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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시의식과 존재사유
시와 장르 시의 방법론 반복의 문제 나와 당신 ‘들’의 이야기 시와 현실성 시의식과 존재사유 제2부 시와 리얼리티 서정의 양감(量感)과 농도(濃度) 시와 리얼리티 텅 빈 발화와 꽉 찬 발화-시에서의 의미와 상징화 작용 풍경의 깊이와 리듬의 진폭 제3부 시작법과 관계의 동역학 방(房)의 공간 표상과 관계의 동역학 위험한 家系?2013 공복의 시작법과 유리창의 처세술 말과 사물 제4부 시의 형이하학 반복의 형이하학-이영재 시의 인식과 관심 서늘한 음기(陰氣)의 점착성-강은진의 신작시 읽기 시간의 순례자-이해존의 신작시에 부쳐 인화되지 않은 음화(陰畵)의 기록-박성현 시의 존재론과 정신분석 자연사(自然史)의 이념-박종현의 시 세계 제5부 의미의 논리 의미의 논리 세계의 위력과 주체의 소멸-웃음의 윤리학을 위한 미학적 정초 몸의 현상학 혹은 누항(陋巷)의 마리아 윤이형과 공선옥의 단편 읽기 정직과 관대 혹은 욕망의 자기 윤리학-김애란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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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시를 읽었던 시대가 있었으나, 지금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다
문학에서 윤리와 정치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타자의 문제로 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를 유달리 새로운 영역의 발견이라 언명할 수는 없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2000년대 이후 한국시가 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해명을 위한 첫 절차로서, 먼저 시를 둘러싸고 있는 언어의 물질성, 결부된 문화적 환경으로서 토대의 변화를 꼽는 것이 온당할 듯하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한국에서 시와 시집을 읽는 사람은 이미 시인인 자와 앞으로 시인이 되려는 자뿐이다. 아무도 서점에서 시집을 사서 읽지는 않는다. 이는 상당히 오랫동안 누적돼온 문화적 관행으로서 부인할 수 없는 목전의 현실이 되었다. 소설이 대중문화의 확산을 따라 영상매체와의 효과적 결합을 통해 상품체계 속으로 스스럼없이 진입하며 거의 속절없이 타락해간 반면, 시와 시집은 상품체계 바깥으로 거의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시적 발화가 예전에 지녔던 문화적 지배소로서의 기능과 강력한 대중적 영향력 역시 거의 상실한 상태이다. 이는 가장 예민한 문화적 향수층인 대학생들이 시집을 거의 읽지 않는 현상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나마 대학생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하상욱의 『서울 시』와 같은 현저하게 파편적이며 단속적인 시집들뿐이다. 누구나 시를 읽었던 시대가 있었으나, 지금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시가 뜻밖에 획득한 지위와 시인들의 새삼스런 깨달음은 ‘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속설이다. 시가 돈이 되던 시대가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이러한 시의 급속한 탈물신화, 상품에 내재된 속성으로서 교환가치의 전면적 상실이 눈에 띄게 심화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시가 시인에게 돈이 되지 않는 것처럼, 젊은이들도 자신들에게 돈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시를 읽지 않는다. 이에 따른 부수적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면서도 양가적인데, 즉 시의 독자의 유실과 소진이라는 사태는 그것 자체로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의 의미가 시인들 자신에게는 이중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인들은 명민한 소설가들과는 달리, 상품 소비자로서 독자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즉 어차피 시의 독자들이 소수로 한정되는 만큼, 불특정 다수의 일반 대중 독자의 취향과 기호를 거의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시와 시인은 이제, 더는 대중의 문화적 트렌드를 복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리고 궁핍한 시대를 노래하는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의 예술가적 신념과 자부심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시인은 드디어 예술가로, 참된 시인으로 다시금 태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의 예술로서의 위상의 온전한 획득과 재천명은 상품으로서의 지위의 전면적 박탈과 동시적인 사건이다. 한국사회에서 대략 1990년대 후반 이후, 상품 질서로의 단일적 획일화 경향은 예술적 표현에 있어 어떤 면에서는 상대적 자율성을 초과하는, 마치 절대적 수준에 육박하는 미적 자율성의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시와 시인은 예술(가)로서 자신의 합목적적 목적성을 거침없이 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가령 외부와의 소통가능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최근시의 두드러진 난해성과 고도의 내적 편향성의 일단은 이로부터 그 일부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장르에서 진정성의 테제가 사라진 지 오래임에도, 장르로서 시에서만 유독 윤리와 정치, 타자의 문제가 새롭게 환기되고 재차 호명되는 것은 아마도 이상의 문학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다시 말해 소설이 거리낌 없는 세속화의 길로 항진(亢進)해 나가며 점점 감각적 쾌락에 봉사하는 유희적 오락물과 같은 것이 되어 갔던 것에 반해, 시는 비록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불가피한 탈속화의 단계와 조우하면서 문학적 자기 정화를 통한 내적 고양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사적 전환이 문학 장르의 차원에서 서정의 자기 갱신, 서정시의 안온한 자기 동일성의 파괴 속에서 함께 진행된 것은 주지하는 대로 2000년대 한국시가 갖는 특별한 의의다. 시적 주체의 자기 동일성의 완고한 구조 내에서 액면 그대로의 타자, 타자의 투명한 얼굴은 발견될 수 없다. 시적 동일성의 급진적 해체와 동시적으로 무수한 타자의 흔적들이 시의 내부로 기입되면서 주체의 자리바꿈은 비로소 가시화된다. 그리고 맨얼굴의 타자와의 마주침은 필연적으로 시 장르에 윤리와 정치의 문제를 끌어들인다. 시와 시인들의 속살과 밑뿌리들을 만지작거리는 일 총 5부로 나뉜 평론집에서 제1~4부는 최근의 시 비평을 모아놓았고, 제5부는 등단 이후 소설 비평 중에서 선별된 글들이다. 세부적으로 제1부는 시 장르의 문제나 시 의식 등의 원론에 가까운 글들을 수록했고, 제2부는 시에서 리얼리티의 문제를 주로 서정시와의 관계 속에서 다루었다. 제3부는 삼간(三間:人間?時間?空間)으로 지칭되는 관계의 동역학이 시작(詩作)에서 구현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들이다. 이어 제4부는 2010년대 전후로 등단한 젊은 시인들의 신작시들에 대한 현장비평 성격이 강한 글들로 이루어졌다. 끝으로 제5부는 등단작인 김애란론과 2000년대 이후 희극적 소설의 계보와 미학적 원리를 구명하는 글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시와 시인들의 속살과 밑뿌리들을 만지작거리는 일은 우리들 자신의 은밀한 구석과 바닥까지를 훑는 일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여 실재의 언어로서 시 읽기는 깊이 비어 있어서 충만한 적멸(寂滅)의 경험과 결부된다. 저자의 말마따나 시를 읽으면서 “스스로 깊어지고 넓어지는 경이로운 내면의 확장”을 우두커니 지켜볼 일이다. |