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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을 말하다 006
우르술라Ursula와 미르코Mirko 011 머리말 성당 신자석과 술자리 사이에서 021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사유들 행복 혹은 행운 028 허영 혹은 자만 036 성공 043 자유 051 무조건 친환경? 064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073 사치 084 죄 094 신뢰 103 우정 112 성性 123 사막(광야) 131 걱정 혹은 두려움 141 분노 151 위기 159 욕망 170 결정, 결단력, 그리고 충실함 179 희망 187 유대와 공동체 194 신앙 204 하느님 215 소명 227 성덕(거룩함) 237 고향 247 죽음 257 미래 266 영원 275 사랑 283 맺음말 두 개의 시선으로부터 얻은 통찰 293 감사의 글 미르코와 우르술라의 감사 인사 296 옮긴이 후기 진지한 고민이자 경건한 구도의 여정 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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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태어난 이 책은 여태껏 홀로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대담에서, 대화에서, 서로의 차이점에서, 그리고 지극히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담긴 연대에서, 격렬한 토론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책은 두 개의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일면적이지 않습니다. 이 책은 다양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각적인 측면을 다루었기에 내용도 다채롭습니다.
---p.6 (우르술라) 우리가 쓴 두 가지의 시선은 보편타당성을 추구한 것이 아니고, 절대적 진리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두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입니다. 글 속에서 여러분 스스로가 잊고 지내던 것들을 상기하고, 우리가 책을 쓰는 동안 체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책을 읽으시는 동안 ‘아하!’ 하며 깨닫는 체험을 많이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며, 각자 여기 주제들에 대해 자기 자신의 전망을 찾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p.24 (미르코) 제가 ‘운이 좋았군!’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행복을 체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특히 행복해 보입니다. 시내 한복판에서 쉽게 찾은 주차 공간, 식사 초대, 세금 환급 같은 좋은 일이 생기면, 저는 ‘와! 대박이네!’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조금 전, 계단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고, 두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던 또 다른 행운을 잊어버립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일상이 어긋나지 않는 행운보다 앞서 말한 특별한 행운을 훨씬 자주 행복이라 여깁니다. ---p.29 (우르술라) 엠마누엘라 수녀님은 저를 응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듯 제 손을 잡으시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 둘, 서로에게 약속해요! 나는 왜 나에게 이런 병마가 찾아왔는지 묻지 않을게요. 수녀님도 왜 그렇게 행복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마셔요! 알았지요?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우리 삶을 살아 내야 하고요. 그리고 또 그것을 가지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통해 헌신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이에요.” ---p.34 (우르술라) 우리가 성공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가치를 매긴다면, 우리는 우리 본질적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우리의 삶은 참혹해질 것입니다. 심지어 자랑할 만한 가시적인 성공을 한동안 이루지 못하면, 우리는 인간으로써 마땅히 누려야 할 정당한 권리마저도 스스로 부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성공과 실패의 표면적 격동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영적 깊은 곳의 확실한 기반’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p.48 (우르술라) “주님! 당신께서 제게 어떠한 성공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 어떤 위대한 업적을 이룰 것을 독촉하지 않으심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입니까! 하지만 당신께서는 저희가 자신만을 돌보지 않기를, 모든 것을 파멸케 하는 교만과 허영 그리고 오만에 빠져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저희에게 요구하십니다. 당신이 저희 삶의 희망이심을 헤아리게 하소서. 그 희망으로 기뻐하되 승자의 환호가 아닌 평화와 행복으로, 그저 조용히 당신께 이르게 하소서.” 여기에 저는 그저 ‘아멘’이라고 응답할 뿐입니다. ---p.50 (미르코) 그 당시에 제게 자유에 대한 철학적 생각은 없었습니다. 독재자와 자유를 위한 투쟁, 정치는 제게 별 고민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제게 자유란 일종의 이기적인 체험에 불과했습니다. 언제든 타고서 떠날 수 있었던 제 자동차처럼 말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떠난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주중에 클럽을 찾아가 다음날 새벽 다섯 시까지 놀고, 그날의 결석 보고서 하단에 하루 지나 스스로 사인을 하는 것, 제게는 이 모든 것들이 자유였습니다. ---p.52 (우르술라) 우정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바로 그것이 제게 있어 우정이 매우 소중한 이유일 것입니다. 가족이나 배우자, 또 그 밖의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것이며,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나 함께 큰일을 수행하기 위해, 혹은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요에서도 우리는 우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인생을 케이크에 비유한다면, 제가 보기에 아름다운 우정은 케이크 겉에 발라지는 크림과도 같습니다. 제게 친구가 있다면, 그것으로 인생은 훨씬 더 맛있어집니다. ---p.119 (미르코) 우리가 우리의 영혼과 자기 자신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가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우리가 세상 속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면서 자신의 신체를 기쁘게 받아들이는데, 도대체 거기에 하느님께서 비난하실 것이 무엇이 있다는 말입니까? 제 관념 안에서,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보시니 좋았다.”(창세 1,10)라고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p.125 (우르술라) 건강한 분노는 인간에게 행동을 유발하고, 세상에서 삶의 여정에 중요한 변화를 도모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저 분노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의 힘을 소모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분노를 건강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치는 데 더 많은 힘을 써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서 정의라는 말이 더 이상 허울뿐인 말이 아니라 점점 더 커져 갈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분노를 위한 용기’입니다. ---p.158 (미르코) SNS에 요가 수련은 올려도 되는데, ‘성체 성혈 대축일’의 성체 행렬 행사는 올리면 안 됩니까? 그리스도교는 복음의 참된 보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 용서, 평화 그리고 영원한 삶과 같은 복음의 보화를 통해 교회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외부로 선포해야 합니다. 선교적 공명심이나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려는 욕심으로 우리 신앙을 선포해서는 안 됩니다. 선포는 다만 확신에 찬 기상으로, 당당하게, 개방성을 지니고 해 나가야 하는 일입니다. 거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불러일으키는 모순과 사유거리, 그리고 우리 안의 의구심마저도 함께 녹여 행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선포입니다. 그것이 ‘함께하는 우리의 일상’을 이롭게 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p.158 (우르술라) 다른 피조물들에 비해 우리 인간에게는 많은 가능성이 주어졌습니다. 그 가능성은 확실히 우리 존재를 더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지만, 그 때문에 삶은 그만큼 더 흥미롭습니다. 예컨대, 제가 인간으로서 그 가능성을 일정 부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제 삶과 제 모습 전반에 관계되는 일이며, 더불어 제 인격의 다각적 측면에도 관계되는 일입니다. 가능성을 수용하는 것이 하나의 도전이라면, 제가 가능성을 열어 새로운 국면과 마주할 것인지, 그냥 거기에 그렇게 둘 것인지는 또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도전입니다. ---p.233 (미르코) 지구 온난화, 급진 이슬람 무장 단체인 IS, 세상에 상존하는 위기들, 독일의 극우 성향의 정당(AFD), 그리고 국가 복지 비용의 고갈 등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미래에 대한 제 걱정은 줄었습니다. 저는 인간 이성과 인간의 창의성을 신뢰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미래는 분명히 도래합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을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꿈꿀 수 있다면, 사람들은 각기 서로 조금씩 다를지라도, 모두가 긍정적인 미래를 꿈 꿀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러리라 확신합니다. ---p.269 (미르코) 사랑은 강력합니다. 사랑은 이 세상을 더 좋은 곳, 더 살 만하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사는 것도 그다지 녹록지 않은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것은 극한의 경지에 이르는 일이고, 자신에게 지극히 엄격한 일이며, 자아를 극복해야 하는 최고의 도전입니다. 그래서 이를 위한 노력은 항상 실패로 끝납니다. 우리는 자신과 싸우고, 이념 혹은 이상과 씨름하며, 삶의 현실과도 고투苦鬪합니다. 저는 이러한 고군분투孤軍奮鬪 역시 사랑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수 요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살고자 노력하지만, 실패할 수 있고, 그 실패를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실패하게 되어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p.287 (우르술라) 때로는 비관론이 저를 심각하게 위협해도, 제가 다시금 새로운 힘을 얻고, 새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매일의 삶에 정말 소소하고 보이지 않는 놀라운 사랑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의식하지 못해도 서로에게 도움의 손길을 나누며 사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서로를 지탱하며,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 지고 있습니다. ---p.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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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선
‘이야기’가 가진 힘은 놀랍다. 머릿속에 세상 가장 귀한 진리가 들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글로든 말로든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달되지 않은 이야기에는 힘이 없다. 이야기는 파동과도 같아, 가서 닿아야만 감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녀님과 글쟁이, 사과처럼 동그란 턱과 뒤덮인 수염, 하얀 수도복과 검정 후드티, 약학 박사와 건축 전공자 ….” 서로 다른 두 저자는 이 책, 『두 개의 시선』에서 각자의 이야기로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28가지 주제를 풀어낸다. 같은 주제를 다룬 ‘두 개의 시선’은 불협화음으로 느껴지거나, 이 책을 읽을 독자의 생각에 대한 간섭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때로는 넓은 스펙트럼으로 해당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전환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독자가 갖고 있던 주제에 대한 생각에 확신을 불어넣어 주는 근거가 되어 주기도 한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관점을 다듬기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돌기도 한다. 때로는 정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감동이라는 이름으로, 또 때로는 악의적인 목적을 담은 선동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들은 세상을 부유浮游하고 있다. ‘다양성’이 하나의 덕목으로 자리 잡은 세상, 절대적인 진리가 외려 도태되어야 할 낡은 사조처럼 오해되는 세상에서 개인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세상에 내어 놓을 것인가? 자신의 관점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개의 시선』역시 두 저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녹여 온 자신의 관점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열매 맺어 서로에게 주고받은 결과물이다. 자유롭고 활동적인 미르코의 글과, 부드럽고 예민한 우르술라 수녀의 글에서 우리는 각각의 주제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한 뚜렷한 대조를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에서, 혹은 그 시선들 사이의 어떤 시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로 그 주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다름’은 더 이상 ‘틀림’이 아니다. 사유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지적 성장의 마중물 생각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결국 대화와 소통으로 이어진다. SNS와 온라인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소통의 광장은 편의성과 신속함이라는 놀라운 장점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은 소수의 의견이 대중의 의견으로 대표되는 착시의 위험 또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등장한다. 많은 이가 ‘좋아요’를 누른 글에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요’를 누른 것으로 소통과 개인의 의사 역시 표현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제는 유행이 지난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은 인내에 관한 신조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생각이 남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정제되지 못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음’의 의미 또한 담겨 있다고 본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는 사유의 확장은 이제 능력의 영역에 들어섰다. 『두 개의 시선』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도 쉽사리 갖추지 못한 사유의 확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미르코와 우르술라 두 사람이 만든 두 개의 시선 사이에서 곧바로 또 하나의 ‘새로운 시선’이 등장할 여지는 충분하다.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 내 안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과정 미르코와 우르술라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낸다. 그것은 서로의 생각을 노출하는 과정이자 동시에 서로의 세계를 상대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이다. 미르코와 우르술라는 각자 28개의 세계를 상대에게 열어 주고,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인식을 확장시킨다. 이것은 작가와 수도자라는 위치가 만든 특수성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 우리가 이웃이나 친구,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배운 사귐의 감수성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자화된 개인의 시대에 어쩌면 가장 먼저 퇴화되고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대화’의 능력은 누구나 할 수 있음에도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두 개의 시선』은 독서라는 활동으로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것은 ‘이야기’의 직전 단계까지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두 개의 시선』은 세상에 존재하는 주제들을 정제된 언어로 풀어내 자신의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을 두 개의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저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이 정답은 아니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미르코도, 우르술라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완전하지 않더라도 생각을 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세상에 전하는 일일 것이다. 『두 개의 시선』은 무엇보다도 ‘나’라는 독선에 빠지지 않고 다른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 서로의 이야기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 등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