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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시네필리아리뷰 : 가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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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Cine Special
12 필름을 잇는 도시, 부산과 한국영화 / 장운경

Cine & City
22 Film Must Go On : 열두 달 너머의 부산 영화제 / 김보경
28 변방의 신체, 박제된 장소 : 한국형 느와르가 부산을 소비하는 방식 / 민경은
36 [교토에서 온 편지] 가족은 어떻게 이별 공동체가 되는가 / 유의서
40 [헤어질 결심]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곳에서 / 김하나

Cine Review
영화와 시선 [해야 할 일]
50 #01 해야 할 일, 하면 안 되는 일 / 이흥재
56 #02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가? / 황석현
60 #03 멀어지는 책임, 박홍준의 프레이밍 / 하정민

시네필 리뷰
66 [얼굴] 타자의 시선에 갇힌 아름다움 / 임정록
72 [부산행] 끝까지 인간으로 남는 여정 / 김우리
78 [영하의 바람] 미진의 바람, 달아날 곳이 없어진다 해도 / 송원빈
84 [미스진은 예쁘다] 기꺼이 참견하고 마침내 껴안는 미스 진 / 김정윤
90 [국제시장] “국제시장”이라는 타임머신 개발 / 박성훈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300g | 173*243*10mm
ISBN13
9772671413007

책 속으로

구조조정 대상자와 그 가족을 직접 만나면서 셀바깥에 있던 삶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히 장일섭 부장의 딸과 통화한 뒤 준희의 모습은 어두운 창문에 흐릿하게 반사된다. 창밖의 아파트 난간과 겹친 그의 얼굴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엑셀의 가로세로 격자는 사람을 분명한 항목으로 나눈다. 반면 그 격자를 닮은 아파트 난간에 겹친 준희의 얼굴은 흐릿하다. 회사의 화면이 사람을 선명하게 분류한다면, 영화는 준희의 얼굴을 불분명한 형상으로 남겨 그의 감정을 쉽게 규정할 수 없게 한다. 준희가 죄책감을 느끼는지, 두려움을 느끼는지, 자신이 수행한 일의 결과를 이제야 실감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관객은 그의 동요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구조조정 대상자의 고통도 화면에 나타나 지만, 관객이 그들을 만나는 경로는 대부분 준희의 업무를 통해 마련된다. 구조조정 대상자들은 주로 인사팀이 평가하고, 만나고, 설득해야 하는 대상으로 등장하며, 준희의 동요는 영화의 중심인 감정으로 이어진다. 즉, 관객은 구조조정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도 그 일을 실행해야 하는 사람의 불편함과 함께 사건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의 고통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동료를 회사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인사팀의 고충을 말하려는 것인가. 혹은 회사 역시 살아남기 위해 어쩔수 없다는 상황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감독은 구조조정 대상자와 인사팀을 모두 프레임 안에 넣지만, 두 위치는 같지 않다. 구조조정 대상자가 일자리와 생활 기반의 상실을 감당한다면, 인사팀은 회사의 명령을 받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내보내는 위치에 있다. 문제는 이들과 달리 명단을 수정하고 구조조정의 방향을 정하는 결정자가 좀처럼 구체적인 얼굴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은 구조조정 대상자의 분노와 슬픔을 보고, 그 일을 실행하는 준희와 동우의 피로와 동요도 바라본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결정한 권력은 전달되는 명령과 변경된 명단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박홍준의 프레이밍은 관객에게 결정권자의 위치를 주지 않고, 그 결정을 전달받아 실행하는 인사팀의 곁에 오래 머물게 한다. 그 결과 집행자의 고충은 가까워지고, 결정권자의 책임은 멀어진다.
시퀀스가 전환될 때마다 반복되는 조선소의 모습은 관객의 시선을 옮긴다. 사무실의 파티 션과 블라인드, 컴퓨터 모니터가 인물을 좁은 구획 안에 놓는다면, 조선소의 화면은 밝고 넓으며 탁 트여 있다. 화면은 인물의 얼굴에서 크레인과 선박, 건물과 바다가 펼쳐진 조선소 전체로 전환 된다. 조선소를 담은 프레임은 사건과 사건 사이를 나누고, 모든 일이 같은 회사와 산업 안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환기한다. 인사팀과 구조조정 대상자의 갈등은 조선소라는 더 큰 공간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러나 화면이 넓은 원경으로 전환되는 순간 준희와 동우, 구조조정 대상자의 얼굴은 모두 사라진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관객의 시선을 인물의 곁에서 조선소 전체로 옮긴다. 이 위치에선 관객은 조선소의 규모와 지속성을 볼 수 있지만, 그 질서를 결정한 사람까지는 볼 수 없다.

--- ‘멀어지는 책임, 박홍준의 프레이밍’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영화로 읽는 부산, 그 도시의 시간과 사람들
― 스크린에 새겨진 역사와 삶, 그리고 인간을 향한 깊은 시선

영화는 한 시대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역사이자,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특별한 창이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도시의 풍경은 단순한 촬영 배경이 아니다. 그곳에는 시대의 상처와 사람들의 꿈,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운명이 함께 새겨져 있다. 특히 부산은 한국 영화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 도시다. 바다와 산이 맞닿고, 항구와 시장이 이어지며, 전쟁의 상흔과 산업화의 흔적이 골목마다 남아 있는 부산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거대한 영화와도 같다. 『시네필리아리뷰』 2026년 가을호는 바로 이 도시를 중심에 놓고 한국 영화의 역사와 현재, 영화 속에 투영된 인간의 삶을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이번 호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영화를 작품 자체에 가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화가 탄생한 시대와 공간을 살피고, 카메라가 포착한 풍경 너머의 사회적 의미를 발견하며, 등장인물의 선택과 갈등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로 확장한다. 영화사에 대한 탐구와 도시문화에 대한 성찰, 개별 작품을 향한 섬세한 비평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독자는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넘어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영화 애호가를 위한 비평지인 동시에, 부산이라는 도시를 통해 한국 현대사와 인간의 본질을 읽어내는 문화적 기록이다.

1. 한국 영화의 역사 속에서 다시 발견하는 부산
이번 호의 문을 여는 장운경의 기획 글 「필름을 잇는 도시, 부산과 한국영화」는 부산과 한국 영화가 걸어온 시간을 역사적으로 되짚는다. 부산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 이전부터 한국 영화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도시였다. 1924년 부산에서 설립된 조선키네마 주식회사를 시작으로, 한국전쟁 당시 피란 영화인들의 활동, 전후 영화산업의 성장, 그리고 1996년 출범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영화사는 한국 영화의 굴곡진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특히 이 글은 시대별 영화의 변화를 부산의 도시 풍경과 연결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전쟁 이후의 판자촌과 영도다리, 산업화 시대의 항구와 부두,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골목과 주거 공간은 영화 속에서 시대의 증언자로 등장한다. 과 이 보여주는 전후 사회의 풍경과 인간의 운명, 과 에 담긴 산업화 시대의 소외와 불안, 에 나타난 항구도시의 거친 정서는 서로 다른 시대를 관통하며 부산의 다채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영화가 도시의 외형만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까지 보존한다는 사실이다. 세월이 흘러 사라진 극장과 골목, 달라진 항구의 모습은 필름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영화는 지나간 도시의 시간을 현재로 불러오고, 관객은 그 풍경을 통해 한 시대의 삶을 상상한다. 이처럼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 영화사를 재구성하는 시도는 영화와 도시가 서로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 이해하게 한다.

2. 영화의 도시를 넘어, 삶의 도시를 바라보다
‘Cine & City’에 수록된 글들은 부산이라는 공간을 더욱 폭넓은 시선으로 탐색한다. 김보경의 「Film Must Go On : 열두 달 너머의 부산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대표적인 문화행사 너머에 존재하는 다양한 영화제의 세계를 소개한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와 국제해양영화제,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가 저마다의 주제와 방식으로 영화문화를 일구어 가는 모습을 통해 부산이 일 년 내내 영화적 생명력을 이어가는 도시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글은 화려한 영화제의 무대보다 그 무대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상영을 준비하고 관객을 맞이하며 영화제를 지탱하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도시의 영화문화를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영화도시의 진정한 가치는 국제적인 명성이나 행사 규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들어 내는 문화적 관계에 있음을 일깨운다.
한편 민경은의 「변방의 신체, 박제된 장소 : 한국형 느와르가 부산을 소비하는 방식」은 영화가 도시를 재현하는 방식에 비판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국형 느와르에서 부산은 종종 거친 폭력과 범죄, 남성적 욕망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이미지가 반복될 때 부산의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은 특정한 장르적 인상 속에 갇힐 위험이 있다. 이 글은 관객에게 익숙한 영화적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고 소비되는지 돌아보게 하며,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비평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유의서의 에 대한 비평과 김하나의 에 대한 해석은 도시와 공간의 의미를 인간의 내면으로 확장한다. 는 가족을 단순한 혈연관계가 아니라 기억과 상실을 함께 감당하는 공동체로 바라본다. 이별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다시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을 다룬 글에서는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부산의 지형이 이성과 감정, 거리와 끌림이 교차하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연결된다. 이처럼 이번 호는 도시를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 관계가 축적되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읽어낸다.

3. 한 편의 영화를 세 가지 시선으로 읽는 즐거움
‘Cine Review’의 ‘영화와 시선’은 이번 호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구성이다. 박홍준 감독의 을 세 명의 필자가 각기 다른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다양한 질문을 품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조선소 구조조정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조직의 생존과 노동자의 삶, 업무상의 책임과 개인의 양심이 충돌하는 현실을 다룬다.
이흥재는 조직의 위기 속에서 개인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회사가 요구하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곧 올바른 행동인지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조직을 위한 결정이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때, 그 결정을 실행하는 사람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영화는 이러한 도덕적 갈등을 통해 직장이라는 일상적 공간에 숨겨진 인간의 고뇌를 드러낸다.
황석현은 효율성과 합리성을 앞세우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한계에 주목한다. 조직은 제도와 절차를 통해 움직이지만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하정민은 영화의 프레이밍을 분석하면서 구조조정의 실질적인 결정권자는 화면 밖으로 물러나고, 결정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를 살핀다. 세 글은 각각 윤리적 판단, 사회 시스템, 영화적 표현이라는 서로 다른 접근을 취하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과 책임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모인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에게 영화비평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전한다. 영화에는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관객의 경험과 문제의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발견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은가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시선을 통해 작품이 품은 질문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세 편의 비평을 나란히 읽는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 가게 된다.

4. 영화 속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인간다움의 가치
독자가 직접 참여하는 ‘시네필 리뷰’는 이번 호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 지면에 실린 다섯 편의 글은 서로 다른 영화를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의 상처와 욕망, 관계와 연대에 관심을 기울인다.
임정록은 을 통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에 숨겨진 폭력성과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인간의 모습을 성찰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김우리는 에서 극한의 위기 앞에 드러나는 이기심과 희생, 연대의 의미를 발견한다. 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끝까지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남는다.
송원빈이 다룬 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내미는 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자신 역시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타인의 곁을 지키려는 미진의 모습은 희망이 거창한 구원이나 완벽한 해결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때로 희망은 절망의 한가운데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작은 결심으로 시작된다.
김정윤의 에 대한 비평은 부산 동래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주목한다. 사회의 중심에서 비켜난 사람들에게 기꺼이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의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경쟁과 단절이 익숙해진 오늘날 더욱 소중한 가치로 다가온다. 박성훈은 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개인의 생애에 새겨진 전쟁과 가난, 가족에 대한 책임과 희생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구체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이 다섯 편의 글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상처받고 흔들리며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이번 호는 이러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영화가 인간을 이해하는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시네필리아리뷰』 2026년 가을호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그 이야기가 도달하는 곳은 결국 인간과 사회의 본질이다. 영화의 역사와 도시의 기억, 사회적 갈등과 개인의 윤리, 상실과 연대라는 다양한 주제가 하나의 지면에서 만나며 영화비평이 지닌 풍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문적인 영화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익숙한 작품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며, 스크린 너머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도록 이끈다.
좋은 영화는 상영이 끝난 뒤에도 관객의 마음속에서 계속된다. 좋은 영화비평 역시 작품에 대한 설명이 끝나는 순간 새로운 사유를 시작하게 한다. 이번 호를 읽고 나면 부산의 항구와 골목, 시장과 산복도로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때 그곳을 지나갔던 사람들의 삶이 떠오르고, 영화 속 인물들이 남긴 질문이 우리의 일상과 겹쳐질 것이다. 『시네필리아리뷰』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깊이 영화를 읽는 즐거움을, 부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기쁨을,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독자에게는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시선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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