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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들어가는 글 014 1부 유럽 부의 지도를 그려나간 재화 16 01 문명의 상징이 된 올리브 023 02 아테네에 영광을 가져다준 은 031 03 바다의 축복, 소금 041 04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 길 051 05 지중해 제패의 비결, 중계무역 057 06 스위스 부의 기반, 용병 063 07 세계경제사를 새로 써 내려간 메디치 가문 069 08 독일 부의 기반, 맥주 076 09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대구 083 10 네덜란드를 일으켜 세운 청어 095 11 제조업의 혁신을 낳은 분업화 111 12 대항해시대의 신호탄이 된 후추 119 13 또 다른 무기 자원, 목재 129 14 커피의 경제학 137 15 유럽 귀족들의 전유물, 굴 144 16 새로운 부의 원천, 정보력 152 2부 유럽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은 사건 13 01 유럽을 구한 농업혁명 163 02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포에니전쟁 170 03 세계 최초의 자유무역지대, 한자동맹의 탄생 182 04 시장의 탄생 192 05 베네치아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198 06 페스트의 창궐 209 07 신 중심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 217 08 패권의 대이동을 불러온 칼레해전 226 09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이어진 금융혁명 235 10 세상을 피와 달콤함으로 물들이다 248 11 네덜란드 경제를 뒤흔든 튤립버블 258 12 자본주의시대의 시작을 알린 인클로저운동 267 13 아편으로 역전된 동서양의 경제 지위 274 나가는 글 288 감사의 글 295 참고 문헌 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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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론은 귀족들만 가지고 있던 참정권에도 변화를 주었다. 폴리스 구성원의 다수가 참여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들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의 기준을 혈통과 출신이 아닌 재산으로 정했다. 이것이 바로 ‘금권정치’다. 돈으로 권력을 사고파는 것으로 보여 반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사회가 혈통과 출신을 따지는 신분제 사회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견고한 성벽 같은 세습적인 틀을 깨고 후천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돈’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통해 정치적 권리를 부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변화였다.
---「1부 01 문명의 상징이 된 올리브」중에서 은광으로 구축된 해군력이 없었더라면 그리스가 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페르시아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다 보니 경제적인 뒷받침이 부족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물자 보급 능력이 전쟁의 승리를 좌우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다면 두 세력 간의 전쟁에서 페르시아가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은광을 통한 안정적인 은 확보가 가능했을 뿐 아니라 페르시아로부터 대량으로 유입된 금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물자 조달을 비롯한 전쟁 지속 능력이 훨씬 앞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제적 차이는 결국 전쟁의 승패를 넘어 국가와 세력의 흥망에도 영향을 주었다. ---「1부 02 아테네에 영광을 가져다준 은」중에서 1918년 12월 1일에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아이슬란드는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날씨 때문에 제조업이 성장하기에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슬란드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업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대구였다. 하지만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을 갖춘 트롤선(바다 밑바닥으로 끌고 다니면서 해저에 사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 달린 어선)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트롤로 무장한 영국의 동력선이 바다를 누비며 대구를 싹쓸이해간 것이다. 영국의 공격적인 어업 활동이 계속되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대구 어업이 나라의 주된 경제였던 아이슬란드였다. 대구 어업은 강대국 영국에 있어서는 여러 산업 중에 하나였지만 약소국 아이슬란드에는 생존의 문제였다. ---「1부 09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대구」중에서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를 대표하는 〈델프트 풍경〉은 1661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가 그린 것이다. 작품에 그려진 정박된 선박은 청어를 전문적으로 잡는 ‘부스buss’라는 배다. 깊숙한 발트해에서 살던 청어가 새로운 터전을 찾아 북해로 오자 네덜란드인은 기회를 잡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부스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1부 10 네덜란드를 일으켜 세운 청어」중에서 1636년 차가 보급되었지만 커피의 인기를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빈 공방전에서 오스만튀르크가 퇴각하며 놓고 간 콩 자루는 빈에 ‘커피하우스’가 급속도로 증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 전역에 빈 스타일의 커피하우스가 들어섰다. 커피하우스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다양한 거래와 이야기가 오갔다. 이곳에서 다양한 경제 정보가 오가면서 금융 저널리즘이 태동되었으며 증권거래소의 현대화를 비롯해 각종 금융회사의 설립이 이어졌다. ---「1부 14 커피의 경제학」중에서 한자동맹의 기본 틀은 자유무역이다. 오늘날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 Pacific Partnershi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처럼 가입국끼리는 관세나 기타 제도적인 규제를 받지 않는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2부 14 커피의 경제학」중에서 기나긴 시간 동안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프랑스와 영국 간의 백년전쟁도 휴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페스트였다. 당시 전투 방식은 병력들이 밀집해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 중에 하나였다. 프랑스와 영국은 전 병력을 동원했고, 그러다 보니 양 진영의 인구밀도가 높았다. 잘 알다시피 인구밀도가 높으면 병원균의 전염 속도도 빨라지고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결국 두 나라는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페스트로 피아식별이 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2부 06 페스트의 창궐」중에서 나사 빠진 왕들의 싸움터가 되어버린 유럽에서 이들을 잠재울 수 있는 권력은 없었다. 오로지 전쟁의 승패로 결정된 고액의 배상금이 주는 고통만이 이들을 훈계할 수 있었다. 교황의 권위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종교가 가졌던 권력도 예전만 못했다. 르네상스 시대 수많은 사상가가 종교가 아닌 강한 권력을 가진 왕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막상 절대 권력을 가진 왕들이 나타나 전쟁만 난무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자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했다. 견제를 받지 않는 강력한 권력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검증을 너무 혹독하게 치렀던 것이다. 세상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 절대 권력에게 절대적인 후원을 했던 부도 서서히 겸손함을 가진 새로운 동반자를 찾아 나서게 된다. ---「2부 07 신 중심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중에서 튤립 가격의 오름세가 가팔랐던 만큼 내림세도 가팔랐다. 폭락으로 많은 이가 돈을 잃었다. 다시 반등할 것이라 기대하며 떨어지는 칼날을 잡았던 사람들은 떨어지는 칼날과 함께 벼랑으로 떨어졌다. 이는 단순히 가격이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네덜란드 경제는 만성 디플레이션에 빠졌고, 자산시장 전체가 왜곡되고 시장이 혼란스러워지자 상공업에 종사하고 있던 많은 유대인이 영국으로 터전을 옮겨갔다. 이 때문에 당시 네덜란드가 쥐고 있던 유럽의 경제 패권은 영국에 넘어가게 되었다. ---「2부 11 네덜란드 경제를 뒤흔든 튤립버블」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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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금권정치부터 21세기 금융위기까지
예술과 역사를 가로지르는 경제 이야기 많은 사람이 경제 공부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서 절감하면서도 막상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한다. 게다가 낯설고 어려운 경제 용어 등은 진입장벽을 더욱 높인다. 사실 ‘경제’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데, 경제는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가게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도 경제이고, 쓸모없어진 물건을 중고 거래하는 행위도 경제다. 우리의 일상 그 자체가 바로 경제활동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이 켜켜이 쌓여 역사(경제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원하는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라는 파도에 올라타 있다. 그러니 경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 파도 위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금세 바다로 떨어지거나 또 다른 큰 파도가 왔을 때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많은 사람이 손쉽게 경제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의 진입장벽을 낮춰줄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경제사를 추적해나간다. 저자에게 있어 그림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미술적인 관점에서 그림을 다루지 않는다. 사조라든가 미적인 감상평 같은 것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미술적인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그림에서 당시 정치, 경제적 분위기만을 읽어낸 뒤 자신의 생각을 덧댄다. 예를 들어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를 통해 흑사병의 유행이 중세 유럽 경제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당시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는데, 노동력의 감소는 인건비의 상승과 노동권의 확보를 가져왔다. 게다가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지금의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함께 다루며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식의 폭넓은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또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과 당시 네덜란드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청어를 연결 지어 이야기한다. 이 그림에 그려진 배는 당시 청어 조업에 나갔던 ‘부스’라는 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네덜란드는 청어산업 덕분에 북유럽을 넘어서 유럽 경제의 패권국가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동시대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다작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비결로 ‘분업화’를 꼽으며, 분업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 말한다. 이런 점에서『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는 그림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이야기를 하며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지금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한다. 지금의 세계 경제는 어떻게 완성되었으며 앞으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저자가 5천 년간 이어진 유럽의 경제사로 우리들을 안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추적하다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인류가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알 수 있어 예상치 못한 변화나 문제를 마주하더라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적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유럽의 경제뿐만 정치, 사회, 문화의 지형도를 바꾸어놓은 ‘재화’를 중심으로, 2부에서는 ‘사건’을 중심으로 경제사를 훑는다. 인류가 대항해시대를 열어젖히게 된 계기는 ‘후추(향신료)’ 때문이었으며, 배타적경제수역을 정하게 된 까닭은 ‘청어’를 둘러싼 영국과 아이슬란드 간의 갈등이 국제전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군사무기보다 ‘석유’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석유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식량’, ‘소금’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처럼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준 재화는 매번 바뀌었지만, 부를 만들어내는 속성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고정불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16~17세기에는 세상의 모든 부가 에스파냐와 네덜란드로 향했지만, 이내 변방의 섬나라였던 영국이 새로운 경제 강국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그 자리를 미국에 넘겨줘야 했다. 지금 미국은 어떠한가. 냉전시대에는 초강대국이라 불리며 절대적 우위를 점했지만, 냉전체제가 무너진 현재는 중국과,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유럽 여러 국가의 도전으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이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되짚다 보면 부가 어디로 모여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지도가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고, 앞으로의 경제 패권에 대한 향방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부터 오늘날 가상자산의 등장까지, 지금의 유럽 경제를 만든 다양한 사건 속으로 지적 여정을 떠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