞둔 사람들의 일상,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던 삶이 이어지는 순간에 오래 머문다. 그리고 묻는다. 타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그들의 기억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지. 그 중심에 키친 플루메리아가 있다. 이곳의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을 달래고 끊긴 관계를 잇는 매개다. 사람들은 함께 밥을 나누며 상실과 이별 속에서도 서로의 삶을 받아들인다. 사라져가는 터전, 머무르는 기억 낯선 연대의 풍경 “내 기억 속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증인이 나 하나뿐인 기억은 아무리 오래 갖고 있어도 늘 어딘가 불안했다. 그 시절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혼자 꾸며낸 이야기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우리는 여전히 기후위기를 먼 나라 이야기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구 한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기후난민이 생겨나고 있다. 소설은 바로 그 자리, 바다 아래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섬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이주를 준비하고 공간은 서서히 지워져간다. 작가의 시선은 재난의 경고보다 그곳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기억의 파편으로 향한다. 그 파편들이 서로 이어지며 만드는 낯선 연대의 풍경이 담담하고도 밀도 높게 펼쳐진다. 무거운 현실을 다루면서도 작가는 위트를 잃지 않는다. 바닷물이 차올라 온 나라가 섬을 떠나는 판국에 화장실에서는 손 씻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광화문 사무실의 보고서가 “해수면 상승, 상습 침수, 담수 고갈, 이주 권고”로 요약한 섬은 막상 가보니 젖은 수건과 달궈진 냄비, 맨발로 자갈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세계다. 이 어긋남이 웃음을 주는 동시에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소설은 섣부른 위로를 건네는 대신, 우리가 이미 마주한 이주와 상실의 감각을 일깨운다. 뿌리 내린 기억, 다시 시작되는 삶 키친 플루메리아에서 나누는 온기 “나는 그 사람을 만나면 잠깐이라도 옛날로 돌아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까 남은 건 내가 앞으로 기억할 하루더라고요.” 선우영의 임무는 이주 대상자 ‘로사 쑤니 킴’에게서 한국행 확인서에 서명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쑤니의 집은 하얀 플루메리아로 둘러싸여 있고, 섬에 들르던 외항선 선원들은 이 집을 ‘키친 플루메리아’라 불렀다. 섬 사람들이 한 식탁에 모여 밥을 나누는 이곳에서 선우영은 그들이 지켜온 삶을 마주하고, ‘뿌리’와 ‘기억’, ‘공동체’의 뜻을 다시 돌아본다. 플루메리아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쑤니의 마당을 둘러싼 이 나무는 한 가족의 역사이자 한 사람의 삶을 감싼 ‘기억’ 그 자체다. 작가는 선우영과 쑤니의 대화를 통해 국제적 이주와 정체성, 가족의 문제를 풀어낸다. 한 섬의 위기를 기록하는 데서 나아가 사람과 사람이 기대어 사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찾아간다. 한 끼의 식사와 한 송이의 꽃, 이별이 남기는 긴 여운 끝에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며,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가.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책은 상실과 연대, 그리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작은 농담과 따뜻한 시선을 건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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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생은 계속된다는 명제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기억에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는 염원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이 소설의 주제이자 질문이기도 하다. 박지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묻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어쩌면 누군가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고, 그 이름에 새겨두고 싶은 기억일지도 모르겠다고. 이 소설을 읽으며 디아스포라가 공간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마음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페나우는 실재하지 않는 섬이지만, 나는 그 섬의 존재를 믿는다. 어느 세찬 비 내리는 밤, 젖은 흙을 파내어 몰래 심은 꽃처럼 환하게 번지는 마음을 나도 보았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누구든 그러할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당신의 마음속 섬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장을 덮고 나면 당신의 마음에도 플루메리아가 그립게 피어 있을 테니. -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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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외교부에서 법률자문관으로 일했던 기억 때문에 곳곳에서 빙긋빙긋 웃으며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웃음이 멎었다. 광화문에 있든 태평양의 작은 섬 마히타에 있든, 삶은 결국 기억과 인연이 직조한 터전 위에 구축되는 것임을 이 소설이 새삼 일깨웠기 때문이다. 마히타라는 아름답게 소멸해가는 세계를 내 기억과 인연의 터전에 지어 올려준 젊은 작가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그 세계에 먼저 다녀온 나, 기꺼이 여러분을 초대한다. - 정재민 (변호사,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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